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맥이 잡히는 걸 보니 며칠이면 무리 없이 팔을 쓸 수 있을 거고요. 물론 전처럼 검을 쓰려면 한창을 요양해야겠지만.”
“……!”
“팔을 아주 못 쓰게 만들어둔 것도 아니고. 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감사를 받으면 몰라, 이런 대접을 받을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아까의 살기에 오장육부가 덜덜 떨렸지만 또박또박 할 말을 했다.
상대는 내 태도가 되레 당황스러운지 벙쪘다가, 뭔가를 고민하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터는 등 별 요상한 짓을 다 했다.
“……과연, 손끝에 감각이 있군. 무인으로서 목숨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그럼, 이래야죠!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요!]
“아직 이만한 실력의 의원이 남아 있었을 줄은…… 의맹이 수술을 금한 이후로 몸에 칼을 대는 자들은 모두 사람을 속이는 사기꾼만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그대의 실력을 오해했다. 사죄하마.”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한다니까요! 고개 드세요!”
“아니, 이 정도 운신할 수 있으면 되었다. 떠나야겠군.”
뭐 이렇게 성격이 급해?
무림인들을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 재단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팔이 잘려나간 걸 제외하고도 상처가 많았고 몸은 지독히 탈력해 있었다.
태양의원에 도착했을 무렵엔 정신력만으로 움직이던 수준.
그런데 벌써 거동이 가능하다고?
“그 전에 은인의 존함도 묻지 않았군.”
“제 이름은 금태양입니다. 환자분은요?”
“본인은 좌수검이다. 이름을 버리고 별호로 불린 지 오래되었지.”
왼손으로 검을 쓰는 외팔이 무인이라 좌수검(左手劍). 참 심플한 이름이네.
“이보게, 이보게! 좀 나와보게나!”
그때 장 의원이 밖에서 호들갑을 떨며 나를 불렀다. 또 무슨 일이람?
[빨리 나가봐요. 심각한 문제인 거 같아요.]
어라? 홍령이?
장 의원을 싫어하는 홍령이 이러는 거 보면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인데.
“잠깐 다녀올 테니 더 누워 계세요. 갈 때 가시더라도 마지막으로 한번 살펴드릴게요.”
좌수검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대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뭐야, 환자가 잔뜩 몰려오기라도 한 건가?
“한 발짝이라도 들어오면 검을 뽑겠다.”
심지어 창천이 대문 앞에 버티고 서서 으름장을 놓기까지!
심상찮은 상황임은 틀림없다.
“어험, 우리가 태청장원을 어지럽히려는 의도는 아뇨. 그저 이 안에 두 팔이 잘려나간 흉수가 있는지 묻고자 함이오.”
“그런 자는 없다.”
“아니, 그러지 말고―”
좌수검을 쫓아온 자들인가?
하지만 영 그래 보이는 차림들은 아니었다.
상당한 실력의 고수인 좌수검을 쫓을 자들이라면 그들 또한 맞먹는 실력의 무림고수들일 텐데, 눈앞에 있는 건……
[포쾌(捕快)들이네요.]
무림인은커녕 관부의 나졸 같은 존재인 포쾌 몇 명이 와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정확하게 좌수검을 찾고 있다는 사실.
“무슨 일로 그러세요?”
“댁은 뉘쇼?”
“태양의원의 주인 금태양이라고 합니다.”
“아! 태청장원의 새로 주인 되셨다는! 아이고, 인사가 늦었수다. 창천 이 치하고는 영 대화라는 게 통하질 않아서.”
“이야기는 들었어요. 팔이 없는 자를 찾고 계시다고요. 무슨 연유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럴 때는 귀한 집 도련님 태가 나네요? 신기해라.]
귀한 집 도련님 태는 무슨. 전생에서 사회생활 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었다고.
“흉악한 짓을 저지르고 도망친 자가 이 근방에서 목격됐다는 제보가 있어서 살피러 왔소이다. 들어가 보아도 되겠소?”
“흉악한 짓이라면 무슨 흉악한 짓 말씀이십니까?”
