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오늘 치료는 끝났습니다만, 아마 밤이 되면 또 부어오를 겁니다.”
“휴우, 수고했네.”
“그리고 저이가 그 의원이군요. 좌수검의 팔을 붙였다는?”
뜸을 뜨던 의원이 아는 체를 했다.
“작은 마을에서 의원을 하고 있는 금태양이라 합니다.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현 어르신.”
“크흠, 그때는 내가 좀 오해를 했네. 의맹의 자격도 없는 의원이란 말도 들었던 터라. 크흠흠.”
“그런 자격이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저도 배움은 제 스승께 사사하고 자격은 주변에서 하도 따라 성화여서 몇 년 전에야 시험을 쳤을 뿐입니다. 아직도 재야에는 의맹에 소속되지 않은 숨은 명의가 많지요.”
호오?
내게 꽤 호의적인 사람이다.
안 그래도 장 의원이 납치되어서 의맹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잘됐다.
[그러니까 빨리 캐물어 보자고 했잖아요.]
나라고 장 의원이 납치될 줄 알았나?
난 장 의원이 나에게 반감이 좀 덜해질 즈음에 물어보려고 했지.
의맹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창천에 대해 사주한 놈들에 대해서 캐묻는 건 꽤 조심스러운 일이니까.
“그럼 우선 환자를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어린 환자는 뜸 치료로 기력이 다했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확실히 뜸이 효과가 있긴 했다.
아까는 주먹만큼 부어 있던 것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으니까.
[덕분에 환부를 살필 수 있게 되긴 했는데…….]
했는데?
[사실 내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에요.]
홍령이 전생에 여자였던 만큼 남성의 생식기를 치료한 경험이 남자 의원보다는 적었을 터다.
내가 태양의원을 차린 시골이야 그런 걸 가릴 계제가 아니라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환자가 찾아오지만, 나도 여태 산과나 부인과 환자를 받아본 적은 없다.
[뭐 짚이는 거 없어요? 같은 남자잖아요.]
그렇게 치면 여기 다른 의원도 남자거든?
[그래도 나보다는 표본이 많을 거 아니에요. 빨리 살펴봐요.]
나라고 남의 거시기를 보는 취미가 있을 리 없지만, 슬프게도 이 또한 홍령의 말이 맞았다.
뭔가가 눈에 띄었다.
……내가 절대 남들의 거시기를 관찰하는 취미가 있는 건 아니다. 절대.
“잡아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면 운이 좋았다.
내가 잘 아는 문제가 나왔으니까.
[잡아요? 뭐를요?]
음, 맞아. 확실하다.
이 환자, 고래를 잡아야 한다.
“혼자 중얼거리지 말고 빨리 말을 해주게. 뭐가 문젠가? 알아냈나?”
“예, 알아냈습니다.”
“호오, 과연 백침(百針)의 복면신의로군.”
그건 또 뭐야?
[벌써 별호가 붙었나 봐요! 축하해요!]
축하는 무슨. 오글거린다고.
[에이, 물론 그렇게 대단한 별호는 아니지만요. 신의라고는 하지만 신통해서 신의가 아니라 수술하는 게 신기하다고 신의일 거예요. 게다가 별호가 길잖아요? 별호는 짧고 단순할수록 명망이 있다는 거니까요.]
하긴, 좌수검만 봐도 그렇지.
아마 진짜 유명한 의원은 ‘명의’ ‘신의’ 같은 이름으로 불릴 거다.
“여기 보면 피부가 한 번 겹쳐져 있죠. 보통은 안 이렇습니다. 잘 아시죠?”
지현도 의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확실히 남자들끼리라 편하군.
“평소엔 문제가 없지만 이 겹친 피부 사이가 지저분해지면 병이 생기죠. 잘 씻지 않는 거지들이 만병을 달고 사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세균 감염이라고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기는 균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그렇군! 그러면 잘 씻기면 되나?”
“그걸로 해결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보다시피 쉽지가 않거든요.”
“허면 방법이 없는 건가?”
“아뇨, 째면 됩니다.”
“……째?”
“예. 칼로 여기를.”
