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43화 (43/350)

43화

“장 의원이 거기 있어요?”

“네. 무패도라는 자를 끌고 와 고발을 했지요. 또한 이 물건의 진위는 금왕표국의 곽 표두가 확인해주었습니다.”

곽 표두!

“태청의문이 양양에 있나 보군요?”

금왕표국 제 칠 각의 표행단이 태양의원을 떠나 향한 곳.

그곳이 바로 양양(襄阳), 호북에서 무한 다음으로 큰 대도시다.

“그렇습니다. 무당의 지맥이 닿아 있는 곳이니까요. 문주께서는 금가장의 귀한 도련님께서 의업에 뜻을 두신 것에 감탄하시고, 꼭 만나 뵙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금가장!”

“천하제일 부호라는!”

“그렇다면 금 의원이 금왕의 막내아드님?!”

이제 이런 반응도 좀 지겹다.

내가 아버지 아들인게 뭐, 황제의 아들인 것도 아닌데.

“그, 그, 그, 금가장?! 켁!”

“에그머니, 여보!”

“지현 어르신! 정신 차리십시오!”

[의원들 반응은 차라리 양반이네요.]

지현은 금가장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이 퉁방울처럼 튀어나오더니, 말을 더듬다 숫제 기절했다.

후환이 없을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더 힘이 센 의맹에 고발했더니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면 뭐, 저럴 수도 있나?

“마님, 진정하십시오. 어르신은 놀라서 잠깐 기절하신 것뿐입니다.”

“침맥(沈脈)이 심하군요. 침을 놓아야겠습니다.”

“저는 약을 가져오지요.”

“뜸도 좀 뜨면 괜찮으실 겁니다. 지현 어르신은 저희가 돌볼 테니 금 의원께서는 살펴 가시지요.”

내가 금가장의 막내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의원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지는걸.

……어쩔 수 없지.

“지현께 전해주세요. 우리가 다시 봤을 때 불편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무적단 그 녀석들은 제대로 처리해달라고 말이에요.”

녀석들은 제대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

의원을 습격한 거 외에도 남들에게 피해를 입힌 건들이 적잖은 거 같았으니 거리낌도 없다.

놈들이 처벌받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건 좀 아쉽지만, 관청에 인계한 걸로 내 복수는 다 했다고 봐도 되겠지.

죄 지은 자들이 관청에서 처분을 받아야 이 일대의 치안도 안전해질 거고, 그러면 먼 곳에서 찾아오는 환자들도 조금이나마 늘어날 것이다.

“내가 전하겠네. 확실히 처리하지. 염려 말게.”

“부인께서 약조해주시니 믿겠습니다.”

오히려 지현이 기절해서 다행인가?

지현의 약속보다는 저 지현 부인의 약속이 더 믿음직하니까.

“여긴 다 끝난 거 같네요. 짐을 챙겨올게요. 오래는 안 걸릴 겁니다.”

여기서 받은 환자들이 선물한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전부 챙겨 짐을 쌌다.

짊어지고 가기엔 좀 많았지만, 한낱 관청의 포쾌들도 우리를 데리고 가면서 마차를 대절했는데.

설마 무당에서 왔다는 이들이 귀한 손님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게 하겠어?

“의원님, 이거…….”

“응?”

그렇게 곡물자루며 육포며 바리바리 챙기고 있는데 신생이 뭔가를 내밀었다.

아까 신생의 손에 들어갔던(?) 단검. 지현부인이 내준 그것이었다.

원래는 제대로 된 수술도구를 갖추기 전까지 내가 쓰려고 했던 거지만…….

“이건 네가 갖고 있어.”

나는 단검을 신생의 허리춤에 꼼꼼히 매어주었다.

“너도 널 지킬 수단이 하나는 있어야지. 난 내걸 돌려받았으니 됐어.”

“……안 물어보세요?”

나도, 홍령도 모르게 단검을 가져가 무당의 무인들에게 겨누었던 신생.

