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침착해요! 심호흡, 심호흡!]
내내 가만히 있던 홍령이 갑자기 튀어나와 상단전의 기를 발산하도록 유도했다.
“혹이라도 정도를 벗어나는 자가 무당의 제자를 자칭한다면 꼭 알려주시게. 그자는 무당의 이름을 사칭하고 있는 자가 틀림없으니.”
“네, 네. 아, 알겠습니다.”
기가 빠르게 돌면서 벌렁거리던 심장이 겨우 차분해졌다.
순간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
이게 무당파라는 명문대파의 힘인가.
홍령이 이런 사람에게 복수를 해야 하고, 난 그걸 도와야 한다고?
“많이 놀란 듯허이. 중차대한 문제라 그만 차분하지 못하고 도우를 놀라게 했군. 사과하네, 무량수불.”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다, 이 호랑말코야!
“굳이 의맹의 자격을 따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는가? 본도의 입으로 말하기는 무안하나, 무당의가 된다면 장점이 많다네. 특히나 이곳 호북에서 의원을 할 거라면 말이야.”
“하지만 의맹의 일원이 된다면 수술을 못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섬서삼검 중 하나인 좌수검의 팔을 붙였다지? 장 의원도 그 얘길 했네만, 오해가 있어. 의맹은, 정확히 우리 무당은 수술을 금하지 않는다네.”
뭐라고?
이건 확실히 좋은 신호다.
역시 사람들 말만 들으면 안 된다니까.
“그런데도 수술을 금지한다고 말이 퍼졌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군요?”
“그 또한 비슷한 이유일 걸세.”
“수술 또한 자격이 필요한 겁니까?”
청운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거라면 납득이 된다.
사실 의맹이 자격시험을 치르고 수술에도 자격을 요구하는 건 맞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실력이 없는 사람이 환자를 치료하게 될 테니까.
현대에도 수술 전문의가 되려면 인턴이나 레지던트 시절에 일정 건수 이상의 수술에 참여해야 한다는 얘길 들었으니…….
“그 자격은 어떻게 땁니까? 꼭 무당의 제자여야 하나요?”
“허허, 이제 좀 관심이 생기는가?”
그놈의 수술 금지 때문에 오죽 시달렸어야지.
의맹의 자격이 전제되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다.
사실 세간에 통용되는 자격이 있는데 안 딴다는 것도 좀 그렇잖아.
여러 가지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그건 둘째 치고.
“무당의 제자일 필요는 없지만 어디 소속이든 간에 의맹의 자격은 따야겠지. 회원들 중 특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이들에게 수술의 자격을 부여하니까 말이지.”
“그 의맹의 회원은 어떻게 되나요? 의맹은 다른 단체와 구성이 좀 다른 거 같던데. 제대로 아는 분이 없더라고요.”
이참에 의맹이라는 단체에 대해 제대로 알아두자고.
“무당과 소림 등, 자네도 잘 아는 문파들이 정회원을 자처하고 있네. 정회원은 각자 자격시험을 통해 준회원 자격을 줄 수 있지. 의원 자격이라 하는 것은 보통 이 준회원 자격이라네.”
“정회원은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인 거군요. 준회원 중에서는 수술을 할 수 있는 준회원이 따로 있는 건가요?”
“그렇다네. 수술의 밑에서 수련을 거친 후 똑같이 자격을 증명하면 된다네. 단, 수술 실력 이전에 중요한 게 있네. 바로 마취와 지혈이지.”
“맞아요. 마취가 전제되지 않으면 보통 사람을 수술한다는 건 꿈꾸기도 어려운 일이고, 지혈이 안 된다면 수술의 의미가 없죠.”
특히 이곳 중원처럼 수혈이 안 되는 곳에서 지혈은 중요한 부분이다.
처음 좌수검을 수술할 때도 그 부분을 제일 걱정했으니까.
“잘 아는군. 하여, 우리 무당파에서는 오직 점혈로 마취와 지혈이 가능한 이들만 수술의의 자격을 주고 있다네.”
