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주인장! 이 환자. 지금 어디 있어요?”
“예? 지금 저 뒤 빈방에 있습니다만.”
“서둘러 치료해야 합니다. 신양허쇠증 따위가 아니에요!”
“뭣이?! 어디서 망언을 하느냐!”
“심허에 간양화풍. 이 환자, 혹시 몸의 일부가 마비되진 않았습니까? 말도 제대로 안 나올 텐데요?”
“마, 맞습니다. 반 시진 전에 의원님을 찾아왔는데 마침 딱 경합에 좋겠다 싶어서―”
마음이 다급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인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어딜 가는 게냐! 경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방금 제 말 못 들었습니까? 심허에 간양화풍, 중풍이라고요!”
“주, 중풍?!”
의원은 내가 아니라 홍령이지만, 나도 중풍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는 알고 있다.
대부분의 병이 그렇겠지만, 개중에서도 중풍은 쓰러진 이후 최대한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 병.
주인장이 당황하며 구석의 낡은 별채를 가리켰다.
“중풍이라면 그 산 너머에 사는 우 씨 아닌감?”
“맞아. 보름 전엔가 쓰러져 거동을 못 한다며. 그 집 마누라가 장 의원님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야.”
사람들이 웅성거리거나 말거나 서둘러 다가가 문을 벌컥 열자.
“어, 으어―, 으어어―”
얼굴 반쪽이 멈추어 기괴해 보이는 낯.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조차 없는 고통스러운 목소리.
누가 봐도 중풍환자임이 여실한 병세.
[아직 손쓸 수 있어요.]
잠깐만.
홍령이 본격적으로 환자를 치료하기 전, 나는 뒤를 돌았다.
나와 장 의원의 경합을 구경하던 이들이 전부 몰려와 있었다.
“여러분. 환자는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응급처치만 하고 돌아갈 테니 물러나 주세요.”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객잔 주인을 비롯한 내 환자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며 사람들을 물렸다.
비록 홍보를 위해서 경합을 유도하긴 했지만, 환자를 동물원의 원숭이로 만들 생각은 없다.
정말 불쾌한 경험이라는 걸 나부터가 잘 알고 있으니까.
“장 의원님, 안 가십니까?”
이 환자는 내게 치료를 받으러 찾아왔다. 장 의원도 결국은 불청객이나 다름없다.
“가다니, 말은 바로 해야지. 이 자는 원래 내 환자야!”
“지금은 제 환자고요. 장 의원님은 병증의 진단도 틀리셨잖습니까.”
장 의원에게 대꾸하면서도 내 손은 바쁘게 환자의 맥을 짚고 침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덥썩.
침을 놓으려는데, 장 의원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뭡니까? 빨리 치료해야 한다니까요.”
“내가 먼저 맥을 봐야겠다! 네놈들이 준비한 환자가 아니냐! 짜고 친 건지 확인을 해야겠어!”
“짜고 쳐?”
나는 장 의원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반신이 마비되어 고통받는 환자를 그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 그게 의원이 할 말입니까?”
“네놈이 수작을 부리려면 얼마든지―”
정말 화가 났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침착해요. 그러다 쓰러져요.]
젠장, 이놈의 몸뚱아리는 분노할 일에 제대로 화조차 낼 수 없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홍령은 내 손을 움직여 침을 놓기 시작했다.
“이게 다 수작질이었으면 마지막 그릇의 뚜껑을 열 필요도 없었겠죠. 그냥 쓱 보고 맞추는 천재를 연기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 응급처치가 끝났다.
“그, 금사 함, 뉘―”
“아직 말하기 힘드실 테니 무리하지 마세요. 빨리 끝내고 오겠습니다.”
장 의원에게 경멸 어린 시선을 거두고 환자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대결이 끝났을 뿐이다.
장 의원은 어정쩡한 폼으로 뒤따라 나와 다시 내 앞에 섰다.
처음에는 터줏대감을 상대로 뒤지지 않는 실력이 있음을 선보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좀 바뀌었다.
[확실히 눌러버리죠. 약으로 장난을 친 걸로도 모자라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까지. 용서할 수 없어요.]
이하 동문이다.
“두 번째 경합은 제약입니다. 장 의원님?”
주인장의 말에 장 의원이 제 소매에서 두 개의 쪽지를 꺼냈다.
“한 쪽지에는 내 비장의 단약이, 다른 하나에는 그 단약의 배합이 적혀 있다. 맛을 보고 이를 맞춰 보거라.”
나 또한 두 개의 쪽지를 꺼낸 후 단약이 있는 쪽지를 장 의원과 교환했다.
“답이 적혀 있는 쪽지는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흥, 자네가 저놈 편을 들어 손을 쓸지 어찌 알고? 싫다!”
장 의원은 주인장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첫 번째 경합에서 패배한 탓에 예민해진 모양.
사람들 사이에서도 장 의원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 장 의원님이 잘 하시는 거야. 첫 번째 경합은 아무리 봐도 냄새가 났어. 어떻게 똥 맛을 보고 중풍인지를 알아?”
“맞네. 우 씨가 중풍으로 쓰러진 지도 이미 보름이 넘었지 않나? 어디서 소문이라도 들었겠지. 장 의원님에게 너무 불리한 판이었어.”
이미 한 번 실력을 보였음에도 아직까진 장 의원의 편이 많았다.
[원래 너무 뛰어난 실력은 쉽게 의심의 대상이 되죠. 신경 쓰지 마요.]
아니, 신경 써야지.
장 의원이라는 박힌 돌을 빼내고 이 마을에 자리 잡기로 했다.
의심의 싹 따위는 남겨놓아선 안 된다.
“나부터 시작하마.”
장 의원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태도로 내가 제조한 단약의 맛을 보았다.
