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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67화 (67/350)

67화

청운진인은 복잡한 얼굴을 하곤 태양의원을 떠났다. 다음에 볼 때는 내게 의맹에서 발급한 수술의 자격과 무당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다는 문서를 받을 때겠지.

[그런데 꼭 그렇게 했어야 해요?]

깔끔하게 받아낼 걸 다 받아냈는데도 귀신이 불퉁하게 중얼거렸다.

[고독을 처리한 공을 태청의문에 몰아주는 거요.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아, 그거.

아마 전생이었다면 절대 그런 식으로 처리하지 않았을 거다. 중소기업이나 개인의 결과물을 대기업이 홀랑 베껴먹고 자신들의 공이라고 떠벌리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자기의 결과물을 빼앗긴 이들은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업계에서 발을 떼는 게 고작이었고.

하지만 그건 압도적인 이름값과 대규모 물량 공세, 효과적인 선전 도구인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광고 등이 결합한 결과다.

그런 효과적인 광고 채널은커녕 라디오, 신문조차 없는 시대.

조작된 홍보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반대로, 진실을 실은 발 없는 말은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너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거 아니에요? 거짓된 소문도 천 리를 간다고요.]

알아.

하지만 그건 가짜 쪽이 더 재밌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다.

어느 시대건 사람은 진짜와 가짜 중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 마련.

그리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기가 있지.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나는 활명탕을 실으러 온 왕 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호사가인 왕 씨와 그의 친구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는 이번 일에 효과적으로 움직여줄 것이다.

[저번에는 그런 식으로 머리 쓰는 거 안 어울린다고 했는데, 생각을 바꿔야겠어요.]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의원님! 환자예요! 복부를 깊게 베였어요!”

화산지회 예선전은 잠시 중단되었을 뿐 끝나지는 않았다.

수술의 자격을 따기 위한 집계는 전부 채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원이 문을 닫을 순 없지!

“지금 갑니다! 신생, 한 의원님! 수술 준비해주세요!”

* * *

태양의원 양양 출장소.

이곳에는 특별한 환자가 있다.

물론 환자야 의원들에게는 전부 특별하다. 각각의 증상이 다르고 치료 방법도 다르고, 무엇보다 하나하나가 귀중한 환자다.

어떤 의원들에게 환자는 그저 고객, 또는 돈으로 치환되겠지만 또 일부의 의원들에게 환자는 단순히 고객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환자는 그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가진, 문자 그대로 ‘특별한’ 환자였다.

“장 의원님, 오늘은 좀 어떠세요?”

끄응. 장 의원은 속으로 앓는 소리를 삼켰다. 오늘만 벌써 다섯 번째였다. 곤장 열 대를 맞고 이곳으로 실려 온 후, 이곳의 의원들은 장 의원에게 끈질긴 관심을 보였다.

“어이, 아직 깨어나지도 않은 환자에게 말을 거는 건 적당히 해두라고.”

“누가 깨어나지 않았다고 해요? 이거 봐요. 눈꺼풀 아래 눈동자가 굴러가잖아요.”

그 말에 장 의원은 눈동자를 굴리지 않고 가만히 두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초점을 잡을 곳이 없는 감은 시야 속에서 시선을 고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어, 진짜네?”

“그렇다니까요. 이분 정신 차린 지 꽤 됐는데 안 일어나시는 거예요. 다른 의원들은 다 알걸요?”

“허어. 내 수련도 멀었군. 헌데 왜 안 일어나시지?”

“글쎄요. 물어볼 게 많은데. 한번 깨워볼까요?”

그렇다. 의원들은 장 의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오직 그만이 대답해줄 수 있는 일이 있었으니까.

“간지럼을 태우는 건 어때?”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간지럼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하하하! 장 의원은 승리의 기쁨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전에도 금태양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린 척을 하다가 간지럼에 당해 일어나야만 했던 일 이후, 그는 짬이 나면 간지럼을 참는 연습을 해왔다. 언제 어디서 또 악랄한 심문을 받을지 모르니까! 그 연습이 이렇게 빛을 발할 줄이야!

“간지럼을 태울 거면 제대로 해야지. 염소 한 마리 사 와봐.”

“염소? 염소는 왜요?”

“내가 흑도 방파의 주치의를 한 적이 있다고 했지? 거기선 간지럼을 태울 때 이렇게 해. 일단 상처를 내. 그리고 거기에 소금을 바르는 거야.”

상처에 소금을 뿌리다니?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릿했다. 금태양 그놈도 간악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 수하라는 놈들도 보통이 아니구나!

“아프긴 하겠네요. 근데 간지럼을 태운다면서요.”

“그래. 거기에 염소를 두면 염소가 소금을 찾아서 핥아먹어. 그게 그렇게 가렵대.”

으윽!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건 이미 간지럼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고문이다, 고문!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사실 장 의원이 여태 정신을 못 차린 척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다.

‘보나 마나 뻔하지! 금태양 그놈이 앙심을 품은 게야!’

자신이 무당에 금태양의 자격 없음을 일러바친 것에 앙심을 품고 태청의문에 자신을 벌하라 부탁한 게 틀림없었다. 금태양 고놈이 뛰어 들어와서 사실은 저가 수술을 했노라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믿음은 굳건했다.

지금은?

‘녀석이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래도! 믿을 수 없다! 어떻게 믿느냔 말이다!’

……해서 그런 이유로, 장 의원은 등에 욕창이 생기도록 정신도 못 차린 척 누워 있었던 것이다.

“솔깃한데요. 꼭 염소여야 돼요?”

