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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46화 (46/350)

46화

“수술 얘기를 하다가 화산지회 얘기를 하신다는 건, 거기서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나올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친선비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는 이들이 보통 열의에 찬 게 아니라네. 그러다 보면 자칫 싸움이 격해지기도 하지. 죽이는 것만 금지되었을 뿐 팔다리 하나쯤 잘려나가는 일은 수시로 벌어진다네. 도우가 원한다면 하루에 수술 열 건도 가능할 걸세.”

수술 열 건?!

홍령, 그게 가능해?

[……장담은 못 하겠어요. 수술 자체는 가능하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당신이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예요. 체력도 정신력도요.]

양 팔의 경혈에 활력을 불어넣고 상단전을 열었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나.

[상단전은 애초에 체력보다는 기감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그럼 하는 수 없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물론! 모두가 그렇게 힘들게 몸을 써야 하는 건 아니네. 타고나길 다른 이들은 왕도를 걷기도 하지. 아니 그런가, 도우?”

아니, 이 아저씨가 또 무슨 약을 팔려고?

“뭔가 방법이 있나요?”

“물론이네. 허나 이 얘기는 우리 둘만의 비밀, 아니, 아니지. 그대와 절친한 귀인들에게는 얘기해도 된다네.”

청운 진인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 누구도 들어서는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꼭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도우는 이름만 걸어놓으시게나. 여기까지 오느라 심신이 피로할 텐데 푹 쉬고 있으면, 우리 제자들이 자네의 삼백 건 실적을 만들어 놓을 걸세.”

잠깐만.

지금 이 사람, 뭐라는 거야?

“빈도가 웬만해서는 이런 말을 하지 않네만, 도우는 이미 실력이 있는데 굳이 지난한 검증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겠는가? 쉬고 있기가 정 그러면 화산지회를 구경해도 되네. 내 전망이 좋은 특석을 내어주라 얘기하겠네.”

“저기요, 제가―.”

“너무 좀이 쑤시면 와서 적당히 점혈을 해주어도 되고. 우리도 점혈이 되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아서 말이야. 그것만 도와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수련의들이 있지.”

[언제까지 이 어처구니없는 말을 듣고만 있을 거예욧!]

잠깐 기다려 봐.

청운 진인의 장황한 말을 정리하자면 이거다.

대리수술.

한창 현대에서 대리수술이 크나큰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수술을 한다든가 자격이 없는 간호사, 또는 조무사에게 수술 마무리를 떠맡긴다는 등.

이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미숙한 수술의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심각할 경우 사망에 이른 경우도 많았다.

그 때문에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로 말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내겐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기도 하지.

“저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당신, 설마!]

대리수술은 왜 할까.

의사들도 모르지 않는다. 자신들이 대리를 맡기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으며 당연히 자격도 없다는 사실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신에겐 익숙하니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보다 더 중요한 일(자신의 여가를 챙긴다든가, 로비를 해야 한다든가)을 해야 해서, 그도 아니면……

“크흠, 도우께서 알면서 확인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면구하지만 말하겠네. 삼백 건의 수술은 보통 일이 아니지. 우리 제자들도 당연히 흘린 땀을 닦을 수건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나?”

[……돈 달라는 얘기를 저렇게 대놓고 하다니.]

놀라울 것도 없다.

세상의 많은 일은 돈 때문에, 아니, 누군가의 이득 때문에 돌아가니까.

어떤 대리수술은 명망 있는 의사의 이름으로 비싼 수술을 많이 하기 위해 행해진다.

어떤 대리수술은 한 명의 의사가 소화하기엔 너무 많은 수술 건수 때문에 벌어진다.

또 어떤 대리수술은, 그저 어떤 의사의 여가생활이나 그도 아니면 고작 귀찮음 때문에 일어난다.

놀랍지 않다.

놀랍지는 않다.

놀랍지는 않은데…….

“자네 사정을 아니 너무 큰 걸 요구하지는 않겠네. 차차 관계가 나아지면 그때 성의를 보여도 될 일이지.”

“그래서 얼맙니까?”

“허허, 도우는 상가의 영식이라 직설적이군.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금 백 냥이면 되겠네.”

“당장은 말이지요.”

“그렇다네, 당장은.”

총 금액은 천금쯤 되려나.

아무한테나 제안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군.

범인은 상상도 못 할 금액이니,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제게는 그렇게 가벼운 돈이 아니라서.”

“그렇겠지. 손님용 객청을 내줄 테니 쉬면서 천천히 생각하시게. 화산지회 예선이 열릴 때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다네.”

청운 진인이 소매에서 작은 종을 꺼내 흔들자 멀리서 하인이 달려왔다.

“객청에 남는 곳이 있느냐? 귀인이 묵을 만한 곳이어야 한다.”

“진인, 아시다시피 화산지회 예선 때문에 속가문이며 무당의 손님까지 묵고 있는 분이 많아 객청이 꽉 찼습니다.”

“허면 제일 처지는 자에게 사정이 생겼다 둘러대고 자리를 만들어드려라. 아니, 아니지. 지금 상급 객청에 모용세가의 방계가 머물고 있지?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

내 잘 곳을 내주려고 사람 있는 방에서 손님을 쫓아내?

심지어 모용세가의 방계라니.

“아닙니다. 전 밖에 객잔을 잡아놨어요.”

