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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1화 (21/350)

21화

[저, 저 돌팔이가 뭐래요! 환자는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돌봐야 한다고요!]

장 의원의 불만에 홍령도 지지 않고 항변을 해댔지만 그래 봤자 내 머리만 울릴 뿐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적당히 절충할게요.”

[당신, 이러기에요!]

“어휴, 내가 말을 말겠네.”

두 의원이 혀를 찼지만 태양의원이 전문병원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걸 들으려고 장 의원을 고용한 거기도 하고.

“의, 의원님!”

그때 신생이 후다닥 뛰어오며 외쳤다.

“응급환잡니다! 의원님! 빨리요!”

“떼잉! 또 꾀부리는 놈팡이 하나 온 걸 텐데 뭘 저리―”

지난번 내가 세운 기준 때문에 태양의원에는 꾀병 환자가 부쩍 늘었다.

혹시 모르니 맥이라도 한번 짚어보는 홍령에 비하면 장 의원은 가차 없는 편이었다.

자신의 진료 계획을 엉망으로 만든다나 뭐라나.

[아뇨, 이건 진짜예요.]

“피 냄새가 짙다.”

홍령과 창천의 말에 서둘려 달려갔더니 그곳엔,

“꺄악―”

“세상에, 팔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외팔의 검객이 있었다.

아니, 그를 더 이상 ‘외팔’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는 잘려나간 자신의 하나 남은 ‘외팔’을 입에 물고 있었으니까.

“……저래서야, 잘려나간 팔을 붙들 수도 점혈을 할 수도 없었겠군.”

창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뇌까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해질 참상.

그가 입에 물고 있던 자신의 외팔을 바닥에 퉤, 뱉었다.

“여기, 의원이 있다고 들었다. 내 팔을 치료해다오.”

그리고.

쿵―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저 정도 상처와 출혈로 이때까지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것도 대단하지만―

“뭘 보고만 있어! 창천, 어서 점혈! 점혈이 끝나면 이 사람을 방으로 옮기고 물을 끓여줘. 최대한 많이! 신생은 객잔으로 가!”

“알았다.”

“네, 넵!”

[깨끗한 천, 그리고 숯가루도 필요해요. 우리는 팔을 확인해보죠.]

홍령의 지시에 따라 잘려나간 팔을 집어 들었다.

그간 온갖 지독한 상처를 많이 보아왔지만 사람의 잘려나간 사지를 만져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쩐지 구역질이 났지만 꾹 참고 팔의 단면을 물로 씻어냈다.

[아직 다 굳진 않았군요. 생기가 남아있어요. 빨리 처리하면 괜찮을 거예요.]

처리해? 어떻게?

현대에서도 잘린 사지를 붙이는 것은 전문영역에 속한다.

피부와 근육은 물론, 신경과 혈관, 인대를 섬세하게 연결하는 수술이라 평범한 성형외과나 정형외과의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숙련된 수부사지 전문의가 집도해야 하는 수술.

설마 이 중원무림에서 그런 수술을 하겠다고?

“자네, 설마하니 이거 치료할 생각인가?”

장 의원이 마뜩잖은 눈을 하곤 다가왔다.

“아서, 아서! 보아하니 숯가루 뿌려놓고 붙여놔서 달라붙길 기도할 모양인가 본데, 십 중 팔 할은 썩어 나자빠지기 마련이야! 자네가 독에 일가견이 있음은 인정하겠다만 저런 건 화타가 와도 못 고치네!”

[저 돌팔이가 진짜! 정신없는데 어깃장까지 놓고 있어!]

“게다가 무림인 아닌가! 무슨 은원이 있을지 몰라! 저자를 치료하려고 했다간 우리까지 변을 당할 걸세! 우리 계약 내용에 그런 건 없었어! 내 안전을 보장한다고 했잖나!”

왜 뜬금없이 날 걱정해주나 했더니.

장 의원의 걱정도 일리가 있다.

