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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7화 (37/350)

37화

포쾌들이 가고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일단 지현이 무슨 병을 앓는지 알아내는 게 우선인데.”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병, 알려지면 수치스러운 병일 가능성이 높다.

[발기부전이라든가, 치질이 가능성 있네요.]

……치료한다면 확실히 신뢰는 얻을 수 있겠군.

“내가 나갔다 오지.”

“넌 안 돼.”

“내 검이 이 정도 철문도 못 베어낼 줄 아나?”

“그러니까 안 된다고. 게다가 너, 나가서 정보는 어떻게 얻게? 길 가는 사람 협박해서 물어보려고? 아니면 지현 방에 숨어들어 가서 있는 대로 다 불라고 칼이라도 겨눌 거야?”

“…….”

[진짜 그런 생각 했나 본데요.]

“객잔에서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말이야. 현청에서 일하는 포쾌들도 모르는 정보가 객잔에 돌아다니겠어?”

“그러면 누가, 어떻게 할 수 있지? 네가 나갈 건가?”

그러게 말이다.

객잔에서 술과 음식을 사서 호사가들의 환심을 사는 정도로는 그런 정보를 얻을 순 없을 거고.

[의술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방법도 있지만 오래 걸리고, 들키면 지현을 치료해 볼 기회도 얻지 못하겠죠?]

그래. 나나 창천은 정보를 얻으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눈에 띈단 말이지.

“……제가 갔다 오는 건, 안 될까요?”

응?

그렇다. 여기엔 나와 창천 말고도(귀신도 하나 있지만) 또 다른 한 명이 있었다.

[오히려 신생이라면 괜찮을지도요? 거지 생활을 해봤잖아요.]

지금이야 말끔해져서 땟국물은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신생은 나름 구걸을 해서 밥을 빌어먹던 전문(?) 거지였다.

자고로 밥 빌어먹는 일이란 귀동냥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저기 국숫집 주인이 오늘 기분이 좋더라 하면 손님이 남긴 국수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고, 저기 푸줏간 주인이 기분이 나쁘다면 식칼 옆면으로 뺨을 얻어맞는 것이 거지의 삶.

이런저런 정보를 주워듣고 조합하는 데는 거지만 한 것도 없다 이거다.

괜히 개방 같은 게 있겠냐고.

[처음에 마을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려줬고 말이에요.]

“괜찮겠어?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당장 문은 어떻게 하지? 창천이 베어버리면 너무 요란할 거고.”

“이 정도 문은 열 수 있을 거예요……. 침 한 개만 빌려주세요.”

신생은 정말 침 한 자루로 자물쇠를 어렵지 않게 열어버렸다.

“……원래 저렇게 쉬운 건가?”

“놀랍군…….”

그리고 신생은 살금살금 뇌옥을 빠져나갔다가 몇 시진 후에 돌아왔다.

“왔어? 어디 다친 덴 없고?”

[먼지가 묻어 있긴 한데 다친 거 같진 않네요.]

“일단 이거부터 받아주세요. 무거워서…….”

신생은 뇌옥으로 들어와 침으로 자물쇠를 다시 잠그고는 자기 몸뚱이만 한 보퉁이를 내려놓았다.

“뇌옥이라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을 거 같아서 객잔에 들러서 좀 사왔어요. 일단 드세요.”

이건 또 어떻게 들고 왔대?

머릿속으로 물음표가 확확 지나갔지만…….

꼬르륵―

일단 배가 고픈 건 사실이었으므로 나나 창천이나 음식으로 덥썩 손을 뻗었다.

“돈은 있었어?”

“의원님께서 저 열심히 일한다고 용돈 챙겨주신 거…… 그거 모으고 있었어요.”

당과라도 사먹으라고 쥐여 준 걸 여태 꼬박꼬박 모으고 있었나.

[기특하네요.]

나는 깨끗한 손으로 신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후 신생에게도 젓가락을 쥐여 주었다.

“그래, 무슨 얘기를 듣고 왔지? 설마 객잔에서 음식만 사온 건 아니겠지.”

“창천, 입에 묻은 양념이나 닦고 물어라. 얘도 배고플 텐데 뭐라도 좀 먹으면 얘기하겠지.”

