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1화 (1/350)

1화

헉. 허억.

숨이 찬다.

다리는 무겁고 폐가 터질 듯이 아프다.

심장이 찢어질 것만 같다.

쏴아아―

장대 같은 비가 내린다. 물을 먹은 옷이 천근처럼 무겁다.

“도련님! 금태양 도련님!”

“어디 계십니까!”

날 찾는 하인들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곧이라도 쓰러질 병자가 침상을 나와 도망쳤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인들의 목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몸을 숨겼다가 일어났다.

윽……!

아파, 너무 아파……!

‘죄송합니다, 대인. 도련님의 몸은 더 이상……’

‘이때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용합니다. 그만 보내주심이 어떠신가요.’

‘내 신의로 불리는 몸이긴 하나 이런 환자는 처음일세. 그래, 살리고 싶다라……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저 고통을 달고 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야.’

중원 제일의 의원조차도 연명(延命)만이 가능하다 단언한 몸.

원인 불명. 병명 불명.

확실한 것은 시시각각 찾아오는 고통뿐이다.

털썩!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 바람에 얼굴을 가리던 가면이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얼굴이 비쳤다.

온통 화농과 고름으로 뒤덮인,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까운 얼굴.

“흐윽, 끅……”

절로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걸음을 옮겼다.

하인들의 눈을 피해 찾은 이곳은 집안 외진 곳에 있는 창고였다.

이 안에 내가 찾는 것이 있다.

피부 사이사이를 개미가 기어 다니며 씹어대는 고통.

눈알이 파 먹히는 고통.

머리에서 쉴 새 없이 지뢰가 터지는 것 같은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

모든 사람들이 날 찾는 데 동원되었는지 다행히 문지기가 없었다.

잠그는 것을 잊었나. 문도 열려있다.

안에는 온통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왜, 살려준다는데 싫으냐? 하긴 그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긴 하지. 호오, 차라리 죽겠다는 눈이로구나. 어쩐다냐? 난 네 아비한테 천금을 받아서 네놈을 살려놓을 수밖에 없는데.’

‘죽고 싶다면 네놈이 알아서 죽으면 될 일이지. 어디 돌에 머리라도 깨든가, 아님 절벽에서 뛰어내리든가. 칼빵 놓고 뒤지는 법도 있지. 쉬운 길 마다하고 왜 나한테 애걸복걸이냐?’

‘호오, 알겠다. 죽을 때 죽어도 아프지는 않게 죽겠다?’

자신을 신의(神醫)라 칭하던 의원은 내 말에 킬킬대며 웃더니 한 가지 방도를 일러주었다.

‘네 아비가 귀물을 모아둔다는 창고가 있더구나. 거기에 참으로 귀한 단약 셋이 있지. 그 세 가지를 한 번에 복용하면 네놈의 몸뚱아리 정도는 순식간에 명이 다할 게다. 고통은 없을 게야. 그거 하나는 장담하지.’

단약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창고 안에서도 그 향긋한 냄새는 찾기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 향은 작은 상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자를 열자 그 향은 더욱 짙어졌다. 순간 콧속이 화끈해지더니 코피가 터져 나왔다.

“여기 그 애의 가면이! 태양아, 여기 있느냐! 태양아!”

“어르신. 도련님은 저희가 찾을 테니 이만 들어가시는 것이― 몸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시끄럽다! 태양아! 들리느냐, 아비다!”

단약 세 개를 두고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나이 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망설이면 안 돼.

발견된다면 이대로, 이렇게 하루하루 숨 쉬기만도 버거운 삶을 또 한없이 연장당해야 한다ㅡ

세 개의 단약을 한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아무 변화도 없잖아. 그 의원 나를 속였―”

아니, 변화는 있었다.

갑자기, 통증이 눈 씻듯 사라진 것이다.

“뭐, 뭐야? 하나도 안 아파.”

이 몸으로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순간은.

맞아, 이런 거였다. 보통의 삶이라는 것은.

