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아까의 너저분한 주정뱅이들이 쌩판 다른 모양으로 들어오다니.
[흐응, 당신 수술이 정말 궁금한가 봐요.]
“내가 그러지 않았나. 다들 괜찮은 사람들일세.”
내가 의원들을 쫓아냈을 때 그들을 위해 변호를 해줬던 한 의원이 거들었다.
“기왕 들어들 올 거면 조금이라도 일찍 오지 그랬나. 금 의원이 방금 전 엄청난 신기를 보여준 참일세.”
“엄청난?”
“신기라니요?”
“무슨 일이 있었지요?”
김이박 세 의원은 능청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잘됐네요. 환자가 셋이라 보조도 많이 필요한데.]
으음…… 그래,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놀라지들 말게. 금 의원이 좀 전에…… 점혈법으로 지혈을 했다네.”
“뭐, 뭐!”
“뭐라!”
“고요! 읍!”
타, 타, 탓―!
세 의원이 침을 튀겨대기 전에 서둘러 세 사람의 혈을 짚었다.
“기껏 옷까지 갈아입고 오셔서 왜 침을 튀기세요? 상처에 침 튀어서 덧나면 책임지실 겁니까?”
[이야, 오면서 수련한 보람이 있네요. 속도가 제법 나요.]
창천 녀석만큼 빠르지 않아서 짧은 감탄까지 막을 순 없었지만……
무인을 상대할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쓸 만하지.
이제는 홍령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나 스스로 점혈을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아. 놀라지 말래도.”
한 의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한 번 겪어본 자의 웃음이었다.
그래, 한 의원이 경악하던 거에 비하면 저 세 사람은 양반이지.
“됐고, 빨리 상처 부위 정리할 거예요. 더 이상 방해 안 하시면 점혈 풀어드릴게요.”
세 의원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들의 점혈을 풀어주었다.
“거기 헝겊들로 입 가리시고요. 두건처럼.”
수술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다보니 마스크를 나와 신생, 창천 것 세 개만 만들어두었더니 이런 일도 있다.
“이걸 두르면 이제 말해도 되는 거요?”
“네. 대신 지시하는 대로 손은 움직여주세요.”
여기서부터는 홍령의 영역이다.
신들린, 아니 귀신 들린 손이 빠르고 유려하게 수술을 시작했다.
지저분하게 찢겨나간 피부와 살 단면을 정리한 후 혈관과 근육을 꿰맨다.
한 번에 세 명을 손봐야 하는 상황이라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하는 상황이 조금 번거로웠지만, 좌수검의 팔을 붙일 때에 비하면야.
그래도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이 무림에서 이런 수술이 가능할까?
[베이거나 꿰뚫린 상처를 수술하는 건 많이 해봤다니까요.]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홍령이 자랑스럽게 내뱉었다.
[자, 여기 지혈!]
그 와중에도 지혈을 위한 점혈만큼은 내가 했다.
홍령이 빙의해서 할 수도 있지만 내게 감을 확실히 다질 기회를 주는 것이다.
“허어, 보고 또 봐도 신기하구만.”
“저런 지혈법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에게 수술은 힘들 거 같군요.”
“애초에 환자가 넋을 잃고 있는 것 또한 점혈로 한 것이라니…….”
혈을 살짝 누르자마자 쏟아지던 피가 단숨에 멎어버리는 것을 본 김이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꼭 점혈이 아니어도 지혈법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마취도 그렇고.”
나는 홍령이 만들어준 상단전이 있고 점혈이 보다 편리하니까 연습한 것뿐.
지혈을 위해 뿌리는 산제나 마취약 같은 건 얼마든지 있다.
“이처럼 깔끔하게 되지 않으니 말이네. 무엇이 잘못인지 지혈제를 뿌린 부분만 곪아버리기도 하고.”
“마비산을 썼다가 사람이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소.”
[아, 그건 우리도 그랬어요. 때문에 가급적이면 점혈로 해결하는 편이었죠.]
아무래도 화학적으로 정제한 현대의 지혈제나 마취약과는 다르겠지.
“그 때문에 의맹이 수술을 금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본산의 의원들까지 수술을 못 하게 할 이유가 없네.”
한 의원이 실을 갈아주며 말했다.
“우리가 무당의라고는 하나 다 같은 무당의가 아닐세. 무림의 속가와 본산의 차이는 의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지.”
“흐음, 본산은 뭐가 달라요?”
홍령이 바쁘게 손을 움직여 상처를 꿰매는 동안 나는 한 의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본산의 의원은 무공을 익힌다네. 무인들처럼 고강한 수준은 아니라도 자네처럼 점혈로 치료를 한다고 들었네.”
점혈로 지혈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치료까지?
[침을 놓는 거랑 원리는 비슷하죠. 정도를 얼마나 조절할 수 있느냐가 다르긴 하겠지만.]
“뭐, 본산 의원 중에서도 점혈이 가능한 자는 손에 꼽는다고 들었네. 쉬운 기술은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다.
나도 홍령이 몸에 깃들어 그 감각이 익숙해질 때까지 시범을 보여준 게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점혈을 할 수 없어서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란 뜻이네.”
[좋아요, 끝!]
한 의원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홍령이 마지막 환자의 봉합을 끝냈다.
“후와! 숨도 못 쉬고 봤네.”
“확실히 피륙을 꿰매는 것은 천을 꿰매는 것과는 다르구료.”
