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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6화 (36/350)

36화

“저기요,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이런 작업 멘트 같은 말을 시커먼 아저씨들에게 하게 되다니.

“맞네. 우리 의원에 왔던 그분들 맞죠? 그쪽 분이 포두셨던 거 같은데.”

“마, 맞다! 너희들은 왜 의원에 안 있고 또 여기 있는 거야!”

포두는 숫제 기절할 거 같은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건 이쪽이 더 궁금한 일인데요. 여러분은 여긴 무슨 일이에요?”

“우, 우리는! 무적단의 무패도라는 악랄한 죄인을 쫓아서 온 거다!”

“무패도?”

그게 누구야?

그런데 비적들 사이에서 반응이 있었다.

“그건 우리 두목 별호인데…….”

시골 조무래기 비적단 이름은 무적단에, 두목의 별호가 자칭 무패도라. 거창하기도 하네.

“그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데요?”

“이, 이번엔 진짜 악독한 놈이다! 지현 어르신을 속이고 현청의 패물을 죄 훔쳐 도망쳤으니 이번엔 놈을 감싸지 마라! 여긴 의원도 아니지 않느냐!”

아, 왜들 저렇게 악을 쓰나 했더니. 좌수검의 일 때문에 저러는 거야?

[그때 호되게 당하고 가긴 했죠.]

하긴. 우리한테선 창천에게 얻어맞고 갔지, 돌아가서는 지현인지 뭔지한테 깨졌을 게 뻔하지.

……전생에서 상사에게 비슷한 일로 깨졌던 일이 생각나는걸.

“저기,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요.”

나는 포두에게, 우리도 이 무적단인지 뭔지 하는 놈들에게 습격을 당했고, 무패도에게 중요한 것을 도둑맞아서 놈들을 찾으러 왔다는 얘기를 풀어놓았다.

포쾌들도 자기들 얘기를 패주었는데, 그쪽은 장 의원을 내세워서 의원과 조수로 현청에 들어가 패물을 접수하고 도주한 모양이었다. 그 과정에서 장 의원은 또 챙겨가고.

“그러니까 우리 의원을 습격한 후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쪽 현청을 털었다 그거군요?”

“그래. 그 일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지. 일부는 놈의 행적을 쫓고, 우리는 놈이 본거지로 돌아왔을 수도 있다고 이쪽으로 보내진 거다.”

지현에서 놈의 행적을 쫓고 있다고?

이건 꽤 솔깃한 정보였다.

우리야 고작 셋뿐이라 정보를 얻기도 힘들지만, 지현은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우리보다는 정보력에서 앞설 거 아닌가.

무패도를 잡아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도 있고.

“그러면 이렇게 할까요?”

“어떻게?”

창천 녀석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같은 표정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어차피 우리에게도 이놈들 짐이거든요. 이놈들을 여러분한테 넘길게요. 그러면 여러분은 무패도는 잡지 못했지만, 놈의 부하인 무적단의 잔당들은 지현 어르신께 데려갈 수 있는 거죠.”

포쾌들의 머리 위로 느낌표 세 개가 !!! 하고 떠오르는 걸 보는 기분인걸.

“그, 그러면 우린 뭘 해주면 되지?”

[상도덕을 아는 포쾌들이네요.]

그래. 이렇게 매너를 아는 사람들이랑은 좀 거래할 맛이 나지.

“무패도에 대한 정보는 현청에 가서 듣기로 하고. 우선은, 일손을 좀 빌릴까요?”

* * *

이게 웬 횡재인가?

포쾌 8조의 우두머리, 포두 곽만용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짓거리였다.

포쾌 몇 명이서 이 동네에서 신출귀몰한다는 비적단의 본거지에 가서 놈들을 잡아오라고?

일전에 좌수검을 잡아오지 못한 괘씸죄로 곽만용과 8조가 단단히 찍힌 게 아니라면 아무리 멍청한 관리라도 그런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말이 잡아오라는 거지, 가서 죽든지 아니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고 오든지 하란 거 아닌가!

마음 같아선 못 한다고 배째라고 하고 싶었지만 일이란 게 어디 그리 쉽나. 상급자가 까라면 까야지…….

