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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65화 (65/350)

65화

“다들 어서 오세요! 자, 여기 집중! 모여주세요!”

만약 그렇다면 타개할 방법이 있다.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

“지금 여기 당당, 사천당가의 당 소협이 만들어낸 처방이 벌레들을 전부 사지말단으로 밀어낼 겁니다. 와주신 분들은 각각 조를 나누어 이를 해결할 거고요. 점혈이 가능한 분, 수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각각 한 조가 될 거고 조마다 저희 의원들이 조장이 되어 지시할 겁니다. 한 의원님, 조를 편성해주세요.”

“알겠네. 점혈이 가능한 분들은 이쪽에, 수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이쪽에. 그 외 나머지 분들은 이쪽에 줄을 서주게나!”

이미 한 번 특기에 맞춰 조를 나눠본 경험이 있는 상황이라 한 의원과 다른 의원들이 재빨리 사람들을 분류에 나눠 제각기 조를 꾸렸다.

순식간에 십수 개의 조가 나뉘었다. 이도 저도 아닌 남는 이들은 신생이 각기 두 조로 나누었다. 한 조는 당당이 찾아낸 처방을 만들고 다른 한 조는 수십 건의 수술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을 청소하고 이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점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한 게 문제네요. 아무리 사지말단으로 기어 나온다 해도 손발은 예민한 부위라 점혈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드높은 무당산 꼭대기에는 점혈 정도야 밥 먹듯이 하는 고수들이 널려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서 무인을 초빙해오기엔 늦는다.

“당당!”

“왜?”

“너 마비산 만들 줄 알아?”

“어, 가능함! 지혈도 됨!”

“품질은?”

“사천당가다!”

품질을 물었는데 뜬금없이 가문의 이름을 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품질은 보증됐다.

“금 의원 님! 그래도 마비산은……!”

나도 안다. 무당에서 마비산을 사용하는 걸 금지시켰다는 걸.

“책임은 내가 집니다. 당당, 당장 만들어!”

“알았음!”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당이 만든 처방이 약이 되어 중증 환자들에게 돌아갔다. 상대적으로 증세가 덜한 이들부터 벌레들이 손발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폐나 심장 등에 벌레가 들어가 이상반응을 보이던 이들도 상태가 나아졌다.

“2조 수술 시작합니다!”

“8조 제거 끝났습니다!”

“21조 시간이 더 걸릴 거 같습니다! 계속 나와요!”

때를 놓치지 않고 새로 조를 꾸린 의원들이 움직였다. 당당이 만든 사천당가 특제 마비산을 뿌리며 벌레를 적출하는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손과 발은 무척 까다로운 부위다.

가늘고 작은 근육들, 곳곳에 붙어 있는 인대, 다른 인체 부위에 비해서 가장 얕은 곳에 위치한 동맥과 정맥까지.

자칫 잘못하면 칼질 한 번에 손발을 영영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괜찮아요. 하나같이 훌륭한 사람들만 뽑았으니까요.]

내가 뽑은 태양의원의 계약직 의원들이 치프가 되어 내가 한 방식 그대로 수술을 진행했다.

나는 나대로 한 조를 이끌며 가장 상태가 심각한 이들의 손발을 절개했고, 홍령은 내 손에 빙의해 수술을 진행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귀신의 시야로 살폈다.

모두의 얼굴에서 구슬땀이 흘렀다.

환자들의 비명과 신음 소리가 잦아들었다.

양양 전체에 안개를 자욱이 만들던 수증기 김이 사라졌고 그 탓인지 어느 순간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비가 시원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긴박한 사태가, 끝났다.

* * *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의원님들, 이것 좀 드세요.”

신생이 쟁반에 탕약그릇을 들고 오가며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의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게 뭔데?”

“당 소협께서 만드셨어요. 사천당문 특제 피로회복탕이래요!”

다들 당당이 만들었다는 말에 눈을 찌푸렸다. 잠시 한솥밥을 먹으며 일하긴 했지만 그는 역시 독술의 대가 당문의 사람이 아닌가. 게다가 이번 일의 범인으로 의심받기도 했고, 도움을 준 것도 결국은 약이 아닌 독이었다.

“신생, 나도 좀 줘.”

“네!”

다들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내가 먼저 두 그릇을 꿀꺽꿀꺽 넘겼다. 약재를 진하게 우려낸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다른 건 몰라도 복약에는 자신이 있는 내 혓바닥이 이건 진짜배기 탕약임을 인정했다.

상당히 귀한 약재의 맛도 나는 걸 보니 녀석이 가지고 있던 걸 넣은 모양이다. 태양의원에 구비해 놨던 귀한 약재는 환자들에게 쓰느라 동이 났으니.

“독과 약은 한 끗 차죠. 그 한 끗은 사람이 정하는 거고. 다들 그 녀석 성격 보셨잖아요.”

“크흠, 그렇긴 하지.”

“그런 식으로 장난을 칠 바에야 해독 대결을 하자고 붙을 사람이긴 하죠. 다들 귀한 사천당가의 비전을 마셔보죠!”

그제야 의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탕약을 비웠다. 효과가 빨라서 다 죽어가던 의원들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생기가 돌았다.

[엄청난 사흘이었어요.]

사천당가의 피로회복제는 안타깝게도 귀기를 소모한 귀신에게는 썩 도움이 되지는 못한 거 같았다. 홍령의 목소리에 피로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꼬박 이틀 밤을 새웠다. 눈 떠 있는 내내 환자를 봤고 뒷간 갈 새도 없어 밥과 물을 마다하는 의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들 목소리가 아주 죽어나가진 않았다.

