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제가 전갈을 보낸 게 며칠 전인데! 아이고, 의원 님이 여기 계시면 물건은 한동안 못 받겠군요. 지금이 기회인데!”
“마침 당사자가 왔으니 직접 얘기를 들어보시지요. 이보게, 숨 좀 돌리고 판매 상황이 어떤지 말씀 좀 드리지.”
“안 그래도 그럴 작정입니다. 제가 처음에 양양에 도착해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바로 포만객잔입니다. 거기 지금 화산지회에 참가하려고 온 무인들이 한 가득인데―.”
이 말 많은 호사가의 얘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지금 양양에는 화산지회에 참가하려는 무인들이 많다.
화산지회는 칼밥을 먹고 사는 자들에겐 자신의 몸값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행사다.
무명소졸이 이름을 드높여 몸값이 천정부지로 뛸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천금을 받던 무인이 어이없이 패해 몸값이 곤두박질칠 수도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제아무리 무공을 단련한 고수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평소보다 긴장을 하기 마련이다.
해서 몸과 마음이 경직된 무인들이 식사를 하다가 음식이 속에 얹히고 도통 풀리지 않자 활명탕을 찾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왕 씨는 자신이 그런 타깃들만 골라서 접근했다고 하지만 어쨌든.
근데 이 활명탕이 체한 속을 개운하게 풀어 주는 걸 넘어서서……
“―속이 개운해져서 그런지 전보다 무공 수위가 올라간 것 같다고 하는 자들이 있지 뭡니까. 실제로 객잔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다툼으로 전보다 나은 실력을 입증한 자들도 많고요.”
[위장 기능이 좋아지면 몸을 가누는 데 한결 도움이 되긴 하겠죠.]
위장이 컨디션에 큰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다.
스트레스 받을 때 매운 게 땡기는 이유도, 위장에 자극을 줘서 기분 좋아지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분출하게 하려는 거니까.
체하는 건 그런 위장의 활동이 둔해져 있는 것이니 몸을 움직이는 무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활명탕이 무공 증진에 도움을 주는 약이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다?”
곽 표두가 말한 ‘아는 사람만 아는’ 약이라는 게 이런 얘기였다니.
“말도 마쇼. 가격을 올려서 품절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데도 며칠 후면 재고가 똑 떨어질 지경이외다!”
애가 탈 만하네. 한창 장사가 잘 되는데 물건이 공급이 안 될 상황이면 문제지.
“근데 가격을 올렸다면, 얼마나요?”
“처음에 소문이 나기 전까지 삼분지 일은 의원님이 얘기한 가격에 팔았지. 그 다음 삼분지 이는 다섯 배를 올렸고, 나머지 삼분지 이는 열 배로 올렸소이다.”
“열 배?!”
[당신이 한 병에 은 반 냥을 불렀죠? 세 병에 은 한 냥이고요.]
활명탕 하나에 은 다섯 냥을 받는다고?
현대로 치면 약 한 병에 오십만 원을 받는 셈이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니까 그 가격을 책정해서 팔린다면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지만……
“한 병에 은 다섯 냥이라.”
“그나마도 추가 물량이 온다는 전제로 맞춘 가격입니다. 추가 물량이 없으면 열 냥으로 올려야지요.”
“은 열 냥까지?!”
“뭘 놀라시나? 대단한 집안의 도련님이시면서. 은 열 냥 정도는 당과값 아니신가? 내가 한 수 알려드리네만 원래 이런 건 돈이 될 때 팔아치워야 하는 거야!”
맞는 말이긴 하지.
하지만 활명탕 한 병에 백만 원 돈을 받는다고?!
이건 내 양심이 용납을 못 한다.
애초에 활명탕을 만들어 낸 이유가 뭔데.
[돈 때문에 아니었어요?]
돈도 돈이지만, 그럴 거였다면 훨씬 값비싸고 귀한, 한 개만 만들어도 금 백 냥은 뚝딱 벌 걸 만들었지 일부러 손 많이 가고 많이 팔아야 이문을 보는 약을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흐음, 당신. 귀한 집 도련님치곤 꽤 마음이 너그럽네요.]
그건 어쩔 수 없다.
이번 생에서야 귀한 집 도련님으로 자랐지만 내 근간은 전생에서부터 시작된 거니까.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이 피에 흐른다고.
[뭐, 좋아요. 의원이라면 그 정도 사명감은 있어야죠. 난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난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고 말이지.
무인들이 거짓된 무공상승 효과를 기대하고 활명탕에 그 비싼 금액을 지불하는 동안, 정말 그 약이 필요한 누군가는 급체로 곤란한 상황을 겪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아픈 건 싫다. 나을 수 있는데 이런 상황 때문에 더 고통받는 건 짜증 난다.
“그러면, 만약 활명탕을 더 만들어주면 팔 수는 있어요?”
“물론입니다. 엄청나게 팔 수 있죠! 혹시 여기서 활명탕을 제조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어디 보자, 은 팔십 냥 정도에 맞춰도 불티나게 팔릴게야. 으하하!”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근사한 판로가 생겼네요. 새로 제조한 물건부터는 제가 직접 팔면 되겠어요.”
“……으잉? 잠깐만, 자네?”
“그게 제 편에서는 이득이죠. 제가 하나 알려드리는데, 도매상이 소매상에게 물건을 파는 건 그렇게 판로를 세세하게 만들어 봤자 판로를 개척하는 비용에 비해 이득이 크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판이 커졌다면, 누구나 직접 물건을 팔려고 하지 않겠어요?”
왕 씨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러나 이내 뭔가를 깨달은 듯 표정을 바꿨다.
“아이고, 우리 도련님께서 많이 섭섭하셨구만! 내 당연히 장사가 잘됐는데 더 챙겨드려야지! 얼마를 드리면 될까? 일단 이 낡은 숙소부터 옮겨 드릴게!”
