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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7화 (7/350)

7화

[그보다 왜 쫓아왔을까요?]

“우, 으우―”

“왜긴 왜겠어. 밥이지?”

나는 찬합을 풀어 한 칸을 어린 거지 앞에 내밀었다. 거지는 당황스러운 듯 눈을 데룩데룩 굴렸다.

맞아, 풀리려면 몇 분 더 걸린다고 했지?

[풀어줄까요?]

그래. 밥만 먹이면 될 거 같으니까. 여차하면 또 제압하면 되지.

[당신이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거거든요.]

투덜거리면서도 홍령은 곧바로 내 손을 놀려 거지의 혈을 풀어주었다.

“자, 먹어. 안 잡아먹으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배 안 고파?”

안 그래도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냄새나 외모가 꺼려지긴 하지만 상대는 어린아이.

기껏해야 열 살?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저 어린 애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머, 먹어도 돼요?”

“아까처럼 막무가내로 달려들지만 않는다면야.”

어차피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다 지운 것처럼 보였지만.

어린 거지는 몇 번을 더 물어본 후에야 찬합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비우기 시작했다.

다섯 칸의 찬합 중 두 칸이 순식간에 동이 날 무렵. 나는 나머지 찬합을 보자기에 싸면서 물었다.

“배도 좀 채웠겠다. 이제 밥값을 좀 할까?”

“바, 밥값이요?”

“어려운 건 아니니까 겁먹지 말고. 몇 개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어린 애라고 동정심에만 밥을 준 게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건 거지다.

아버지에게서, 그리고 형제자매들에게서, 여타 다른 사람들에게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종종 있었다.

중원에서 소문에 밝은 이들을 둘 꼽는데, 하나는 거지들이요 다른 하나는 기녀와 점소이라.

그 거지들이 모인 문파를 개방이라 하고, 기녀와 점소이들이 모여 하오문을 세웠다 한다.

개방의 거지는 허리에 독특한 매듭을 짓는다고 하던데……

“왜 그러세요?”

이렇게 어린 애가 개방 방도일 리는 없겠지. 매듭도 없고.

그래도 거지는 거지다.

“거지들은 집도 없고 절도 없으니까 여기저기 떠돌며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에서 숙식을 하지? 밥을 얻어먹느라 이 집 저 집 돌아다니고?”

“네.”

“그렇다면 태청장원에 가본 적도 있겠네?”

개방의 거지가 아니면 어떠랴.

나에겐 지금 저 무한의 개방도보다 이 동네 사정에 빠삭한 동네거지가 더 필요했다.

“네에, 가끔 처마 밑에서 잠을 잔 적이 있어요.”

“거긴 미친개가 산다던데.”

“다들 그렇게 말하긴 하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별 해코지는 안 하거든요……. 또, 저는 그 사람이 얌전한 날을 알아요.”

“얌전한 날?”

좋아. 밥값으로 쓸 만한 얘기다.

“의원님이 태청장원에 오는 날이요. 원래 두 달에 한 번은 오시는데 요번엔 좀 늦으시는 거 같고요.”

“의원이라……”

“건넛마을 장 의원님이라고, 아주 실력이 좋대요. 이 마을에만 삼십 년 넘게 왕진을 왔대요.”

“삼십 년?!”

무한에서 출발하기 전 이 동네에 대해서 대충 수소문을 해봤지만 이렇게 상세한 얘기까지는 들을 수 없었다.

거지에게 뒤를 따라잡힌 것은 우연이었지만 밥을 주고 밥값을 받아내자고 생각하길 천만다행이었다.

[누가 됐든 이런 시골의 의원이 본녀보다 뛰어날 리 없으니 걱정 붙들어 매도록 해요.]

홍령이 자신감 있게 외쳤다.

아무렴 그래야지. 내가 누구만 믿고 있는데.

“자, 그럼 마저 가면서 얘기해볼까? 다른 얘기도 더 해봐. 시시콜콜한 것도 좋으니까.”

“예? 어딜 가면서요?”