“어, 그건―”
“무엇을 훔쳤습니까? 아니면 남을 상하게 했습니까? 그도 아니면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 그렇게까진 잘 모르오! 우리 같은 아랫것이 뭘 알겠소?”
“허면 아랫것들에게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죄답지 않은 일을 저질러 쫓기고 있다는 뜻이군요?”
포쾌들은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반응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좌수검은 잡혀갈 만큼의 큰 죄를 저질러 쫓기는 것은 아니다.
죄인이 아니라면, 그는 내 환자다.
“죄송하지만, 지금 이곳에 팔이 없는 환자는 없습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팔을 붙였으니까.
“그리고 설사 있다고 해도, 환자를 내어드릴 순 없습니다. 들어와 수색하는 것도 허락지 않겠습니다.”
“어허! 내 분명 팔을 잘린 사내가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말을 똑똑히 들었건만! 지현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거요!”
“혹 그가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면, 그가 치료를 마친 후 나갈 때 체포하세요. 그때는 아무 상관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태양의원의 치료를 받는 한, 우리는 환자를 지킬 겁니다.”
내 말을 뒷받침하듯 창천이 나와 포쾌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을 철컥, 하고 살짝 뽑아드는 소리에 포쾌들은 움찔했지만 물러나진 않았다.
“에잇, 어차피 한 번 칼 뽑으면 피분수 뿜으며 쓰러지는 놈이다! 겁먹지 말고 들어가!”
포두로 보이는 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창천, 상처 입히면 안 돼!”
“알았다.”
내 말에 창천은 반쯤 뽑았던 검을 철컥, 검집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검을 집어넣었다고 해서 창천이 호라호락한 존재란 뜻은 아니었다.
그의 팔다리가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가며 포쾌들이 휘두르는 포승줄과 방망이를 쳐냈다.
특히 발차기, 그 각법은 어찌나 위력이 강한지 단단해 보이는 방망이들이 뚝뚝 부러져 나갔다.
부딪치는 족족 나무가 부러지는 공격에 얻어맞으니 갑옷 하나 두르지 않은 포쾌들이 어떻게 되겠는가?
“쿨럭!”
“으억, 사람 살려!”
시원시원한 체술에 얻어맞은 포쾌들이 태청장원 대문 밖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쯤이면 됐어!”
“이놈까지만 처리하지.”
창천은 뒤에서 뒷짐을 지고 버티고 있던 포두에게까지 달려들었다.
그는 다른 포쾌들과 달리 그럴싸한 도(刀)를 들고 있었는데, 창천이 접근하자 다급히 도를 뽑아들고 일도를 휘둘렀다.
[잘 봐둬요. 오금희를 익히는 데 좋은 참고가 될 거예요.]
홍령의 말이 아니더라도 내 눈은 창천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을 따라가기 바빴다.
녀석은 갈대처럼 이리 휘고 저리 휘며 상대의 공격을 피했고 절묘하게 자세를 비틀며 결정타를 먹였다.
표두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날붙이를 들고 있건 말건.
흐르는 바람처럼 표두가 휘두른 도의 궤적에서 벗어난 직후, 춤을 추듯 몸을 돌려 그대로 일 권!
“크억!”
표두 또한 켜켜이 쌓인 포쾌 더미에 한 겹 쌓이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엄청난 정확성, 그리고 힘 조절이 아니고서야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오금희는 기본 중 기본이라 창천이 펼치는 권법만큼은 어려울 거예요.]
그래도 비슷하게는 따라갈 수 있다 이거지?
전에는 꿈에도 바라본 적 없는 무림인의 경지.
조금이나마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욕심이 났다.
어쩌면 그게 내 괴질을 회복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네놈 말대로, 상처는 안 냈다.”
창천은 손을 툭툭 털며 내 뒤로 물러났다.
틱틱거리면서도 말은 참 잘 듣는단 말이지.
[원래 개는 밥 주는 사람은 잘 따르니까요.]
밥 주다 뿐인가, 아픈 곳도 치료해준다. 개가 아니라 사람도 이 정도면 말을 잘 들을 만하지.
“어디 아픈 덴 없고?”
“확실히, 나쁘진 않군.”
입가에 살짝 걸치는 미소를 보니 전에 비해서 내공의 흐름이 안정적인 건 사실인 모양.
