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무한에서 말과 마차를 빌려 타고 며칠을 이동해 도착한 동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교통이 다소 불편하나 남쪽으로는 두 줄기 강이 흘러 경치는 수려한 곳이었다.
현대로 치면 읍면(邑面) 정도 되는 작은 곳이지만, 제법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삶을 일구어 가는 곳.
내가 권리를 양도받은 장원이 이곳에 있었다.
“일단 짐 좀 풀고, 뭐라도 먹고 움직여 볼까?”
[저기 객잔이 있네요. 한산한 동네인데 객이 적지 않나 봐요.]
홍령이 말한 객잔에 들어가자 고소한 음식 냄새가 풍겼다.
안에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몇몇 있었고 점소이 대신 주인으로 보이는 이가 직접 손님을 맞았다.
“못 보던 분이시구만? 여행 중이신가? 저쪽 앉으시고, 쯧―”
손짓으로 자리를 안내하던 주인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내 얼굴을 본 건가 몸이 바짝 굳었다.
[괜찮아요.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홍령의 말과 함께 그 이유를 알았다.
절로 코를 잡게 되는 고약한 냄새.
거지, 거지였다.
척 봐도 땟국물이 절절 흐르는 어린 거지가 내 뒤에 따라 들어온 것이다.
“주인어른, 혹시 남는 잔반 없으세요? 저 너무 배가 고파요.”
“남는 잔반은 무슨 남는 잔반. 손님들이 죄 소면만 먹는데 거지 줄 국물이라도 남아돌까. 에이, 재수 옴 붙는다. 가라, 가.”
“제발 뭐라도 먹을 걸…… 삼 일이나 굶었단 말이에요.”
“남은 뭐 땅 파서 장사하나? 안 가?”
주인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빗자루를 쥐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어린 거지를 쫓아내려 하자 어린 거지가 주춤하며 물러났다.
하지만 삼 일을 굶었다는 것이 거짓은 아닌지 어린애 또한 쉽게 물러날 거 같지 않았다.
“주인장.”
저 대치가 영 곱게 끝날 거 같지 않다는 생각에 서둘러 주인장을 불렀다.
“일단 손님부터 맞아요. 여기, 이 돈에 대충 맞춰서 술과 요깃거리 할 만한 거.”
짤랑―
일부러 요란하게 은전 몇 개를 탁자 위에 던지자 잔뜩 인상을 쓴 주인장의 표정이 급변했다.
“배고프니까 빨리 되는 걸로. 푸짐하게.”
“아, 옙! 알겠습니다, 공자!”
주인장은 다리를 절뚝이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객잔 내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이런 시골 마을의 객잔에서 은전을 꺼내는 손님이라면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나는 면사를 꼼꼼히 고쳐 쓰며 태연하게 앉았다.
평소라면 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일은 꺼려했겠지만, 지금은 낯선 장소의 정보를 모아야 할 때다.
“자자, 음식 나갑니다! 술도 준비할깝쇼?”
“술은 뭐가 있죠?”
“시골 객잔이라 대단한 건 없지만 있을 만 한 건 다 있지요.”
“돈은 상관 말고 있는 대로 꺼내주세요.”
은전 두 개를 더 꺼내 내밀자 주인장이 싱글벙글한 낯을 하곤 절뚝절뚝 바쁘게 움직였다.
누가 봐도 혼자 먹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이다.
간만에 대목을 만난 주인장이 한껏 솜씨를 발휘했는지, 탁자 위의 음식들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면사를 살짝 걷고 식사를 시작하자 주변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들이 어찌나 뜨거운지 무시하기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이거 어쩐다. 배가 고파서 너무 많이 시켜버렸네. 거기 혹시, 괜찮으면 같이 드시죠?”
[와, 정말 어설퍼요. 이런 수작은 어디서 배운 거예요?]
어설프지만 이거만큼 확실한 수단도 없다고.
