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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9화 (39/350)

39화

“그으러니까아! 우리 젊은 치들이 주축이 되어서 반기를 들어야 한다 이 말입니다!”

“반기를 들면, 들면? 들어서 뭐가 달라지겠나?”

“에잉, 관두세들! 무당 도사들이 나와서 검이라도 뽑을라치면 다들 깨갱할 게 뻔하면서. 술이나 마시세!”

자리를 옮겨 술상을 차린 지 약 두 시간.

내가 사는 술이라 했더니 김이박 세 의원들은 술 못 마셔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건지 아주 죽어라고 퍼부어댔다.

“금 의원이 이해하게. 저들이 맺힌 게 참 많은가 보이.”

“그래 보이네요.”

한 의원은 멋쩍어했고 나도 씁쓸히 웃으며 찻잔을 기울였다.

왜 찻잔이냐고?

[술은 안 돼요, 술은! 지금도 과로인데 더 과로시킬 일 있어욧?!]

……하고 귀신이 결사반대를 해댔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멀쩡히 앉아서 찻물이라도 마시고 있는 건 진료 짬짬이 홍령이 컨디션을 회복하는 침을 놔주었기 때문이니 반문할 수도 없었다.

쩝. 이십 년 만에 술맛 좀 보나 했는데.

그나마 한 의원도 술을 못 마셔 혼자가 아니란 점은 위안이었고, 또 술자리 자체는 재밌었다.

[원래 남 험담하는 게 제일 재밌잖아요. 끝내주는 술자리 안주죠.]

그리고 그 안주는 바로 의맹이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네만, 근래 들어 맹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네. 나만 해도 전이었다면 이렇게 멀리까지 왕진을 나오진 않았을 텐데 말일세.”

“연회비가 다섯 배나 오르면 그럴 수 있죠.”

“그것만이었다면 괜찮았겠지. 침이며 뜸, 약재까지 웃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네.”

“품질이나 따라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말이죠.”

나는 한 의원이 보여준, 의맹에 공급한 침을 탁자에 대고 눌렀다.

침은 박히는 것이 아니라 휘어졌다.

이렇게 가느다란 침이 끝이 뭉툭한 것도 재주다.

무른 정도도 심각했다.

이 정도면 침을 놓다가 피내에서 침이 휘어 엉뚱한 곳을 자극할 수도 있다.

“여기 가져온 것들은 그나마 내가 꾸준히 관리를 해서 괜찮지만, 조금만 방치해도 쉽게 녹이 슨다네.”

녹슨 침으로 치료를 하다니.

파상풍 걸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금속인 침이 이 정도면 뜸이나 약재는 말할 것도 없군요.”

“그렇다네. 의맹의 자격을 따고 환자는 늘었지만 그만큼 지출이 커졌지. 자격을 딴다고 다가 아니니…….”

한 의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격을 딸 때 막대한 수험료는 기본.

자격증 발급 비용도 따로 내야 하고, 몇 년에 한 번씩 담론회에 참석해 자격갱신을 해야 한단다.

물론 그 또한 유료다.

[정말 그린 듯한 돈 귀신이네요.]

그 외에도 자잘하게 의맹 소속 의원들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먹고 있는 모양.

의맹에 들면 공신력이 올라가 환자가 늘지만, 의맹에게 바쳐야 하는 지출이 그만큼 는다.

아니, 오히려 기존에 벌던 것보다 못하게 버는 처지들인 경우가 많다.

“소림이나 다른 문파의 영역은 이 정도로 심하지 않다면서요. 그쪽으로 의원을 옮기지 않는 건 왜죠? 소림은 제법 가깝잖아요.”

지금까지 얘기한 건, 어디까지나 무당파 영역에 한정된 얘기다.

“예끼, 이 사람아. 터전을 옮기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나? 가깝다고 해도 천 리가 넘어!”

천 리면 얼마야?

1리가 400미터 정도 되는 거 같았으니까, 400km?

……서울에서 제주 가는 거리군.

이 생에선 그렇게 많이 돌아다니질 않아서 아직도 거리 감각이 익숙하질 않다.