“……후후. 강활과 강풍의 맛이 짙은 걸 보니 강활유풍환(羌活愈風丸)이로다. 창출, 석고, 생지황……(중략) 독활, 육계, 황금에 이르기까지 천금익방의 서른 가지 재료를 넣었으나 네놈 나름대로 생강을 더했구나!”
[흐음?]
정답이다.
[생각보다 좀 하네요.]
돌팔이 노릇도 삼십 년을 하다 보면 풍월 꽤나 읊는 분야가 생기는 법.
애초에 약을 일부러 잘못 지어서 처방한다는 건, 그 분야에 대한 실력이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진단은 몰라도 제약은 실력이 있나 보네요.]
홍령이 짜증을 냈다.
“정답입니다.”
나는 답안을 펼쳤다.
강활유풍환의 서른 가지 재료, 거기에 생강까지, 장 의원이 떠벌떠벌 얘기한 재료들이 거기에 적혀 있었다.
“하하! 그럼 이제 네놈의 차례로다!”
그래, 이번엔 내 차례다.
환약을 한 입 깨물어 씹자 오묘한 향기와 맛이 느껴졌다.
“이 맛은……”
지독히 쓴 맛, 쓰디쓴 맛, 시고 쓴 맛……
하나하나가 당장 뱉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맛들의 향연이었지만, 솔직히 똥보단 낫다.
“……계지, 현호색, 모려, 감초, 양강과 소회향. 건강(乾薑) 대신 인삼을 쓴 안중산(安中散)입니다. 본래도 위장에 좋은 약을 식중독에 더욱 맞게 개량해 환약으로 굳힌 거군요.”
내 빠른 대답에 좌중이 감탄을 터트렸다. 헌데 뭔가 찜찜했다.
장 의원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설마, 틀렸나?
“흠흠, 네놈의 생각은 그렇단 말이지?”
장 의원이 소매의 쪽지를 펼쳐 모두가 볼 수 있게 치켜들었다.
“아니, 안중산이 아닌데?”
“뭐야. 뭐라고 적혀 있누?”
“십전대보환이라는데? 십전대포탕을 환으로 만든 거 아냐?”
“십전대보탕이라니. 그건 우리 같은 무지랭이도 아는 약인데.”
장 의원의 얍실하기 짝이 없는 수염이 만면의 웃음을 따라 푸르르 떨렸다.
[말도 안 돼! 내가 십전대보탕을 모를까 봐요?! 당신이 말한 맛은 분명 안중산이라고요!]
나도 안다.
십전대보탕이라면 내가 삼시 세끼 밥보다 더 많이 먹은 약이니까.
그 맛을 다른 맛이랑 헷갈릴 리는 없다.
그렇다면……
[사기에요. 저자, 처음부터 다른 답안을 만들어둔 거라고요!]
다른 의원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장 의원이 안중산을 십전대보탕이라 우겨도 이를 확인해줄 사람이 없다.
우리의 패배다.
“이번 대결은 나의 승리다! 하핫, 가서 공부나 더하고 오거―, 라, 에헴. 흠흠…… 거 젊은 놈이 눈깔 간수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흠흠……”
[용서할 수 없어요. 무슨 저딴―!]
……맞아.
세상은 이런 곳이었지.
정직하게 사는 사람을 쉽게 호구로 만들고 등쳐먹는 자들이 널리고 깔린 곳.
아픈 내 몸 하나 간수하고 사는 게 힘들어 잠시 잊고 살았다.
좋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사랑받으며 사느라 잊고 살았다.
“……마지막 경합, 시작하시죠.”
객잔 주인이 불안한 눈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 그리고 홍령 덕분에 포기하고 살았던 건강을 되찾은 사람.
걱정 마요.
절대 지지 않을 거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의원의 자질로 가장 중요한 치료를 두고 경합을 시작하겠습니다.”
내 의지가 전해진 걸까.
객잔 주인이 떨리던 눈빛을 바로하고 진행을 이어나갔다.
“자고로 중원무림에서 의원끼리 실력을 겨루는 방법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지요. 두 분께선 이 독을 복용한 후 해독을 시도―”
“잠깐! 첫 번째 환자가 이 마을에 있던 사람이었으니 내게 공평하지 못하다! 이번에 쓸 독은 내 것을 쓰겠다!”
아니, 저자가?!
두 번째 경합에서 답을 바꿔치기 한 걸로도 모자라, 이번엔 아예 합의한 걸 바꿔버리려고 한다.
[괜찮아요.]
괜찮아? 저건 독이라고!
[날 믿어요. 절대 지지도, 당신이 해를 입게 두지도 않을 거예요.]
홍령은 단호했다.
그녀의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방금 전 되찾은 기억이 하나 있어요.]
장 의원과의 경합.
그 사이에서 기억을 하나 되찾은 건가?
[나, 복수해야 할 상대가 있어요. 누군지도 모르겠고, 기억나는 건 그 억울한 감정뿐이지만. 그걸 위해선 당신이 필요해요.]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나 싶었다.
경합이 끝난 다음에 해도 될 얘기니까.
[결코 당신에게 해가 되지 않게 하겠어요. 날 믿어줘요.]
내 몸이 상하면 내게 빙의해 있는 홍령도 자신의 일에 차질을 빚는다.
기억을 되찾는 일, 그리고 나아가 복수를 하는 일까지.
어차피 물러날 곳도 없다.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아직까지 장 의원의 편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을 테니까.
이번 판으로 모든 걸 끝낸다.
“좋습니다.”
“……흥, 패기가 좋구나!”
장 의원은 마뜩잖은 얼굴로 품을 뒤져 작은 병 두 개를 꺼냈다.
“이것은 본의가 잇고 있는 무당파의 의맥 태화류(太和醫流)의 비법 독약, 일명 태청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