“그런가? 화산지회로 객잔이 다 찼을 텐데 용케도 잡았군. 그래도 우리 객청이 훨씬 나을 텐데.”

“괜찮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 말코가 계속 딴 소리를 하기 전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이곳 객청이 좋기야 하겠지.

건물도 음식도 더 낫고, 머무는 동안 돈 한 푼 안 내도 될 거다.

태청의문의 제자나 하인들이 수발까지 들어주겠지.

그게 다 빚이다.

[언제는 사업가는 빚을 져야 한다더니.]

그럼 다시 들어가서 객청 내달라고 해? 모용세가의 방계를 쫓아내면서까지?

영문도 모르고 쫓겨날 사람에게 미안해서도 있지만, 그 사람이 앙심을 품는 게 더 걱정이다.

금가장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하나둘 적을 만들면 결국 무당파의 보호를 필요로 하게 될 테니까.

별 것도 아닌 데에 이중 삼중으로 심계를 심어놨다니까.

태청의문의 문을 나서자 신생이 저쪽에서 무인들과 함께 오고 있었다.

“신생, 잘 놀다 왔어?”

“네! 당과도 사먹고, 구경도 많이 했어요. 아, 그리고 방도 잡아놨어요.”

“방을? 어떻게?!”

평소보다 배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라 객잔에 자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어떻게 알고?

“의원님 피곤하실 거 같아서…….”

“놀러 다닌 게 아니라 이 아이, 계속 객잔의 방을 수소문하고 다녔습니다. 진인께서 객청을 내주실 거라고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알아봐야 한다면서요.”

나는 신생의 더벅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요 똘똘한 녀석.

“네, 진인께서 객청은 다 찼다고 하셔서요. 있는 객을 쫓아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저희는 이만 객잔으로 가보겠습니다. 신생, 가자!”

* * *

금태양이 떠나간 정자.

청운 진인은 홀로 남아 남은 차를 비우고 있었고, 금태양을 객잔으로 데려다준 무인들이 돌아왔다.

“그래, 정말 숙소를 잡았다더냐?”

“예. 진인과 금 의원이 얘기하실 적부터 일행인 아이가 객잔을 찾아다녔습니다.”

“나와의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과연, 새끼라도 범의 새끼라는 건가.”

우연에 우연이 겹쳤을 뿐이지만 청운 진인은 그것을 금태양의 계산이라고 여겼다.

사실 그렇게 봐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금태양은 청운 진인의 독이 든 호의를 거절했다. 신생이 객잔을 잡지 않았어도 금태양은 무당에 사소한 빚도 지지 않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허나 절벽에서 떨어진 범 새끼라는 점은 다르지 않지. 백금을 얘기했을 뿐인데 낯이 흔들리더군.”

“네. 이곳에 오면서도 금왕의 자식이라고 하기엔 씀씀이가 소박하더군요.”

“황하(黃河)는 무슨 생각인 걸까. 진정 놓은 자식을 방치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저 아이로 하여금 우리의 속내를 떠보는 것인지.”

황하. 무한을 가로지르는 도도한 금빛 강물의 주인이라는 뜻.

그것은 현 금가장의 주인인 금건양의 별호다.

“선대와 달리 우리와 손을 잡으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진정 금가장이 의업에 진출하려는 것인지. 아직은 도통 모르겠군.”

“강호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르겠네. 확실한 건, 그 아이에게 의술과 무공을 전수한 것이 우리 무당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뿐.”

청운 진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처음 얼굴을 마주해 인사를 나누었을 때, 금태양은 제게 손을 쓰려고 했다.

다급하게 손을 거두기는 하였으나 그 이후로도 제 손을 꾹 쥐고 있던 것을 보아하면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 했으니 주화입마일 수도 있다.

“모르지. 그 아이를 고칠 수 있는지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걸지도. 뭐, 황하의 의중이 어느 쪽이든 문제는 없다. 그 아이를 손에 넣는다면 우리 생각대로 이끌 수 있을 거다.”

“저희가 할 일은 없겠습니까?”

청운 진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무인이 말한 ‘할 일’이란 주로 힘과 폭력, 두려움에 기반해 원하는 것을 이끌어내는 행위다.

대부분의 경우에 효율적으로 작용하지만 청운 진인은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여겼다.

“귀한 집 도련님으로 자란 아이가 아니냐. 태어나 이십 평생 편한 길만 걸어보았을 터. 아무리 모자란 자도 왕도와 정도(正道) 중 어느 쪽이 편안한지는 잘 안다.”

그리고 금태양은 그리 모자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영특해 보이기도 했다.

“황하처럼 냉정한 기재라면 그 자리에서 결단을 내렸겠지만, 그 정도로 단호하진 못한 것 같더군. 어설프게 영리한 아이들일수록 제 안에 양심이라는 것을 갖고 있기 마련이지.”

허나 결국은 편안한 길을 좆는다.

그것이 사람이니까.

청운 진인은 태청의문을 맡고 있는 동시에 무당의 제자였다.

때문에 그는 정도를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았다.

그 정도를 걸을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선택된 자들뿐이며, 차마 꿋꿋이 그 길을 가지 못하고 포기했지만 이를 선망하는 이는 사도(邪道)를 걸어서라도 정도를 걷는 자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사실도.

청운 진인은 그런 자신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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