당장 저자의 팔을 잘라먹은 자까지 가지 않더라도, 치료에 실패했을 경우 저 무인이 어떤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날 믿어요. 할 수 있어요.]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 팔, 붙일 겁니다.”

여긴 의원이다.

의원은, 모든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런 막무가내를 봤나! 십 중 팔 할은 썩는다니까!”

“아뇨. 십 할 가능합니다.”

[할 수 있어요. 몇 번이나 해봤으니까.]

“십 할? 실로 한 땀 한 땀 살을 꿰매기라도 하겠다는 얘긴가?”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현대에도 그런 식으로 접합 수술을 한다.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고, 가능한 기술이 있다.

안 할 이유가 없다.

“네, 할 겁니다. 수술.”

“의원님! 말씀하신 술, 헥헥, 받아왔어요!”

신생이 짊어진 술동이를 내려놓았다.

“이과두주 맞죠?”

“네, 헥, 객잔 사모님이 진짜 의원님 부탁 맞냐고, 아이구, 몇 번이나 확인하셨지요. 무지하게 비싼 술이라면서.”

증류를 두 번 거쳐 도수를 최대한 끌어올린 이과두주.

뚜껑을 열어 살짝 맛을 보자, 소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한 알콜 맛이 머리를 찔렀다.

소독약이 없을 땐 임시방편으로 고도수의 술을 쓴다지.

이 정도면 소독용 에탄올에 버금가는 도수가 틀림없다.

“그리고 또 부탁한 건?”

“아, 바느질함! 여기요!”

신생이 건넨 바느질 함 안에는 날아가는 모기도 꿰맬 만큼 가느다란 것부터 쇠가죽도 뚫을 만큼 두꺼운 것까지 종류별 바늘, 그리고 홍령이 특별히 부탁한 작은 집게가 있었다.

“근데 의원님, 그 비단옷은 왜―”

“아, 쓰려고.”

서걱―

단검으로 옷을 서걱 잘라내자 신생이 기겁을 했다.

“아니, 의원님! 그 귀한 것을 왜!”

“봉합사로 쓸 거야. 그리고 몇 벌이나 더 있으니까 걱정 마.”

집을 나올 때 챙겨온 옷 중에 삼 할은 비단옷이었다. 그것도 최상급으로만.

여차하면 팔아서 의원 살림에 보탤 생각이었지만……

[원래는 동물 창자를 처리해서 사용하지만, 그건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비단실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비단옷의 실을 풀어 끓는 물에 한 번 담가 염료도 빼고 소독을 한다.

바늘은 적당한 길이로 잘라 낚싯바늘처럼 만들고 역시나 불에 소독.

단검도 소독하고, 깨끗한 천도 넉넉히 준비.

마지막으로 독한 술에 손을 씻는다.

“나는 준비됐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창천이 돌아왔다.

수술 중 점혈을 부탁했더니 짧게라도 운기조식을 해야겠다며 다녀온 것.

정신을 잃었다고는 해도 무림인을 상대로 점혈을 하는 건 보통 사람을 점혈 하는 것에 비해 배는 힘든 일인 모양이었다.

“다른 환자들은 대충 봐 놨네. 응급환자라도 오지 않는 이상 몇 시진은 괜찮겠지.”

“감사합니다, 장 의원님.”

홍령은 돌팔이라고 마뜩잖아 하지만 역시 대체 인력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래서, 정말 할 건가?”

“네. 장 의원님은 보조를 부탁할게요.”

“아니, 내가 왜―”

“특별 수당 드릴게요.”

“하, 참. ……알았네, 알았어!”

외과수술에 대해서, 나는 현대인의 상식 이상의 지식도 경험도 없다.

그래도 상식 선에서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갖췄다.

“자, 들어가죠.”

방 안에 들어가자 두 팔이 없는 환자가 누워 있었다.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창백한 얼굴.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었겠지요. 그만큼 내공이 뒷받침되는 고수일 거예요.]

