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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69화 (69/350)

69화

[뭔가 좀 이상한데요. 이 사람, 당신이 말하던 그 사람 맞아요? 왜 이렇게 얌전해요?]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실제로 금감양은 거친 사람이다. 나를 데려가려고 거침없이 칼을 쓸 만큼. 하지만 그걸 직접 하지 않고 남의 손을 빌려서 할 정도로 내 눈치를 본다. 나를 예뻐하는 진양 누님에게 밉보이면 표국의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도 한몫하긴 하지만―

[그러니까 말하자면…… 겉으론 저래도 당신을 꽤 예뻐한다는 거죠? 하긴, 무적단에게 의뢰한 내용에도 당신은 절대 상하게 하면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죠. 그래서 일부러 허접한 놈들을 고용한 건가?]

그렇지. 겉으로는 저래도 의외로 나에게 사족을 못 쓰는 게 바로 저 셋째 형이라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내게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는 거지.

[당신이 그렇게 화가 났던 이유를 알겠네요. 속으론 예뻐하지만 뒤에서는 칼을 뽑았다니. 화가 날 만하죠.]

그래. 솔직히 나는 셋째 형이 내게 그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화가 난 거고.

원래 싫은 놈이 빡치는 짓 하면 그냥 빡칠 뿐이지만, 좋은 놈이 뒤에서 내게 헛짓거리를 하면 개빡치는 법이잖아.

심지어 모른 척 와서는 자기가 널 위해서 뭘 했느니 떠벌리고 있으니 세 배로 더 빡친다.

지금도 봐. 자기가 한 짓을 다 알고 있다는데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안 하잖아?

“그리고 무당에 한 마디 했다는 것도. 솔직히 감시하는 눈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거 보통 표사들이 눈치챌 수 있나? 형님이 나섰으면 모를까. 아, 형님이 잡았다고는 하지 마요. 그렇게 은밀하게 움직이는 데 재주 없는 건 우리 가족이라면 다 아니까.”

[저 사람이 움직인 거였으면 내가 알아차렸을걸요. 나도 못 알아챌 정도의 기척이었어요.]

귀신조차 속일 정도의 기척이면 누구겠나. 당연히 은 파파겠지.

“보나 마나 은 파파가 던져줬죠? 알아서 처리하라고. 주는 거 받아먹는 것도 못 하면 굶어 죽어야 한다고 아버지가 늘 말했죠.”

자식들에게 금가장의 사업을 하나씩 맡긴 금왕이 보고를 받을 때마다 하던 얘기였다.

“그, 그 뭐냐. 그래! 내가 너 바쁘다 그래서 그 위험한 와중에 표사들도 보내 줬잖냐!”

“안 그래도 물어볼라 그랬는데요. 그거 표비 얼마에요? 나 이번에 꽤 벌었어요. 특수상황인 거까지 감안해서 더 쳐드릴 테니까 말만 하세요. 전표 말고 현금으로 드릴게요.”

“이 녀석이!”

“그래서 얼마냐고요.”

“야!”

결국 금감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는지 들고 있던 술 대접도 바닥에 내팽개쳤다. 고급 도자기로 된 그릇이 깨지는 쨍그랑 소리에 주변의 특별석 손님들이 다 이쪽을 쳐다봤다가 금감양의 부리부리한 눈과 시선이 마주치고는 에그머니나 하고 고개를 돌렸다.

“너, 너 그깟 돈으로 형제의 연을 끊을 생각이냐!”

“먼저 끊으려고 한 건 형님이고요.”

“내가 너 못 되라고 그렇게 했겠냐!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야!”

“예, 예. 계속 그딴 말 하실 거면 전 갑니다.”

어차피 화산지회 비무가 궁금해 미칠 것 같아서 온 것도 아니었다. 금감양하고 이 정도 대화를 나눴으면 자리를 마련해준 청운진인에게 적당히 면도 세웠겠지. 나는 아쉬울 게 없었다.

“야, 금태양! 너 진짜 가냐! 야!”

자리에서 일어나 특등석을 빠져나가자 금감양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고, 아버지 살아계셨으면 금가장 망신 다 시킨다고 면박이란 면박은 다 줬겠군.

“금태양! 너 거기 안 서! 야!”

뭐라고 하든 말든 개무시를 하면서 아예 화산지회 비무장 일대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다급하게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턱.

강하고 억센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손은 거칠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조심스러웠다. 어릴 때 아픈 나를 있는 힘껏 잡았다가 내가 피멍이 들어 고생한 후 나를 건드릴 땐 갓난쟁이를 대하듯 힘을 빼는 셋째형이었다.

“야, 내가. 내가! 미안하다! 그래! 잘못했다, 사과하마!”

나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금감양은 내가 요구하면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라도 할 것처럼 기세가 꺾여있었다.

마음 같아선 그 정도 사과는 받고 싶지만……

[사람들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몰렸네요.]

이 이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 필요도 없겠지. 게다가 금감양은 유명인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곳에서 오체투지를 받으면 괜히 이상한 말이 돌 수도 있다.

“사과한다고 하셨어요?”

“그래. 내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마. 이렇게 빌 테니 용서해주렴.”

“용서는 모르겠고. 일단 대화는 마저 하죠. 돌아가요.”

[뭐예요?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원래 이런 타입들은 그 입에서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한다.’ 삼 종 세트를 받아내면 끝이다. 자존심 때문에 절대 입 밖으로 안 내는 말이거든. 속으론 어떻게 생각하든 저 말이 나오면 끝인 거다.

오히려 사과 같은 건 밥 먹듯이 할 수 있는 타입들이 앞에서 한 말 다르고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지.

