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태청독.
무당의 비약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태청독은 복용하면 일 각 이내로 내장이 뒤틀리고 뇌가 녹으며 팔공에서 피를 뿜으며 죽음에 이르지.”
“허면 치료에 허용되는 것은 약과 침뿐입니까?”
“그래. 특별히 이 의원 같지도 않은 곳에 준비되어 있는 약은 네 놈이 마음대로 써도 좋다. 나는 내가 갖고 다니는 상비약만을 사용하겠노라.”
“좋습니다. 시작하지요.”
“그래, 시작을― 잠깐, 먹겠다고? 태청독을?”
“좋아요. 다 같이 열을 셉시다! 하나!”
“하나!”
“둘!”
“둘!”
내가 큰 소리로 외치며 바람을 잡자 모두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숫자를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이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라 했던가?
이제는 싸움 구경을 넘어서 이곳에 화끈한 불구경이 벌어질 참이었다.
그것도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불구경을.
“아홉!”
“아홉!”
“열!”
“열!”
사람들이 열을 세자마자 태청독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타는 불덩이를 통째로 삼키면 이런 느낌일까?
목구멍은 타들어가듯 쓰리고 화끈거렸고, 위장은 끓듯이 아파 왔다.
순식간에 흡수된 독이 온몸 전체로 퍼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귀에는 사람들이 비웃는 것 같은 이명이 들리고 눈앞은 가물가물해진다.
하지만 가만히 있다간 죽는다.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니까요!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이 독을 파악할 때까지, 조금만!]
* * *
장 의원은 당황했다.
지금껏 의술을 겨룰 때 마지막으로 태청독을 내밀어 승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물론 전부 부전승이었지만!
‘태화류를 계승한다는 의원에 큰돈을 주고 유일하게 얻어낸 비약. 거리낌 없이 똥을 먹을 수는 있어도 이것을 감히 먹지는 못하렷다! 마지막은 본의의 승리다!’
장 의원은 그렇게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저 수상쩍은 가면쟁이가 태청독을 먹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그뿐인가?
“좋아요. 다 같이 열을 셉시다! 하나!”
사람들을 선동해선 장 의원이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후딱 약을 삼켜버렸다.
그야말로 미친놈!
그렇다고 질 수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장 의원도 질세라 태청독을 삼킨 후 곧바로 입고 있던 겉옷 장삼을 풀어헤쳤다.
“옷 안에 저렇게 많은 약이―”
“역시 장 의원님이야!”
장 의원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약들을 순서대로 씹어 삼켰다.
몇 번이고 순서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칫 순서를 틀리거나 복용 간격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자신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신환단 다음 태령단, 구룡산을 삼키고 태극정수를 한 모금, 아니 두 모금이던가? 구룡산 전에 한 모금이고 섭취 후 한 모금이던가?!’
태청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백팔단계의 복잡한 해독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걸 배운 게 하도 옛날 일이었던지라 장 의원이 머리를 쥐어짜며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허어, 저길 좀 봐. 괜찮나?”
“이러다 사람 하나 죽겠어, 쯧쯧. 그러게 적당히 하고 물러날 것이지.”
사람들의 시선은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금태양에게 향해 있었다.
극독을 마신 직후, 손이며 귀 등 겉으로 드러난 피부가 시커멓게 물들고 혈관이 굵게 도드라졌으며 눈은 붉게 충혈된 것이, 누가 봐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허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명상을 하듯 고요히 앉아 있을 뿐.
‘쯧, 애송이. 역시 무모한 놈이었군! 가면까지 쓰고 의원 행세를 하기에 어지간히 사연이 있는 놈이다 싶었지만, 이 몸이 봐줄 때 물러났어야지.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다음 약이―’
“어, 어?!”
장 의원이 바쁘게 다음 약을 찾고 있을 때.
금태양이 움직였다.
그의 손이 침구통에서 웬만한 어린아이 키만 한 길이의 장침(長針)을 꺼내들었다.
