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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50화 (50/350)

50화

“잠깐만. 이거 완전히 무당파만 노다지인 장사 아냐?”

이곳 양양에서 무공을 배운다면 어디서 배우겠는가?

당연히 무당파의 속가다.

웬만큼 돈을 짊어지고 들어가는 수준이 아닌 이상 속가제자로 들어가긴 어려울 터.

대단한 무공보다는 점혈이 목적인 의원들은 이 근처의 무당 속가에게 적잖은 돈을 주고 무공을 배운다.

동시에 의원으로서의 자격을 따고 유지해야 하니, 그 과정에도 돈이 든다.

만약 그 자격을 유지하는 돈이 부담되어서 자격을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그 의원이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의맹의 자격을 상실했는지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다가 폐업하고 말 것이다.

한번 문 먹잇감은 빨대를 꽂고 말라 죽을 때까지 쪽쪽 빨아먹는 수준.

빨아먹은 만큼 혜택이나 보장을 해준다면 모르겠지만, 다른 의원들에게 들어본바 그건 절대 아닌 게 분명했다.

아무리 양양이 큰 도시고 의원이 많은 도시라고는 하지만 지원자가 너무 많은데 싶었더니.

계륵 같은 의맹 자격의 굴레에 빠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도시를 배회하는 치들이다 이거지.

전생의 웬만한 블랙기업들은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

“꽤 빡세게 굴리려고 했는데, 나 정도면 양반이겠는걸.”

밤새도록 서류를 확인하고 그중 수십 장을 뽑아낸 후 곽 표두에게 넘겼다.

이들 중 면접에 통과한 일부가 나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 * *

<태양의원 양양 출장소>라는 임시 현판을 건 장원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며칠 전 양양을 떠들썩하게 만든 구인공고.

화산지회 예선전이 열리는 짧은 기간 동안의 일이긴 하지만 상당한 보수를 약조했기에, 돈이 급한 의원들이 대거 몰렸다.

지원서류를 접수하는 곳에서는 먼저 서류를 내겠다고 싸움까지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보다 먼저 낸다고 뽑힐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돈에 눈이 먼 사람들에겐 뵈는 것이 없었다.

서류 심사는 상당히 빨리 끝났고 면접단계로 넘어간 것은 지원자의 백 분지 일.

인체를 본 따 만든 점토에 직접 수술 시연을 하거나 제출한 문제를 푸는 시험과 고용주와의 면접을 거쳐 뽑힌 사람은 총 쉰 명.

지금 막 양양 출장소의 정문을 통과한 최 의원도 최종심에서 뽑힌 쉰 명 중 하나였다.

‘하나같이 쟁쟁한 면면들이군.’

이미 도착한 의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최 의원의 감상은 그랬다.

점혈을 익히지 못해 남의 수술만 돕는 처지지만 그 기술 하나만큼은 알아주는 의원들.

병의 진단만큼은 건안 삼신의도 울고 간다는 이들.

다른 것은 몰라도 제약 하나는 손에 꼽게 잘 한다 알려진 자들.

그 외에도 처방 하나는 기똥차게 내리는 이나 의술은 썩 대단치 않아도 유독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알려진 사람들까지.

어느 한 방면만큼은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니 꽤나……

‘제대로 의원 노릇 못하는 반편이들만 모여 있잖아?’

사실 한 분야에서 특출 나게 뛰어나다는 건 중원에서 의원을 하며 살아가기에 좋은 일이 아니다.

의원은 모든 것을 제 손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

수술 같은 특별한 분야는 제외하더라도, 진단과 처방, 각종 치료에 이르기까지 의술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중간 이상은 해야 한다.

그래야 의원으로서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다.

어느 하나라도 삐끗했다간 돌팔이 취급을 받기 십상일 테니까.

그런데 여기 모여 있는 의원들은 그런 상식적인 ‘좋은 의원’의 기준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이들이었다.

그런 의원들은 이미 번듯한 의원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고용주도 보는 눈이 없군. 그 돈을 주고 이런 반편이들만 모아놓다니.’

하긴, 최 의원도 자신도 가망 없는 수술의 자격에 매달리는 반편이 중 반편이였다.

그런 자신을 고용해 준 돈 많은 고용주에게 감사해야 할 입장.

‘음? 그나마 의원다운 의원도 하나 있군.’

양양 바닥에서 자주 보이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 인품이 훌륭하고 실력이 두루 뛰어난 의원이었다.

최 의원은 그와 수련의 시절을 함께 했기에 안면이 있었다.

의맹 자격을 딴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연수를 받을 때나 자격을 갱신할 때 외에는 양양에서 볼 수 없던 사람인데?

“한 의원님 아니십니까?”

“아니, 이게 누군가. 최 의원이군! 잘 지냈나? 여기서 보게 될 줄은!”