정말 이렇게 아프지 않다면 얼마든지 더 살고 싶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

여태까지 겪었던 고통은 애들 장난이었던 것처럼, 더한 격통이 온몸을 엄습했다.

아프다는 생각조차 불가능했다.

온몸을 감싸 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살려, 살― 헉, 살려, 제발―”

고통 속에서 죽음조차 제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병상을 빠져나온 주제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또다시 삶을 애걸한다.

― 뭐야, 얘 또 이래.

― 이제 우리 쪽으로 건너오나.

― 이만 포기하지 그러느냐. 너는 저주받았다. 너의 업(業)은 살아 해결될 것이 아니니라.

한동안 들리지 않던 귀신들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나를 미칠 것 같게 만들었던 놈들의 목소리.

― 살고 싶나요?

그중에서, 딱 하나만이 벼락같이 귀에 꽂혔다.

― 그렇다면 내 손을 잡아요.

지금껏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으며,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만큼은 고통이 조금 사그라졌다.

― 손을.

손? 손을 어떻게 잡으란 말이야. 보이지도 않는 귀신의 손을?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손바닥만 한 길이의 상자였다.

붉은 꽃이 조각되어 있는 상자.

저거다.

무릎으로 기어가 겨우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각기 길이가 다른 침이 들어 있었다.

― 당신을 살리겠어요.

그 목소리와 함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손.

내 손이 마치 전설의 명의라도 된 것처럼 내 전신에 침을 놓았다.

뭐야, 귀신이라도 씐 건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대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동시에 몸 안에서 무언가 이상한 흐름이 느껴졌다.

“우욱―, 우웩, 웩!”

목구멍에서 시커먼 것들이 피와 함께 뒤섞여 토해졌다.

내가 삼켰던 그 단약이 틀림없었다.

세상에!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것 같았던 그것들이 이렇게 단숨에?

― 아직 멀었어요.

귀신은 멈추지 않았다. 손은 바쁘게 내 몸 여기저기에 침을 놓았고 목구멍은 계속 시커먼 피를 토해냈다.

종래에는 눈, 코, 귀 등 구멍이 있는 곳 여기저기에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개운해졌다. 아프지 않았다. 모든 고통이 점점 사라졌다.

― 됐어요. 당장 위험한 건 해결했고…… 보통의 몸이 아니군요? 이런 외진 곳에 갇혀선 귀문(鬼門)이 열린 자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이런 흥미로운 존재라니.

귀문? 그게 무슨 소리야?

― 다 알게 될 거에요. 이제 나는 당신과 함께할 테니까요. 설명할 시간은 많아요.

고통은 가라앉았지만 피를 몇 사발이나 토한 탓인지 눈앞이 흐려졌다.

“도련님! 장주님, 도련님이 여기!”

“어서 신의에게 알려라! 애를 찾았다고, 피투성이라고!”

나를 찾아낸 이들이 조심스럽게 나를 업어들었다.

그 바람에 상자가 손에서 떨어졌지만 귀신의 목소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 내 이름은 홍령. 귀계(鬼界)의 계약에 따라, 나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그대 또한 내 소원을 들어주어야겠어요.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다음 생에는.

죽음을 목전에 앞두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길어야 한 달입니다.”

암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조기에 발견한다면 얼마든지 수술 후 나을 수 있는 병으로 취급되는 그 암.

그 암이 나의 사인(死因)이 되었다.

“하던 일은 그만 두시고, 주변 사람과 시간을 보내세요. 연명치료도 가능하지만 아시다시피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비용도 상당하고요.”

“아시잖아요, 선생님. 저 관둘 일도 없어요. 회사 잘린 지가 언젠데.”

“회사 고소하고 계시잖아요. 그만 하고 쉬시라는 겁니다. 모아둔 돈도 다 쓰셨죠?”

“……그룹에서 사람 왔습니까? 선생님한테 그래요? 그 자식 고소 관두게 설득 하라고?”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 때, 죽기 직전의 나는 그만큼 몰려 있었다.