손날로 허공을 베는 시늉을 하자 지현의 낯이 새하얘졌다.
“……내, 내 이 돌팔이의 말을 듣기로 한 게 잘못이지!”
“지현 어르신, 고정하십시오. 금 의원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시끄럽네! 어딜 어떻게 째? 아주 우리 아들을 고자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음, 이건 남자들이라서 영 귀찮네.
현대에야 포경 수술이 잘 알려져 있지만 여기선 아닐 테니 당연히 거부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 반응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라서 참.
“점혈로 기절시킬 거라 통증은 없을 겁니다. 시간도 오래 안 걸릴 거고요. 수술인 만큼 회복 기간이 필요하겠지만.”
좌수검 때야 특출 난 무인이라 회복이 비정상적으로 빨랐지만, 이번 환자는 어린아이다.
[그걸 감안해도 좌수검의 회복력이 대단하긴 했어요. 그쪽은 팔 하나가 잘려나갔었다고요.]
“당장 받아들이기 힘드시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고민이 길수록 고통 받는 건 아드님입니다. 정 걱정되시면 제 실력을 보고 결정하시죠.”
“실력을 보다니, 어떻게?”
“다른 환자들을 치료할 겁니다. 남는 집 한 채만 내주세요.”
* * *
돌팔이라고 삿대질을 했으면서도 내심 내 실력을 보고 싶었던 건지, 지현은 현청과 가까운 곳에 있는 장원을 하나 내주었다.
이 고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태양의원 임시 출장소를 열었다는 거다.
“줄, 줄 서주세요! 줄 서서 번호표 받아서 대기해주세요!”
“상태가 위급한 분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귀가 먹먹하시고요, 며칠이나 되셨어요? 사흘…… 그간 다른 치료는 받으셨고요?”
환자가 물 밀 듯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현청이 있는 곳이라 태양의원 본점이 있는 마을에 비하면 인구부터가 비교가 안 됐다.
기존에 자리를 잡고 영업하던 의원이 세 곳이나 됐다.
그리고 장 의원 때와 마찬가지로, 그 세 곳의 의원에서도 병을 고치지 못한 환자들이 줄을 섰다.
“어허, 거기 새치기!”
“낯이 멀쩡한데. 꾀병 아뇨? 열이 있나? 열 없네! 이놈이, 현청에 끌려가 곤장을 맞고 싶어?”
지현이 보낸 포쾌들이 일을 도와주고 있어 진상도 없었고, 본점에서의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기준을 명확히 정하자 줄 세우는 일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창천 녀석이 있으면 더 편했겠지만 아쉽게도, 녀석은 뇌옥에서 풀려나자마자 ‘나는 내 방식대로 정보를 찾아보도록 하지.’라는 말만 남기고 휙 하니 사라졌다.
“의원님, 다음 환자 문진표요!”
틈틈이 신생에게 간단한 의학지식을 가르쳐두었더니 이제 감기나 피부병, 급체 등은 척척 증상을 잡아내 문진표를 기록했다.
[이게 있으니 확실히 편해요. 좀 더 빨리, 상세하게 볼 수 있고.]
프리뷰(preview)가 있고 없고가 가져오는 효율의 차이는 크다.
수업이나 강의도 오늘 할 내용을 간단하게 전하고 본론에 들어가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나 또한 그 효율을 직접 체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 환자분! 어, 백삼십이 번 환자분 들어 가실게요! 의원님, 환자분 들어가세요!”
임시 출장소를 열고 삼 일째.
첫날과 둘째 날은 대충 팔십 번 대에서 끝나더니, 입소문이 퍼졌는지 오늘은 최절정이다.
“오늘은 이번 환자분까지만 진료할게요! 시간이 다 되어서, 의원님도 피곤하시고요! 오늘 진료 못 받은 분은 내일 와서 빠른 번호표로 교환하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생이 마지막 환자를 들여보내면서 영업 종료를 외쳤다.
[그냥 마지막 환자도 내일 오라고 하면 안 돼요? 힘들어 죽겠어요.]
환자를 보는 게 생(?)의 보람이라고 노래를 부르던 귀신이 반쯤 울먹였다.
