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권 - 78화 (79/84)

1장 기련산에 부는 혈운(血雲)

 저무는 태양 아래 새하얀 빛을 발하던 기련산의 만년설이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급격하게 어둠이 밀려든다. 밤사이 일어날 혈풍을

미리 예견한 산새들은 서둘러 둥지로 찾아들고 간간이 들려오는 부엉이 울

음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움직임도 일지 않는다.

 적막강산으로 변해버린 심산(深山)의 어둠을 뚫고, 수백의 인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공적토벌대(公敵討伐隊).

 과거 천마맹 자리에 숨어 있는 강호공적들을 척살하기 위해 공적토벌대란

이름을 걸고 철마궁을 떠난 토벌대였다. 이번 토벌에는 거의 오천 명의 무

인들이 참여했다. 실제 철마궁에 모인 인원은 칠천이 넘었는데, 이천은 보

급 등을 조달하기 위해 남았다.

 "저곳이 좋겠습니다, 낭선배님."

 가장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고 있는 인물. 산서성에서 나찰마궁과 제마각을

 상잔(相殘)시켜 양패구상을 하게 만들었던 주역 중 한 명인 유대운(劉大運

)이었다.

 그의 출세 또한 놀랍도록 빨랐다. 천무맹과 천마맹 본진의 마지막 전쟁에

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혈맹의 주요 인물로 부상하였고, 지금은

다정검(多情劒)이란 별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너무 좁지 않은가."

 육십 대의 비쩍 마른 노인이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유대운의 말을 받

았다.

 장백신마(長白神魔) 낭추(狼秋). 이십 년 전만 하더라도 그의 장백마공(長

白魔功)은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하였다. 거의 구마와 같은 수준으로 치부

될 정도로 그의 위명은 천하에 진동했었다.

 그랬던 그에게 한창 욱일승천(旭日昇天)하고 있던 철목승은 자신의 위명을

 다시 한 번 떨치기 위한 훌륭한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중하게 거절

하는 철목승을 도발하여 비무를 하게 되었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비무를 시

작한 그가 철목승과의 대결에서 버틴 시간은 정확히 삼 초였다. 철목승의

옷깃 한 번 건드리지 못하고 단 세 번의 부딪힘으로 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철목승이 손속에 사정을 두어 겨우 목숨을 건질 정도로 철저하게 당했다.

 그 자리에서 자결하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무림을 떠났다. 그런데 그 빚을

갚을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자신의 모든 명예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철목

승이 강호공적으로 지목되었다.

 서둘러 철마궁에 도착한 낭추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철

목승을 천하제일인으로 만드는 데 일조(一助)했었던 많은 무인들이 칼을 갈

고 있었던 거였다.

 패배자들.

 철목승에게 패하여 은거할 수밖에 없었던 무인들이 다시 강호로 나온 것이

다. 그들 전부가 기련산 어딘가에 있다. 전부 오백 명씩 열 개조로 나누어

출발했으니 지금쯤이면 전부 이곳에 들어와 있을 터였다.

 '내가 너무 예민해 있나?'

 유대운이 가리켰던 장소에 도착한 낭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흔들며 자

신이 들어온 장소를 찬찬히 살폈다. 실상 가까이 와서 보니 의외로 넓었다.

 같이 온 오백여 명의 무인들이 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넓은 공간이었다

. 더구나 작은 못까지 있어서 하룻밤 야영하기에는 더없이 좋아 보였다.

 "접주님, 여기 물 가져왔습니다."

 그는 유대운의 부하 한 명이 가져온 물주머니를 받아들며 이내 불안한 생

각을 지워버렸다. 천마맹이 있는 홍석산(紅石山)에서 이곳 기련산 초입까지

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또한 제천맹에서도 적의 움직임에 대해서 아

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게 그의 마음을 풀어지게 하였다.

 "캬! 시원하다."

 물을 마신 낭추가 나지막한 탄성을 발했다. 한낮의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해

주는 시원함이었다.