그게 보통의 어린아이가 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너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솔직히 당황스럽긴 하지만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애를 붙들고 추궁을 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날 지키려고 그랬던 거잖아.

그간 다른 싸움이 있을 때는 사색이 되어선 벌벌 떨기만 하던 어린애가 말이지.

[어린애니까 더 복잡한 사연이겠죠. 자기가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마저 감쪽같이 숨길 수준의 사연이요.]

홍령은 약간 분해 보였지만.

“지금은 우리 의원의 접수원이자 내 조수면 충분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들을 날이 오겠지.

“다 챙겼으면 가자.”

“……네!”

그제야 신생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헌데, 일행이 하나 더 있지 않으십니까?”

짐을 챙겨오자 무당의 무인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태까지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채권자의 눈이 됐는데?

“누가 그랬어요? 내게 일행이 더 있다고?”

“지현께서 전하시길, 창천이라는 이름의 무인이 함께 있다고 하더군요.”

[저 아저씨, 진짜 보탬 안 되네요!]

곤란한데.

눈앞의 이자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태청의문의 문주라는 자는 창천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애초에 태양의원이 있는 장원의 이름도 태청장원이었고.

나와 함께 돌아다닌다고 하니까 데려오라고 했겠지.

어쩔까.

지금까지 정황만 봐서는 무당파가 유명세에 비해선 썩 깨끗한 곳은 아닌 거 같다.

창천을 실험체로 쓴 것도 그렇고, 의맹을 운영하는 방식도 그렇고.

내가 창천의 병을 고치고 있다는 점을 마냥 좋게만 봐줄 상대는 아니다.

“글쎄요. 같이 오긴 했는데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서요. 워낙 제멋대로인 놈이라. 어쩌면 장원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죠.”

“그렇습니까? 흠, 그러면 일단 가실까요?”

그쪽이 주된 목표는 아니었나 보다.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 모를 사안이니, 이 건은 무당파와 태청의문의 태도를 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겠다.

근데 정말 이 녀석은 어딜 간 거람?

정보를 찾아보겠다고 나서더니 내가 의원을 운영하는 내내 코빼기도 안 비치고 말이야.

[근처에 있어요. 기척을 숨기고 있지만요. 따라올 거 같아요.]

좋아. 가보자고.

* * *

사람이 있는 곳에는 돈이 모인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 때문에 모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꼽자면 역시 밥이다.

먹을 것이 있어야 사람이 모인다.

호북 양양은 바로 그 밥 때문에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인 도시였다.

호북 일대의 곡물은 이곳 양양에 모였다가 무한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융성했다.

상업이 융성하면 자연적으로 함께 발달하는 것이 바로 전장이다.

“저희도 참, 더 융통을 해드리고 싶지만 이 이상은 어렵습니다.”

금왕전장 양양지부.

장 의원은 이곳에 돈을 빌리러 왔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한 번만 더 안 되겠나? 내 의원을 되찾으면 곧바로 갚는다니까?”

“의원님 사정은 저희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것 좀 보십시오.”

양양 지부장은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다시 한번 장부를 펼쳤다.

“의원님이 말씀하시는 그 신통의원 말입니다. 벌써 그 땅과 건물을 담보로 몇 번을 빌려가셨잖습니까. 솔직히 지금까지도 안 되는 걸 해드린 겁니다.”

“그러니까 딱 한 번만 더 해달라는 거 아닌가!”

“그나마도 선생께서 태청의문의 무당의셔서 해드린 겁니다. 게다가 듣자하니 저희한테만 그걸로 돈을 빌리신 게 아니던데. 그렇게 되면 저희가 선생께―.”

“됐네, 됐어! 안 빌려줄 거면 가네! 떼잉!”

지부장에게서 더 자세한 애기가 나오기 전에 장 의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누가 잡을세라 서둘러 전장을 빠져나왔다.

“이놈들도 빌려주지 않는다면 대체 어딜 가서 돈을 빌리누. 허어…….”

