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4화 (14/350)

14화

[저자군요.]

맞다. 저자다.

원래 이 일대를 주름잡고 있던 의원.

“흥, 이 몸이 왔는데 객잔에 사람이 없다 했더니. 다들 여기들 모여 있었고만?”

그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이 몸이 이 초라한 마을에 삼십 년이나 진료를 와주었건만. 감히 나를 두고 다른 의원을 찾아? 내 자네들 면면들을 똑똑히 기억하겠어. 앞으로 내 앞에 얼씬거리기만 하게!”

“누구신데 갑자기 쳐들어와 행패십니까?”

“네놈은 웬 놈이냐? 무슨 수상쩍게 가면 따위를 쓰고―”

“이곳에서 의원을 하고 있는 금태양이라고 합니다.”

나는 일부러 공손하게 첫 인사를 건넸다.

굳이 목소리를 높이며 기세 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

이 자리에는 나와 상대만 있는 게 아니니까.

“제가 새로이 개업을 하여 불편하신 심기는 이해하겠으나, 어찌 의원이 되어 환자의 병환을 가지고 협박을 할 수 있습니까?”

“뭐, 뭐라! 협박이라니!”

“아닙니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상대는 자신이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갖고 있다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그 이점, 내가 좀 전에 산산이 부숴버렸는데.

“……거 말씀이 너무 심하셨습니다, 장 의원님.”

“흥! 우리가 그쪽 아니면 갈 의원이 없는 줄 알아요? 이제 여기 새 의원님도 있다고요!”

이레면 치료할 수 있는 환자를 두고 몇 년을 기망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게 된 환자들은 이제 전부 내 편이었다.

[표정 봐. 쌤통이네요.]

홍령은 고소해하며 웃었지만 장 의원은 가벼운 잽 한 방 먹었다고 물러나진 않았다.

“네, 네 녀석! 영업 허가는 있느냐?!”

[영업 허가?]

“어느 문파 누구의 제자냐! 이 동네는 엄연히 무당파 의원들의 영역이다! 어떤 되먹지 않은 놈이 의맹의 결정을 무시하라고 가르쳤느냐! 내 의맹에 보고해 단단히 혼쭐을 낼 게야!”

[그게 뭐예요? 영업 허가라니, 사람을 고치는 데 그런 게 왜 필요해요?]

“오호라,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니 알겠다! 감히 의맹의 허가도 받지 않고 의원질을 하고 있으렷다? 보나 마나 의원 시험도 치르지 않고 환자를 보는 돌팔이로구나!”

[돌팔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이 한심한 사람들아. 아무리 삭신이 쑤셔도 그렇지. 이렇게 자격도 없는 수상쩍은 놈에게 침을 맞고 있었단 말인가? 하참. 내 이번 한 번만 눈감아줄 테니 어서들 돌아가세!”

장 의원은 짐짓 콧대를 세우며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의맹의 허가, 유명 의문의 제자. 참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소리라니까.”

내 말에 몸을 돌리던 장 의원이 그 자리에서 우뚝 섰다.

“말이 좋아 의맹이지. 황실로부터 인가를 받은 것도 아닌데, 그런 작자들이 자리를 꿰차곤 너는 여기서 환자를 봐도 되니 안 되니 하는 건 웃기는 일이야.”

“뭬, 뭬야?!”

“자격이라는 것도 그래. 어느 정도 돈만 얹어주면 얼마든지 무당의원이니 소림의원이니 하며 떠벌릴 수 있다는 거, 다른 사람들은 모를 줄 아나?”

“이놈이! 닥치지 못해?!”

“여기, 객잔의 주인장은 십 년 넘게 당신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결코 완치되지는 못했지요.”

장 의원이 발악하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다.

어차피 그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뿐인가? 오히려 치료에 해가 되는 약을 받아먹었어.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압니까? 우리 태양의원에서, 당신 말대로 자격도 없고 출신도 모를 의원에게 며칠간 치료를 받은 지금은?”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제대로 된 진료를, 자신이 낸 돈만큼의 치료를 바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내가 말을 건네고 있는 자들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객잔 주인에게로 향했다.

“……거, 걸을 수 있습니다. 보세요. 다리도 절지 않습니다. 이게 다 이 젊은 의원님 덕분입니다!”

어차피 다들 알고 있는 사실에 한 번 더 쐐기를 박는 거다.

대문파의 후광 따위, 확실한 실력에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무, 무슨! 말도 안 돼! 저놈이 뭔가 사기를 친 게 아니고서는……!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데, 그런 실력이 있을 리가……!”

“그렇다면 그 실력, 직접 확인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

“어르신께서는 의맹의 허가도 받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의원이 의원행세를 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드신다는 거 아닌가요?”

“뭐, 뭐…… 그렇다면 그렇지! 내가 의맹에 보고하면 네놈들은 아주 그냥!”

“그렇다면 의맹 소속이신 의원님께서 제 실력을 한번 검증해주시면 될 일 아닙니까?”

“뭐, 뭣?”

“다들 장 의원님 말씀을 듣고 불안해하시는 거 같은데. 검증받은 의맹 소속, 그것도 무당의원 출신에게 실력을 인정받는다면 다들 안심할 거 아닙니까.”

“네 녀석, 아까는 빛 좋은 개살구니 뭐니 해놓고―”

“그래서. 안 하시려고요?”

[당신,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어요?]

홍령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장 의원이라는 터줏대감이 있다는 얘길 들었을 때부터 상황을 이렇게 끌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의맹이니 뭐니 하는 명분이 있다고 한들, 이 자리에서 실력대결을 피한다면?

장 의원은 더 이상 이 동네에서 환자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객잔 주인에게 일어난 기적을 똑똑히 본 태양의원의 환자들이 진실을 전할 테니까.