 그러나 낭추를 비롯한 오백여 명의 혈맹무인들은 물맛의 시원함만 생각했

지, 자신들이 먹고 있는 물이 죽음으로 가는 길임을 그때까지 알지 못하였

다.

 "커억! 독! 독이다!"

 먼저 물을 마시고 한편에서 쉬고 있던 부하들이 비명과 함께 가슴을 틀어

쥐었다. 순식간에 혈맹의 인물들 사이에서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졌다. 너

무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설마 공적들이 기련산까지 나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였다.

 "우욱!"

 갑작스런 부하들의 모습에 해쓱해진 얼굴을 하고 있던 유대운 또한 가슴을

 틀어쥐며 무릎을 꿇었다. 심장 부위에서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밀려온 것

이었다. 중독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

 장백신마 낭추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내공 덕에 견디고 있지만 급속하게

치밀어 오르는 독기를 내리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러나 혈맹무인들의 위기는 시작일 뿐이었다. 팽가인들, 가문의 터전을

버리고 홍석산 천마맹으로 숨어들어야 했던 그들이 살기 어린 눈으로 주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여!"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함께 토벌대가 있던 오른쪽 숲에서 무수한 인물들이

솟구쳐 오르며 우왕좌왕하고 있는 혈맹무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아악! 크악!"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피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오십

년 세월 속에 묻혀 있던 팽가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팽가였던가……."

 낭추의 얼굴이 절망적으로 변했다. 새하얀 빛을 뿌리고 있는 무기들, 대부

분이 도(刀)였다. 강호무림의 세력 중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도를 사용하는

 하북팽가였다.

 이미 대항이란 말은 의미가 없었다. 절반 정도가 독에 중독되었고, 나머지

는 갑자기 들이닥친 팽가인을 피해 도망치기 급급했다. 강호공적을 토벌하

기 위해 철마궁을 떠나왔던 혈맹의 인물 중 백여 명만이 살아남았을 뿐이었

다. 그들마저도 각자의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비겁하구나, 팽무경. 칼을 든 무인이 독을 사용하다니."

 끓어오르는 독기를 겨우 진정시킨 낭추가 분노의 일성을 토했다. 팽가의

가주인 팽무경의 얼굴을 처음 보았지만 그의 애도가 철혈적성도(鐵血摘星刀

)라는 건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한때 강호를 지배했던 가문이 아닌가

. 설마 살아남기 위해서 이런 저급한 수단까지 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터

였다.

 "오호! 그대가 장백신마 낭추인 모양이군."

 개방의 위력이었다. 서안에 있는 철마궁에서 출발한 무인들 중 요주의 인

물들은 대부분 조사해서, 그들의 이동 위치까지 파악하여 천마맹으로 보내

주었다. 토벌대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이유였다.

 "비겁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가만히 있었다."

 지금 천마맹 건물 안에 있는 팽가나 남궁세가, 그리고 무욕인들. 어느 한

곳도 강호를 향해 검을 뽑은 세력이 없다. 오십 년 봉문을 마치고 조용히

살고 있는 자신들을 강호공적이라 한 곳도 제천맹이고, 먼저 공격을 해온

곳도 그들이다.

 자신들은 오직 방어만 할 뿐이다.

 "비겁이란 말은 그럴 때 쓰는 게 아니다. 지금 같은 경우에만 쓰는 말이지

."

 말을 마친 팽무경이 가볍게 도를 날렸다. 독에 당해 운신도 못하는 적을

해치는 행위가 비겁한 짓이라는 말이었다.

 그의 손을 떠난 철혈적성도는 낭추의 목을 잘라버린 후 원래의 자리로 돌

아갔다. 이기어도, 도를 날려 상대를 격살하는 절대적인 경지가 그의 손에

서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그가 낭추를 처치하는 그 순간, 팽월의 오호단문

도는 유대운의 목을 잘랐다.

 "가자, 지금부터 사냥이다!"

 낭추의 목을 잘라버린 팽무경이 제자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순식간에

 토벌대를 괴멸시켜버린 팽가인들이 도망친 적을 쫓아 몸을 날렸다. 지금부

터는 천천히 추격해야 한다. 서둘러 적을 추격할 필요가 없다. 절대적인 공

포를 느끼면서 죽어가도록, 한 명씩 그렇게 죽여야 하는 것이다.

