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66화 (66/350)

66화

“헌데 우리 쪽 의원이 말하길, 마비산을 사용했다고?”

[이걸로 한 번 걸고 넘어질 줄 알았어요.]

상처가 덧나 사망하는 일이 더 많기에 금지되었던 마비산 사용. 점혈을 할 여력이 없어서 급하게 사용한 거긴 했지만, 사천당가 특제 처방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덧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임하는 의원의 위생이나 후처리 등을 꼼꼼하게 챙겨서 그런 것도 있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아마 더 많은 환자들이 죽었거나, 아직도 이 앞에 줄을 서 있었겠지요.”

처음 청운진인을 대할 때와 똑같다. 나는 당당했다.

“태청의원에서도 한번 고려해보시죠. 사천당가의 마비산은 걱정하시는 부작용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흐음, 눈앞에서 효과가 있는 걸 금 의원이 증명했으니 전통만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돌아가 의장로들과 논의해보겠네.”

[뭐야, 이 호랑말코가 이렇게 고분고분할 리 없는데요. 왜 이러지? 수상해요.]

별로 수상할 건 없다.

지금 무당과 태청의문은 그 명예가 땅에 처박힌 상황. 그 와중에 내가 저들이 놓아버린 환자를 구했다. 청운진인은 어떻게든 나를 구슬려 그 공을 가져가려고 하겠지.

“도우와 같은 뛰어난 무당의가 나온 것은 실로 기쁜 일이네.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게나. 무당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이거 봐. 아주 대놓고 제 편으로 포섭하려고 하잖아?

“저는 무당의가 아닌데요.”

“허허, 무슨 소린가. 이곳 호북에 와서 의맹의 자격을 따고 무당의 참관 아래 수술의 자격을 득하지 않았나? 허면 같은 식구지.”

“하지만 저는 그 어떤 가르침도 받지 않았어요. 여기서 시험을 치고 자격을 증명한 것만으로 무당의라고 하기에는 제 양심이 찔리네요.”

“양심이라니. 뛰어난 인재는 언제나 환영일세.”

청운진인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말을 늘어놓았다.

“천재들은 어딘가에 속하는 것을 꺼려 하는 법이지. 이해하네. 허나 의맹에서 모든 준회원은 정회원 아래 소속이 되어 있어야 한다네.”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맹의 의원들은 소림의가 되거나 무당의가 되거나 하죠. 그 정회원이 정한 규칙에 따라 의술에 임하고요. 그래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해봤는데?”

잠깐 뜸을 들이는 그 시간을 못 참고 말꼬리를 잡다니. 이번 일로 청운진인의 무당파 내 입지가 엄청나게 공격을 받았나 보다.

“제가 정회원이 되어볼까 하고요.”

“……!”

“아무래도 남이 만든 규칙은 잘 안 맞아서요. 아시죠?”

대충 부잣집 도련님이니 남의 말 듣기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내주었다.

“크흠, 도우께서 실로 큰 꿈을 품고 있구려. 의맹의 정회원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네.”

“알아요. 구성원들이 전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인데 쉬울 리가 없죠.”

“맞네. 어느 정도 규모도 있어야 하고, 기존 정회원 셋의 추천을 받아야 하지. 의무와 책임도 따른다네. 매년 내는 회비도 무시 못 하지.”

“하지만 권리도 있죠. 특별한 자료에 대한 접근권한이라든가, 희귀한 약재를 얻을 수 있다 든가요. 아, 정회원들끼리는 몇 년에 걸쳐서 희귀병이나 약에 대해서 공동 연구를 한다죠?”

그제야 청운진인은 내가 왜 의맹의 정회원 자격을 탐내는지 납득한 표정이었다. 사실 나도 이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면 보다 정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계획적으로 움직였겠지.

“그래서 추천 말인데요, 하나는 무당에서 해주실 거라고 믿어요.”