어찌저찌 정보를 얻어내서 놈들의 소굴까지는 왔는데 웬걸, 여기서 또 창천 녀석을 만나기까지!

진짜 다 죽었다, 죽는 시늉도 글렀다.

그런 생각을 할 때 괴상한 가면을 쓴 놈, 아니 가면을 쓴 귀한 분께서 불쑥 튀어나와 말씀하시기를,

“이 흉악한 비적놈들을 너희 포쾌 8조에게 하사하니, 너희가 가는 길까지 이 창천에게 일러 지키게 할 것이며 그 길을 내가 함께하리라.”

아아! 이 어찌나 아름다운 옥음(玉音)이란 말인가!

포두는 지현의 말에는 차마 죽는 시늉조차 하지 못했지만(애초에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지엄한 지현 어르신이 같잖은 포졸에게 죽는 시늉을 할 시간을 내어주겠는가?) 이 귀한 가면귀인께는 죽는 시늉 백번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곽만용은 금태양이 저 무너진 비동 안으로 들어가 괴이쩍은 냄새가 나는 살점과 껍질 따위를 주워 달라 했을 때도 제일 먼저 달려갔다.

“으윽, 냄새!”

“이놈들아, 참아! 금 의원! 이걸 주워가면 되나? 살점이랑 껍질 같은 거?”

“예. 빛나는 구슬 조각 같은 걸 주워 오시는 분은 특별히 몸 상태 한번 봐드려요!”

“오오, 혹시 이건가!”

“아싸! 침 한 방 벌었다!”

가면귀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비적들을 넘겨주는 대가로 이런 간단한 잡일만 도와주면 된다니!

곽만용은 신이 나서 포쾌들을 독려했다. 왜 우리가 이런 걸 해야 하냐는 둥의 소리를 하는 놈은 종아리를 악 소리나게 걷어찼다. 이 멍청한 놈들! 굴러들어온 호박을 정중히 모시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곽만용과 표쾌들은 귀한 호박님의 지시에 따라 살점들을 깨끗이 씻고 삶고 말려서 육포로 만드는 과정을 해치웠다.

“그래, 이게 약이 된다고?”

“함부로 먹으면 안 돼요. 아무 데나 쓰는 약도 아니고요.”

“그래도 약이 된다니 관심이 생기는데. 한 조각만 주면 안 되나?”

“드리는 건 상관없지만, 먹고 무슨 일 생겨도 전 책임 안 져요.”

실은 곽만용도 은근슬쩍 육포 쪼가리를 챙겨놓았지만, 끝내주는 명의인 가면귀인님의 말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자고로 나랏님 말씀은 못 믿어도 의원 말은 들어야 하는 법이다.

육포뿐 아니라 껍질을 말린 피갑(皮甲), 새끼손톱만큼의 웬 노란 가루가 나왔는데, 그건 쥐꼬리만큼 슬쩍할 엄두도 못 냈다.

“다들 잘 들어라. 우리는 이제 이 귀한 분을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출발 전, 곽만용은 포쾌들을 모아놓고 선언했다.

“두칠이, 너는 먼저 가서 객잔에 말이랑 수레를 찜해 놔라.”

“몇 대나 할깝쇼?”

“두 대는 있어야지. 저놈들 실을 거 하나, 저놈들 장물 실을 거 하나.”

장물!

그 얘기가 나오자 포쾌들이 다들 비죽비죽 웃었다.

귀인들이 먼저 훑고 난 다음의 콩고물이긴 했지만 포쾌 수입엔 짭짤한 것들을 제법 주머니에 챙긴 덕이다.

때문에 금태양의 뒤치다꺼리나 한다며 투덜거리던 놈들도 불평이 쏙 들어갔다.

남은 장물은 값비싸지만 슬쩍할 수는 없어서 그대로 지현에게 갖다줘야 한다.

그래도 그 공은 톡톡히 인정받을 터.

“그리고 귀인들을 모실 마차는 반드시 준비하고! 수레는 없어도 돼, 저놈들이야 여차하면 걸어가라지.”