 혈맹의 인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그 순간, 기련산의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 기련산에 있는 대부분의 못에는 독이 풀어져

 있었다. 독에 대한 대비를 미리 했거나 아예 산중의 물을 마시지 않은 자

들만 중독을 면케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남쪽에서 팽가의 인물들이 진득한 살기를 뿌리며 혈맹의 잔당을 추격하고

있는 동안, 그들보다 북쪽에 있는 철목승과 무욕인들은 뜻밖의 인물을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절 받으십시오, 부맹주님."

 철목승을 향해 큰절을 하고 있는 인물, 마군자(魔君子) 사진악(司鎭岳)이

었다.

 백무천과 같이 금황비동(金皇秘洞)에 들었던 그가 벽력천가의 무공인 벽력

혼원황(霹靂混元荒)이란 일 초의 무공을 수습하고 드디어 출두했다. 과거에

 비할 바 없이 강해진 자신의 무위에 스스로 흡족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

그에게 엄청난 소식이 들려왔다.

 천마맹이 천무맹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강호상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더구나 감숙성에 남아 있던 철목승과 무욕인들에게는 강호공적이란 굴레가

 씌워져 있었다. 자신이 떠나 있던 사이에 대 변혁이 일어나 버렸다. 혼자

만의 연정을 간직하고 있던 냉추렴은 죽었고, 다시 만나면 반드시 겨뤄보리

라 했던 백산이란 친구도 그녀와 같은 길을 갔다고 하였다.

 다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감숙성으로 향했다. 설마 했던 강호의 소문이 전

부 사실이었다. 제천맹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철목승을 비롯한 모든 무욕

인들이 출동하고 없었다.

 사부인 악천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철목승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가 지키

고 있는 곳이 백무천의 이동경로라 하였기에 다시 한 번 그와 겨뤄보고 싶

다는 생각이 있었다.

 "강해졌구나."

 "살아오기 위해서 강해져야 했습니다."

 원래는 좀더 일찍 나오려 했었다. 거의 팔 성 정도까지 익혔던 무공이 더

이상 진전이 없었기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심열화천(地心熱火川)을 건널 방법이 없었

던 것이다. 그곳에 있던 용암교가 폭발에 의해 전부 파괴되어버렸음은 물론

이고, 지심열화천의 폭 또한 자신이 건널 때보다 훨씬 넓어져 있었다. 무공

을 대성한다 하여도 나갈 수 있을지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공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금황비

동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지심열화천의 열기를 이용하

여 다시 무공연마를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거의 십 성의 경지에 이르자 지상에

서 가장 뜨겁다고 하였던 지심열화천의 열기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을 느

꼈다. 처음엔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곧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벽력혼원황

의 모태는 화공의 극치라는 화룡파천비공(火龍破天秘功)이다. 열기에 강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의 무공성취가 팔 성에 머물렀던 이유가

화정(火情)의 부족 때문이었다.

 비록 화령극지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화황척을 이용해서 열기를 흡수

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오신가를 없앴던 혈가의 후예가 만들어준 신기

(神器)답게 극화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벽력혼원황을 대성

했다.

 무공을 대성하자, 지심열화천은 더 이상 지상에서 가장 뜨거운 열기가 아

니었다. 오히려 편안하다는 느낌뿐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인연이구나."

 하늘이 부여한 운명이라면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백산의 품에

있던 천선비도가 백무천과 사진악에게 이어졌고, 백산과 같은 운명을 타고

났던 혈가의 후예가 없애버렸던 금신가의 무공이 세상으로 나왔다. 또한 그

 금신가의 후예와 관련된 자들에 의해 백산 일행이 당하지 않았던가. 그것

도 그가 가지고 왔던 광천뢰에 의해.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지 싶었다.

 "대형이 마신가(魔神家)의 후예다. 혈가의 후예는 추렴이의 남편인 백산

그 녀석이고."