“어디긴 어디야. 아까 얘기한 태청장원이지. 설마 내가 어딜 가는지도 모르면서 따라 온 거야?”

“지, 지금은 안 돼요! 장 의원님이 제때에 오지 않으셔서 그 사람, 엄청 위험할 거라고요! 안전할 때가 있다면 지금은 꼭 피해야 할 때예요!”

“그러니까 더 가봐야지. 내 소중한 담보에 해라도 입히면 어떡해. 빨리 따라와. 아니면 아까처럼 혈도 짚고 끌고 간다?”

어차피 끌고 갈 체력도 없지만 괜한 엄포를 놓았다.

어린 거지는 덜덜 떨면서도 혈을 제압당해 끌려가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는지 내 뒤를 따랐다.

거지에게서 이 동네에 대한 이런저런 잡다한 정보들을 듣는 사이, 수려한 경관에 둘러싸인 소담한 장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은데? 방치된 지 십 년이 넘었다더니. 이 정도면 간단히 손보기만 해도 되겠어.”

금가장에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았지만 이제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 손볼 곳이 예상보다 적다면 쾌재를 부를 일이다.

[저건 손보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요.]

홍령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장원의 낡은 문틈 너머로 누군가가 나를 뚫어져라 쏘아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는 상대가 저 너머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저자가 바로 그 미친개인가?

금왕전장이 담보 회수를 보류했다고 해도, 이만한 장원이면 근처 산적이나 비적 패거리가 거처로 쓰려고 호시탐탐 노릴 만한 수준의 물건이다.

그런데도 여태 이 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이 저자의 실력을 말해준다.

[어느 문파의 실패작이라니. 당신의 가정은 틀렸어요. 저건 실패작 같은 게 갖출 수 있는 기세가 아니에요.]

홍령의 목소리에서는 긴장한 기색이 어렸다. 어린 거지는 어느 사이에 담벼락 구석에 몸을 숨긴 채였다.

“그쪽이 창천?”

나는 담보물의 죽간에 적혀 있던 이름을 불렀다.

“나이는 이십팔 세, 본명은 불명. 한때 창천룡이라 불리었던 태청장원의 후기지수. 맞아요?”

“……사내놈이 면사라니, 수상쩍은 놈이군. 누구냐, 이곳엔 무슨 일이지?”

낮게 을러대며 답하는 걸 보니 놈이 맞았다.

초면부터 반말이라니. 기분 나쁘게.

“내 이름은 금태양. 이 장원을 접수하러 왔지.”

그렇다면 나도 반말이다, 이놈아.

“접수하러 왔다고?”

[우리가 지금 도장 깨기를 하러 왔던가요?]

홍령이 어처구니없어하는 사이 나는 성큼성큼 문 앞으로 걸어갔다.

“좀 들어가도 될까?”

촤락.

죽간을 펼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장원을 담보로 잡아 큰돈을 빌렸다는 내용의 문서가 창천의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빚쟁이인가. 간만이군.”

“대충 그런 셈이지.”

“문은 열어주마.”

삐걱.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거대한 대문의 문이 열렸다.

“허나 그곳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들어온다면. 내 검이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창천은 문에서 약 삼 장의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얼굴은 뭇 여인들의 방심을 흔들 법했으나, 그 얼굴에 드리운 냉막한 표정이나 검병을 쥐고 선 흉흉한 기색은 저승사자도 흠칫 놀라 도망갈 기세였다.

“밖은 그럭저럭 쓸 만 해 보였는데. 안은 개판이네.”

나는 창천에게 힐끗 눈길만을 준 후, 문간에 서서 태청장원 안을 둘러보았다.

누가 봐도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장원.

대문 앞마당에는 잡초가 듬성듬성 자랐고 지붕은 이가 나갔으며 곳곳에 거미가 집을 지었다.

그나마 눈앞에 있는 건물, 장원 중앙에 있는 건물이라 이름도 정직하게 중앙당, 이거 하나만 누군가 꾸준히 관리를 한 티가 났다.

창천이 가로막고 서 있는 건물이었다.

