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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4화 (24/350)

24화

“아, 혹시 그거 때문에 그러세요?”

“그거?”

“환자들이 다 너를 찾더군.”

“쯧, 아픈 놈들이 침 맞고 나으면 그만이지. 꼭 네놈, 그 신비한 가면을 쓴 신비의원은 어딨냐고들 난리지 않냐! 내가 침을 놔주면 다 낫고도 괜히 찜찜한 표정이나 짓고. 그래서 나도 그놈의 가면 한 번 써볼까 했다!”

그 정도라고?

하긴 생각해보면 그랬다.

의원이 둘 뿐인데 한 명은 식사 시간이 다 되도록 환자를 보느라 바쁘고, 다른 한 사람은 식사 준비를 할 여유가 있다.

[사실 난 저 돌팔이가 식사 준비를 하느라고 우리가 그렇게 바쁜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고작 저 정도 투덜거리고 말았던 게 설마, 진짜 밥 할 시간이 남을 정도로 한가해서였다니.

“음, 제 맞춤이라 가면은 드릴 수 없고요.”

“떼잉, 누가 진짜로 갖고 싶대? 그냥 해 본 소리야, 해 본 소리!”

풉, 결국 신생의 웃음보가 터졌다.

창천도 비웃음인지 실소인지 모를 소리를 흘렸다.

“아니, 이것들이! 기껏 밥을 열심히 해놨더니 밥상머리에서 사람을 비웃어! 떼잉!”

장 의원도 쪽팔린 건지 부끄러운 건지 한 소리를 하고는 후루룩 쩝쩝 국수를 들이켰다.

아무도 내 못난 얼굴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즐거운 식사시간이었다.

* * *

“다음 환자분!”

식사가 끝나고 오후 진료가 시작됐다.

바쁜 와중에도 환자 하나하나를 성심성의껏 보고 있는데, 다음 환자는 안 들어오고 갑자기 신생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저기, 의장님.”

“응?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아뇨, 그건 아닌데요. 그, 다음 환자분이……”

“다음 환자가 왜?”

“제가 저 사람을 어디서 본 거 같아서요.”

“아는 사람? 미안하지만 아는 사람이라고 먼저 봐드릴 수는 없어.”

“그런 게 아니고…….”

신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자꾸 주저했다.

평소에도 자기 주장을 쉽게 못 하는 편이긴 했지만 같이 생활하면서 많이 나아졌는데……

“아이고! 아파 죽겠네! 아직 멀었어?”

[환자가 밖에 와 있어요. 보호자들이 부축까지 하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많이 아파 보이네요. 어서 들여요!]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손짓으로 신생을 내보내고 환자를 들이려는데.

“그, 조심하세요……”

신생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종종걸음으로 물러났다.

조심하라고?

“아이고, 의원님! 나 좀 살려주쇼!”

신생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상대는 그냥 평범한 환자였다.

[입이 좀 많이 툭 튀어나오긴 하셨네요.]

만약 촉새처럼 튀어나온 주둥이로 사람을 해할 수 있다면 충분히 위험할 만한 관상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아무리 입이 튀어나온 사람이라도 그 입으로 새처럼 타인을 공격하진 않는다.

[옛날에 비슷한 사람을 본 게 아닐까요? 거지 생활을 하다 보면 험하게 대하는 사람도 많았을 테니……,]

가여운 녀석.

거지 생활을 하던 거에 비해선 애가 똘똘하고 빠릿빠릿하다.

저번에 보니 글도 읽을 줄 아는 데 비밀로 하는 거 같고.

뭔가 사정이 있음 직도 한데 아직 말을 하진 않는다.

“자,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맥을 짚기 전 우선 문진을 한다.

문진이라는 건 환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통증을 느끼는지 구두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머리가 자꾸 찌르는 듯이 아프고, 영 입맛도 없고. 아이고, 아악!”

환자는 문진을 하다 돌연 머리를 부여잡고 통증을 호소했다.

급하게 맥을 짚고 침을 몇 방 놔주자 통증이 가셨는지 겨우 고개를 들었다.

“좀 어떠세요?”

“아픈 건 가셨는데. 계속 이렇게 아프니 죽을 맛이야. 아악, 또! 아악!”