“……만날 사람도 없어요.”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일에 매여 사느라 여자들과는 깊은 관계가 되기 전 헤어지기 일쑤였다.

친구?

위로 향하는 경쟁 속에서 동기와 선후배는 어느 순간 적이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친구들도 하나 둘 연락이 끊겼다.

아니다, 내가 먼저 연락을 끊었던가? 일 하는데 자꾸 놀자고 부른다고, 방해된다고.

왜 그렇게 위로 올라가려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돈, 명예, 권력.

그런 것들을 갖고 싶었던 걸까?

“만날 사람은 없는데…… 기왕이면 그 놈 면상은 한 번 보고 싶네요.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대 치고 죽게.”

“그 놈이요?”

“나 자른 놈. 능력도 없는 주제에 욕심만 많은데, 로열 패밀리라 떡하니 본부장 타이틀 달고. 그 놈이 나 뽑았을 때는 그 놈 발가락이라도 핥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그 때는 지가 실수한 걸 나한테 덤터기 씌우고 튈 줄 몰랐지.”

하지만 그 소원마저도 불가능하다. 놈은 철통 경비 속에서 비행기 타고 미국으로 떠났으니까.

내가 그 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부터 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 안 해도 되는 로열 패밀리의 일원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원하던 이상을 펼칠 수 있었다면.

……그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다음 생이 있다면, 나도……

놀랍게도, 나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신이 나를 불쌍히 여긴 것일까?

심지어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어,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비록 그 돈이 썩어날 정도의 부잣집이 21세기 대한민국이 아니라.

무협지에나 나오던 무림 속의 부잣집이긴 했지만.

“이 나이에 늦둥이를 보게 될 줄이야. 내 이 아이의 이름을 태양이라 하겠다.”

금태양.

그것이 나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 * *

전생의 꿈을 꾸었다.

눈을 뜨자 눈가가 뻑뻑한 것을 보니 자면서 눈물이라도 흘린 모양이었다.

“정신이 드느냐.”

피곤하고 나이 든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백발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러나 걱정과 애정이 듬뿍 담은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녀석, 갑갑했으면 말을 해서 안전하게 산책을 다니질 않고. 쿨럭, 쿨럭―”

“괘, 괜찮으세요?”

“괜찮다마다. 간만에 네 녀석 찾으려고 운동을 한 덕에 온몸에 활기가 도는구나. 쿨럭, 크흠.”

아버지는 애써 기침을 삼켰다. 장대비 사이를 뛰어다니신 탓에 감기에 걸리셨나 했더니, 젖은 옷깃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내 피가 아니니 걱정 말고 네 몸이나 살피거라.”

정신을 잃어갈 때 내 몸을 일으키던 감각.

하인들 중 하나인가 했는데, 아버지께서 직접 나를 부축하셨나?

“이만 가보마. 쯧… 가엾은 것. 쿨럭. 다들 나가거라. 태양이 쉬어야 한다.”

아버지는 내 이마를 쓸더니 안타까운 눈을 하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살피면 살필수록 신기한 체질이군요. 태어나자마자 죽었어야 정상인데, 이 가득한 진기는 또 뭐람?]

그리고 그 귀신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또렷하게 들려왔다.

원래 귀신의 목소리는 생사의 경계에 있을 때나 흐릿하게 들리던 게 다였다.

아까 내 손이 신들린 것처럼 침을 놓았던 것도 그렇고.

설마, 아파 뒈지다 못해 이제 귀신까지 들린 거야?

[흠, 내 말이 잘 들리나요? 아무래도 당신에게 잘 달라붙은 모양이네요.]

죽었다 깨어난 데다 갑자기 귓가에 환청처럼 귀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다니.

[좋아, 이제 내 소원을 들어줄래요?]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도 했는데 귀신의 존재도 못 받아들일까 보냐.

[나, 환자를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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