이번 일로 나에게 큰 빚을 졌으니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알지? 라는 식으로 싱긋 웃어 보이자 청운진인이 끙 앓는 소리를 냈다.

“……다음 의맹 정기회의 때 말을 꺼내보도록 하지. 나머지 둘은 그대가 설득해야 할 걸세.”

“좋은 선택이십니다.”

“허나 의맹의 정회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어쭙잖은 거짓말은 그만두는 것이 좋을 걸세.”

“거짓말이요?”

“화씨의문의 뒤를 이었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더군.”

아, 그거.

“대체 어디서 그만한 의술을 사사했는지는 모르겠네만 선친께서 무슨 수를 쓰셨다 생각을 하겠네. 허나 그게 화씨의문일리는 없지. 화타의 의술은 이미 명맥이 끊겼으니까.”

화산도 망하더니, 화씨의문도 망했다고? 살아생전 홍령의 삶이 어지간히 파란만장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어쩐다. 그 명맥이 귀신이 되어 나에게 들러붙어 있다는 걸 설명할 수도 없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또 있나?”

“환자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화산지회 예선은 예선이 열리는 지역을 담당하는 무림맹의 문파가 책임배상을 한다더라고요?”

청운진인의 낯이 하얗게 질렸다.

책임배상이란 그런 거다. 비무대회의 진행 중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배상을 하기로 한 주체가 이에 대한 모든 보상을 하는 것이다.

비무대회가 삼일이나 중지될 정도의 사건.

이건 양양 시내의 질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무당파의 책임이다.

보통이라면 이 배상을 화산지회에 참가한 무인들에게 해야겠지만―

“무당에서 책임배상을 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해서 제가 환자분들께 참가증을 받아놨습니다. 어차피 그분들에게 배상을 해주셔도 제게 치료비로 돌아오니까 복잡하게 이리저리 거치지 말고 제게 주시면 됩니다.”

[잘한다, 날강도! 더 뜯어먹어요!]

청운진인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이번 일로 태양의원을 거쳐 간 환자가 팔백 명이 넘는다. 그중 수술로 집계된 환자가 삼백여 명이 넘고.

전자는 1인당 은 서른 냥, 후자는 1인당 은 백 냥의 보상이 책정되어 있더라.

계산해보면…….

은으로 오만 냥 정도가 나온다.

금으로 치면 오백 냥.

나한테 대리수술의 대가로 금 백 냥을 내놓으라고 하던 청운진인은 졸지에 그 다섯 배의 금액을 내놓게 생겼다.

[어휴, 꼬셔라. 나 전생에 먹다 체한 게 다 내려가는 기분이에요.]

벌써 다 소화되면 안 되지. 아직 멀었다고.

“아, 화산지회 참가자를 환자로 받는 의원은 태청의문에서 따로 지원을 해주죠? 일인 당 은 열 냥이었으니까 그것도 꽤 되겠네요.”

[세상에, 그것만으로도 낡은 전각을 전부 수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 수리하고도 돈이 남겠는데요?]

청운진인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했다. 이번 일로 무당과 태청의문의 명예가 바닥에 처박힌 걸로도 모자라 뒷수습에 막대한 돈을 들여야 하다니. 아마 지금쯤 속이 말이 아닐 것이다.

이쯤에서 적당히 풀어드려야지. 노인공경, 노인공경.

“물론 그걸 다 받겠다는 건 아니고요.”

“그, 그럼?”

[말 더듬는 거 봐. 어지간히 당황했나 봐요.]

환자들에게 치료비는 무당의 책임배상으로 받겠다고 했을 때, 한 명도 거부한 사람이 없었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개인이 무당에게 돈을 받아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내 개인의 체급은 개미만 하지만 저들이 생각하기에 나는 거인을 뒷배로 둔 개미니까.

“이번 일을 수습하느라 무당도 여기저기 신경 쓸 곳이 많으실 테고, 저희 의원들도 고생하고 했으니 절반 정도는 받고 싶습니다.”

