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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화 (3/350)

3화

방으로 돌아오자 큰형이 보낸 하인들이 날 들여보내곤 문 앞을 막아섰다. 이젠 정말 꼼짝없이 갇혀 있게 생겼다.

다시 전과 같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 세 번 밥 때, 그리고 주치의가 내 맥을 살피러 오는 시간 외에는 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도련님, 계십니까?”

밥 때도, 주치의가 찾아올 때도 아닌데 방문이 열리고 꽤나 익숙한 자가 주위를 살피며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왔다.

“어? 너는?”

내 첫 번째 환자. 홍령의 손을 빌어 체한 것을 달래준 그 하인이었다.

그는 품에 끼고 있던 작은 보퉁이를 내밀었다. 침구와 약간의 뜸쑥, 그리고 두 권의 의서였다.

“답답하실 것 같아서 몰래 가져왔습니다. 숨겨놓고 보십쇼.”

“……고마워. 몰래 가져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도련님이 저희에게 해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막내 도련님만큼 우리에게 신경 써 준 분이 누가 있나요. 다들 걱정하고, 또 죄송해하고 있습니다.”

“죄송? 감사한 건 알겠는데, 죄송은 왜?”

“저희 때문에 외출 금지를 당하신 거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큰형은 금가장에서 부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라 그런 식으로 비쳐졌나 보다.

“그럼 저는 이만. 앞에 지키는 놈들에게 부엌 하녀들이 만두 쥐여 주며 빼돌린 거라 곧 돌아올 텐데…….”

“더 할 말이라도?”

“아, 그게…… 이게 소인이 말해도 되는 일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우리처럼 못 배운 사람들이 생각해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말이지요.”

“뭔데? 무슨 일 있어?”

하인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는 눈 딱 감고 입을 열었다.

“어르신이 많이 안 좋으신 모양입니다.”

“……아버지가?”

“막내 도련님께는 함구하라고 하셨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진짜 오늘내일 하신다는데 말입니다. 자식 된 도리로 얼굴도 못 보게 하는 건 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

[그러지 말고, 아버지에게 가보는 게 어때요?]

한참을 조용하던 홍령이 말을 걸어왔을 땐 주변이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밤이 깊어가는 도 모르고 충격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밖에 있던 장정은 졸고 있어요. 조용히 빠져나가면 눈치 못 챌 거예요.]

‘그런 것도 볼 수 있어?’

[흐릿하지만, 당신 주변 정도는요. 내가 망을 볼게요.]

과연 문을 살짝 열어보자 꾸벅꾸벅 조는 이가 보였다.

최대한 숨을 죽이고 내 거처를 빠져나오는데 심장이 뛰었다.

걸리면 이번엔 큰형님의 호통이나 감금 정도로 끝나진 않을 거라는 예감이 식은땀이 되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숨어요!]

[……좋아요, 지나갔어요.]

[몸을 낮춰요. 더!]

홍령의 도움으로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넓은 금가장의 내원을 가로질렀다.

달이 깊은 밤인데도 아버지의 처소엔 불이 밝았다. 의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방을 들락거렸고 독한 약을 달이는 냄새가 풍겼다.

한참을 기다리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아, 아버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곳에는 내가 기억하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하게 금가장을 이끌어가던 가주도 내게만큼은 다정하던 아버지도 아닌, 곧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노인이 누워 있었다.

“……이게 누구냐. 태양이 아니냐. 무슨 일이냐?”

“이렇게 아프신데 난 그것도 모르고……!”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아버지의 눈에 비친 내 표정은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모르기는,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 쿨럭. 내 맥을 짚고 한참이나 말이 없지 않았느냐.”

아버지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도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맞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맥을 짚었다.

‘설마. 넌 알고 있었어?’

홍령은 말이 없었다.

“나 죽은 뒤 네가 걱정이로구나.”

할 말을 잃은 내 손을 아버지의 주름진 손이 부드럽게 잡아 왔다.

아니, 그럴 리 없다. 이렇게 따뜻한데. 아직도 이렇게 따뜻한데. 돌아가신다니, 돌아가신다니!

“네게 주어지는 유산은 없을 거다. 기억하고 있겠지?”

“……네.”

“서운했을 게야. 허나 어쩔 수 없었다. 네 위로 일곱이나 되는 형제자매가 있으니, 막내인 네가 치이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어.”

“알고 있어요. 하나도 서운하지 않아요.”

“다 죽어가는 애비 앞에서 거짓은. 대신 내 사후 널 돌보는 녀석에게 조금 더 쥐여 줄 생각은 했지. 허나…… 요 몇 달간의 널 보니 그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내 손을 쥔 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가엾은 것…… 내 욕심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았다. 앞으로는…… 쿨럭, 너 하고 싶은 대로, 쿨럭, 컥……!”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한 아버지는 몇 번을 더 몸을 떨며 각혈하고는 이내 내 쪽으로 쓰러졌다.

“아, 아버지! 아버지! 돌아가시면 안 돼요, 아버지!”

옷이 피범벅이 되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숨이 멎은 노인의 몸이 온기를 잃어가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버지!”

“어르신!”

밖에서도 이변을 알아차렸는지 문이 벌컥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중에는 나를 발견하고 화가 머리까지 뻗친 큰형님도 있었다.

“내가 분명 꼼짝도 말라 했는데! 저 녀석을 당장 내보내! 방에서 한 발짝도 못 나오게 가둬놔라!”