그 덕분에 금태양 일행은 산을 내려오자마자 편하게 마차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민간인이라면 통행료를 내야 하는 공도도 포쾌들을 앞세워 편하게 지나갔다.

객잔에서의 숙박도 포쾌들이 알아서 책임졌다.

곽만용은 공무수행 중임을 내세우며 객잔에서 제일 좋은 방과 음식을 금태양 일행에게 제공했다.

포쾌가 별 대단찮은 직위기는 해도 이런 시골에서 주름 잡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지현도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비록 두목 무패도는 못 잡았지만, 죽으라고 보낸 놈들이 나머지 무적단 조무래기를 전부 잡아온 데다 놈들의 장물까지 탈탈 털어왔다?

‘이 정도면 최소 상여금, 운 좋으면 호봉도 오르렷다!’

그러니 선두에서 호령을 하는 곽만용의 목소리에도 힘이 빡 들어갔다.

“물럿거라! 죄인의 호송이다!”

“물럿거라! 귀인의 행차시다!”

그렇게 위세도 당당하게, 곽만용과 포쾌들, 그리고 그들이 정중히 모셔온 금태양 일행이 현청에 도착했다.

“흠, 그래? 이놈들이 무적단 잔챙이들이고, 저 수레가 놈들의 장물이라?”

“예, 지현 어르신. 그리고 여기 이분들은 큰 도움을 주신 태양의원의 금 의원님, 이쪽은 어르신도 아시는 태청장원의 창천―”

“……뭬야?”

그 이름을 듣자마자 지현이 얼굴을 팍 구겼다.

“지난번에 그놈들? 좌수검?”

“아, 예. 그분들이 맞기는 한데―”

곽만용은 그제야 뭔가 아주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아주 제 발로 걸어들 왔군. 싹 다 가둬버려라!”

* * *

[어쩐지. 여기까지 너무 쉽게 온다 했어요.]

지현의 한 마디에 주변은 아주 난리였다.

포쾌들은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지, 창천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 것처럼 살기를 내뿜어내지, 신생은 겁먹어서 내 옷자락만 꽉 붙들고 있지.

[빠져나가려면 지금이다.]

포승을 들고 다가오는 포쾌들을 보며 창천이 전음을 날렸다.

여기서 도망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지현에게 찍히는 순간 현상수배지가 뿌려질 게 분명하다.

아직까진 태양의원의 위세가 작은 마을에 머물러 있는 상황.

이 고을을 지배하는 관리와 척을 져서 좋을 건 없다.

[셋을 세고 칼을 뽑겠다. 너희 둘은 문을 향해 달려라. 하나―, 둘―]

“아니, 가만히 있어.”

나는 녀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갑시다. 도망치지 않을 테니 포승은 참아주세요.”

곽만용과 포쾌들은 굉장히 미안해하며 우리를 옥에 가두었다.

“그래도 여기가 현청의 뇌옥 중에선 제일 깨끗한 곳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래도 지현께서 화가 좀 과하신 듯한데.”

“그게…… 아무래도 금 의원님이 의원이라 더 그러시는 거 같습니다.”

“의원이라? 설마, 장 의원님 때문에?”

[장 의원이 여기서 갑자기 왜 나와요?]

“예. 고을에서 유명한 무당의라 해서 좋은 대접을 하고 초빙했는데 패물을 들고 날랐으니까 말입니다.”

비이성적인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다.

원래 사람이란 게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과 사이가 나빠지면 그 특징을 가진 사람은 첫인상부터 나빠지지 않던가?

거기에 나는 좌수검의 일도 있으니 반감이 두 배로 늘어났겠지.

“근데 의원을 초빙했다면, 지현께서 어디가 많이 아프신가 봐요?”

[몸이 아프면 사람은 더 예민해지죠. 지현이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가네요.]

하지만 그걸 내가 낫게 한다면 따블로 늘어난 반감을 따따블의 호감으로 바꿀 수 있겠지.

“으음, 그게 말입니다. 어딘가 아프신 거 같긴 한데 어디가 아프신 지는 통…….”

“우리도 궁금한데 다들 입단속을 어마어마하게 해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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