“아뇨. 그건 괜찮아요. 원래 계약에 없었으니까요. 활명탕의 인지도를 높여주셨으니 감사 차원에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새로 제조한 약을 다시 은 반 냥에 팔 거니까요. 기존의 재고는 빨리 소진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허, 이해할 수가 없네!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려는 게야? 내 친구들 알지? 그자들이 양양의 객잔마다 퍼져서 무공 상승 효과가 있다고 바람을 열심히 불어넣고 있다네! 지금은 대회가 시작되질 않아서 그렇지, 대회가 시작되면 금값으로도 오를 텐데! 굴러 들어오는 돈을 발로 걷어찰 셈인가!”
왕 씨는 얼굴이 시뻘게져선 바닥을 팍팍 두드렸다. 저러다 고혈압으로 넘어가겠다.
“저는 장사를 하려는 거지 사기를 치려는 게 아닙니다.”
“뭐, 뭐얏! 사기!”
“있지도 않은 효능을 홍보해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것을 우리는 보통 사기라고 하지요.”
도덕성. 양심. 신뢰.
당장 득도 안 되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그런 것들이 왜 몇천 년 동안 훌륭한 가치로 칭송받았을까?
지키기 힘들어서? 자기희생을 담보하는 숭고한 일이라?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은 무공이 증진된다는 말에 혹할 수 있지만, 곧 사기라는 갈 알게 되겠죠. 그렇다면 그들은 분노할 거고, 분노의 방향은 당연히 제게, 태양의원에 향하게 될 겁니다.”
모두 틀렸다.
그것들이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왕 씨는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중원은 넓고 호사가들의 무대가 될 곳은 많죠. 여기서 한 탕 친 후에는 저기로 옮겨가면 됩니다. 운이 좋다면 평생을 그렇게 살 수도 있겠죠.”
“허나 한 번 신뢰가 무너진다면 태양의원은 의원으로서 명성을 잃게 되겠지요.”
여태 묵묵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곽 표두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에게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군요.”
좋은 지적이다.
돈이 목적이라면 왕 씨가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맞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아직까지 시한부 목숨이다.
의원의 평판 따위가 뭐 중요해?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했다면, 난 굳이 금가장을 뛰쳐나올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사기 쳐서 한 탕 버는 것보다 형제자매들에게 굽실거리면서 손바닥 한 번 비비는 게 더 많이 번다고.
“맞아요. 돈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죠.”
처음 홍령의 원을 들어주기 위해 환자들을 진료했을 때, 그들이 내게 감사를 표하고 나를 다시 찾아주는 그 속에서 나는 삶의 보람을 느꼈다.
금가장을 나온 건 그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저는 제 이름을 걸고 의원을 차렸어요. 의원의 명예에 해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당장 큰돈을 벌 수 있는 길이라도.”
아주 어리석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선택이 돌고 돌아, 그 언제가 되어야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큰 이득’이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애초에 나는 홍령에게 말했듯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몸이다.
그런 사람이 장기적 안목을 운운하다니.
게다가, 사람들은 내가 양심적으로 약을 팔기로 한 걸 모른다.
어쩌면 은 반 냥도 너무 비싸다고, 가격에 비해 약효가 없다고 욕을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신기한 사실은, 누군가는 알아본다는 거다.
소리 소문 없이,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짙은 겨울 밤 고요히 내린 눈이 다음날 아침 소복이 쌓여 있는 것처럼.
내가 오늘의 결정으로 이득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살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적어도 죽은 뒤 내 이름이 떳떳하지 못한 일로 세간에 돌아다닐 일은 없을 테니까.
“가짜 효능으로 큰 이문을 남긴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어요. 그 오해는 내가 짊어지고 갑니다. 이름 없는 약의 판로를 개척하고 이리저리 뛰어주신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아니, 저기. 그러니까―”
어쩔 줄 몰라 하는 왕 씨를 두고 곽 표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곽 표두. 시설과 사람이 필요해요. 특히 지난번 약을 준비할 때 함께했던 표사들은 꼭 있으면 좋겠는데요.”
“아까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국주께서 오십니다.”
“이번에는 맨 입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표사를 고용하겠다는 겁니다. 어차피 지금 형님이 올 때까진 할 일이 없잖아요?”
“으음, 국주께서 다시 무한으로 돌아가실 때 합류할 예정이라 지금 일이 없는 건 사실입니다만…… 금왕표국의 표비는 중원 표국 중 제일입니다. 한 푼도 깎아드릴 수는 없습니다.”
“돈값을 할 테니 충분해요.”
“좋습니다. 제값을 다 내신다면 국주께서도 뭐라 하지 못하시겠죠. 의원이나 약당을 하던 건물을 찾아보겠습니다. 밀랍과 약재도 다 사들이도록 하죠.”
“의원도 필요해요. 사람을 구하는 방을 붙여주세요. 제가 직접 면접도 볼 겁니다.”
“할 일이 많겠군요.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곽 표두가 자리를 떠나는 데도 왕 씨는 복잡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더 할 말 있으세요? 저 이제부터 바쁠 예정인데.”
“……하나만 물읍시다.”
“네, 물어보세요.”
“그때 왜 나를 치료해줬나? 그냥 죽게 내버려 둬도 됐을 텐데. 내가 자네를 겁박했잖아. 그뿐인가? 수술비도 합리적이었어. 나라면 그렇게 안 했을 걸세. 몇 배를 받아내든지 빚을 지워 노비나 다름없이 부려먹었을 게야.”
하나만 물어본다더니 이런 걸 물어볼 줄이야.
그냥 그것이 옳으니까, 누가 아픈 게 싫으니까.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간단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