“그러게 말입니다. 양양에는, 그리고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최 의원이 알기로 한 의원은 돈이 급한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의맹의 자격을 득한 것도 대세가 그러니 따른 것뿐이지 대대로 내려온 의원가문이라 집안도 풍족했고 실력도 좋았다. 최 의원 자신처럼 수술의라는 허황된 미명에 혹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허허. 아는 사람이 염려되어 쫓아왔다가 기회를 만났다네. 헌데 자네 혹시 알고 있었나? 의맹에서 수술을 전적으로 금지한 게 아니라는 얘기를?”

“예,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수술의 자격을 따려고 노력 중이지요.”

“그랬구만. 나는 의맹의 자격을 따는 데만 관심이 있어서 자세한 건 몰랐다네.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지! 자네는 수술의 자격을 딴다니 더더욱 도움이 되겠군! 우리 둘 다 많이 배워 가세나!”

최 의원은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아무래도 한 의원은 뒤늦게 수술의 자격에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수술 보조를 구한다는 말에 혹해 수술 경험도 쌓을 겸 온 모양인데……

‘실체를 알면 금방 실망하고 떠나가겠군.’

최 의원은 양양 바닥에서 잔뼈가 굵다.

이런 식으로 상당한 보수를 걸고 의원들을 모집한 곳이 전에도 몇 군데 있었다.

무당과 태청의문에서 요구하는 대리수술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수술의 자격은 따고 싶은 부자들이 이런 일을 벌인다.

자식들이 한량으로 놀고먹는 건 꼴 보기 싫으니,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직업을 돈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무공에 재능이 있다면 속가제자로라도 들이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속가에 집어넣는다고 해도 쥐뿔만큼의 노력도 할 거 같지 않다면야, 돈을 들여서 무당의 수술의라도 만들어 두면 그럭저럭 폼이 난다.

자격은 따놓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환자나 받지 않는다고 하면 그만.

그런 목적으로 자격을 따려 하는 것이니 가급적 돈을 절약할 수 있다면 절약하는 게 좋다.

점혈을 할 무인을 따로 모으고 수술을 할 의원은 따로 모으는데, 태청의문이 제공하는 것만큼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수술 삼백 건을 채우는 데는 무리가 없다.

태청의문이 요구하는 비용에 비해서는 값싸고, 수술 삼백 건이야 횟수만 채우면 되고, 밑에서 일하는 의원들은 태청의문의 호주머니를 거쳤다 나오는 부스러기보다는 더 나은 돈을 받을 수 있으니 이런 일에 목을 맨다.

왜 태청의문이 이런 편법을 가만두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최 의원이 알 바는 아니다.

그는 그저 빨리 이곳에서 한 탕을 하고 반년이면 점혈을 무조건 완성해준다는 도관에 돈을 싸 짊어지고 달려갈 생각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금태양이 모두의 앞에 나와 인사를 시작했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여러분을 고용한 태양의원의 금태양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저와 손발을 맞춰 화산지회 예선 동안 환자들을 치료하게 될 겁니다.”

“가면을 썼다고 너무 수상쩍게 보지 말게. 저게 다 금 의원의 복안이라네. 저러고 수술을 하니까 말을 해도 침이 튈 걱정이 없고, 배를 갈라 피가 튀어도 눈을 찌푸리는 일이 없더군.”

옆에서 한 의원이 열성적인 지지자라도 되는 양 떠들어댔다.

하지만 한 의원의 그런 말보다 최 의원을 놀라게 한 건 다른 부분에 있었다.

“저자가 수술을 하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는 겁니까?”

“아무렴. 금 의원의 수술에 내 개안을 했지 뭔가.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라네.”

“허면 저 젊은 의원이 수술의 자격을 땄다고요?”

“그건 아닐걸세. 나도 잘못 알아서 금 의원을 곤경에 빠트릴 뻔했지. 하지만 수술의 자격에 필요한 것이 수술 삼백 건과 점혈 실력이라던가? 금 의원은 이미 점혈을 할 줄 아는 실력자라네.”

한 의원의 말에 최 의원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점혈. 무림인들은 간단하게 툭툭 하는 것 같은 그 기술을 익히지 못해 전전한 세월이 얼마던가?

대리수술을 하는 데 있어서도 점혈을 할 줄 아는 무인들은 자신들처럼 수술을 전담하는 의원들에 비해 배는 많은 보수를 받곤 했다.

점혈의 중요성이야 남들보다 배는 알지만 그것이 배가 아프지 않냐면 거짓말일 터.

“여기 혹시 제가 대리수술을 하려고 여러분을 모았다 생각하는 분 있으시면, 이제부터 그 생각은 싹 지워버리세요.”

여기저기서 헉! 하고 놀라는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알 사람들이야 그 존재를 알지만 대놓고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특히나 그 대리수술이 이 일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당파의 돈줄이라면 말이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비록 수술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지는 못하겠지만, 점혈부터 수술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들은 제 손이 닿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간단한 절개와 봉합, 마무리 등을 여러분이 보조하시게 될 거예요. 그중에서도 특기가 있으신 분들은 주로 그 일만 전담하시게 될 겁니다. 한 사람이 한 명의 환자를 전담하는 게 아니라, 한 분은 환부의 소독만을, 한 분은 수술도구 준비를, 한 분은 봉합만 맡는 식으로 말이죠.”