“네?”
점혈을? 무림인들에게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의원들은 특별한 몇몇 아니면 엄두도 못 낼 텐데?
“이해하네. 당황스럽겠지. 허나 이건 먼 옛날 위험한 짓을 하던 자들이 있기 때문에 세운 규율일세.”
“먼 옛날이라 하시면?”
“그래. 빈도는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겠군. 마비산이라는 약이 있었다네. 마취와 지혈에 탁월했지만 독성이 강해서 수술을 마쳐도 환자들이 죽어나가기 일쑤였지.”
내가 태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금태양으로 이 땅에 태어나기 이전이면 이십 년 전의 일이다.
그 마비산인지 뭔지 때문에 큰 사고라도 있었나 보지?
“하여 지금은 재능 있는 의원들에게 내공심법을 가르쳐 점혈과 호신을 위한 무공을 전수한다네. 이는 다른 속가의원에서는 불가능하고 오직 태청의문에서만 수련할 수 있지.”
“무인으로 치자면 속가가 아닌 무당 본산에서 익히는 거군요.”
“그렇다네. 태청의문은 의문이지만 무당 본산의 의술을 계승하니 사실상 무당의 제자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때문에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다네. 자질도 보고, 오랜 수련을 버틸 수 있는지 정신력과 의지도 보지.”
아이고, 이 청운 진인이라는 도사. 속내가 다 보인다.
자질과 정신력, 의지.
그리고 말하지 않은 하나가 더 있다.
그 오랜 수련을 지탱할 집안의 금전적 지원.
현대에서도 의대 보내려고 평범한 집안은 허리를 졸라맨다는데 여기라고 다르겠는가.
심지어 의술뿐 아니라 무공을 전수하는 일인데.
같잖은 속가문파도 무공을 전수한다는 이유로 상당한 후원금을 받는데 무당의 무공을 전수받는 의원이라.
대체 얼마가 필요한 걸까?
“헌데 도우는 이미 모든 걸 갖췄네. 수술 실력은 물론 의술에 대한 재능까지 입증했지. 이제 점혈을 할 수 있게 되면 자네도 더 안전하게 수술에 전념할 수 있을 게야. 빠르면 십 년이면 될 걸세.”
“그 전에 준회원 자격을 따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내줄 수 있네. 이미 실력이 검증된 의원이 자격을 따려고 괜히 돌아가는 건 손해지. 보통은 이도 아무에게나 해주진 않지만, 어차피 한 식구가 될 거 아닌가. 하하.”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에 태청의문의 문주, 의원이라는 사실에 잠깐 이 사람을 잘못 판단했다.
도사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이문을 좇고 돈과 효율을 따지는.
하긴, 무당 본산과 달리 이곳 의문은 무당파의 속가 중 하나일 테니까.
상인만큼 돈에 예민하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
문제는 내 쪽이다.
내가 여전히 금가장의 사랑받는 막내 아들이였다면 별 고민할 문제가 아니겠지만, 큰 형님이 내게 이런 돈을 지원해줄 리 없으니.
결국 저 돈은 내가 내야 한다.
“권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점혈을 할 줄 압니다.”
내가 만약 점혈을 할 수 없었다면 그래야 했겠지.
“그렇게 우리 무당과 금가장의 관계가 더욱 돈독―, 지금 뭐라고 했나?”
“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점혈. 지금까지 수술도 전부 점혈로 진행했고요.”
“뭐, 뭐라고?”
물론 처음부터 내가 점혈을 한 건 아니고, 그땐 창천의 힘을 빌렸지만 그 얘긴 안 하는 게 좋겠지?
[눈알 튀어나오겠네요. 어휴, 꼬시다. 누구 앞에서 지금 점혈 운운이야?]
“저를 아신다니 제가 몸이 약한 것도 아시겠죠. 그 때문에 스스로 의술을 독파하고 무공으로 몸을 단련했습니다. 이렇게.”
나는 태양보도를 뽑았다.
그리고 그 위에 약한 검기를 피워올렸다.