그나마 가깝다는 소림이 그 정도니 다른 문파의 영역은 말할 필요도 없을 거고.

“게다가 소림 일대는 또 소림의 규율을 따라야 한다네. 자네, 왜 사람들이 이런 폭거에도 무당의 영역을 떠나지 않는 건지 아나?”

알면 내가 당신들에게 비싼 술까지 퍼 먹이면서 물어보겠어?

“소림의는 의술을 행할 때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네. 중이 시주를 받듯 환자가 시주를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소명의식이 있다면 모를까, 평범하게 밥벌이해야 하는 사람에겐 힘들겠네요.”

“힘들지. 그래서 다들 뒷구멍으로는 욕하면서도 무당의라는 이름을 놓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걸세.”

대충 알고야 있었지만 내부 사람들에게 상세하게 들으니 이 이상 개판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의맹에서 수술은 왜 금하는 겁니까? 수술을 하면 돈을 더 많이 당길 수 있을 텐데요.”

안 해도 되는 수술을 강권해 돈을 버는 행태는 현대 의학계에서도 심심찮게 화제가 되곤 했다.

지금까지 얘길 들어보면 웬만한 블랙기업 못지않은가?

실력 없는 의원에게 수술을 강권하면 강권했지, 못 하게 하는 건 좀 이해가 안 갔다.

“그건 우리도 잘 모르네. 의맹 소속이라고는 하나 보다시피 시골에서 개업한 처지다 보니.”

흠, 이들에게 들을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인가.

어차피 술도 못 마시는데 슬슬 이 주정뱅이들과의 자리를 파할까 고민하던 중, 신생이 문을 벌컥 열었다.

“의원님! 환자예요!”

“무슨 환자기에 이 시간에 들인단 말이오?”

한 의원과 김이박이 의아해 했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바로 뛰어나갔다.

곽만용과 포쾌 몇이 수레에 사람들을 싣고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의원님! 이놈들 좀 살려주십시오!”

“강도 놈들을 제압하다가 놈들에게 당했습니다!”

사위가 어두웠지만 수레에 실려 온 사람들의 상태는 훤히 보였다.

그래, 사람들이다.

자그마치 세 명의 환자가 피를 흘리며 수레에 실려 왔다.

[복부 자상 하나, 절상 하나. 허벅지 절상이 하나에요.]

“신생, 준비해!”

“네!”

이제는 한 마디만 하면 척척이었다.

“우리가 도울 일은 없나?”

“도, 도, 도 돕겠네!”

“저 술 별로 안 마셨습니다, 딸꾹!”

“금 의원님의 수술으을, 견식할 수 있는 겁니까아―?”

음, 김이박 저 세 사람은 안 될 거 같은데……

[하지만 하나도 아니고 셋이에요. 장 의원도 없잖아요.]

어쩔 수 없지.

“한 의원님은 저와 같이 가시고, 세 분은 신생을 도와주십시오.”

준비라도 돕게 하면 되겠지.

썩어도 준치라고 취했어도 의원 가닥이 있는 자들이니 신생 혼자보단 나을 것이다.

곽만용과 포쾌들도 환자를 안으로 들이게 한 후 신생 쪽으로 보냈다.

나와 한 의원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몸을 정갈히 한 후 들어갔다.

“소독은 다 했고, 의원님들이 지혈을 도와주고 계세요. 물도 더 끓이고 있어요!”

신생은 시킨 대로 척척 수술 준비를 해 두었다.

아니, 근데―

“이봐요! 손 떼요! 당장 나가!”

나는 환자들을 지혈하고 있는 김이박을 환자에게서 떼어내 문 밖으로 밀어냈다.

“왜, 왜, 왜 이러나?”

“우리는 그저 도와주려고 하는, 딸꾹!”

“술을 좀 마시긴 했지마안― 우리도 실력이이―.”

지금 술이고 실력이고가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그런 덧옷을 입고 무슨 환자를 지혈해요?! 환자 죽일 일 있어요?”

