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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64화 (64/350)

64화

[식수는 반드시 끓여서, 음식도 반드시 고온에 잘 익힌 것만 먹도록 했잖아요.]

전생의 습관도 그렇거니와 몸이 좋지 않다 보니 그렇게 먹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청결, 위생과도 관련이 있으니 의원 내의 식수와 식사는 반드시 가열한 것으로, 입이 한 번 닿았다 남은 건 무조건 폐기한다.

음식이 만들어진 직후에 유충을 넣는다면 모를까, 다른 곳도 아니고 내가 있는 이곳 태양의원에선 성립이 불가능한 가정이다.

“물이나 음식보다 더 보편적인 전염 매개체가 있을 거야. 다른 건 없어?”

태양의원 사람들이 물과 음식을 전부 가열해 먹었다는 말에 당당의 표정도 굳어졌다.

“계속 자료를 보면서 생각해 봐. 약이나 독도 시도해보고. 나는 다른 환자를 마저 봐야겠어.”

당당과 신생에게 자료를 맡기고 다시 방을 나섰다.

[우리도 계속 생각해봐요. 당신의 ‘자산’에 도움 될 만한 정보가 더 없을까요?]

안 그래도 계속 되새겨보는 중이야.

전생에서도 전염병이 여러 번 돌았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뭔가 힌트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금 의원, 심각한 환자가 들어왔네!”

“갑니다!”

한 의원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손을 쓸 수 없는 중증 환자라고 해서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뭐라도 해봐야지.

[어? 이 사람?]

“도련, 님…… 살려…….”

“지부장!”

전신에서 고독이 꿈틀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환자는 금왕전장 양양지부장이었다.

[지금까지 봤던 환자 중에 제일 상태가 심각해요.]

“서두르죠. 당장 표피에 있는 것부터 빼냅시다.”

“문제는 이분만이 아닐세. 금왕전장에서 온 환자들의 상태가 전부 최악이야.”

금왕전장.

우선 지부장의 처리를 다른 의원들에게 맡기고 금왕전장에서 온 환자들을 훑었다.

한 의원의 말마따나 전부 상태가 심각했다.

몸에 들어간 벌레가 얼마나 많은지 벌레가 아니라 혈관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

“으악!”

“잡아! 냅두면 다른 환자 피부를 파고들어 간다!”

표피의 벌레를 잡기 위해 약간만 피부를 갈라도 벌레가 토하듯 꿀렁꿀렁 튀어나올 정도였다.

“……금왕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무공을 익히지 않아.”

그건 금왕전장주 금진양의 기조였다.

그녀는 돈을 다루는 머리와 무공은 상극이라고 여겼다.

전장의 호위는 어차피 금왕표국이 하는데 뭐 하러 돈 세는 사람들이 무공까지 익힐 필요가 있냐며 일부러 무공을 익힌 이들을 채용 때부터 배제했다.

돈을 다루는 자가 개인적인 힘까지 있으면 돈을 탐내게 된다는 이면의 이유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벌레의 특성하고 맞지 않는 예외라는 거군요.]

“아니,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들 중에서도 증상이 나타난 사람들이 없진 않아. 금왕전장 사람들처럼 중증이 아닐 뿐.”

순간 뭔가의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 의원 님!”

“왜 그러나?”

“혹시 중증 환자 중에, 다른 전장에서 일하거나 도박판을 꾸리던 사람이 있습니까?”

“있네. 다른 전장은 아니고, 도박판을 굴리던 작은 방파가 몇 개―”

찾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도 않을 작은 유충을 퍼트린 매개체.

[돈이네요!]

화산지회 예선으로 누구나 무인들에게 돈을 걸 수 있어서 돈의 유통이 평소보다 활발했던 요즘.

대부분 동전이 오고 가지만 판돈이 크고 배당이 좋은 비무에서 돈을 따면 은이나 금을 받기도 한다.

보통 사람이 도박판에서 은, 금을 받으면 제일 먼저 뭘 하겠는가?

이빨로 물어 정말 순은, 순금인지를 확인한다.

동전이라고 다를 건 없다. 어차피 손을 타고 입이든 어디든 퍼져나갈 테니까.

나는 전낭을 꺼내 아무 주화나 꺼내들었다.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귀신의 눈이라면 어떨까.

[……보여요. 아주 작은, 쌀가루 같은 것들이 기어 다니고 있어요.]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곽 표두와 제7 표행단이 우르르 태양의원으로 뛰어왔다. 내공이 탄탄해서인지 다행히 그들 중 아픈 기색인 사람은 없었다.

의뢰도 끝났는데 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잘 왔다!

“도와드릴 게 없나 해서 왔습니다. 도련님은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요. 표국은?”

“표사들은 전체적으로 괜찮은데 쟁자수들 상태가 나쁩니다. 아, 국주님은 괜찮으시고요.”

그 인간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일류 무인인 인간은 이 난장판에서 논외니까.

“쟁자수들은 이쪽으로 보내고, 곽 표두, 표행을 의뢰할게요. 지금 당장 양양에 있는 모든 표사를 고용할 테니, 가마솥과 물, 장작을 있는 대로 구해 끓여요!”

“예, 예? 네! 알겠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하지도 않았는데 곽 표두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곤 표사들에게 지시했다.

태양의원 출장소의 넓은 마당에 크기가 제각각인 가마솥들이 들어차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장작에 불을 때고 물이 팔팔 끓자 나는 우선 내 돈과 의원들의 돈을 거둬 전부 삶아냈다.

“환자들의 돈도 받아서 삶으세요. 곽 표두, 태청의원과 다른 의원에도 사람을 보내 알리세요. 모든 사람의 돈을 한 번씩 삶으라고! 여건이 안 되면 불에 한 번 달구기라도 하라 그래요!”