이건, 조금 다른데?

최 의원 외에도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건 태청의문이 제안하는 대리수술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한 부분이 다르다.

당사자가 직접 수술의 중요한 부분을 맡고 나머지 자잘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보조에 맡긴다는 것.

특히 이런 식으로 일을 세분화해서 한 전문분야만 계속 수행한다면 속도는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충분한 실력자가 짧은 기간에 많은 건수의 수술을 해치우려면 이 방식이 맞다.

“그래서였군. 여기저기 반편이 같은 자들을 모아둔 것이…….”

“내가 그러지 않았나. 금 의원은 진짜 의원일세. 환자를 생각하고 정말 병을 치료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진실 된 의원이야. 자네도 배울 점이 많을 걸세.”

진짜 그런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이곳 양양은 무당의의 산실인 동시에, 세간에 알려져 있는 무당의 답지 않은 의원들이 가장 많은 곳이었으니까.

그래도……

이 사람은, 그래도 조금 다르긴 한 거 같은데.

최 의원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금태양이라는 사람은, 뭔가 좀 다르다고.

* * *

화산지회 예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태양의원 양양 출장소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약에 특기가 있는 의원들은 활명탕을 제조하는 곳을 담당했고, 나머지 수술이 특기인 의원들은 나와 함께 합을 맞췄다.

천과 솜으로 만든 인형으로 수술 과정을 시뮬레이션 하는 거다.

기술적인 부분이야 면접 볼 때부터 돼지 껍데기며 닭의 혈관 따위를 꿰매는 등의 시험을 통해 홍령의 기준에도 부합하는 사람들만 골랐으니 그 부분은 문제없다.

중요한 건 합이다.

팀이 하나의 몸처럼 순조롭게 굴러갈 수 있어야 한다.

“최 의원님, 한 의원님 속도가 느리니까 보조해 주세요!”

“수술 도구 건네주는 속도 좀 조절할게요!”

“그쪽 팀 시간 봉합 끝났으면 이쪽에 한 명 합류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인 의사가 수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멋들어지게 해내는 장면만 나와서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스태프가 각자의 할 일을 능동적으로 해내야 한다.

여기선 대충 수소문 해보니까 한 명의 수술의가 수술을 전담하고 나머지는 한두 명이 보조하는 게 전부더라고.

점혈 전문과 수술 전문이 나뉘는 경우가 그나마 분업이라고 할 만 한 정도.

나는 거기에 수술 환경이나 장비, 기구와 재료를 관리하고 수술 중 이를 제때 넘겨주는 도구 담당, 기구부터 환자의 상처, 수술 부위의 소독 담당, 전 처치 담당 등 다양한 역할을 나눠 분담시켰다.

현대라면 의사보다는 간호사의 역할에 가깝지만 여기는 딱히 그런 구분이 없으니.

역할을 확실히 구분해놨지만 그것만으로 끝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합을 맞춰볼 필요는 없었다.

모든 일은 항상 예외가 생기는 법.

분업을 넘어서 유사시에는 각자 남의 일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연습이 필요하다.

[당신이 말하는 게 옳은 방법이긴 한데, 솔직히 피곤하긴 하겠어요. 자기 할 일만 하기도 힘든데 남의 일까지 고려해서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다니.]

대신 그만큼 두둑한 보수를 약속했으니까. 상황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러닝 개런티도 챙겨 줄 생각이고.

세 팀이 동시에 수술 연습을 하고 나는 팀마다 바쁘게 오고 가면서 핵심 역할만을 도맡고 있는데 신생이 뛰어왔다.

“의원님,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금가장에서 오셨대요!”

금가장이라. 내가 바쁜데 신생이 일부러 뛰어올 만하군.

“여기까지 할게요. 쉬었다가 오후에 또 진행하겠습니다.”

“아이고, 죽겠다.”

“하루에 대체 몇 건을 연습하는 거야? 이러다 시작도 하기 전에 쓰러지겠어.”

“우는 소리들 말아. 저 금 의원은 어릴 적부터 타고난 난치병이 있어서 체력이 약하다는데도 우리 중 제일 힘든 일을 하잖나.”

“하긴. 우리는 돈을 받는 입장이지만 저치는 쓰는 입장이기까지 하지. 우리가 앓는 소리를 하면 안 되겠어. 다들 푹 쉬고 오후에 보자고!”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곳으로 향하는데 뒤에 남겨진 의원들의 대화가 들렸다.

수련도 놓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는 덕분인지 전보다 오감이 더 또렷해진 느낌이다.

[그래도 줏대가 있는 사람들이네요. 확실히 쓸 만해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정신력도 만만치 않다.

손을 맞춰볼수록 괜찮은 팀을 꾸렸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금가장에서 왔다면 누구지?

설마 셋째 형님이 벌써 도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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