“어이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거, 술도 반주하기에는 좀 많아 보이는데. 주인장! 여기 술잔 몇 개만 더!”
사람은 공짜에 약하다. 같이 밥과 술을 먹으면 자연 친밀감이 생긴다. 얻어먹었다는 생각에 뭘 물어보면 웬만한 건 어렵지 않게 대답해준다.
[그렇게 펑펑 쓰는 돈이 빌린 돈만 아니라면 괜찮은 방법이겠지만요.]
어쩌겠나. 나는 커다란 삿갓에 면사로 얼굴을 전부 가린, 수상하기 짝이 없는 외지인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사람들의 호감을 살 수밖엔.
“그래서, 이 작은 마을에는 뭘 하러 오셨나? 볼 것도 없는 동네인데.”
“이 동네에 장원을 하나 샀거든요.”
“오호라, 역시 통 큰 공자님이다 싶었지. 그래, 이 동네가 풍광은 나쁘지 않지. 어디에 있는 장원을 사셨나?”
“언덕 너머에 오래된 장원이 하나 있죠? 태청장원이라고. 거길 샀어요.”
왁자지껄하게 웃음꽃을 피우며 젓가락을 분주히 놀리던 탁자 위에서 순간 정적이 흘렀다.
“……거, 젊은 사람이 좀 잘 알아보고 살 것이지.”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문제가 있다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오셨수? 거긴 미친개가 있다고.”
“미친개요?”
“그 낡아빠진 장원에 뿌리박고 안 나가려고 버티는 놈이지. 실력도 어마어마해서, 지금까지 그곳에 발 들인 놈들은 뼈도 못 추렸어.”
“마지막으로 그 장원을 샀다며 찾아왔던 이들이 반각 만에 목숨만 겨우 건져 돌아갔었지, 끌끌.”
“공자, 그 큰 배포를 봐서 우리가 충고를 해주는 거니, 돌아가서 계약을 무르쇼. 그 장원을 판 놈, 그거 아주 사기꾼이야!”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 흔한 허풍조차 섞여 있지 않았고, 사뭇 공포가 서려 있을 정도였다.
금왕전장에서도 처리하지 못한 담보물이라기에 예상은 했다.
“그곳에 발 들인 사람들이요, 그게 몇 년 전 일이에요?”
“어? 그게 몇 년이 됐더라. 한 오 년 전인가? 맞아, 근 몇 년간은 조용했구만.”
[그게 중요해요?]
중요하지. 여기저기 떠돌던 채권이 금왕전장의 손에 들어온 시기와 일치하니까.
누님이 늘어놓았던 여러 담보 중 내가 태청장원을 고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문제’가 되는 고수의 정보가 적혀져 있지 않았다.
둘째, 금왕표국이나 다른 무력집단이 담보물을 회수하려 했다는 기록이 없었다.
셋째, 금왕전장이 취급하기에는 지나치게 가격이 쌌다.
여기에 내 생각과 몇 가지 정보를 취합하면……
‘태청장원은 정치적인 문제가 있는 물건이라는 말이지.’
진짜 엄청난 고수가 뻗대고 있는 곳이라면 누님이 내게 이 물건을 시험 삼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으음, 그러니까…… 누군가 일부러 그 장원을 그 상태로 두고 있다는 건가요? 그래서 금왕전장에 채권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거고? 전장은 맡아둔 물건이니까 장원을 회수하려는 노력을 안 했고요?]
일단은 가정이지만.
[어렵네요. 차라리 환자 백여 명을 보는 게 낫겠어요.]
홍령의 한숨 소리에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장, 남은 음식 좀 싸줘요.”
“벌써 가시려고요?”
“이분들 말씀 들으니 겁이 나서 한번 보고 오려고요. 거리가 꽤 있으니 가다가 요기할 거예요.”
주인장은 바쁘게 절뚝거리며 오고 가더니 순식간에 몇 단의 찬합을 싸주었다. 꼭 멀리서 구경만 하다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묵을 방을 하나 잡아두라며 은자를 쥐여 준 덕일까?