눈앞의 급한 환자를 두고 내가 열을 뿜으며 지적한 건 김이박이 걸치고 있는 진료용 덧옷이었다.

원래 흰색이어야 할 덧옷은 피나 고름, 뜸의 재 따위가 묻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장 의원도 처음에 저런 걸 입고 와서 내가 아궁이에 넣어 태워버렸지.

“이, 이게 어때서 그러나?”

“맞소! 이건 우리의 자부심이네! 끅!”

“그만큼 많으은―, 환자를 봤다는 뜻이오만!”

아오, 이 돌팔이들을 어쩐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위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엔 지금 신음을 흘리는 환자들이 있다.

다행히 보조를 해줄 한 의원은 내 덧옷을 입은 상태.

손이 더 있다면 좋겠지만 해가 될 사람까지 들여보낼 필요는 없지.

“이건 내 방식입니다. 따를 수 없다면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문을 탁 소리 나게 닫았다.

* * *

눈앞에서 문이 탁 닫히자 김 의원은 술이 확 깼다.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라고 할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건 이 의원, 박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금태양이 탁월한 실력을 가진 건 알겠다.

의맹의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것도 알겠다.

그래 봤자 아직 젊은 의원이 아닌가?

김이박 자신들도 이 근방에서는 나름 명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저 작은 시골 구석이 아니라 현청이 있는 곳에서 의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도 우리만의 방식이 있는 법인데, 너무 무시를 하는군.”

사람이 수치를 당하면 꿀물 한 잔 없이도 술이 깰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 의원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했다.

“어쩝니까? 그냥 돌아갈까요?”

“돌아가다니, 안 됩니다!”

그랬다. 그들은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수술이 금해진다는 건 수술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의맹으로부터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항상 그들을 찾아온다.

한낱 농부도 병든 작물이나 소를 보고 어찌 해줄 수 없음에 가슴이 아프다.

하물며 눈앞에서 환자가 죽어가는 데 치료할 수 없는 의원의 마음은 어떨까!

“……이번 한 번만 금 의원의 말을 들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서로 눈치만 보던 중 이 의원이 입을 열었다.

“수술에 들어오려면 그리해야 한다는 거지, 우리 방식을 버리라고 한 건 아니니 말입니다.”

박 의원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것만 벗으면 되는 건가? 아까 한 의원님은 깨끗한 새것을 입고 들어가시던데.”

김 의원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제 덧옷을 벗었다.

무당의 자격을 따고 수여받은 덧옷은 한 귀퉁이에 무당의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처음 그 새하얀 덧옷을 받았을 때의 감격.

그리고 이 덧옷에 저 위대한 의원들처럼 실력의 흔적을 차곡차곡 쌓아가리라 마음먹었던 다짐.

세 사람은 그 다짐을 내려놓았다.

금태양을 만나러 가자했을 때 이미 자존심은 내려놓았다.

그들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고 싶었다.

그들의 손으로.

“저기, 비켜주시면…… 빨리 새 물을 가져가야해요.”

덧옷은 벗었는데 이제 어쩐다? 하고 있던 세 의원의 앞에 신생이 나타났다.

‘이거다!’

신생을 보는 세 의원의 눈이 빛났다.

* * *

[좋아요! 잘했어요!]

“정말 엄청나군…… 이런 걸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금 의원, 자네의 명성은 정말 명불허전이었군!”

휴.

수술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진이 다 빠졌다.

이제부터는 홍령의 순서라 다행이지.

근데 신생 얘는 왜 안 돌아오지?

[지금 왔네요.]

문이 열리고 신생이, 그리고 김이박 세 의원이 같이 들어왔다.

들어오지 말라 그랬는데 왜 들어와?

이 사람들 다 죽일 일 있나?

[잠깐만요, 옷이 다른데요?]

“이 의생 아이에게 부탁해 자네 옷을 좀 빌렸네.”

“크흠, 숙취제도 좀 먹었고.”

“손도 깨끗이 씻었소이다. 비누같이 귀한 걸 들고 다니다니 역시 다르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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