“크흠, 흠! 뭐, 정히 그렇다면야! 이 노야가 저놈 실력을 만천하에 까발려주도록 하지! 나중에 엉엉 울지나 말아라, 이 새파란 것!”

피하지 않는다면?

실력을 증명하면 될 일.

내게는 홍령이라는 비장의 카드가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 * *

장 의원이 내 의술을 평가한다는 말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밭을 매던 아낙부터 마을을 지나가던 행상인들까지 태양의원에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룰 정도였다.

[엄청나게 많이 왔네요. 시장이 섰을 때보다 사람이 많은 거 같아요.]

원래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니까.

전생에서도 각종 분야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유행했던 것만 생각해도 그렇다.

그리고 그런 경연은 단순히 보는 게 재밌는 것을 떠나서, 입소문을 탄다.

[이런 자리에서 실력을 입증하면 다들 믿고 찾아주겠죠?]

물론.

신장개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입소문이니까.

시장에서 떠들썩하게 선착순 열 명을 외쳤던 건 그야말로 맛보기.

이제부터가 진짜다.

“의원들이 전통적으로 실력을 판가름 하는 방법으로는, 총 세 가지가 있다!”

사람들이 몰린 탓인지 장 의원은 더욱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었다.

질 리 없다는 자신감인지.

그도 아니면 질 수 없다는 발악인지.

“의원이라면 무릇 병의 진단, 약의 제조, 그리고 침이나 뜸을 이용한 치료에 능해야 하는 법! 본의가 이 세 가지 방법으로 이 수상쩍은 가면쟁이의 실력을 만 천하에 까발려주겠노라!”

“예, 열띤 발언 잘 들었고요. 시작하시죠.”

검증 방식은 경합.

나와 장 의원이 같은 과제에 도전해 그 결과물을 비교한다.

어쩌다 보니 경합의 진행과 사회를 맡게 된 객잔 주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첫 번째 대결은 진찰입니다. 그걸 이쪽으로!”

이제는 거의 태양의원의 식구가 된 환자들 몇이 뚜껑 덮은 종지 세 개를 가져왔다.

“이건 환자의 분비물을 통해 증상을 가늠하는, 전통적인 진찰방식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환자의 병증을 정확히 맞춰주시는 분이 승자입니다!”

“분비물이라고?”

“왜, 침이나 땀 같은 거 말하는 거 아냐?”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 내 앞에 있는 뚜껑을 하나둘 열었다.

점도가 느껴지는 투명한 액.

침과 땀이다.

장 의원은 어쩌나 보니, 더없이 신중한 표정으로 그것들의 냄새를 맡거나, 손가락에 찍어 맛을 보고 있었다.

……나도 해야 하나?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하라는 거군.

티 나지 않게 한숨을 쉬곤 나도 똑같이 맛을 보고 냄새를 맡았다.

좀 비위가 상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건 좀 시큼한 거 같고, 이건 좀 밋밋하다는 거밖에 모르겠다.

[괜찮아요. 충분해요. 어느 정도 병증이 추려지네요.]

그것만 가지고 알 수가 있어?

[땀도 그냥 더울 때 땀나는 거랑, 아플 때 땀나는 거랑 맛이 다르잖아요. 비슷한 거예요.]

거참.

홍령이 대단한 건가, 아니면 의원이라면 다들 이 정도는 해내는 건가?

[저쪽도 대충 감을 잡은 모양이네요.]

그래? 표정이 구린데?

장 의원은 잔뜩 굳은 얼굴로 마지막 종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충’이라고 했잖아요. 아마 마지막 종지를 확인해야 확신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냉큼 확인하면 되지, 왜 안 열고 있대?

이럴 땐 먼저 선수 치는 쪽이 유리하지.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아까부터 설마 했는데…… 이거 뒷간 냄새 아닌가?”

종지 뚜껑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웅성댔다. 나도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젠장, 똥이잖아!’

전생에 인기 있었던 사극에서 의원들이 왕의 병을 진단하기 위해 매화, 즉 똥을 맛보는 내용이 나온 적 있다.

볼 때는 그냥 웃기기만 했는데, 그게 내 상황이 될 줄이야!

[집중해요! 맛을 보면 더 확실하겠지만…… 일단 냄새부터!]

젠장!

“흐흐, 환자의 변을 관찰하는 일은 의학생 시절 이후 간만이구먼.”

내가 용기 내 냄새를 맡으려는 데, 장 의원이 먼저 손을 들었다.

“답을 알아내셨습니까?”

“그래. 답은 신양허쇠증이다! 몸이 심히 허약하고 늙은이처럼 쇠하지. 보골지와 토사자를 섞어 약을 복용하면 오래지 않아 나을 것이야!”

젠장, 질 수 없지!

“허억!”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장 의원이 답을 외치자마자 주변을 둘러싼 이들이 경악을 내뱉었다.

“가면 따위를 쓰고 있어서 수상쩍은 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렇게 거리낌 없이 똥을 맛볼 줄은…….”

당장이라도 물로 입을 마구 씻어내고 싶다.

하지만 최대한 참으며 맛을 묘사했다.

그래, 이보다 더 쓴 약도 더 구역질이 나는 약도 먹어봤다.

할 만해, 할 만하다!

“예끼, 이 사람들아. 자신이 없으니까 먹어보는 거 아니겠나? 장 의원님을 보라고. 맛 같은 거 보지 않고도 답을 맞히지 않으셨나!”

“누가 저 답이 정답이라나? 좀 기다려 보세.”

나 또한 기다렸다.

홍령의 답을.

설마 똥을 된장처럼 찍어먹기까지 했는데 정답을 모르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알았어요. 이 환자의 병증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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