“없으면 양이나 돼지도 괜찮겠지. 해보게?”

“빨리 깨워서 그걸 물어보고 싶단 말이에요. 그것만 알아내면 계속 이 늙은 노인네 들여다볼 필요 없잖아요.”

“좋아. 해치우자. 넌 가서 염소를 구해와. 나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날 엉망진창으로 만들려고!

“이 못된 놈들아! 뭘 알고 싶은지 말해라, 전부 말해줄 테니! 그러니까 간지럼만은!”

장 의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옆에서 수술용 칼을 꺼내는 소리가 너무 심장을 선뜩하게 했으니까.

“어, 일어나셨네요!”

“거봐. 내가 될 거라고 했지?”

눈앞에서 떠들던 두 명의 의원이 장 의원을 보고 깔깔 웃었다. 염소를 구하러 가려는 모양도 상처를 째 소금을 뿌리려던 모습도 아니었다.

“이 어린 것들이 날 놀려?!”

“너무 화내진 마시고요.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랬습니다.”

“저도 궁금합니다. 아, 오래 누워계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마실 것과 먹을 것 좀 갖다 드릴까요?”

의원들의 태도가 공손했기에 장 의원의 화는 조금 가라앉았다.

게다가 마실 것과 먹을 것!

정신 못 차리는 행세를 하는 동안 가장 괴로운 게 바로 먹는 것이었다.

입에 들이부어지는 거라곤 탕약뿐이어서 뒷간에 갈 필요도 없을 정도였으니깐.

“그래, 거 맛난 것 좀 가져와 봐라. 마실 것도. 뭘 물어볼라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그래야 입이 뚫리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후딱 갔다 오겠습니다.”

두 의원이 상다리 부러지게 한 상을 차려오는 데는 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듣자 하니 금태양이 다들 수고했다며 소, 돼지, 닭은 물론 각종 보양식에 진미를 한가득 차렸다나. 하여간 먹을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놈이었다. 그거 하나만큼은 참 좋았는데 말이지.

“꺼억, 그래. 무엇이 궁금하여 이 늙은이를 깨웠는고?”

배를 채울 만큼 채우고 나니 그새 사람이 늘었다.

장 의원을 깨운 두 의원이 자기들만 들어야 한다고 난리였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았던 탓에 그들의 방해를 뚫고 장 의원 주변에 두런두런 앉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태양의원에 계약된 의원 대부분이 이 자리에 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 의원님이 태양의원과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환자를 적게 보든 많이 보든 상관없이 다달이 돈을 준다지요?”

“환자를 잘 보면 성과급이 있다는 게 진짠가요?”

“숙식도 지원해주고 특히 밥이 진짜 맛있다면서요?”

“돌아가면서 쉬는 날을 줍니까? 정말?”

갑자기 질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지만 장 의원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왜냐?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허어, 한 의원님 말씀이 진짜였다니.”

“나는 신생 그 애가 말한 게 다 뻥인 줄 알았어요.”

“정말 부럽습니다, 장 의원님. 어떻게 금 의원님과 연이 되어서 그런 좋은 자리를 얻으셨어요?”

“자네들도 실력을 잘 갈고 닦아보게나. 그러면 운이 닿을지 누가 아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장 의원을 부러워하다 못해 질투하는 것이 눈빛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장 의원은 엣헴 하며 목과 어깨에 빳빳이 힘을 주었다. 일어나기 전까지는 금태양을 믿지 못하네 나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한 거네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건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후였다.

“하긴, 장 의원님 같은 실력자니까 금 의원님이 태청의문까지 가서 벌을 덜어달라 읍소한 게 아니겠어요.”

“그뿐이야? 금 의원님, 무력도 대단하다 들었네. 의원에 쳐들어온 무적단이라는 놈들을 전부 잡아 현청에 넘겼다지?”

“솔직히 이 동네 의원들이 비싼 보호세 내면서 양양에 터를 잡은 이유가 뭐겠어요. 다 그런 무뢰배들 쳐들어올까 무서워서 그렇지. 태양의원은 그런 거 없어도 되니까 밑의 의원들을 챙겨줄 여유가 있는 거군요.”

‘……어라.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디.’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그놈이 제시한 조건은, 물론 좋긴 하지만!

솔직히 사람을 다 죽어가게 방치하다가 치료를 해줬으면 그 정도 조건은 제시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감?

게다가 장 의원의 경우는 버는 족족 다시 금태양에게 갚는 상황이었으니 딱히 조건이 좋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헌데 눈앞의 이 어린 아해들을 보라지. 어린 아해들뿐이 아니다. 장 의원과 나이가 별로 차이 나지 않는 거 같은 의원들도 금태양 그 간악한 것을 찬양하다시피 하지 않는가!

‘뭐, 저놈들이 금태양 고놈에게 속아 넘어간다고 해도 내 알 바는 아니지.’

거느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장 의원 하나쯤은 까맣게 잊어줄지도 모르는 법이고 말이다.

“장 의원님, 깨어나셨다면서요?”

까맣게 잊기는?!

장 의원은 후닥닥 자리에 다시 드러누워 까무러친 척을 했지만, 이미 다 먹은 음식 그릇과 뼈만 남은 닭다리, 소갈비가 떡하니 있는 상태에서 발을 뺄 수는 없었다.

“다들 나가주시고요, 상도 치워주세요. 장 의원님도 일어나시고요. 우리 얘기할 게 많잖아요?”

달그락 달그락 그릇을 빼는 소리가 들려도 장 의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금태양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좌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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