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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47화 (47/350)

47화

“그래, 창천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제자들을 보내 확인했습니다만, 태양의원으로 돌아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척을 숨기고 따라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너희들에게 들키지 않고 따라 왔다라.”

“부끄럽습니다.”

“아니다. 창천 그 아이의 재능은 손에 꼽힐 정도였지. 계획을 그만두고 본산의 제자로 들이자는 의견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너희들이 녀석을 찾지 못하는 건 탓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녀석이 그만한 기량을 되찾았다는 것에 놀라고 있을 뿐이지.”

장 의원도 창천이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실력을 선보였다고 보고했다.

전후사정을 따져보면 금태양이 창천을 치료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당분간은 지켜보도록 하지. 뒤처리도 해두어야겠군. 율법당에 일러 일전에 말한 일을 처리하라고 일러라.”

“존명.”

신생이 잡았다는 숙소는 양양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객잔이었다.

상중하로 급을 나누면 중하급쯤?

전생에 지방 출장을 갔다가 묵었던 오래된 모텔들이 생각난달까.

“이렇게 낡은 곳인 줄 몰랐어요…… 다, 다른 곳을 찾아볼게요!”

“아냐, 됐어. 지금 이보다 좋은 곳을 찾기는 어려울 거야.”

태청의문이 내어준다던 객청보다 마음은 훨씬 편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가서 당과 좀 사다줄래? 달달한 걸 좀 먹어야겠다.”

“네! 양양에서 제일 맛난 걸로 사올게요!”

신생을 내보내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 생각이 자유로운 곳에서 천천히 생각해보자.

청운 진인의 제안을 어떻게 할까.

[볼 것도 없어요. 당연히 거절해야죠.]

내 양심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도 고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청운 진인의 제안이 지금의 내게 분명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보자. 무당의 제자가 되지 않아도 의맹의 준회원은 될 수 있어. 대리수술 제안을 거절해도 그 정도는 해줄 거야. 나한테 최소한의 빚이라도 지우고 싶을 테니까.”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빚이 생기는 건 거슬리네요.]

“내가 가진 선택지는 두 가지지. 하나는 준회원 자격만 무당의 도움을 얻고, 화산지회 기간 내에 수술의 자격은 내 스스로 노력해서 따는 것. 다른 하나는―”

[돈을 주고 대리수술을 맡기는 거고요.]

전자에 비해 후자의 장점은 명확하다.

몸이 편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고. 내가 삼백 건의 수술을 버틸 수 있겠어?”

[…….]

말이 없다.

홍령이 말이 없는 이유는 뻔하다.

“그러면 예선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내가 그 수술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중단전이나 하단전을 확장한다든가 할 수는 없는 건가?”

[……그건 확답할 수 없어요.]

조금 기대했는데. 역시 어렵나 보군.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아요. 천하의 기재도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라고요. 평생 하단전 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검을 꺾는 이들도 많고요. 왜 그렇게 조급해요?]

조급하다고? 내가?

[그 두 가지 말고도 방법은 있어요. 화산지회 동안 가능한 선에서 수술을 하고, 그 이후는 천천히 수술 건수를 채워도 된다고요. 태양의원에 반 년, 여기에 출장 와서 반 년이면 그럭저럭 균형도 생길 거고요. 그러면 안 되나요?]

잊어버렸나 본데, 나 환자야.

요새 좀 몸이 나아졌다곤 해도 여전히, 단기간 몸을 갈아서 좀 무리할 엄두도 못 내는 환자.

홍령 네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영문 모를 이유로 내일 죽을 수도 있다고.

[…….]

“그러기 전에 아버지의 영정에 가고 싶어. 1주기 제사 때는 제대로 절을 올리고 싶다고.”

[그렇네요. 그런 느린 방식으로는 당신 큰 형님을 설득할 만큼 성공할 수 없겠죠.]

내가 청운 진인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지 못한 이유.

몸이 편할 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목표에 보다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누가 왕도를, 지름길을 거절할까?

특히나 더욱 더 빨리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게도 이뤄야 할 복수가 있고, 상대가 무당의 중진이라면 당신이 더 큰 지위와 힘을 얻는 게 유리하겠죠. ……당신의 선택에 맡길게요. 다만.]

다만?

[창천을 잊지는 말아요. 그는 무당이 사주한 실험의 실패작이에요. 주화입마에 들 가능성이 높은 미완성 무공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익히게 했고, 그게 실패하자 입을 막으려고 집안을 몰살시켰어요. 당신이 무당과 손을 잡는다면…….]

아니, 그런 점에서는 더 무당의 손을 잡아야지.

“솔직히 더 이상 진전이 없잖아. 안 그래?”

창천의 상태는 한결 좋아졌다. 손바닥 정도의 자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멎는다.

[예전 실력의 5할은 회복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이상 회복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홍령의 치료는 미완성 내공심법을 반복해 수련하다가 발생한 내상과 꼬인 기혈을 치료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 치료가 끝난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다리 한 쪽을 잃은 사람은 자세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자세가 무너지면 허리와 척추, 어깨 등에 통증이 생긴다.

어깨에 통증이 생기니 지팡이를 짚어도 걷기가 힘들다.

홍령은 어깨와 허리, 척추의 통증을 치료한 것이지, 사라진 다리를 다시 만들어낸 게 아니다.

다리 한 쪽을 잃은 사람이 전처럼 빠르게 달려 나가려면 전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 사라진 다리를 다시 만드는 수준의 다른 방법이.

[무당이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방법은 두 개잖아. 미완성 내공심법을 개선하거나 남궁세가의 진짜를 전수받거나. 근데 후자는 힘들잖아. 봉문 중이라며?”