[또요? 급해서 치료를 한 게 아니라 잠시 마취 침을 놓았는데요?]

그래도 아프다고 하니 어쩌나. 홍령은 갸웃하면서도 다시 한 번 심혈을 기울여 침을 놓았다.

그러자 환자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이렇게 아프니 살 수가 없어. 봤지? 수시로 아프다니까? 자다가도 벌떡벌떡 비명을 꽥 지르면서 일어난다고.”

“천천히 맥을 좀 볼게요.”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환자의 눈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마취 침을 놓아도 듣지 않는 환자라니.

그 고통을 잘 알아서 동병상련의 마음이 절로 일었다.

홍령이 내 손으로 진맥을 보는 동안 나는 주로 환자의 얼굴을 살핀다.

내가 의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21세기의 기초 상식은 갖추고 있다.

게다가 전생에서도 환자였던 탓에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알아본 것들이 많다.

여기서야 정보의 제약이 크지만 전생에서는 인터넷이 있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염증이 심하네?’

입술에는 수포가 터진 자국이 있고 말을 할 때면 혓바늘이 돋아난 혀가 눈에 들어왔다.

입 안에 알O칠 을 발라야 하는 수준의 구내염도 있지 않을까?

“머리가 아프니 여기저기가 다 아파. 배탈도 자주 나고, 속도 안 좋고, 여기 무릎도 자주 아프다니까?”

다 염증이 심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이다.

[어혈이 심한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긴 한데, 이럴 땐 기경팔맥을 침으로 잡는 것보다 약을 처방하는 게 더 잘 들어요.]

“바쁘지 않으면 며칠 입원하면서 약을 복용하시고 경과를 지켜보시면 될 거 같네요.”

“아니, 이 사람아! 내가 이렇게 죽도록 아프다니까, 아악!”

……이쯤 되니까 좀 수상한데?

홍령이 최대 강도의 마취 침을 놓았는데도 아프다고 걸핏하면 널브러지다니.

나도 죽도록 아플 때 그 침을 맞아봤지만 정말 칼로 머리를 쪼개는 거 같던 아픔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지는 경험이었단 말이지.

신생이 경고한 바도 있고……

홍령도 뭔가 미심쩍은지 침을 놓지 않고 가만히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그러자 머리가 아프다며 바닥을 청소하던(?) 환자는 이내 슬그머니 머리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지 말고, 내가 소문을 하나 들었거든?”

“소문이요?”

“당신, 화씨의문의 후예라며? 그래서 좌수검의 팔을 거침없이 붙였다던데.”

“예, 그렇습니다.”

딱히 비밀로 할 일도 아니긴 하다.

오히려 허풍처럼 느껴질 말이 아닌가?

이렇게 외진 곳에서 내가 화타의 후예요 하면 나부터가 안 믿을 거 같은데.

오히려 그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주다니.

“그러면 내 머리를 좀 수술해줄 수 있겠어?”

“예?”

[네?]

“아 왜, 화타라면 조맹덕의 머리를 쪼개려다 죽을 뻔했다고 유명하잖아. 내가 이 머리만 어떻게 고치면 다 나을 거 같단 말이야.”

팔 수술까진 그렇다 쳤다.

그런데 머리를?

뇌를?

이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안 됩니다. 환자분은 머리를 수술할 정도의 병증은 아니에요. 여기서 약 복용하면서 며칠만 입원하시면―”

“못 하시겠다?”

“그렇습니다.”

왜 홍령이 조용하지?

된다, 안 된다 정도는 말할 줄 알았는데.

가끔 이럴 때가 있기는 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 때문에 홍령이 생전의 기억이 떠오를 때.

저번에 좌수검이 다녀간 이후에도 며칠을 그랬지.

환자를 앞에 두고도 한참 말이 없어서 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어쨌든 지금은 홍령이 된다고 해도 내가 안 된다.

좌수검은 무림 고수라 회복력이 남다르고 홍령도 해본 경험이 많아 성공을 확신했기에 한 거지.

뇌수술이라니, 그걸 부담스러워서 어떻게 해?

“그러면 내가 어디 가서 떠들고 다녀도 문제는 없겠네?”

“그게 무슨?”

“젊은 청년이 얘기가 안 통하네. 내가 어디 가서 이 동네에 사람 몸에 칼을 대는 의원이 있다고 소문을 내길 바라는 거냐고 묻는 거야.”