“진양이가 네가 달라졌다고 했을 땐 콧방귀를 꼈는데. 진짜 달라졌구나. 이곳 양양에서 해낸 일들도 그렇고. 내가 알던 너는 쬐끄만 게 약하기까지 한 어설픈 놈이었는데.”

자리에 앉자 술 두 병을 연달아 비우고선 한 말이었다.

“이젠 내가 지켜주지 않아도 될 진짜 남자가 됐어. 내 도움은 필요 없겠구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도움이 아니라, 나랑 상의하고 내가 받을 만한 도움이면 환영이죠.”

약간 체념한 분위기였던 금감양이 눈을 빛냈다.

“필요한 게 있어? 뭔데?”

“뭐냐면―”

우리의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엄청난 함성이 주변을 가득 메운 탓이었다. 화산지회 호북예선, 1위를 가리는 비무가 시작된 것이다.

“시작됐군.”

“보면서 얘기하죠.”

비무대는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기존에 9개로 나뉘었던 비무대를 하나로 만든 것이다. 어제 4강전 까지만 해도 나뉜 구획에서 진행했다고 하던데. 바닥을 이루는 저 무거운 석판들은 대체 언제 옮긴 건지. 나도 이제 약간이나마 내공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숙달된 무인들의 힘은 볼 때마다 놀라웠다.

“어디 보자, 십 수의 청면검. 저놈이 올라올 줄 알았지. 약간 어설픈 감이 있긴 하지만 숙련도가 보통이 아니더군. 저만한 기재가 왜 여태 이름이 안 났는지 모르겠군. 어디 일인 전승 문파의 후계자인가? 근데 저 가면, 좀 낯이 익은 거 같다?”

[당신이 사과를 받아서 이래요? 갑자기 말이 엄청 많아진 거 같은데.]

원래 이런 타입은 두 가지 부류가 있지 않던가. 하나는 말수가 적은 대신 몸으로 말하는 타입, 그리고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입이 움직이는 타입. 금감양은 절대적으로 후자다. 외부에서는 금왕표국주라는 타이틀이 있는 탓에 전자인 것처럼 근엄한 척하는 거 같지만.

“그런가? 난 멀리서 봐서 잘 모르겠는데. 상대편은 누구예요?”

“현민. 무당의 삼대제자다. 현자 배의 막내라더군. 너와 나이가 비슷할걸? 며칠 전에 앓아누웠다더니 다 나았나 보네.”

아하, 내가 청운진인을 의심할 때 얘기했던 그 녀석이군.

참고로 당당 녀석은 4강에서 떨어졌다. 청면검과 한 판 붙고 싶다며 눈을 빛냈는데 안됐지.

“기재라고는 하지만 역시 배첩을 받긴 어려웠나? 아님 현자배 막내가 이 정도다 자랑하려고 내보냈나. 진인이 저놈 자랑을 어마어마하게 하더군.”

“배첩은 뭐예요?”

“아, 몰랐냐? 이건 예선이고 본선이 따로 열리잖냐. 무당 같은 대문파는 이미 본선에 진출할 배첩을 몇 장 받아서 이런 예선 같은 거 구질구질하게 안 하고 올라갈 수 있지. 아마 삼대제자 중 제일이라는 현건 그놈 같은 녀석들이 배첩을 받았을 거다.”

창천과 현민이 비무대에 올라 서로를 향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심판이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있다가 커다란 징을 치는 소리에 깃발을 내렸다.

비무가 시작되었다.

“바로 치고받고 싸우진 않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처음에는 서로 견제하면서 수 싸움을 하기 마련이지.”

금감양의 말마따나 두 사람은 거리를 두고 빙빙 돌면서 이렇다 할 싸움을 보이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구경꾼들은 이런 간보기 타임이 익숙한지 크게 야유하는 것도 없이 비무대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구경꾼의 절반 정도는 예선에 참가했다가 떨어진 인물들일 테니까 어느 정도 수 싸움을 읽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었다.

[호오, 이렇게 싸우는 창천은 처음 보네요. 자기 권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확실히 이전에 비하면 감당할 수 있는 수가 많아서 권역이 넓어졌네요.]

귀신도 수 싸움에 흠뻑 빠졌군.

“형님은 지루해 보이네요.”

“내가 저 수준의 싸움을 몇 번이나 봤다고 생각하는 거냐?”

금감양은 다 먹은 꼬치 뒷부분으로 귀를 후비적거렸다. 소림에 가 있는 둘째 형님만큼은 아니지겠지만, 그도 상당한 실력자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중원 제일이라 불리는 표국을 이끌 수는 없는 것이다.

“요새 금가장 분위기는 어때요?”

나는 볼 줄 몰라서 지루하고, 금감양은 너무 빤히 보여서 지루하고. 그러면 다른 얘기나 할 수밖에.

“뭐, 그럭저럭 정리되어 가는 중이지. 아버지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각각 자기 방식대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중이고.”

“마찰이 있나 봐요?”

“사업하면 마찰이야 늘 있지. 형제자매간이라고 뭐 다를까.”

귀를 후벼 판 꼬챙이를 훅 부는 금감양의 얼굴이 낯설었다. 저게 내 셋째 형님이 아닌 금왕표국주 금감양의 얼굴인가?

“솔직히 말하면 억지로 너를 맡으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아버지가 너를 맡는 형제에겐 유산을 좀 더 나눠준다고 했었거든. 지금 와선 그것도 물 건너갔지만.”

“그랬었나. 난 들은 게 없는데요.”

“뭐 지나간 일이니까 잊어버리고. 솔직히 그 영감탱이가 돈을 따로 빼놓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형님이랑 진양이가 아버지 돌아가시고서 사업 전체를 한번 싹 뒤집었는데 장부 외에 기록된 재물 같은 건 하나도 안 나왔거든.”

“아버지다운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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