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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63화 (63/350)

63화

“여기도 똑같은 상황이군요.”

“똑같다면, 다른 곳도 이렇다는 얘깁니까?”

현건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양양 시내에 괴질이 발생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따라오십시오.”

“태청의문이 방법을 찾은 겁니까?”

“방법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닙니다. 고수들은 내공으로 태워버릴 수 있으니 그걸 이용해 귀인들께만 격체전력으로 독성을 태워드리고 있습니다. 서두르십시오.”

태청의문이 뭔가 방법을 찾은 걸까 기대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더 빠른 방법이 있어요. 피부 밑에 있는 벌레를 찾아 제거하라고 하세요. 오장육부로 가기 전에 빨리 제거해야 해요!”

“제거라니, 어떻게―”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안 보여요?”

“……!”

현건의 눈이 빠르게 내부를 훑었다.

“하지만 수술이 가능한 의원은 많지 않습니다. 피부만 베어내는 거라면 모를까―”

“미치겠네. 이 상황에서 그런 걸 따져요? 아님 다 여기로 오라고 하든가! 아니다, 그 전에 당당을 찾아요! 그 녀석이 범인일 테니까!”

현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말을 따라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벌레를 제거하고 급격히 상태를 회복하는 경증환자, 벌레가 폐에 들어갔는지 격하게 호흡하다가 이내 숨을 거두는 환자들을 보고 마음을 결정했는지 자신을 따라온 무인들에게 지시했다.

일부는 태청의원과 다른 의원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당당을 찾으러 갔다.

당당이 현건의 손에 끌려 온 것은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야, 너 이 새끼!”

“켁, 켁! 왜 그래!”

놈의 얼굴을 보자마자 멱살을 잡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홍령이 놈을 자하신룡이라는 별호 때문에 한 대 치려고 할 때 내버려 둘 걸 그랬다.

“왜 그래?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 당장 고독의 해독제 내놔!”

“고독? 무슨 소리야? 난 그런 거 가져온 적 없음!”

당당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소리를 지르곤 멱살을 잡은 내 손을 뿌리쳤다.

“지금 고독 때문에 양양 전체가 이 난리 난 거? 어떻게 생긴 놈임?”

“어떻게 생겼냐고? 여기 똑똑히 봐라! 보고도 시치미 뗄 생각이야?”

나는 방금 전 환부에서 뽑아낸 벌레를 당당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뭐임, 이거? 이게 고독이라고? 이렇게 생긴 녀석은 처음 보는데.”

당당의 얼굴이 더욱더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당문에서도 고독을 다루긴 함. 하지만 그놈들은 이렇게 작지 않아. 적어도 새끼손가락만 하다고. 게다가 발도 없고. 이건 거의 실지렁이 아님? 우리 애들은 지네에 가깝다고. 얼마나 까다로운지 물이랑 온도도 가려서 사천지역 외로는 데리고 나가지도 못함. 지금 가문에도 몇 마리 없고.”

“그걸 믿으라고?”

“애초에 내가 왜 그런 짓을 함?”

“내가 어제 제안을 거절하니까 화를 내고 나갔잖아!”

“그거 때문에 양양 전체에 독을 뿌릴 정도로 바보는 아님! 제안을 거절한 거 때문에 화난 것도 아니고. 비무에 독을 쓰긴 했지만 그건 비무니까 썼음. 나도 당가의 사람임.”

사천당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서만 독을 쓴다. 그러니까 저 녀석은 이런 시답잖은 일에는 독을 쓰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가 않아요.]

홍령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래요. 그가 쓴 독들은 나름 정직했어요. 해법이 있고 운반하기도 편한 독들이었죠. 고독이 다루기 어렵다는 건 의원이라면 누구나 알아요. 그게 쉬웠으면 지금쯤 무림은 그런 고독을 다루는 독술사나 충사들이 천하제일인을 차지하고 있겠죠. 독을 쓴 의도도 그래요. 당당의 독들은 해독이 안 되면 장애가 남을지언정 죽음에 달하는 건 아니었어요. 화산지회 예선이니까 다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왔고, 독이라 특이해 보일 뿐이죠. 하지만 이 고독은 아니에요.]

그러면.

당당도 아니면 누구냐고!

짜악―

뺨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양 손바닥과 양 뺨이 동시에 얼얼했다. 갑자기 내가 제 뺨을 때리자 당당도 당당을 데려온 현건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좋아. 너는 아니다 치자. 그러면 최소한 돕기라도 해. 지금 이곳에서 고독에 대한 지식이 가장 많은 건 너일 테니까.”

그래. 녀석이 범인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건 나중 가서 밝히면 그만이니까. 중요한 건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다.

“아, 알았음. 상황 어떤데?”

“따라와.”

현건에게는 마저 환자들을 날라 달라 부탁하고 내 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선 신생과 몇몇 의원들이 분주하게 무언가를 기록하고 살펴보고 있었다. 벽이며 가구 어디든 자리가 남는 곳이면 숫자와 표가 빼곡한 종이, 그리고 양양 시내를 그린 지도가 붙었다.

용의자를 추적하는 수사 드라마 속 형사들의 자리를 닮은 모양새였다.

“와씨, 이게 다 뭐임?”

“역학조사. 허술하긴 하지만. 너도 빨리 끼어.”

내가 온 걸 알아차린 신생이 웬 종이를 가지고 벌떡 일어났다.

“의원님! 공통점이 하나 나왔어요!”

“뭔데? 무슨 공통점?”

“경증이거나 벌레가 발견되지 않은 분들이요! 공통점이라고 할까 좀 애매하긴 한데.”