[제가 의술 외에는 별 관심이 없긴 하지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요. 당신은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온 거죠?]
“그 정도 정보만 갖고 판단한 건 아니니까.”
나는 주인장이 가는 길에 오며 가며 간식으로 먹으라고 챙겨준 정과를 우물거리며 태청장원을 향해 산보하듯 걸었다.
“의원도 사람이라서 말이야, 환자랑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별 소릴 다 한다?”
날 마지막으로 맡았던 주치의가 그랬다.
받은 돈에 비해 제대로 된 치료를 못 하고 있는 게 양심에 찔린다며, 하루 종일 누워 있는 내게 중원에 떠도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개중에 그런 얘기가 있었거든. 새로운 무공을 창안했는데 이게 안전한지 알 수가 없잖아. 그래서 연고가 없는 사람에게 비밀리에 무공을 전수한다는 거야. 성공하면 비밀리에 키운 정식 제자라고 소개하고.”
[실패하면 버리고요?]
“폐인이 되지 않는 이상 아주 버리진 않겠지. 개선할 방도를 찾을 수도 있잖아?”
[지금 찾아가는 곳이 설마?]
“어떤 문파라는 말은 못 들었지만, 여긴 지리적으로 유명한 무림문파들이랑 가깝잖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지.”
구파 중에선 무당과 소림, 청성이 있고, 제갈세가와 사천당문도 멀지 않다. 가장 가까운 곳이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긴 하지만, 이놈의 중원은 정말 더럽게도 넓은 곳이니까.
두 식경 정도 걷다가 잠깐 멈춰 휴식을 취했다.
침통을 꺼내자 손이 신들린 것처럼 이곳저곳에 침을 놓았다. 이제 이 정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게 되었다.
“크게 문제는 없지?”
[여기까지 오느라 맥이 좀 지친 듯해요. 오늘은 푹 쉬는 게 좋겠지만…….]
“좋겠지만?”
[아까부터 따라오는 사람이 있어요.]
귀신인 홍령의 시야는 내 시야보다 넓다.
근시인 사람이 안경을 벗은 것처럼 흐릿하게 보인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범인에겐 불가능한 시야다.
누구지?
자객인가? 아님 그림자?
의심할 만한 요소는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큰 형님이 날 죽이기야 하겠냐만은, 감시 차원에서 그림자를 붙일 수는 있다.
그뿐인가, 아버지 금왕은 금가장을 중원 제일의 상가로 키워냈다. 그 과정에서 깊은 은원이 없었을 리가.
아버지에게 원한이 있는 이라면 대를 이어 내게 복수를 하려 드는 것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범주 내의 이야기다.
‘도망칠까?’
[내게 맡겨요.]
맡기라고?
순간 저 앞의 수풀이 부시럭거리더니 한 명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윽―”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절로 코를 감싸 쥐게 만드는 악취!
아까 객잔에서 음식을 구걸하던 그 거지였다.
“이리 내놔―!”
[어딜!]
어린 거지는 막무가내로 찬합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나 내 손에 깃든 홍령의 손이 훨씬 더 빨랐다.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꺼내두었던 침통이 열리고, 네 개의 은침이 쥐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는 침!
파팟!
순식간에 얼굴에 고슴도치처럼 침이 박힌 거지가 그 자리에 그대로 우뚝 멈추더니, 이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어― 헉―”
[혈을 제압했어요. 잠깐 동안은 움직이지 못할 거예요.]
뭐야, 이거? 대단해!
[별로 대단한 거 아니에요. 당신 몸에 내공이라곤 한 자락도 없어서 몇 분이 한계인 거라고요.]
아니, 충분히 대단했다.
내공이니 무림이니 하는 건 먼 세상 이야기나 다름없었는데, 내공 한 자락 없는 몸으로 상대를 점혈할 수 있다니!
홍령만 있다면 나도 반쯤은 무림인이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