“뭐야, 저렇게 긴 침을? 내 팔뚝보다 긴 거 같은데?”
“약도 없이 침만으로 독을 치유하겠다는 건가?”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금태양은 떨림 하나 없는 손으로 침을 역수로 쥐고, 제 정수리 끝에 침을 찔러 넣었다.
깊이.
더 깊이.
그 길디긴 침이 한 뼘씩 정수리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어떤 이들은 표정을 찌푸렸고 어떤 이들은 몸서리를 쳤다.
마침내 금태양이 그 긴 장침을 거의 끝까지 찔러 넣었다.
촌각의 시간이 흐른 후.
“어, 저기 봐! 눈에서 검은 물이 나온다!”
“태청독이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어!”
누가 봐도 독인 것이 분명한 검은 액체가 금태양의 가면 사이로 뚝뚝 흘러내렸다.
그것이 태청독임은 의심할 바가 없었다.
바로 앞에서 스물일곱 번째 비약을 삼키던 장 의원이 다음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것도 잊고 입을 쩍 벌렸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건 무당의 의장로(醫長老)님이나 가능한 방법인데……!”
깜짝 놀란 장 의원의 손에서 다음으로 복용해야 할 두 개의 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소음이 잦아들었다.
금태양은 태청독의 복잡한 해독과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의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알았다.
‘장 의원은 끝났다.’
복용해야 할 약이 바닥에 쏟아졌다.
이제 신선이 와도 그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으아아, 우아아악!”
제 손에서 떨어진 약의 흔적을 본 장 의원은 숫제 미친 짐승 같았다.
그는 흘린 약을 조금이라도 복용하고자 바닥에 엎드려 모래를 핥더니 아예 흙을 퍼담아 입에 쳐넣기 시작했다.
깨신 사기조각이 입술과 혀를 베어 피가 흘러내렸고 충분한 해독약을 섭취하지 못한 탓에 장 의원의 손발과 얼굴은 시커멓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태청독의 시한이라는 일 각.
두 의원이 태청독을 마시고 일 각이 지났다.
“저는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흘린 검은 눈물을 닦아내며 금태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승자가 누구다 외칠 필요도 없었다.
패자가 누군지 명확했으니까.
* * *
[믿어줘서 고마워요.]
별 말을.
태청독을 몰아낸 후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경합으로 인해 긴장한 탓도 있을 거고, 이 정도 몸의 피로야 익숙한 일.
그보다……
‘너 혹시, 내 손 말고 다른 감각에도 빙의할 수 있는 거 아냐?’
방금 전.
금태양은 끓어오르는 태청독의 독기를 참아내느라 좀 전의 경합들처럼 맛이 어땠느니 향이 어땠느니 하는 감상을 홍령에게 전할 수 없었다.
대신, 홍령이 내 손을 이끌어 맥을 짚고 침을 놓을 때와 비슷한 감각을 전신에서 느꼈다.
[뭐어, 그렇긴 하죠.]
야! 그럼 똥도 내가 맛볼 필요 없었던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손처럼 섬세하게는 안 된다고요. 몸의 주인이 생생하게 느낀 감각을 말로 전달받는 게 더 효율적인 건 아니지만―]
그러고도 구구절절 홍령의 변명이 이어졌다.
흥, 그렇다 이거지?
어쨌든 똥을 맛본 건 이미 벌어진 일.
앞으로 필요할 때는 이번의 일을 빌미로 열심히 부려먹어야겠다.
그건 그렇고……
“우욱, 욱― 끄억!”
나와 홍령이 승자의 만담을 나누고 있을 때, 눈앞에서 패자가 죽어가고 있었다.
흙을 집어 욱여넣던 장 의원은 되는 대로 단약을 입에 집어넣다가, 이내 단약과 함께 시커먼 피를 한 사발 토해냈다.