“빨리 말 해봐.”

신생이 하나의 도표를 내밀었다. ㄴ자로 축이 나뉘어져 있는 도표. 세로축은 무공의 고하(高下)요 가로축은 증세의 정도.

유독 많은 점이 도표의 가운데 몰려 있었다.

“무공을 아예 익히지 않았거나 정도 이상의 고수들은 벌레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어요. 지금 제일 상태가 심한 분들, 사망하신 분들은 여기 가운데쯤 몰려 있고요.”

[이류에서 삼류 사이에 가장 많이 걸쳐 있네요.]

독은 이류 이상의 무인에게는 거의 들지 않는다. 반대로, 이류 이하의 무인에게는 치명적이다. 그 이류 이하에는 삼류뿐 아니라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도 포함된다.

포함된다 뿐일까? 더 심각한 양상을 초래한다. 일시적인 증상이나 손가락 마비, 다리 저림 등의 약한 장애를 남기는 당당의 독도 일반인이었다면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했을 것이다.

헌데 이 벌레는 내공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피해가 없거나 경증 정도만 그치고 말았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확실히 보통의 고독은 아니다.

“무공의 고하는 어떻게 판별한 거?”

당당이 끼어들었다. 내가 신생 대신 대답했다.

“화산지회 예선 결과를 기준으로 썼어. 정확하진 않겠지만 대충 분류할 정도는 되지. 그 외에도 다양한 지표를 놓고 비교 중이야. 경증과 중증을 판가름할 기준이 있다면 한결 나을 테니까.”

“나이랑 성별은 크게 관련 없었어요! 아, 청년에서 장년층에 중증 환자가 많긴 한데 무공 고하랑 거의 겹치는 결과라서, 그 나이 대여도 무공을 익히지 않았거나 고수라면 무증상이거나 경증이었고요.”

“좋아. 앞으로도 그런 게 보이면 바로 알려줘. 최 의원님, 태청의문으로 가서 방금 얘기를 전해주세요. 그래야 그쪽도 대처가 가능해질 거예요.”

최 의원이 서둘러 뛰어나갔다.

“그리고 당당, 네가 할 일은 저거다.”

나는 최 의원이 앉아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그곳엔 여러 개의 단지가 있었는데, 단지마다 환자의 몸에서 꺼낸 벌레들이 바글바글했다.

“이거 고독?”

“그래. 크기별로 상태별로 분류해놨어. 독이나 약으로 구충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야. 아직 확실히 듣는 건 없는데 천산오공의 피갑을 처방하면 놈들이 좀 느려져.”

“천산오공? 그렇게 귀한 약재를 이런 데 쓴다고?”

“마침 있어서 썼을 뿐이야. 당장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지.”

“마침 있어서?”

“내가 잡은 적 있거든. 바쁘니까 그런 건 나중에 묻고 빨리 움직여. 넌 아직도 용의선상에 있다는 걸 잊지 마.”

당당 녀석이 표정이 복잡해졌다.

“고독 잡을 때 기본으로 지네 써. 천산오공의 피갑이 그 정도 효과라면 다른 건 효과 없음.”

당당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어린 게 어디서 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효과가 없대!? 뭐라도 해봐야 할 거 아냐!]

홍령이 목청에 핏대라도 세운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 봤자 내 머리만 울린다는 걸 잊어버리기라도 한 건가.

“어차피 이 고독도 네가 모르던 종류야. 효과 없다고 단언할 일이 아니라고.”

“흐음, 그렇긴 하지만.”

뒷목이 땡긴다. 솔직히 녀석이 범인이 아니라 해도 당가의 지혜로 뭔가 실마리를 쉽게 찾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잠깐만. 지금 내가 사천당가의 ‘지혜’라고 했나?

‘지식’이 아니고?

“당당, 만약 네가 이 고독을 퍼트린 거였다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

“나 범인 아님.”

“그래. 아니라고 치고, 그래도 만약 네가 범인이라고 쳐보자고. 치료제가 없으니 일단 원인이라도 찾아야 해. 계속해서 환자가 생기고 있단 말이야.”

치료제가 없으니 원인이라도 찾아 제거해야 한다.

경증 환자는 피부 절개를 통해서 벌레를 잡아내고 있지만, 근육과 장기 깊은 곳으로 벌레가 들어간 중증환자는 위치를 특정할 수 없어 아예 난도질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새로운 환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게 최우선이다.

“고독을 이만큼 많이, 불특정 다수에게 퍼트리려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 단순히 경공으로 지붕을 밟고 날아다니면서 벌레를 뿌리진 않았을 거 아냐?”

“으음, 나라면…….”

당당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고독은 여러 종류가 있음. 성체로 투입하는 경우가 있고 알이나 유충을 뿌리는 경우가 있음. 이런 종류는 주로 유충일 거야. 피부에 달라붙기만 하면 파고듦.”

[벌레의 유충! 최종 크기가 이 정도면 유충은 아주 작을 거예요. 눈에 보이지도 않을 크기일 거고요.]

“가능성 높은 건 물이나 음식인데…….”

내가 감염병이나 기생충에 해박한 건 아니다.

하지만 동남아나 오지로 여행을 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지 않은 음식, 가열하지 않은 물을 먹지 말라’는 권고를 들어본 적 있을 거다.

학창시절 친구 중에도 인도에 갔다가 그 권고를 무시하고 현지인이 주는 생수를 받아 마셨다가 하마터면 시체로 돌아올 뻔한 놈도 있었지.

하지만 가열하지 않은 물과 음식이 문제라고 하기엔, 나를 포함해 태양의원의 의원들과 환자들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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