“아버지, 아버지……! 흑흑…… 놔, 이거 놔!”

짜악―!

날 끌어내려는 하인들의 팔을 쳐내고 있는데 고개가 홱 돌아갔다. 뺨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다 네놈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건 네 놈 때문이야. 썩 꺼져라!”

큰 형님의 일갈과 함께 하인들이 나를 짐짝처럼 번쩍 들어올렸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쫓겨났다.

앞으로 이어질 장례와 입관, 사십구재에서도 배제됐다.

중원 전체에 퍼져 있던 형제자매들이 돌아와도 만날 수 없었다.

그들을 만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어.”

* * *

금왕(金王)이 죽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중원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금가장이 있는 호북 무한은 며칠째 조문을 온 이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황실과 관부, 무림의 주요 인사들은 물론 사파나 마교도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고, 언제 거기까지 소식이 들어갔는지 복색이 다른 새외의 인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였다면 은원을 다투었을 정사마의 인물들이 조용히 고인에 대한 조문만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새삼 금왕의 금력(金力)에 감탄했다.

금왕 사후에도 이어질 그들의 금전관계가 막강한 비무장지대를 형성한 것이다.

그들은 조문을 마치고도 돌아가지 않고 무한에 자리를 잡았다.

금왕 사후 그 자식들에게 나눠질 거대한 부(富).

그 향방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내는 것이 조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금가장의 가장 크고 화려한 방에 금왕의 자식들이 모여 앉았다.

“우선 금왕상단. 이것은 사전에도 내가 맡아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상단주가 된다.”

가장 상석에 앉은 금가장의 첫째, 이제는 금가장의 가주가 된 금왕의 장자 금건양의 말이었다.

“금왕표국과 금왕전장 또한 아버지께서 지시하셨던 대로 너희들이 맡으면 될 것이고…….”

“바빠 죽겠는데 자꾸 시간 끌지 맙시다, 형님. 어차피 그런 건 다 정해진 건 아닙니까?”

셋째 금감양이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게 누구 때문인지 빤한데. 빨리 정하고 흩어집시다. 표국 일이 상단처럼 그렇게 한가로운 줄 아쇼?”

사실 그랬다.

금왕은 자신의 사후를 걱정하며 모든 자식들에게 미리 재산을 배분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막대한 금왕의 유산 중 부스러기 하나조차 상속받지 못한 금왕의 막내아들.

그 이름 하여 금태양이라.

“그보다 더 중한 얘기 좀 해보자고. 그래, 아버지가 태양이 맡는 사람한테 유산을 떡하니 더 떼어주기로 했다면서.”

“오라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애를 돈 때문에 맡는 것처럼!”

“그럼 아냐? 진양이 너야말로 돈귀신이면서.”

“애가 들으면 어쩌려고! 가족이니까 당연히 챙기는 거죠!”

“뭐, 너야 태양이 그 녀석 이뻐 죽으니까 그렇다 쳐 주마. 그래서 형님, 그 당사자는 어디 있수? 아버지 장례 지내는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고 말이야. 또 비실비실하다 쓰러졌나?”

그렇다. 그들이 논할 것은 바로 금태양의 거취.

헌데 정작 본인이 자리에 없었다.

“안 그래도 그 건에 대해 말할 참이었다.”

첫째 금건양은 서찰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성격 급한 금왕표국주 금감양이 벌떡 일어나 서찰을 펼쳤고, 금양전장주 금진양도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디밀었다.

“형제 전상서. 이 부족한 막내는 그간 폐를 많이 끼쳤으므로 이제부터는 혼자…… 자리를 잡으면 연락…… 뭐라는 거야?”

“잠깐만, 오라버니! 이게 뭐예요? 이거 진짜예요?! 집을 나갔다는 거예요?”

모두의 경악한 시선이 금건양을 향했다.

이 서찰이 금건양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 금왕의 삼일장이 끝난 다음 날이었다.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금왕이 저를 그렇게 아꼈건만, 자숙하며 기다리지 않고 홀랑 내빼는 꼴이라니.

“제 발로 집을 나간 녀석이다. 너희들 중 누구라도 녀석에게 도움을 준다면 내 가만 있지 않을 것이야.”

금왕의 유산을 온전히 이어받은 장남의 말의 무게에 모두들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무한의 한 객잔.

한 식탁에 둘러앉은 치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자네들 그 얘기 들었나? 금가장이 말이야―”

“그놈의 금가장 얘기 지겨워 죽겠네. 벌써 며칠째 온 무한이 다 그 부자 영감님 죽은 얘기뿐이질 않나?”

“맞네. 자네도 호사가라고 자칭한다면 좀 더 귀 기울일 만한 얘기를 꺼내보란 말이야. 다들 아는 그런 얘기 말고.”

“어허, 이 사람들이! 날 뭘로 보고!”

맞다.

모든 소식이 화제가 되고 사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앞산에는 녹림채의 산채가 새로이 들어서고 뒷강에는 수적이 들끓으며, 어제는 마교가 준동하고 내일은 무림의 신성(新星)이 나타나는 일이 허다한 곳이 바로 이곳.

중원 무림.

그곳에서 웬만한 일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이 다사다난한 땅에서 자칭 타칭 호사가(好事家)라 자부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사건을 주섬주섬 풀어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 금가장의 막내 말이야. 그 막내가 행방불명이라는 소문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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