지금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수술을 하는 게 뭐 문제라도?

[맞아요. 그런 말을 했었어요. 기억나요? 좌수검 말이에요.]

좌수검?

얼마 지나지 않은 기억을 돌이켜보자 생각이 났다.

맞아. 의맹이 수술을 금했다고 했었어.

장 의원도 그걸 가지고 난리 난리를 쳤었지.

그 직후로 너무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더군다나 그 화타의 기예를 익혔다? 그게 진짜든 아니든 의맹에서 알게 되면 경을 치를 걸. 이런 시골 동네에서는 그런 얘긴 잘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호사가는 아니거든.”

“그러니까, 당신의 머리를 수술하지 않으면 의맹에 가서 고발을 하겠다 이겁니까?”

조심하라던 신생의 말이 떠올랐다.

신생은 분명 이자가 이런 식으로 남을 겁박하거나 사기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것이다.

호사가(好事家).

금가장에서도 들은 적 있다.

보통 그 이름은 여기저기 남의 소문을 듣고 떠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컫지만, 사실 그러한 일은 딱히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다.

돈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본업이 있거나 해야 할 텐데, 이 호사가라는 한량들의 다수는 그런 성실한 업에 종사해 벌어먹을 생각을 하는 대신 자신들의 주둥이로 편하게 남을 등쳐먹을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말발이 좋고 온갖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알고 있으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헛소문을 퍼트려 멀쩡한 상인을 망하게 하는 경우도 다수.

“딱히 수술해주진 않아도 돼. 어차피 못 하잖아? 됐고, 이만큼만 찔러 넣어줘.”

촉새가 한 손을 쫙 펴 보였다.

그야말로 진상 중의 진상. 왕진상이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창천과 신생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날 불렀다 들었는데.”

“제, 제가 모셔왔……”

아하.

신생은 이 촉새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차마 말은 못 하고, 이런 상황이 생길까 봐 가서 창천을 데려온 것.

“흥, 나름 머리를 쓰는 모양인데. 나는 그저 그런 자들과는 달라. 살인멸구를 할 게 아니라면 이 입은 얻어맞을수록 터질걸?”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응?

잠깐만, 지금 이 목소린 홍령이 아닌데?

설마 창천의 전음?

[네놈 치료의 성과 중 하나니 기뻐해도 좋다. 그 대가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셋 다 깨끗하게 처리해주지.]

자식, 내가 밥값 운운한 걸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나?

창천이 익힌 내공심법을 본질적으로 뜯어 고치는 일까진 아직 무리지만, 거듭된 치료로 창천도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젊은 영재로 불렸던 시절의 실력까지는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곤 해도 밥값으로 살인멸구라니.

[절대 안 돼욧!!!]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홍령이 내 머리를 쥐어뜯을 기세로 외쳤다.

[의원에서 사람이 죽어나갈 수는 있지만, 사람을 죽인다고요? 말도 안 돼요! 부정 탄다구욧!]

전생에 비하면 무림이 떡하니 있는 이곳은 살인이나 싸움이 훨씬 빈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살인이라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여기서도 살인은 중죄요, 걸리면 재판에 들어가고 벌을 받으며 사람들로부터 지탄당한다.

들키지 않는다고 해도 홍령의 말처럼 찝찝하기 짝이 없다.

“어찌 할 건가? 이 청년이 이제 날 묻으러 갈 차례인가? 하하, 내가 그 정도도 생각 안 하고 왔을 거 같아?”

“친구분들에게 언제까지 돌아간다 하셨습니까?”

“이번엔 눈치가 빠르네. 한 달이야.”

그리고 저들이 그때까지 멀쩡하게, 돈을 들고 돌아가지 않으면 태양의원에 대한 나쁜 소문이 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군요. 한 달이라.”

오히려 상대가 보통 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편해졌다.

“치료에 전념할 시간이 보름은 있는 거니까요. 신생, 입원실에 이분 자리 마련해드려요.”

“예? 의원 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다? 흐음, 우리야 나쁠 거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금액은 비싸진다는 건 명심하라구. 아이구, 무릎이야.”

이제는 꾀병인지 아닌지 모를 추임새까지 넣으며 촉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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