진(辰) 시부터 유(酉) 시.
그러니까 대충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환자를 봤다.
한 시간에 열두 명의 환자를 본 셈이니까 거의 오 분마다 새 환자를 본 건데…….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든데 이거.”
귀신이 우는 소리를 할 만도 했다.
오 분 안에 환자의 증상 파악부터 간단한 치료와 처방을 마쳐야 했으니까.
심지어 이게 끝도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봐야겠다 싶은 환자, 상태가 위중한 환자는 다른 방에 일단 입원을 시켜놓고 한 숨 돌린 다음 야간에 또 회진을 돌았다.
그러고 나면 잘 시간이 한 줌밖에 남지 않았다.
홍령이 내 상단전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벌써 쓰러지고도 남았을 거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힘내야지. 내일부터는 번호표를 오십 번까지만 나눠주든지 해야겠어. 효율도 좋지만 꼼꼼하게 봐야 할 환자도 있으니…… 다음 환자는 왜 이렇게 안 들어와?”
[문 밖에 있네요. 셋 중에 누가 환자고 누가 보호자지?]
셋이라고?
[또 그런 사람들 아닐까요? 번호표 하나 받아놓고 여러 명이 진찰받으려고 하는.]
헌데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자네가 들어가게.”
“아니, 자네가 들어가야지! 자네가 먼저 가보자고 했잖아!”
“그렇게 치면 제일 먼저 온 김 의원님이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척이나 기대를 하고 계신 것 같았는데요.”
“그, 그냥 나는 주변에 볼 일이 있어서 일찍 온 것뿐이네! 그래서 번호표도 안 받아두지 않았나!”
“그러면 번호표를 받아둔 박 의원이 들어가는 건?”
“두 분이 먼저 와놓고 근처에서 서성거리기만 하셨기 때문이잖습니까! 먼저 얘길 꺼낸 이 의원님이 들어가십시오!”
뭔데.
들어오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의원이라고 하는 걸 보면, 이 동네에서 의원을 한다는 그 세 명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선전포고를 하러 온 건지 아니면 염탐을 하러 온 건진 모르겠지만…….
[저렇게 누가 들어가네로 투닥거리는 걸 내버려뒀다간 밤이 새도록 끝이 나지 않을 거 같네요.]
벌컥.
내가 문을 열자 소란스럽게 떠들던 세 의원이 그대로 굳었다.
“그냥 세 분 다 들어오시죠. 신생, 여기 다과상 좀 부탁해!”
“네, 의원님!”
세 의원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진료실로 들어와 앉았다.
“들어보니 아파서 오신 거 같지는 않고, 이 근처에서 의원을 하시는 분들이죠? 인사가 늦었습니다, 금태양이라고 합니다.”
“크, 크흠! 말 안 해도 알고 있네!”
“좌수검의 팔을 붙였다는 얘기는 여기도 널리 퍼졌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정말 의맹 산하에서 사사하지 않은 거요? 허면 어떻게 그런 의술을 익힌 거요?”
[얘기하는 게 좀 이상한데요. 갑자기 자기들 영역에 판을 벌려서 항의라든가, 뭐 아무튼 견제를 하러 온 줄 알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장 의원이 태양의원에 쳐들어 와 버럭 화를 냈던 것처럼 말이다.
“좌수검의 팔을 수술한 얘기부터 물어보자고 했잖나! 난 지난달에도 자상을 입은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야 했단 말이네!”
“하지만 그것도 궁금한 걸 어찌합니까?”
“의맹에 속해 있지 않다면 후원금이나 가맹비도 안 내시오? 연수도 안 가시고?”
흠.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랑 할 얘기가 많을 거 같은데.
“금 의원 안에 있나? 나 한 의원일세.”
때마침 오늘 만나기로 했던 다른 사람도 왔다.
바로 지현이 부른 그 의원이었다.
“어이쿠, 그대들도 와 있었나?”
“의원님, 차는 어떤 걸로 들일까요?”
때마침 신생이 달려왔고,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차 말고 술상을 차려야겠다. 오늘 한번 마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