 초상이 사진악에게 그동안의 경과를 간단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단편적인

소문만 듣고 혹여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랬군요……. 행복했겠군요."

 사진악이 나지막하니 중얼거렸다. 백산의 행동이 부러웠다. 사람을 사랑한

다는 것은 말처럼 단순하지 않을 터였다. 입으로야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한

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만약 자신에게 그런 상황이 왔더라면 과연 목숨을 버

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래, 맞다. 수십 년 세월을 산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삶이었다고 믿는다.

세상 어느 남편이 제 부인이 죽는다고 같이 죽겠느냐. 그런데 그 녀석은 그

랬다. 혼자 보내는 저승길은 너무 힘들다고 같이 죽어버린 놈이다."

 철목승의 몸에서 또다시 살기가 넘실댔다. 살아서 복수를 해줄 일이지, 그

게 사내가 해야 할 일이지, 제 부인의 복수를 누구더러 하라고 그렇게 죽는

단 말인가.

 "대형!"

 철목승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초상이 깜짝 놀라며 뒤쪽으로 물러났

다.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철목승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마신가의 본 무공인 게다. 검은 안개 같은 기운, 이미 마기(魔氣)마저도 유

형화시킬 수 있는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크윽!'

 사진악 또한 내심 비명을 토했다. 가공할 기운이었다. 벽력천가의 마지막

후예는 신가의 무예에 필적한다 하였는데 지금 철목승의 기운을 접해보니

아니었다. 오신가 중 수위를 차지하는 마신가의 무공답게 단순한 기운만으

로도 자신의 내부를 뒤흔들어버렸다.

 말로 형언하기 힘든 엄청난 힘이었다. 아울러 자신이 익혔던 무공에 대한

회의마저도 생겼다. 사실 금황비동에서 신가들의 무공에 대해 접했지만 무

위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신가의 무공이 강하다 하였지만 실제 겪어보지도

 못했고, 설사 부딪친다 하더라도 지리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이럴 수가…….'

 그런데, 단지 기세만으로 자신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어버리지 않는가.

 그저 놀라움뿐이었다. 그러나 그건 사진악의 착각이었다. 벽력천가의 무공

인 벽력혼원황의 근원은 내공보다 병기인 화황척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

었다. 자신이 익힌 무공은 화황척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일 뿐이라는 사실

을.

 '하지만 벽력혼원황은 신가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무공이다. 결코 오신가의

 무공에 뒤질 이유가 없다.'

 내심 이를 악문 사진악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무공을 익힌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었다.

 "무공을 시험해보고 싶더냐."

 오십여 장 밖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감지한 철목승이 사진악을 쳐다보며 물

었다. 그의 몸에서 풍겨져나오는 투기(鬪氣)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네, 부맹주님."

 단순한 명예욕 때문에 싸우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천 년 전 벽력천가의

 마지막 후예라 하였던 벽력천왕(霹靂天王) 뇌음(雷陰), 그분의 유명(遺命)

을 들어주고 싶었다. 아마 그분이 가장 넘고 싶어 했던 가문은 오신가 중

금신가일 터였다. 언제나 상전으로 모셔야 했던 금신가를 넘어서고 싶어서

금황비동에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출도하자마자 금신가의 무

공을 익힌 백무천이 다가오고 있다. 온몸 가득 호승지심이 끓어올랐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지. 백무천만 남기고 전부 죽이게."

 서문천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지만 용서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놈들을 죽

이고 난 후 더 많은 적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을 저질러

봐야 본인만 힘들어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나 그마저도 하지 못하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분노를 표출해야만 냉철함을 유지할 수 있을 터였다.

 "고맙소, 대형. 동생의 말대로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소."

 초상이 손바닥에 침을 뱉어 비비며 하얗게 웃었다. 추렴이의 복수를 할 기

회가 찾아왔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광풍대원들을 뒤로하고 차마 떨어지

지 않는 발길로 이곳에 왔다.