장 의원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무패도에게 납치(?)된 후 그를 구슬려 의맹 산하, 무당의 의술을 전수하는 태청의문까지 온 것은 좋았다.

문주에게 금태양 고 얄미운 놈이 감히 의맹의 허가도 안 받고 의원질을 하고 있는 데다가, 의맹이 금한 수술까지 하고 있다! 그 사실을 고하면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수술의 증거인 피 묻은 천과 바늘, 그리고 놈의 보물인 태양보도까지 갖다 바치지 않았던가?

헌데 태청의문의 문주, 무당의 청운진인은 제 보고에도 알았노라 하고 여태 답이 없었다.

“그 정도면 당장이라도 의원을 돌려줄 줄 알았건만…….”

의맹의 회원이 되기 위해 쓴 돈만 금 백 냥.

거기에 매 분기마다 내야 하는 후원금과 가맹비, 자격을 유지하려면 꼬박꼬박 들어야 하는 연수비용까지.

출장을 늘리고 재료비를 줄이고, 심할 땐 사기에 가까운 의료행위를 하면서 쥐어짰지만 부족할 땐 지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변통하고 있었는데, 금태양에게 붙들려 있는 동안 의맹이 신통의원을 압류했다.

그리고 새로이 자격을 얻은 의원 놈팡이에게 팔았다고!

“방통의원이랬나? 그 고얀 놈. 내가 빨리 찾아가서 엉덩이를 걷어차 줘야 하는데!”

그러나 오늘도 돈을 빌리는 데 실패한 장 의원의 어깨는 말과 달리 축 쳐질 뿐이었다.

“여기도 무한 못지않게 사람이 많네요. 무림인도 많고.”

그때, 귀에 익은 얄미운 목소리가 장 의원의 귀에 박혔다.

저 가면!

그리고 저 가면쟁이를 둘러싸고 있는 무인들은!

그래, 의맹이 드디어 일을 하는구나!

지부장을 상대하며 턱 막혔던 속이 단숨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맹의 허가를 받지 않은 놈이 잡혀왔으니 이제 포상을 받겠구나!

“신생, 길 잃지 않게 잘 따라와.”

“네, 의원님!”

그러나 동시에 씁쓸함도 밀려왔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의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결혼도 못 했고 덕분에 슬하에 아이도 없었다.

외롭게 의원을 꾸려가던 그에게도, 함께 밥을 먹고 왁자지껄하게 생활하는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얄미운 놈 하나에 깐깐한 놈 하나, 새끼거지가 하나.

생각만 해도 칙칙해지는 구성이긴 했지만, 그래도……

“떼잉, 어차피 대단한 처벌을 받지도 않을 놈인데. 내가 뭣하러 걱정을 하나!”

그 위세도 당당한 금가장의 핏줄.

의맹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태청의문과 무당파가 금가장과 거래할 때 유용한 패가 될 수는 있을 터.

그러니까 장 의원도 그 사실과 신통의원을 거래하려 한 거고.

“처음부터 악연이었던 게야. 저놈과의 인연은 이걸로 끝이다!”

* * *

“여기도 무한 못지않게 사람이 많네요. 무림인도 많고.”

무한 외의 도시에 와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 때문인지 무한보다 작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눈이 갔다.

무당파가 가까운 탓인지 무한에 비해 무관이나 무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신생, 길 잃지 않게 잘 따라와.”

“네, 의원님!”

나도 초행인 주제에 신생보고 길 잃지 말라고 당부하기까지.

그래도 어쩌랴.

제 딴에 날 지키겠다고 내 앞을 가로막은 이후로 이 녀석이 더 귀여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혹시나 길을 잃어도 여긴 무당의 영역이니, 반 시진도 안 되어 손님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예요?”

“무한이 금가장의 영역이라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손님이 길을 잃으신다면 비슷한 반응일 겁니다.”

음, 내가 무한에서 길을 잃었으면 금가장의 모든 사업장이 일을 멈추고 날 찾았을 테니 삼십 분도 안 걸리겠지만.

그만큼 무당이 이곳 양양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