원래 돈은 더럽다.

형이상학적 얘기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더럽다는 뜻이다.

여기보단 위생이 발달한 21세기에도 돈에서 온갖 세균과 박테리아, 대변 따위가 묻어 있다고 할 정도니까.

하물며 여기는 어떻겠는가.

동전에 쓰이는 구리가 향균 효과가 있다곤 하지만 그것도 순수 구리가 아닐뿐더러, 아무리 효과가 있어도 압도적 오염에는 대책이 없다.

심지어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세균이 아니라 벌레니까.

[그래도 벌레니까요. 삶으면 죽겠죠. 알아내서 다행이에요.]

양양 시내 전체에 물을 끓이는 수증기가 자욱이 퍼졌다.

다른 곳도 내 주장을 이해하고 납득했다는 뜻이다.

태청의문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벌레를 볼 정도로 안력이 좋은 고수들도 있었을 테니까.

[일단 급한 불은 껐네요. 더 이상 추가 감염자는 안 나올 거예요.]

태청의문이 나섰다면 이 양양 일대의 모든 돈을 팍팍 삶아버렸을 테니 그 부분은 안심해도 좋다.

이제 남은 건…….

“금 의원.”

환자의 허벅지를 파고든 벌레를 찾기 위해 근육을 절개하고 있던 내게 한 의원이 다가왔다. 침통한 목소리. 오늘만 벌써 수십 번을 넘게 듣는 목소리였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금왕전장 양양 지부장께서 숨을 거두셨다네.”

“……알았어요.”

보통의 환자가 죽는 것과 내가 안면이 있고 나름 친근했던 이가 죽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마음이 착잡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손을 놓으면 눈앞의 환자가 또 죽어나갈 게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집중했다.

“잡았다.”

근육을 파고든 곳에 득시글대고 있던 벌레를 수 마리 잡아내고 허리를 폈다.

추가 환자는 없었고 경증 환자의 처리는 끝났다. 남은 것은 중증 환자들뿐이었다.

지금처럼 근육에 파고든 쪽은 나았다.

장기, 특히 심장과 뇌로 벌레가 파고든 이들은 손 쓸 도리도 없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전쟁터와 같은 비명이 다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울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내가 무너질 수는 없었다.

“금태양! 태양 태양! 찾았어!”

한참 동안 내 방에 틀어박혀 있던 당당이 호들갑을 떨면서 뛰어왔다.

“뭔데, 뭐 찾았어?”

“이거! 벌레가 싫어함!”

당당의 손에 들린 건 웬 탕약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고약하고 지독했다. 아마 약이라기보단 독에 가까운 물건일 것이다.

“고작 싫어하는 걸로 끝이야? 치료제가 아니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름? 시험해 봤는데 이거 먹으면 모든 벌레가 손발로 향함!”

[됐다! 이거예요!]

지쳐 있어서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환자들이 저걸 복용하고 약기운이 몸에 퍼지면……

근육 깊은 곳은 물론이고 뇌나 심장, 장기로 퍼져있는 놈들까지 사지말단으로 기어나온다 이거지?

“물론 부작용 있음. 아마 며칠은 죽다 살아날 것. 요양이 필요해.”

“그건 치료하면 되니까 괜찮아. 당장 끓이라 그래!”

“이미 꼬마가 달려갔음! 이제 나 범인 아님, 맞지?”

“그래, 이 자식아. 잘 했어!”

나는 당당의 등을 팡팡 소리 나게 때려주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의원들이 지친 기색으로 다가왔다가 해법을 찾았다는 소리에 다시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러면 이제 손발만 집중적으로 째면 되는 겁니까?”

“빨리 가서 환자들에게 좀만 버티면 된다고 해야겠군!”

그러나 다들 마지막 남은 기력까지 짜낸 지 오래였다. 희망에 눈은 반짝였지만 너무 지쳐서 피부 절개를 하다가 혈관까지 절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손을 떨 정도였다.

내 상태도 좋지 않았다.

[이 이상 점혈을 했다간 당신이 쓰러지겠어요.]

작은 절개야 괜찮지만 근육을 절개할 때는 점혈이 반드시 필요하다. 피부를 절개할 때도 가급적이면 점혈을 이용했다.

그 외의 지혈, 마취 수단이 마땅찮았으니까.

생각해보자.

지금 태양의원 의료진의 상태로 어느 정도의 효율을 낼 수 있나?

사람들이 더 죽어나가기 전에 몇 명이나 더 살릴 수 있나?

[……그만해요.]

머리가 터져나가기 직전, 홍령이 말리듯 나를 감쌌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린 일이에요. 제아무리 뛰어난 의원도 모두를 살릴 수는 없어요. 의원이 된다는 건, 그런 일조차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예요.]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제아무리 뛰어난 천재도 전부를 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혼자라면 말이다.

“의원 님, 이분들이 도와주겠다고 오셨어요!”

신생이 갑자기 수십의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의원도 있었고, 무인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괴질을 고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우가 이곳에서 목숨을 건졌다 들었네. 혹 뭐라도 도울 게 있나?”

“우리가 일하는 의원은 원장이 겁이 나선 아예 문을 닫아버렸네! 무당의라는 작자가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서야! 의원에서 하는 일은 뭐든 할 수 있으니 돕게 해주시게!”

이들이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사전에 판을 짜놓은 것도 아니다. 애초에 그런 걸 할 수 있었다면 이 벌레들이 퍼지기 전에 손을 썼겠지.

사람이 무조건 선하다고 믿는 건 아니다.

그런데 꼭 보면, 개인으로는 이겨내기 힘든 위기가 닥쳤을 때 제 일도 아닌데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이 어느 집단이나 한 줌은 있기 마련이라서.

전생과 현생, 시대가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사람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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