 감숙성에 도착한 후 철목승을 대하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후회였다. 차

라리 돌아오지 말 것을 하는 생각뿐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게 더 힘들었

다. 오직 복수의 칼을 갈며 무공에만 몰두하는 철목승, 그와 만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사랑했던 여

인이 자결했을 때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저들은 독에 중독되지 않았나보오."

 "그랬겠지, 제갈수연 정도면 이곳의 상황을 능히 예상하고 있었을 테니까.

"

 두 사람의 생각대로였다.

 백무천이 이끌고 있는 토벌대 오백은 산중에 있는 물을 입에도 대지 않았

다. 오직 자신들이 들고 왔던 음식과 물만 조금씩 먹고 마시며 전진해나가

고 있었다. 제갈수연의 지시에 의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세력은 그대로 보

존하고 혈맹의 인물들만 제거하려 하는 그녀의 씀씀이였다.

 서문천도 제갈수연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백무천을 상대할 인물이 철목

승밖에 없기에 그를 보냈던 것이다. 백무천이 끌고 온 자들까지 이번 작전

인 '적당한 공포'에 포함시켜버렸다.

 "응? 이 기운은……."

 앞에 보이는 초원지대를 항해 나아가던 백무천이 우뚝 멈춰 섰다.

 거의 오백 장 정도 되어 보이는 경사진 초원지대에서 이상한 기운이 스멀

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친숙함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생

각하면 천적을 만났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경계심 같기도 한 기운이 감지되

었다.

 "누군가!"

 전방을 향해 나지막이 소리를 질렀다. 너무 이르다 싶었다. 지금 자신이

있는 이곳은 기련산 초입일 뿐, 아직 적이 나타날 시기가 아닌 것이다.

 '어서 와라, 백무천!'

 '이런……. 기다리고 있었군.'

 자신에게 들려오는 전음을 접한 백무천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그와 제

갈수연이 원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기련산에 강호공적으로 선포했던 자들이

 대기하고 있을 거란 사실은 이미 예상했었고, 또한 대비도 했다.

 제천맹의 무인들은 그저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선에서 이번 일을 처리하고

자 하였다. 해서 가장 뒤쳐져서 왔던 것인데 적과 조우하고 말았다. 그것도

 가장 만나기를 꺼려했던 자와.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일 뿐이야.'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강호공적을 처치하고자 구성했던 토벌대인데

 수장인 자신이 도망친다면 그들의 비난을 감당할 길이 없다. 결국은 싸우

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백무천이 표정을 바꾸며 초지 위로 걸어나갔다. 한 번은 겨뤄보고 싶었던

사람이다. 오신가 중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신가의 무공을 익힌 철

목승이지만 자신 역시 금신가의 무공을 익혔다. 같은 신가의 무공일 뿐 개

개인의 능력이 우선하는 게다. 누가 얼마나 익혔느냐에 따라서 고하(高下)

가 결정되는 무공이라는 것이다.

 금신가의 무공을 완전하게 익히지 못했지만 철목승 또한 얼마나 익히고 있

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무공 정도를 알기 위해서라도 한 번의 비무는

있어야 했는데 그 기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아울러 제갈수연과 자신의

계획도 철목승을 만나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담운천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선 자신 또한 이곳에서 내상을 당해야 했기에.

 "오랜만이군, 백무천!"

 "너는……? 쿡! 살아나왔군."

 그러나 그가 원하는 철목승이 아닌 사진악이 나서자 백무천의 입가에 비릿

한 조소가 맺혔다. 금황비동에서 어떻게 살아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착

각하고 있는 듯한 사진악이 가소로웠다. 자신을 과거의 백무천으로 생각하

고 있는 게다, 이미 신가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자신을.

 "왜, 우습나? 금신가의 무공을 익혔다고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군."

 "호! 그곳에서 뭔가 얻었더냐?"

