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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6화 (26/350)

26화

「 네가 그렇게 집을 나가 작은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에, 네 편을 드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 특히 원로분들은,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생각난다는 얘기도 하시더라고. 그런 의견들이 커지면 큰 오라버니도 무시하지 못하게 될 거야. 」

[대대로 부자였던 게 아니군요?]

조용히 있던 홍령이 끼어들었다.

보통 금가장 정도의 부자라면 대대로 부를 축적해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알기론 조부모 대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행상인이었다고 했다.

그랬던 것을 아버지가 수완을 발휘해 금왕이라 불릴 만큼의 부와 명성을 이룩했다고.

「 아버지의 1주기 제사 때는 함께 제를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 그러지 못해도 좋으니 부디 무리하지 말고 건강하렴. 」

나를 사랑하는 누님의 애정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맺음말이었다.

누님에게는 내가 몸을 회복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야겠다.

내가 정상인들처럼 팔을 쓸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면 정말 뛸 듯이 기뻐하겠지?

[정말이지, 성공하는 수밖에 없겠는데요?]

그렇다.

무림이 일신의 강함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면, 금가장은 성공이, 돈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곳.

내가 금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태양의원의 성공으로서 증명해 보인다면, 큰 형님도 내가 1주기 제사에 참석하는 것을 막지 못하리라.

* * *

금왕표국이 실어나른 막대한 표물에 대한 소문은 마을 주민들과 태양의원의 환자들에게도 전해졌다.

대부분은 그 소식을 반겼다.

주민들은 태양의원이 커지면서 마을도 활기를 띨 것을 기대했고 환자들은 그 많은 표물이 대부분 고급 약재라는 사실에 기뻐했다.

한편.

전혀

절대.

결단코! 그 소식을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태양의원의 어둑한 곳을 골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움직이고 있는 이가 그랬다.

“젠장, 젠장, 젠장! 그 가면 쓴 의원이 하필이면 금가장의 그 막내라니!”

의맹이 금지한 수술을 행했다는 사실을 빌미로 금태양을 협박해 큰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이.

흔히 호사가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곤 하는 왕 씨는 오만상을 쓴 채로 태양의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또한 입담으로 밥이며 술을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다 보니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금가장의 막내에 대한 소문은 알고 있었다.

그자를 찾으면 천금을 준다던 금왕전장의 벽보가 수거됐다느니, 금가장 내에선 그 이름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느니 하는 말 때문에 모두가 불미스럽게 죽었거니 하고 있었는데.

정작 이런 곳에서 의원을 하고 있었다니!

자신이 의맹에 고발을 하겠다는 말에도 태평하게 치료를 하겠다고 나설 때부터 알아봐야 했다.

이미 뒤에 금가장이라는 뒷배가 있는데 의맹의 제재 따위가 뭐 두렵겠는가?

오히려 그런 협박을 했다는 사실이 금가장의 귀에 들어가면 왕 씨는 쥐도 새도 모른 채 사라질 것이다.

왕 씨의 호사가 친구들도 그 일에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그 누가 금가장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겠는가?

시골 구석탱이의 시답잖은 의원 하나를 상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빨리 도망치기만 하면 돼! 그 미친 개한테만 들키지 않으면……!’

창천이 태양의원에서 잡일과 식사를 준비할 사람을 구하러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모르는 왕 씨는 소리를 낼까 조심조심 움직였다.

‘아이구, 무릎이야! 침을 맞고 난 후론 잠잠하더니 눈치 없이 이럴 때 아프구나!’

그러고 보면 금가장의 막내라는 그 의원의 솜씨가 신통하기는 했다. 어딜 가도 도통 낫질 않던 무릎이 치료를 받은 이후에는 없었던 것처럼 말짱했으니까. 되도 않는 겁박을 한 것만 아니었다면 며칠 더 머무르면서 치료를 받았겠지만-

‘좋아, 저 모퉁이만 돌면-!’

순간 지독한 통증이 왕 씨를 덮쳤다.

“흐억, 컥! 으억!”

무릎의 통증이 아니었다. 배였다. 소리 없이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왕 씨는 비명을 질렀다. 고통으로 눈앞이 새하얘졌다.

“거기 누구세요?”

밖에서 들린 비명소리에 신생이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왕 씨는 신생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사, 살려, 사람 살! 으억!”

“아이고, 어디가 아프세요? 의원님을 부르기엔 시간이-”

“빨리 불러! 아니, 내가! 억! 갈 테니까!”

이미 도망친다는 생각은 왕 씨의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지금 그는 당장 이 고통을 없애줄 의원을 만나야 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천금을 줄 수도 있었다.

* * *

“배가 아프다 했다고?”

“네. 구역질도 계속 하시고요. 거동도 힘들어하셔서 겨우 모셔왔지요.”

무릎이 아프다던 사람이 갑자기 배라고?

염증이 심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 염증은 전신에 퍼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상태가 심각해지다니.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요. 무릎이 아프다고만 해서 장옹(腸癰)이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이렇게 될 지경까지 배가 아프지 않았다니, 이런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이미 곪아 터진 것 같아요.]

홍령마저도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상태가 시시각각 안 좋아질 거예요. 무공으로 비유하자면 주화입마와 비슷한 거예요. 터지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관리했어야 하는데……]

그녀가 말을 흐릴 때는 한 가지 사실만을 의미한다.

이 사람은 죽는다.

더는 손 쓸 도리도 없이.

“의원 선생, 아악,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뇨?”

“잠깐만요, 일단 장옹이 곪아 터진 것 같은데 좀 더 봐야―”

[해줄 수 있는 건 고통을 덜어주는 것밖에 없어요. 진통 침을 놓을게요.]