“……으음, 금 의원이 고생해주지 않았더라면 더 큰 혼란이 있었을 테니 그 정도라면 내 부탁하지 않아도 상을 주어야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역시. 청운진인이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돈은 그 정도였군.

청운진인이 태청의문의 장을 맡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태청의문은 무당의 속가이다.

이곳에서 벌어들이고 쓰는 돈은 전부 무당의 관할이라는 뜻.

돈을 벌어오는 곳이니 무당 내에서 입김이 적지는 않겠지만 결국 무당은 무문(武門)이니까. 무당 내에서의 서열은 그렇게까지 대단치는 못할 것이다.

대뜸 오백 냥이 넘는 금을 달라고 해봤자 청운진인은 그걸 내줄 만한 권한이 없고. 그렇다면 결국 무당 수뇌부와 마주 앉아 드잡이질을 해야겠지.

나는 아직 그 정도 체급이 되지 않는다.

소화 못 할 걸 먹어봤자 급체해서 죽기밖에 더 해? 그런 급체는 소화에 도움을 줄 활명탕도 없다고.

“그리고 진인께서만 해주실 수 있는 일을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뭔가. 말만 하게. 내 금 의원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주지.”

[후회할 텐데~]

홍령은 아예 콧노래를 불렀다. 그래, 요 며칠 귀신도 고생했으니 기분 좋은 보상이 하나 있어야지.

“영역을 확장하고 싶습니다. 무당의 영역에서 태양의원이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후회할 거라고 했는데~]

귀신의 콧노래가 더욱 유쾌해졌다. 청운진인은 얼굴을 굳혔지만 안 된다는 말을 대뜸 내뱉지는 못했다.

이건 무당의 일이 아니었다. 태청의문의 일이었다. 청운진인이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당신이 무당파 내에서 곤란해 할 상황을 피하게 해줄 테니, 당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내놔라.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었다.

“대신 이번 사태에서 태양의원의 이름을 내세우진 않겠습니다. 무당의 행사였으니 태청의원에서 가져가세요.”

고민하고 있는 청운진인의 저울에 추를 하나 더 얹어주었다. 명예가 실추된 상황에서 그 명예를 조금이라도 보존할 수 있는 수단은 좋은 거래수단이었다.

“그 부분은 의장로들과 상의 후 알려주겠네. 그래도 되겠나?”

“예, 제가 양양을 떠나기 전까지만 알려주세요.”

무당의 의장로들과 상의를 하든 혼자서 고민을 하든, 청운진인은 내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그래. 내 그 전까지 연락을 주겠네. 그리고 자네에게 줄 선물이 있다네.”

엥? 선물?

“무패도라는 작자인데, 그대의 의원에 큰 피해를 입혔다지? 우리가 잘 구금하고 있으니 데려가 원하는 대로 하게나.”

아, 그 무적단의 두목.

장 의원과 함께 움직였다더니 무당에 붙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장 의원도 쓱싹하려고 했던 무당이 그를 가만 내버려뒀다는 게 의아하긴 하지만……

“선물이라고 하셨는데 어쩌죠. 전 그자를 데려가서 쓸 데가 없는데요.”

“그, 그런가?”

“그냥 태청의문에서 쓰시죠. 태청독 같은 걸 개발하다 보면 사람에게 써봐야 할 일도 생기지 않나요? 어지간히 악독한 녀석이니 큰 부담 없이 쓰셔도 될 겁니다.”

내가 정말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이자 청운진인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니, 고작 그걸로 생색을 내려고 했단 말이야?

무패도에게 악감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진짜가 따로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고. 아마 무당에게 맡기면 내 손에 고통받는 거 이상의 고통을 선사받을 테니 복수로는 충분했다.

오늘 나한테 물 먹은 거 때문에 청운진인이 두 배, 세 배로 화풀이를 해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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