 조금씩 기세가 변해가는 사진악의 모습을 쳐다보던 백무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자신이 익힌 화룡파천비공과 아주 유사한 기운이 느껴졌다. 결코

경시할 만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금황비동에서 무얼 얻었든지 아류일 뿐이야."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최고는 화룡파천비공밖에 없다. 또

한 금신가의 비공에 필적하는 무공은 신가의 무공밖에 없다는 자존심이었다

. 금장천이 했던 말, 금신가의 자존심은 금력(金力)이 아니라 무공(武功)이

라 했던 그 말의 의미를 진작 깨달았다. 오직 힘만이, 절대적인 강함만이

선(善)이 되는 세상인 게다. 무림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사 이치가 그러했다

.

 "그 아류의 힘을 보여주마."

 화황척을 꺼낸 사진악이 벽력혼원황(霹靂混元荒)을 운기하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화악!

 순간 그의 몸으로부터 극양의 불길이 솟아오르며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몰아쳤다. 벽력천가의 염원을 간직한 벽력혼원황이 처음으로 그 위용을 드

러냈다. 오직 신가를 넘어서기 위해 만들어졌던 일 초의 무공이…. 그런 사

진악을 주시하고 있던 백무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전설의 신조(神鳥)인

 가루라(迦樓羅)의 형상으로 변하여 화염의 기운을 쏟아내고 있었다.

 "누구의 불이 더 뜨거운지 볼까? 화룡지천무!"

 허공을 향해 십여 장가량 솟구쳐 오른 가루라가 양 날개를 힘차게 내저었

다. 그동안 백무천도 놀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백산에게 당했던 때를 기억

하고는 심적인 고통을 극복하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의 무공을 성장시키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곳은 담운천이 설치한 천신

가의 역천무한귀역진(逆天無限歸逆陣)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진 속에

 들어가 정신 강화훈련을 했었다. 덕분에 많은 진전이 있었고 백산과 비무

를 할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철목승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나설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당연히 그의 눈에 비친 사진악의 행동은 가소로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제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 모습인 게다.

 그러나 백무천이 알지 못한 사실이 있었으니…. 사진악이 들고 있는, 일견

 평범하게 보이는 화황척이 광혈지옥비를 만들었던 가문의 후예인 파멸안에

 의해 만들어진 신기였고, 또한 사진악이 익힌 벽력혼원황이란 무공은 신가

의 무공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무공이라는 것을.

 "벽력혼원황(霹靂混元荒)!"

 거대한 불꽃 모양이 되어 화염을 휘날리던 사진악의 입에서도 천지를 진동

시키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어버린 사진악의 신형이

괴이한 소성을 발하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십여 마리의 화룡 속으로 뛰어

들더니 수중에 있던 화황척을 힘차게 내질렀다.

 그러자 엄청난 광경이 일어났다. 마치 뇌성이 울리는 듯한 음향과 함께 사

진악의 화황척에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쏟아져나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

성(流星)의 모습이 저러할까. 엄청난 크기의 불덩어리가 열두 마리의 화룡

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들었다.

 쿠아앙!

 두 개의 거력이 부딪친 충격파는 지면까지 전해졌는지 사방에서 튀어 오른

 흙더미들이 순식간에 재로 변하며 흩날렸다.

 "엄청나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초상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

다. 무공의 극(極)을 보는 것 같았다. 백무천과 사진악의 무공은 백산이 펼

치는 무공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광혈지옥비에 의해 펼쳐지는 백산의 무공

은 처절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저들에게는 화려함이 있다. 눈을 황홀하게

해주는 화려함 속에 하늘의 힘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게다.

 스스로 신(神)의 무공이라 칭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질시할 수

도 없는 강함이었다.

 "그러나 신은 아니지."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세상사에 탐욕을 부리는 인간들일 뿐이다. 남보다

조금 강한 인간들.

 두 사람을 주시하던 초상이 거이산과 반동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이제 자

신들의 일을 하자는 의미였다. 저들은 저들의 싸움을 하는 거고, 자신들은

자신들의 싸움을 해야 한다. 초상을 따라 이백 명의 무욕인이 백무천이 걸

어나왔던 숲 속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의 일은 제천맹의 무인들을 도륙

하는 것이기에.

 "대단하구나, 사진악."