……잠깐만.

곪아 터졌다고?

침통으로 향하던 손이 멈췄다.

[왜 그래요?]

기다려 봐.

홍령이 뻗으려던 반대쪽으로 손을 뻗는다.

내 손이 왕 씨의 배꼽 주변을 살짝 눌렀다.

“아악!”

“아프세요?”

“아니, 아픈 곳을 눌러놓고, 악!”

이 위치는 분명 그거다.

나는 내 배꼽 주변을 매만졌다.

이 몸에는 흉터가 없지만, 전생에는 이 자리에 엄지 손톱만 한 흉터가 있었다.

복강경 수술의 흉터.

그때 내 병명은 충수염.

이른바 맹장 터졌다고 할 때의 그거다.

나는 다행히 터지기 직전에 검사를 받고 수술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터진 채로 수술을 안 하고 방치한다면……

“이대로 두면 죽을 겁니다.”

터진 농과 고름이 복강 내에 방치된다.

세균이 넘치는 곳에 상처를 담가놓고 방치하는 것과 비슷하다.

복막염으로 번질 수 있다고도 했다.

현대에서도 방치할 경우 사망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런 환경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수술해야 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수술을 한다구요? 터진 장옹을요?]

이 시대에는 맹장을 수술해 떼어낸다는 개념이 없다.

홍령은 잘린 팔도 붙일 수 있는 뛰어난 의원이지만, 없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

하지만 내겐, 상식 수준일지라도 그 ‘개념’이 있다.

터진 맹장은 ‘수술할 수 있다’는 개념.

그것은 0과 1의 차이만큼 크다.

“그래, 으악! 수술이든 뭐든, 제발 날 좀 살려줘, 시키는 건 뭐든 할게! 흐윽!”

눈앞에 있는 환자가 나를 겁박했던 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진상이 아니라 이 통증이 사라지기를 죽도록 바라고 있는 환자니까.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잘 알았다.

[여기를 갈라서 장과 장 사이를 꽉 묶고, 그 자리를 다른 다음에 단면을 지지고, 다시 봉합하고?]

홍령은 긴장한 기색이었다.

잘려나간 팔을 붙이는 수술도 해놓고? 그거에 비하면 훨씬 간단하잖아.

[그거야 여긴 중원무림이니까요! 잘린 신체 부위를 붙일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고요!]

뭐 그야 그렇다 치고, 어쨌든 홍령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내 손에 깃든 그녀의 신비한 의술을 믿었다.

“좋아, 신생! 수술 준비! 장 의원님 깨우고 소독 준비해!”

“네!”

* * *

“또 수술이라니. 떼잉, 이러다 한 번은 큰 사달이 나지.”

장 의원은 투덜거리면서도 수술 준비를 도왔다. 끓는 물과 불로 도구와 실, 천을 소독하고 독한 술을 준비하는 등 방식은 같았지만 이번에는 더욱 꼼꼼히 준비했다.

“창천은?”

“그 놈팡이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방해금지라 써 붙였으니 기대 말아라. 보아하니 운기조식이라도 하는 모양이지.”

뭐라고?

[운기조식을 하는 무인을 건드리면 큰일 나요. 창천 없이 진행해야겠어요.]

큰일이다.

점혈로 지혈을 돕는 창천이 없다면 수술의 성공률은 대폭 떨어질 게 분명했다.

괜히 한다고 했나?

불가능에 가까운 수술이다.

수술로 인해 오히려 사람이 죽는 일은 현대에도 허다한데, 성공률이 낮은 수술을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좌수검의 수술 이후 사람들의 기대치가 급상승했다.

여기서 수술에 실패해 사람이 죽어 나간다면 그 인기와 관심은 한 순간에 사그라질 것이다.

욕도 먹고, 왕 씨가 말했던 친구들이 온갖 폄하와 험담을 늘어놓아 더 이상 의원 일을 못 할 수도 있다.

어차피 진상이다. 그것도 왕 진상.

분명 누군가에게도 큰 해를 끼쳤던 적이 있겠지.

죽게 내버려 둬도 괜찮지 않나?

……그래도 될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나?

적어도 내가 할 얘기는 아냐.

나는 지금 의원이다.

그러니까, 눈앞의 환자에겐 최선을 다한다.

[시작할게요.]

붉은 빛으로 번뜩이는 태양보도가 환자의 배를 갈랐다.

환자는 이미 고통으로 정신을 잃은 데다 수술 부위에는 마취 침을 놓았기에 비명 소리는 없었다.

“피가 너무 많이 나오는데. 거 보이긴 하나?”

쏟아지는 피를 닦아내던 장 의원이 투덜거렸다.

맞다. 출혈이 심하다.

보이는 건 고사하고 과다출혈로 환자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수혈 따위는 더더욱 불가능하니까.

[근육이라면 인두로 살짝 지지기도 하는데요, 이건 내장이라 그렇게 해도 될지…….]

피에 절은 내장을 뒤집는 내 손이 우뚝 멈췄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점혈을요?]

이렇다 할 내공 없이도, 신생에게 침을 놓아서 일시적으로 점혈을 한 적 있는 홍령이다.

그리고 지금 내 양 팔에는 (단전이라는 그 신기한 것에 비할 바는 안되는 모양이지만) 경혈이라는 작은 웅덩이에 약간의 내공이 고여 있다.

두툼한 나무 하나를 폭발시킬 수 있다면, 사람의 혈을 눌러 지혈을 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아?

[피부 표면에서 혈을 짚어본 적은 있지만 신체 내부에서 직접 혈을 잡아보는 건 처음이라…….]

그래도 해보자.

달리 방법이 없잖아.

[좋아요,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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