“아, 그, 그게요. 생각보다 빨리 들었거든요. 그 애 얘기요.”

[그 애?]

“지현 어르신에게 늦둥이 외동아들이 하나 있대요. 저랑 나이가 비슷한…… 근데 걔가 아프대요.”

호오. 지현이 아픈 줄 알았더니 어린 아들이라.

들어보니 그 아들은 공부하다가 종종 현청을 빠져나와선 동네 또래들이랑 자주 어울렸던 모양이다.

신생은 그 애들한테 정보를 들었고.

“그래서, 어디가 아픈데? 갑자기 쓰러진 게 아니라면 전조증상이 있었을 법도 한데. 뭔가 이상한 낌새 같은 건 없었대?”

“아, 그게요…….”

신생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왜 저래?

“그, 여기…….”

조막만 한 손이 제 아래를 머쓱하게 가리켰다.

“여기를 그렇게 가려워했다고…….”

아.

[아…….]

거시기구나.

[거시기 문제네요.]

철저히 비밀에 부칠 만도 했다.

자기 문제여도 쉬쉬할 판에 하나뿐인 아들에게 그쪽 문제가 있다?

소문이 나면 장래 혼삿길은 꿈도 못 꿀 테니까.

[근데 신생 또래라면서요. 기껏해야 열 살배기 아니에요? 그런 꼬마애가 무슨―]

진짜 되바라진 놈이라면 그 나이에 색을 밝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신생 얘길 들어봐선 또래 애들이랑 노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그 나이 대 애인 거 같은데.

“장 의원님이 처음도 아니래요. 이 근처 의원들은 다 손 들어서, 멀리서 실력 있는 의원을 불렀다더라고요.”

그 실력자를 기다리는 중에 무패도가 인질인 장 의원을 내세워 현청에 들어와서 패물을 다 쓸어갔다는 거군.

[함부로 고치겠다 나서긴 애매하네요. 지금 나서 봤자 사기꾼 취급을 받을 거예요.]

홍령의 말이 맞다.

지금은 내가 먼저 나설 때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현 쪽에서 먼저 나를 찾게 만들어야지.

“신생, 한 번 더 나갔다 올 수 있겠어?”

* * *

“어떤가? 고칠 수 있겠나?”

지현은 애가 타는 심정으로 물었다.

사실 말의 형태가 물음일 뿐이지, 당연히 고칠 수 있다는 대답을 듣겠다는 뜻이었다.

눈앞의 의원을 초빙하는 데 얼마의 돈이 들어갔는지 모른다.

현재 잡혀 있는 예약을 다 취소해야 한다기에 위약금까지 대신 물어주며 불렀다.

헌데 아들의 진맥을 하는 의원의 표정이 영 심상찮았다.

“당장의 치료는 어렵지 않겠습니다만…….”

“다만?”

“제 소견으론 비슷한 증상이 계속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완치는 어렵지 않을지…….”

뭐라고!

지현은 뒷목을 잡았다.

아들의 거시기가 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불어 터진 게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어린 아들은 매일 밤마다 아프다고 엉엉 울고 의원들은 나을 수 없는 괴질이라는 말만 해댔다.

그래도 뭐라도 해보라고 다그치니 독한 약을 처방하고 방혈을 하는 등 시도는 했다.

효과가 있는 것도 있었지만 일시적이었고 대부분은 그만한 효과조차 없었다.

지현으로서는 속이 타들어갈 것 같은 시간이었다.

“저로서는 통증을 덜어주는 정도가 한계입니다만…… 이 고을에 유명한 의원이 와 있다는 것 같은데, 그를 불러보심이?”

“유명한 의원? 그런 자가 있단 말인가?”

지현은 당장이라도 일어나 버선발로 그 유명하다는 의원을 끌고 올, 아니 초빙해 올 기세였다.

“저도 현청에 오면서 들은 정도입니다만. 침술은 현묘하고 약에 조예가 남다르며 남들이 손도 못 대는 괴질을 낫게 하는 데 신통하다더군요.”

“괜한 허풍은 아닌가?”

“저도 그 이름과 명성을 들어봤으니 아주 허풍은 아닐 겁니다. 제 환자 중에도 그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다녀왔다는 사람이 있었지요. 제 의술로는 치료가 어렵다 단언했던 이인데 말끔하게 나아 돌아왔더군요.”