무당이 남궁세가의 무공을 가지고 장난치는 중이라는 걸 알리면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수소문해 본 적이 있는데,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봉문 중이라더라.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빗장을 걸어 잠근 무림세가에 가서 ‘당신들의 비전심법을 내놓으시오’라고 하는 것보단, 나와 어떻게든 엮으려고 하는 무당파가 뭘 아는지 캐내는 게 쉬울 거다.

[미완성 내공심법을 만들었다면 그 기초가 되는 원리를 알고 있겠죠. 그걸 안다면 진척이 있을 거예요. 그건 맞는 말이에요.]

홍령의 과거와 원한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술 한 잔 하고 싶네.”

선택지는 대리수술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허나 확신은 들지 않는다.

정말 그 방법뿐일까?

그 많은 장점들이 내 양심을 버릴 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

똑똑.

“의원님. 쉬시는 데 죄송한데요,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청운 진인이 벌써 답을 들으려고 사람을 보냈을 리는 없는데.

일단 누가 됐든 만나 보자.

당장 결정을 내리지 못할 문제를 들고 고민만 하는 것보단 낫겠지.

“도련님, 별래무강 하셨습니까.”

“곽 표두!”

금왕표국 제 7각의 표행단을 이끄는 곽 표두였다.

“다시 보니 반갑네요.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왔어요?”

태양의원을 떠나 양양으로 향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한번 얼굴을 보자고 할 생각이긴 했는데.

“태청의문에서 먼저 연락을 줬습니다. 객청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이곳에 묵으신다고 안내해주더군요.”

“잘 왔어요. 안 그래도 하고 싶은 얘기도 있었고.”

“예, 그런데…… 어째서 이런 낡은 곳에 묵고 계십니까? 태청의문이 내줄 수 있는 곳이 이런 곳밖에 없답니까? 아무리 그래도 도련님이 금가장의 일원이신데 어찌 이런 홀대를―.”

“아니에요. 좋은 객청을 내준다고 했는데 내가 부담스러워서 거절했어요.”

“그래도 여긴 너무 낡았습니다. 차라리 금왕표국 양양지부로 가시지요.”

“그건 더 안 되지. 내가 왜 태청의문의 객청을 거절했는데요. 난 여기가 편해요.”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그 일은 잘 처리하신 모양이군요.”

곽 표두가 빙긋 웃었다.

그가 떠나는 날 내게 전해주었던 쪽지, 무적단의 습격을 얘기하는 것이다.

“형님께는 썩 좋지 않은 소식이겠지만요.”

“그렇긴 하겠지만, 저는 안심입니다. 창천이라는 자의 무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꽤 걱정했거든요.”

“표사들 몇을 남겨 놓았잖아요?”

“알고 계셨습니까?”

“딱 보니까 불 끄러 온 마을 사람들 중에 표사 옷 입던 사람들이 몇 있더라고요. 침도 놔줬던 사람들이니까 기억하지.”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국주께 보고를 드려야 하는 입장이라.”

“괜찮아요. 여차하면 싸움에도 끼어들어 줬겠지. 곽 표두는 내게 해줄 만큼 해줬어요. 신경 쓰지 마요.”

“사실 그 녀석들, 웬만해선 지켜보기만 할 거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도련님이 두목 녀석을 막아서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달려 나갔다더군요. 헌데 의외로 잘 막아내시더라고. 도련님이 무공을 익힌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거까지 보고 있었나?

사실 그때 나는 정신을 잃었고 내 몸을 움직이던 건 홍령이지만.

“아버지랑 몇 사람만 아는 비밀이죠.”

목격자가 있는 마당에 숨길 수는 없으니 적당히 둘러대 놔야지.

“그 뒤도 들어 알고 있겠지만, 그러고 나서 쓰러졌잖아요? 그게 부작용이에요. 그래서 비밀로 부친 거고.”

“혹시나 싶어 도련님의 무공에 대한 얘기는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쓰러지셨단 얘기는 썼지만요. 아마 국주께선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그렇겠지. 내 사업에 피해를 입히되 내게 상처를 입혀선 안 된다는 주문이 있었으니까.

그걸 날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사람, 당신 셋째 형님보단 당신이 더 마음에 든 거 같지 않아요?]

원래 같이 상사 욕하다 보면 친해지게 되어 있는 거지.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진 셋째 형님의 사람이다.

완전히 내 사람인 것처럼 대하면 안 된다.

“안 그래도 국주께서 조만간 오실 텐데. 그때 한번 뵙겠군요.”

“셋째 형이 온다고요?”

“화산지회잖습니까. 예선이라고는 해도 수만의 인파가 몰리는 행사입니다. 저희 같은 작은 표행단 몇 개로 필요한 물량을 다 댈 수는 없지요. 국주께서 직접 이끄는 대규모 표물이 곧 도착할 겁니다.”

셋째 형, 금왕표국주 금감양이 양양에 온다.

이 변수를 내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맞아, 그 활명탕 말입니다만.”

“아, 그건 잘 팔리고 있나요?”

“아직은 아는 자들만 찾는 수준이긴 합니다. 그래도 지금 이 양양 땅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말이지요. 벌써 가져온 물량은 다 팔았습니다.”

“벌써요?”

“예. 안 그래도 며칠 전 추가 물량을 보내달라고 왕 씨가 전갈을 보냈다 했습니다.”

근데 난 여기 있는데?

그때 밖에서 우당탕탕 하며 누군가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의원님이 왔다면서요!? 아니, 진짜네! 왜 여기 계십니까?!”

[저렇게 뛰어다니는 걸 보니 수술 예후는 확실히 괜찮나 보네요.]

내게 진상을 떨면서 겁박으로 큰돈을 받아내려다 맹장이 터져 내게 수술을 받은 후, 활명탕의 중간거래상이 된 왕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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