“바늘도 종류가 여럿인 거 같은데. 어떨 때 어떤 바늘을 쓰는지는 어찌 아시오?”
수술이 끝나기 무섭게 김이박 세 의원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밤도 늦었고 세 명분의 수술을 치르느라 나도 홍령도 지쳤지만,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을 대하는 건 싫지 않았다.
아까는 급해서 딱 잘랐던 오염과 위생에 대해서도, 대충 탁기(濁氣)와 독기 따위의 말을 섞어 설명했다.
“허면, 금 의원은 다른 환자들의 병증이 피나 고름 등을 통해서 다른 환자에게 전파될 수 있다는 거요?”
“그렇다면 덧옷을 깨끗이 해야 할 만하지.”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아니어도 그 방법이 먹힐진 모르겠지만, 한번 시험해 봐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보다 우리 순서를 정하세. 금 의원이 쉬는 동안 밤새 환자들의 경과를 살피기로 하지 않았나.”
김이박, 그리고 한 의원이 자발적으로 당번을 서주기로 한 덕분에 나는 안심하고 누울 수 있었다.
[이 소식이 지현의 귀에도 들어갔겠죠?]
당연하지.
임시 출장소를 차리면서 곽만용에게 미리 부탁했다.
작은 상처라도 꿰매야 할 거 같은 일이 생기면 지체하지 말고 내게 데려오라고.
수술에 대한 거부감이 큰 상황.
그 거부감을 무너뜨리려면 직접 결과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환자들이 현청의 포쾌들이기도 하니 그들의 뱃가죽이 찢겨져 내게 왔다는 소식은 이미 지현의 귀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 * *
“어제 그만큼 붓기를 가라앉혔는데, 오늘 또 부어올랐군요.”
한 의원은 침음을 삼키며 어린아이의 환부에 바를 고약을 꺼냈다.
이제는 붓는 게 문제가 아니다.
이렇듯 붓기가 지속되면 사람의 신체에 활기가 떨어지고 이는 온갖 합병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어린아이의 몸.
지현의 귀한 아들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간밤의 수술은 어떻게 되었나?”
지현은 창백하다 못해 시커멓게 죽어가는 아들의 얼굴에서 고개를 돌리곤 물었다.
그래, 희망이 있다면 오직 하나뿐.
금태양이 권한 것처럼 칼을 대는 것이다.
허나 여전히 마음속 거부감은 가시질 않았다.
다른 곳에 칼을 대는 것도 아니고 주요 부위에 칼을 대는 것을 어찌 손쉽게 결정할쏘냐.
금태양이 자신의 실력을 지켜보라고 했지만 단순한 치료 실력으로는 이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 현청의 포쾌들 중 일부가 상처를 입어 금태양에게 맡겨졌다는 소식을 들은 게 사흘 전.
그 수술이 잘 끝난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금태양에게 수술을 부탁할 셈이었다.
“……탁월한 기술이었습니다. 신속하고 정확하며 탁월한 숙련도가 엿보였지요. 누구도 그것을 잡기(雜技)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허나 한 의원의 말은 지현의 기대만큼 경쾌하지 못했다.
“허나, 포쾌들이 여즉 깨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한 명은 어제 사경을 헤매었지요.”
“허어…….”
“작은 상처도 쉬이 곪습니다. 그만한 수술을 했는데 곪지 않는 것이 이상하겠지요. 좌수검은 무림인이라 멀쩡했을지 몰라도, 역시 범인에게 수술을 견디는 건 쉽지 않은 듯합니다.”
한 의원이라고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는 눈으로 금태양의 실력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 신기(神技)라 부를 만한 재주였다.
허나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일이라 했던가?
금 의원이 덧난 수술자국과 고열을 다스리느라 애쓰고 있지만 상처가 심했던 둘은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
“사대신의라 할지라도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금 의원이 수술한 그 환자들은 셋 중 하나만 살아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니 한번 믿어보시는 건―.”
“자넨 지금 내 아들을 가지고 도박을 하란 말인가! 듣기 싫네! 썩 나가게!”
사람 목숨이 달린 일만 아니어도 한 번 더 권해보았겠지만, 한 의원도 두 번 권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한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문이 쾅 열렸다.
포두 곽만용이었다.
“큰일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아이고, 한 의원님! 됐습니다, 됐어요!”
곽만용은 옆의 지현은 보이지도 않는지 한 의원에게 숨이 넘어가게 고함을 질렀다.
“됐어? 됐다니! 해냈구나!”
“예, 해내셨습니다! 역시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한 의원과 곽만용은 숫제 얼싸안기라도 할 것처럼 기뻐했다.
가운데 낀 지현만이 무슨 영문인질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대충 감은 잡혔다.
금태양이 수술한 이들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허나 믿을 수 없었다. 좀 전까지 한 의원이 가망이 없다며 고개를 내젓지 않았던가?
“이럴 게 아니라 가 보세!”
“네! 소인이 안내하겠습니다!”
“큼큼! 흠!”
지현이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자신들이 지현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한 의원과 곽만용이 멋쩍은 얼굴을 했다.
“지현께서도 가보시겠습니까?”
“흠흠, 그럼세.”
태양의원 출장소는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곧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 이놈아! 벌써 밖을 돌아다니면 어떡해?!”
곽만용은 지현을 모시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헐레벌떡 마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형님, 귀청 울립니다. 의원님이 바깥 공기도 좀 쐐야 한다고 해서 나온 거니까 너무 나무라지 마쇼.”
“나참, 딴 놈들은?”
“안에 있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