“……검기로구만.”
“오래는 힘들고요. 딱 수술에 쓸 수 있을 정도예요.”
“그래도 대단한 성취일세. 평생 그 정도 경지에 가지 못하는 이들도 나는 많이 봤다네.”
청운 진인은 씁쓸해 보였지만 내 성취를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그야 씁쓸하겠지. 나를 빌미로 금가장과 돈독한 관계를, 아니 돈독이 오른 관계를 쌓아 볼 생각이었을 테니까.
“허허, 도우는 나를 꽤 놀라게 하는구만. 내 여태껏 이만한 자질을 지닌 이를 본 적이 없네. 선친께서도 너무하시지. 도우를 무당으로 보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이제 수술의 자격을 딸 수 있는 건가요?”
“그래. 자격을 따기 위한 기본은 갖추었구만.”
잠깐만, 기본이라고?
“점혈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지, 점혈을 할 수 있으면 자격을 준다고는 안 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닌가?”
그래, 그렇지.
맞는 일이고 옳은 말인데 내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화를 낼 수는 없지.
“그러면 어떻게 하죠? 수술을 시연하면 되나요?”
“시연이라니. 그냥 수술을 하면 된다네.”
“……얼마나요?”
이제 이 능구렁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는 건 알겠다.
“수술 삼백 건. 그게 무당의 수술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조건이라네. 점혈은 그 수술을 하기위한 최소조건이지. 원래는 다른 수술의들의 수술에 참가해 하나하나 배워나가야겠지만 자네는 그게 아니니 스스로의 수술을 진행해도 될 게야. 정식 수술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자네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죠. 수술이 아니라 다른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의원이 될 수 있죠. 당신은 내가 있어서 예외지만요.]
그렇다고는 해도, 삼백 건의 수술이라고?
하루에 세 건을 진행한다 해도 최소 백 일인데?
“혹시 수술의 기준을 알 수 있을까요?”
“점혈을 통한 마취가 기본이고, 절개나 봉합 등의 과정이 들어가 있으면 된다네. 부러진 검편 등을 뽑아내는 것도 해당되지.”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전생의 대수술 같은 것만 수술은 아니다. 전생에서 시술로 치던 것도 수술에 해당하겠군.
“아, 참고로 수술은 이곳에서 해야 한다네. 태청의문이 아니라 속가의문 어디서 해도 괜찮지만, 우리가 수술을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안 그러면 어디서 조작을 해올지 누가 알고.”
“최소 석 달은 여기 머물러야 한다는 거군요.”
[그것도 당신은 아주 운이 좋고, 환자들에게는 운이 나쁠 때나 가능하겠죠.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다쳐야 한다는 건데. 다른 수술의들도 있을 텐데 당신 혼자 하루 세 건이 가능하겠어요? 한 달에 한 건이나 하면 다행이겠네요.]
“허허, 너무 걱정 말게나.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오면서 사람들이 많지 않던가?”
“네, 무한보다 많은 거 같더라고요. 특히 무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옳게 봤네. 이곳 양양에서 곧 화산지회 예선이 열릴 거라네.”
[화산!]
화산지회?
“도우는 무림인이 아니라 잘 모를지도 모르겠구만. 무림인들이 한데 모여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대회일세. 옛 참사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뜻에서 십 년마다 개최되고 있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거군.
무인들, 특히 칼밥을 먹는 이들은 자신의 명성이 몸값과 직결되니 참가하려는 사람이 많을 법도 하다.
게다가 대회라고 하면 친선비무일 거 아냐?
보통 칼로 명성을 쌓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이런 비무대회는 그럴 일은 없으니까 덜 위험하고 명성도 높일 수 있다.
고수의 실력을 견식하면 보는 눈만큼 실력이 높아지기 마련이니 대회에 참석은 안 해도 대회를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거기에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게 없으니 구경꾼이 몰리기까지.
제2의 도시라고는 해도 대단히 눈여겨볼 만한 게 없는 양양이 무한보다 사람이 많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