잘린 팔을 앞에 둔 상황이라 그런지 홍령도 평소보다 진지했다.

[근육이 많이 오그라들었어요. 단면을 정리하고 꿰맬게요. 상황이 열악하지만, 무림 고수들의 회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요. 독이나 심한 오염만 없다면 할 수 있어요.]

홍령의 단단한 다짐과 함께 두 팔이 가벼워졌다.

누군가 내 팔을 잡고 들어주는 느낌.

홍령이 빙의할 때면 이렇다. 내 팔이지만 내 팔이 아닌 거 같은 느낌.

그러나 느낌만큼은 생생히 남는다.

[시작합니다. 이곳 점혈 풀어달라고 하세요. 근육을 이완시켜야 해요.]

“피가 날 텐데.”

“괜찮아.”

창천이 점혈을 풀자 지혈되어 있던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장 의원님, 피 닦아주세요.”

집게로 작은 바늘을 들고 상처를 꿰맨다.

근육과 근육 사이, 나는 뭔지도 모를 부위들을 뚫을 때마다 손에 피륙을 뚫는 느낌이 전해졌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참을 수 있다.

눈에도 홍령이 깃드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줘요. 잘 안 보여요. 네, 조금만 더……!]

확대경 같은 게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내가 안력을 단련한 무림인도 아니니, 쌩 눈을 가까이 들이대는 수밖에.

“젠장, 거슬려……”

가면이 거슬렸다. 오랜 시간 집중하고 앉아 있다 보니 땀도 흘러내렸다.

장 의원이 불퉁한 표정으로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있었지만 가면을 쓰고 있는 얼굴은 어쩔 수 없다.

찝찝하고, 답답하고, 뭣보다 더 가까이 볼 수가 없었다.

“잠깐만요. 멈췄다 할게요.”

집게와 바늘을 내려놓고 잠시 심호흡했다.

가족 외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벗은 게 언제였더라?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에나 맨얼굴이었을 것이다.

……젠장!

“헉!”

“……그 얼굴은.”

이런 반응일 줄 알았지.

장 의원은 귀신이라도 본 듯 혼비백산.

창천은 상대적으로 침착했지만 일그러진 얼굴은 숨기지 못한다.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아.

하지만 이렇게 해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니까.

“계속 이어갑니다. 장 의원님, 땀 좀 닦아주세요.”

“아, 알았네.”

장 의원이 땀을 닦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창피하다. 알몸으로 저잣거리에 내던져진 기분이다.

[고마워요. 아까보다 훨씬 잘 보여요.]

그 말을 증명하듯 손에 속도가 붙었다.

거미가 집을 짓는 것처럼 단면과 단면 사이가 실로 이어진다.

“실 더 꿰어주세요. 바늘은 술에 소독해주시고.”

“여기 다시 점혈 해 줘.”

“근육 봉합 끝났습니다. 피부 꿰맬게요.”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긴장으로 흐른 땀 때문에 탈수에 걸리겠다 싶을 무렵.

[끝났어요.]

어느새 내 앞에는 무완(無腕)에서 다시 외팔이 된 환자가 누워 있었다.

* * *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외팔의 환자가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의 일이었다.

[흐릿하지만 맥이 잡혀요. 수술 부위가 잘 붙고 있네요.]

그는 눈을 뜨고 한동안 상황을 파악하느라 애를 쓰다가, 이내 자신의 팔 쪽을 돌아보곤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건, 무슨 짓이지?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이라뇨? 치료를 했을 뿐인데요.”

“나는 치료를 하라고 했지 이런 사특한 사술을 쓰라고 한 것이― 윽!”

몸이 멀쩡했더라면 나를 당장 패대기치고도 남았을 살기였다.

수술 부위도 아직 덜 붙었고 몸도 안정을 취해야 했기에 벌떡 일어났다가 그대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았지만.

우씨, 뭐야?! 기껏 최선을 다해 치료해놨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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