피와 독기에 절은 그의 모습에선 좀 전의 짜증 날 정도로 뻔뻔하던 태도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 헉, 허억…… 끄억…… 사람 살…… 살려……! 쿨럭!”
끔찍한 모습이었다.
반 정도 복용했던 약들의 효과가 순식간에 사멸해 가는지 그의 안색은 촌각이 흐를수록 나빠졌다.
그렇게 피를 토하며 그는 내 발밑으로 기어왔다.
“제, 제가 잘못, 쿨럭…… 했습니다요, 의원님! 헉, 허억! 살려, 살려만 주십……”
[어떻게 할 거예요?]
홍령이 물었다.
내가 허락만 한다면 이미 저승으로 반 넘어간 장 의원을 되살리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듯.
솔직히 도와주고 싶진 않다.
창천이나 객잔 주인에게 행한 일, 그리고 경합 과정에서의 치졸한 짓들까지.
장 의원은 너무 괘씸한 짓을 많이 벌였다.
하지만.
“경합은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내 환잡니다.”
홍령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허나 손은 빠르게 장 의원의 맥을 짚고 시침을 서둘렀다.
반 각 후.
“쿨럭, 컥…… 우웨엑!”
전신의 여기저기에 고슴도치처럼 침이 꽂힌 장 의원이 시커먼 피와 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입에서만 게워내는 게 아니라, 온 몸의 구멍에서 탁한 피가 쏟아졌다.
신기한 건 아까처럼 다 죽어가는 게 아니라 한 번씩 피를 쏟아낼 때마다 낯빛이 좋아졌다는 것.
“허억, 헉…… 괘, 괜찮아졌다……?”
“아뇨. 앞으로 보름은 정양하셔야 합니다. 약과 식사를 맞춰 지어드릴 테니 잘 챙겨 드시면 그 후에는 괜찮아지실 겁니다. 이분을 안으로 옮겨주세요.”
* * *
“우와, 우와아!”
“엄청난 의원님이 우리 마을에 오셨어!”
“어서 집에 가서 바깥양반한테 얘기해야지. 바깥양반 친척이 지병으로 몇 년을 고생을 한다고―”
고수들의 목숨을 건 비무를 견식한 것 같다며 감탄하는 사람.
그동안 장 의원에게 속았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
거기에 자신도 계속 어딘가가 아팠는데 언제 오면 진찰을 받을 수 있냐고 묻는 이들까지.
“아이고, 이 사람들아! 다들 의원님께 진찰을 받고 싶으면 여기 줄을 서서 차례로 이름들을 접수하고 가시게들!”
덩달아 어깨에 힘이 들어간 객잔 주인 내외가 즉석에서 접수처를 차려 진료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걸 이렇게 두면 어쩌누. 이 늙은이라도 움직여야지. 홀홀.”
은 파파는 물을 길어다 장 의원이 토한 피로 어질러진 마당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다른 태양의원의 환자들, 제법 거동이 가능해졌거나 처음부터 거동에 별 무리가 없던 이들도 하나둘 의원의 일을 거들었다.
누군가는 접수처의 줄을 정돈했고 누군가는 나에 대한 이야기, 통 크게도 선착순 열 명을 무료로 치료한 일부터 다리를 절던 객잔 주인이 벌떡 일어난 일까지를 행상들에게 신나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한 사람.
“가면 뚫어지겠어, 창천. 난 남자는 사양이야.”
“……장 의원을 살려둘 줄은 몰랐다.”
“살벌하기는. 무림인들은 생각하는 게 다 그래?”
“보통 그렇지 않나. 그는 극독을 내기로 걸었다. 그건 죽음을 각오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살려 달랬잖아. 거기서 죽게 내버려 둬 봤자 인상만 나빠져. 여긴 무림문파가 아니라고.”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하는 짓이 좀 짜증나야지.
“여기는 의원이야. 사람을 살리는 곳이지. 살리지 못한 경우라면 모를까, 사람을 죽여서 내보낼 수는 없어.”
창천은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