[저길 봐 봐요.]

저기? 어디?

[바닥, 벽, 그리고 지붕이요.]

홍령이 말한 대로 시선을 옮기자 또 다른 것들이 보였다.

흔적이 남을 수 있는 모든 단단한 것에 빽빽이 들어찬 검흔.

문외한인 내가 봐도 알겠다. 이곳에서 엄청난 싸움이, 수도 없이 일어났음을.

창천을 끌어내기 위한 셀 수 없는 시도들.

그리고 그 모든 시도들의 실패.

“눈이 있으면 알겠지. 괜히 피 보지 말고 꺼져라.”

내 시선이 검흔에 닿는 것을 본 창천이 마지막 경고인 듯 내뱉었다.

물론 나는 피를 볼 생각은 없었다.

안 그래도 비실비실한 몸에 피라도 됫박 흘렸다간 그대로 황천길 갈걸.

[어쩔 거예요? 저자는 아까 그 거지랑은 달라요. 감당할 수 없어요.]

홍령의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이랬다.

털썩―

“어디 보자, 정과가 얼마나 남았나?”

나는 그대로 문간에 걸터앉아 정과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냐.”

“뭐 하긴. 간식 먹는데.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어서 당 떨어지는 기분이라. 당신도 먹을래?”

“무슨―”

“어, 나 한 발짝도 안 들어갔는데. 베려고?”

창천이 움찔하며 반걸음 물러났다.

녀석은 태청장원 안으로 발을 들이지 않는 이상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안에 발을 들이지 않은 채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얻어낼 셈이었다.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 한 나는 안전하니까.

[중앙당 뒤는 더 답이 없네요. 나머지 건물은 멀쩡한 게 없어요. 창고로 보이는 건물 두어 채랑, 우물 하나랑, 뭐 그 정도가 그나마 괜찮고. 다 부서진 연무장이랑, 잡초 밭 같은 것도 있네요.]

다른 건? 쥐구멍 하나까지 다 찾아봐 줘.

[쥐구멍까지요? 정말 귀신을 너무 부려먹는군요. 알았어요, 좀 걸릴 거예요.]

내 시각정보에 홍령의 정보를 더한다면 그 정보 값은 상당한 수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관찰하고 있자 눈앞의 창천에게서도 변화가 엿보였다.

‘주치의가 제때 안 와서 초조해할 거라고 했지.’

실력 있는 무인은 웬만한 일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한다.

허면 실력은 있지만 몸 상태가 안 좋은 무인은 어떨까?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고 나는 문간에 기대어 잠깐 졸았다가 남은 두 개의 찬합 중 하나를 까 냠냠 식사를 시작했다.

“당신, 배고프지 않아? 같이 먹을래? 며칠 굶은 거 같은데. 척 봐도 쌀 한 톨 없어 보이고. 고기반찬도 있고, 채소볶음도 있고. 없는 게 없네.”

먹을 게 없다.

홍령이 살펴본 바로는 그랬다. 몇 알의 벽곡단이 그녀가 발견한 전부라고 했다.

그나마도 반씩 쪼개져 있던 걸로 봐선 하루에 반 알을 섭취해 연명하는 것 같았다고.

그런 상대 앞에서 다 식기는 했지만 음식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데도 창천은 반응하지 않았다.

신경 꺼라, 이젠 그런 말조차 없다.

[조심해요. 눈이 맛이 갔어요.]

대신 시선이 말을 했다. 가늘게 핏발이 선 눈이 뭐지?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라는 의문을 집요하게 던져왔다.

아니, 이젠 의문을 넘어서 노여운 기색까지 엿보였다.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을 거다.

아니, 처음이 아니었다고 해도 오랜만이었겠지.

누군가를 진득이 상대하는 것이 무려 오 년 만이었을 테니까.

[―멈춰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초조할 때.

이미 말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사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서걱―

비명에 가까운 홍령의 외침과 내 손이 우뚝 멈춘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 있던 젓가락, 반찬을 집기 위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있던 젓가락이 반 동강이 나 찬합 위에 투둑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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