[조금 걱정했는데, 치료의 방향이 틀리지 않은 거 같아 다행이네요.]
이쪽은 일단 안심이고.
“자아, 포쾌 님들. 괜찮으신가요?”
“지금 이게 괜찮아 보이, 윽! 무슨 짓이냐!”
“촉진 중이니까 가만히 계세요. 상처 입히지 말라고 했지만 내상을 입었을 수도 있어요.”
[가볍게 침을 몇 방 놓으면 되겠네요. 심한 사람은 없어요.]
홍령의 말에 따라 나는 포쾌 더미들을 해체해가며 하나둘 촉진을 하고 맥을 짚은 후 침으로 치료를 해주었다.
그들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하긴, 누가 봐도 병 주고 약 주는 상황이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여긴 의원입니다. 환자로서의 방문은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크흠, 그럼 환자로서는 저 안에 들어가도 되는 건가?”
표두가 은근슬쩍 물었다.
누가 봐도 환자로 들어가 좌수검을 찾아보겠다는 뜻.
[아니, 이 작자가. 기껏 치료까지 해주니까―]
“그런 뜻이 아닐세! 우리도 가서 지현 어르신께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냥 슬쩍 둘러만 보고 가서 양팔이 없는 무인은 없었다고 할 테니까―”
“그럴 필요 없다.”
표두가 직장인의 고충(?)을 내게 토로하는 사이 뒤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팔이 없는 무인은 없으니까.”
웅성거리는 소리.
좌수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 저 사람은 분명!”
“며칠 전에는 저 팔이 잘려 있었는데? 정말 금 의원님이 팔을 붙인 거야?”
“그러고 보니, 외팔에 아주 실력 있는 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말이야―”
“설마 섬서삼검?!”
마지막 말은 의외로 창천의 것이었다.
“뭐야, 좌수검을 알아?”
“이곳은 섬서와 가까우니까. 소문으로만 들어서 알아보지 못했다. 한 팔만 남은 몸으로 펼치는 검식이 압도적으로 강해서 다른 수식어 없이 좌수검이라 불린다 하더군. 먼 옛날 오른팔이 잘리는 일만 없었어도 섬서 일검이라 불렸을 거라 하더군.”
“그 정도야?”
“그래. 더군다나 불의를 눈앞에 두고 넘기지 않아 협객으로 이름이 높다. 관부와 마찰을 겪는 경우도 다반사라지. 포쾌들이 쫓아온 것도 납득이 가는군.”
그렇게 말하는 창천의 눈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반짝반짝거렸다.
묘하게 들뜬 것 같기도 하고, 당장 좌수검에게 가서 사인이라도 받고 싶은 거 같고.
심지어 평소에 비해 말도 많아.
……설마 이 녀석, 강자 오타쿠 같은 건가?
“그리 후하게 평가해주니 고맙군.”
“말도 안 돼, 팔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그래서 쉽게 잡아올 수 있을 거라고……!”
표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비볐다. 하지만 좌수검의 왼 팔이 온전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누가 본좌를 압송하라 했지. 이 고을의 지현인가?”
“그, 그건―”
“그들의 힘이 이런 시골의 관리에게까지 미치다니, 통탄할 일이로다.”
그들?
“그대들은 가서 전해라.”
스릉.
추상같은 좌수검의 목소리와 함께 검이 뽑히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 순간의 섬뜩함이 어느 정도였냐면, 칠판을 맨 손톱으로 부욱 긁는 것과 같은 느낌.
[저 기수식은……?!]
홍령이 좌수검의 자세에 영문 모를 기함을 삼키는 순간.
철컥.
반쯤 뽑혀 나왔던 좌수검의 검이 다시 검집 안에 들어갔다.
“미친……!”
창천이 답지 않게 욕설을 삼켰다.
뭐야.
뭔데?
나도 좀 알자!
[저길 봐요.]
홍령이 가리킨 것은 태청장원의 이름이 새겨진 간판석이었다.
쩌억―
그것이 어느 순간 대각선으로 금이 가더니, 이내 원래부터 두 개였던 것처럼 윗돌이 미끄러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