우리가 해냈으니까.

“죽은 이들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둘째 날 들어서부터는 한 명도 죽지 않았군요.”

“아직 모릅니다. 당당의 처방이 독해서 아직 사경을 헤매는 환자도 있지 않습니까.”

“그 지독한 벌레에 비하면 낫죠.”

첫날에는 경증 환자들을 구했고, 둘째 날에는 중증 환자들을 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벌레를 제거한 후 기력이 쇠한 환자들뿐이었다.

처음에는 손 쓸 수 없는 미지의 공포였지만 결국은 해낸 것이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지만요.]

누가 고독을 퍼트렸는지, 그 고독의 정체는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했다.

저 사람하고 대화를 해보면 뭐라도 좀 알게 되겠지.

태양의원의 대문을 통과하는 일단의 무리를 본 의원들이 지친 것도 잊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와 일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 자리에 있는 의원들은 전부 무당의 소속이다.

그런 무당의의 정점, 태청의문의 장인 청운진인이 나타났으니 다들 지쳐도 꼿꼿하게 일어나 예를 갖출 수밖에.

“금 의원을 만나러 왔네만.”

“오셨어요? 늦으셨네요.”

나는 천천히 일어나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가볍게 고개를 까딱하긴 했지만 대단한 예를 갖추진 않았다.

피곤해서? 그것도 있긴 하지만, 나는 저 사람에게 지금 맺힌 게 꽤 많았다.

“들어가시죠. 대동한 무인들은 오신 김에 저희 일 좀 도와주라고 하세요. 아직도 사람 손 필요한 일이 많거든요.”

“그, 금 의원님! 청운진인이십니다!”

다른 의원들이 화들짝 놀랐지만 나는 아랑곳 않았다. 당사자도 별 말 안 하는데 뭐.

[그래도 찔리긴 하나 보네요. 양심이라는 게 있긴 한가 보지?]

안 그래도 청운진인을 싫어하는 홍령이 빈정거렸다.

이하동문이다.

청운진인은 내 말대로 무인들에게 의원의 일을 도우라 지시하고 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차를 내오란 말도 하지 않고 마주 앉자 그제야 청운진인이 입을 열었다.

“금 의원이 많이 섭섭했나 보군. 내 이해하네.”

“제가 섭섭할 게 뭐 있겠어요. 무당을 믿고 화산지회에 참가한 무인들은 좀 섭섭할지도 모르겠네요.”

나와 태양의원의 의원들이 피똥 싸게 뛰어다니던 삼 일간 무당은 뭘 했는가?

이게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였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태청의문이며 무당의를 대표한다는 의원들 몇몇이 나서 움직이긴 했다. 하지만 그들의 역량을 생각하면 너무나 적은 숫자의 환자들만 받아들였다. 받은 환자들의 면면이 하나같이 어딘가 연줄이 있거나 돈이 있거나 아무튼 끗발 끄트머리라도 잡은 이들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 고독이 확산되었을 때 현건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던가. 격체전력으로 체내의 벌레를 태워주겠다고, 아무나 해주는 서비스가 아니라고 말이다.

“화산지회 예선에 차질이 생긴 것은 우리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네. 다행히 내일모레부터는 재개할 수 있을 거 같아 다행이지.”

그 난리가 나는 동안 화산지회 예선은 잠시 중단되었다.

비무 참가자며 심판을 보는 사람들, 심지어 구경꾼까지 다 앓아누웠는데 어떻게 대회를 지속한단 말인가.

“그러게요. 다행이시긴 하죠. 무당의 후기지수가 앓아누웠다면서요. 삼 일간 정양 잘했으니 호북지역 예선 1위는 무난히 그 친구가 가져가겠죠?”

말에 뼈를 팍팍 심었는데, 청운진인은 그걸 듣고도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니들이 고독을 뿌린 거 아니냐고 묻는데 태연하기 짝이 없네요.]

“도우가 많이 속상했나 보군. 허나 무당은 결백하네. 무엇하러 우리 이름을 실추시킬 일을 하겠는가?”

“저도 딱히 물증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요. 누구라도 탓해야 속이 시원할 거 같아서 말이죠.”

“너무 염려 말게. 지금도 무당의 제자들이 양양 시내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네. 반드시 배후를 찾아낼 걸세.”

그렇게 말하는 청운진인의 눈은 매서웠다. 내가 처음 청운진인을 만났을 때 ‘무당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들이 있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했을 때보다 더 살벌했다.

정말 무당은 아닌가 보군.

“그래, 금 의원의 견해는 어떠한가? 곁에 둔 이에게 혐의는 없던가?”

이건 당당을, 정확히는 사천당가를 의심하는 거다.

“자연스러운 추론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닐 겁니다.”

“허어, 그러면 누구란 말인가.”

“누군지 모르니까 문제인 거겠죠.”

무당도 그 삼 일간 아주 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현상을 해결하느라 바쁠 때 흉수를 찾아다녔겠지.

그럼에도 꼬리가 안 잡혀서 내게 뭐라도 실마리를 얻을까 찾아온 거고.

“무림에 또다시 암운이 드리우는 것인가. 심히 염려되는군.”

청운진인은 착잡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건가?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만.

“그나저나 지난 삼 일간, 대단한 일을 해냈더군.”

수술보다는 시술에 가까운 절개와 봉합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어쨌든 내 주관 아래서 행해진 수술이 삼백칠십팔 건.

수술의 조건에 필요한 삼백 건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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