“그래서, 누군가? 대체 그 현묘하다는 의원이?”

“저 노래 안 들리십니까?”

의원은 문 밖을 가리켰다.

노래?

지현은 문을 벌컥 열고 귀를 기울였다.

과연, 담장 너머로 어린애들의 조잡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뛰어난 의원님 딱 여기 왔대

두비두밥

얼마나 대단한데?

두비두밥

누군지 정말 궁금하구나―

움빠둠빠두비두밤

가면 썼대―

움빠둠빠두비두밤

성은 금씨―

움빠둠빠두비두밥

이름 태양―

움빠둠빠두비두밥

팔도 붙여―

움빠둠빠두비두밥

라라라―

움빠둠빠두비두밥

“……금태양이라면, 설마?”

지현의 머릿속에 엊그제 뇌옥에 가둔 젊은 의원이 떠올랐다.

맞다.

그자가 좌수검의 팔을 붙였다고 했다.

윗분께서 내린 서찰에서 분명 팔이 잘렸다고 했는데, 포쾌들은 그의 왼팔이 온전히 붙어 있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해 봤다고 했다.

그때는 포쾌 놈들이 허풍을 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그 의원을 불러보시지요. 저도 그자의 실력이 궁금하던 차입니다.”

이 근방에서는 가장 유명하다는 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여봐라! 뇌옥에 가둔 금태양이라는 자를 불러오거라!”

* * *

[딱 이틀 걸렸네요. 어지간히 급했나 봐요.]

그러게 말이다.

나는 사나흘 정도는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신생이 떡을 나눠주며 아이들에게 가르친 노래가 퍼져나가고 그게 지현의 귀에 들어가게 되기까지의 시간 말이다.

지현이 초빙했다던 의원이 그 아들의 괴질을 고칠 만큼 실력이 좋다든가, 노래가 생각보다 잘 퍼지지 않는다든가 변수도 고려해 제 2안, 3안 등을 세워두었지만 첫 시도에 해결됐으니 그건 잊어버리고.

[노래가 좋았어요. 두비두밥. 중독성 있어서 빨리 퍼졌나 봐요. 나도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니까요. 움빠둠빠 두비두밤~]

그야 전생에 인터넷에서 돌던 밈(meme)에다 가사만 바꿔 붙인 거니까, 중독성이나 파급력은 이미 깔고 가는 셈이었다.

오히려 그 노래에 가사를 새로 붙이는 게 어려웠는데, 내 스스로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격이다 보니……

[좀 더 화끈하게 개사했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가면 썼대 말고 가면신의라든지.]

그만둬. 이미 내 쪽팔림은 한계야.

“지현 어르신, 말씀하신 그 의원을 데리고 왔습니다.”

“들라 해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세상에…….]

홍령이 침음성을 흘렸다.

나도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침상에는 신생 또래의 어린 남자애가 하의를 탈의하고 누워 있었다.

아이의 생식기는 주먹만큼 부어 있었고 다른 의원이 그 위에 쑥뜸을 놓고 불을 붙였다.

지지직―

쑥뜸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안 그래도 진이 빠져 있던 아이의 낯이 시시각각 새하얘졌다.

“아악! 악!”

그리고 지켜보는 나도 으윽 소리가 절로 나왔다.

뜸 치료는 잘 말린 쑥을 가루 내어 잘 뭉친 후 소량을 뜯어 환부에 올리고, 거기에 불을 붙이는 치료법이다.

쑥이 타들어가는 열기를 전달해 치료하는데, 그냥 뜸을 뜨면 피부가 상하니까 도자기나 얇은 나무껍질 위에 올려 뜨기도 하지만 결국 뜨거운 열기가 전해지는 게 핵심.

그러니까 저 지현의 귀한 늦둥이 외동아들은 생식기를 불로 지지고 있는 셈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이 상상 가서 괴롭다.

[효과는 좋다구요. 정말 원인을 모르겠다 싶을 땐 한번 뜸으로 확 지지면 낫는 경우도 많다니까요?]

현대에서 한의학을 왜 양의학보다 한 수 낮게 평가하는지 알 거 같은 기분이지만 일단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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