 사실 광사 초상보다 더 놀란 사람은 비무 당사자인 백무천이었다. 비록 화

룡파천비공의 일 초라 하지만, 가볍게 받아낸 사진악의 무위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또한 자신과 똑같은 위치에서 불꽃을 날리며 서 있는 모습이라니

. 과거 금황비동에서 있었던 마지막 대결이 생각났다. 그때도 서로가 대등

한 비무를 했었는데 지금도 역시 똑같다. 자신이 강해진 만큼 사진악도 강

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열두 마리의 화룡이 파괴되었으나 자신의 정

신에는 아무런 충격이 오지 않았다. 과거 초리하에서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의미인 것이다.

 "화룡천멸무!"

 "벽력혼원황!"

 십여 장 거리를 두고 허공에 머물러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두 번째

무공을 펼쳤다. 미증유의 열기가 밤하늘 가득 퍼지며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 마흔아홉 마리의 화룡이 서로 뒤섞이며 춤을 추고, 수십 개의 화염덩어리

가 그 화룡을 향해 물밀듯이 다가간다. 벽력천가 가주의 말처럼 결코 신가

의 무공에 손색이 없었다. 이기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결코 패하지 않는 무

공을 만들어냈던 거였다. 단 일 초식, 벽력혼원황이란 일 초식의 무공으로

화룡파천비공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과거 중원을 지배했던 지배자들의 무공이 격돌하고 있는 가운

데, 그들의 아래인 지상에서는 현시대의 무공들이 서로 다툼을 벌이고 있었

다. 그러나 그들의 다툼은 단순한 비무가 아니었다. 잘린 육신과 피가 난무

하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는 사람은 초상이 아니었다. 천하제일인 철목승, 이

 시대의 천하제일인인 그가 일초지적도 안 되는 제천맹 무인들을 향해 가차

없이 살수를 전개했다. 아무런 말이 없는 가운데 천마장법의 일 초인 사혼(

死魂)이 펼쳐지고 이 초인 멸혼(滅魂)이 뒤따른다. 죽어가는 상대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또 다른 상대를 찾아 삼 초인 무혼(無魂)이 작렬해든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상대의 무공 고하와 신분 여하에도

 상관없이 오직 죽음의 살기만을 뿌려대고 있었다. 먼저 죽어간 딸의 영혼

을 달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다짐이었다.

 "후퇴하라!"

 백무천과 같이 왔던 문상이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었다.

 무욕인들만 해도 상대가 아니거늘 철목승까지 가세하여 제천맹 무인들을

도륙하고 있다. 그의 앞에 있던 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간다.

 부하들보다 자신이 살기 위해 후퇴를 명해야 했다. 형식상 참여했던 작전

에서 허를 찔리고 말았다. 거의 일각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생존자가 백

여 명밖에 없었다.

 "쿡! 우리의 대결은 또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제천맹의 무인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백무천이 몸을 뒤로

뺐다. 철목승까지 가세하면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취한 행동이었다.

 철목승과 싸워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지만 사진악만 해도 엄청난 고수

였기에 자신이 내상을 당했다고 하면 모두 믿을 것이다.

 "우웩!"

 바닥으로 내려선 사진악이 끓어오르는 기혈을 억제하지 못하고 피를 토했

다. 역시 신가의 무공은 강했다. 모든 내력을 다 짜내서 공격을 가했지만

결코 잡을 순 없었다. 그러나 뇌음, 그분의 소원은 들어준 것 같았다.

 "왜 그냥 두신 거요."

 백무천이 가는 것을 쳐다보기만 하는 철목승에게 초상이 물었다. 제천맹

무인들에게는 추호도 인정을 보이지 않던 그가 냉추렴의 죽음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백무천은 그냥 두기에 묻는 말이었다.

 "시기가 아닌 게지, 지금은 아니야."

 참고 있는 거였다. 자신의 몫인지를 확신할 수 없기에 내버려두었다. 놈의

 목을 취할 주인은 따로 있는 게다. 사 년 뒤 녀석이 돌아오지 않으면, 하

북팽가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야 자신의 몫이 되는 거다.

 "금방인 게야, 아주 짧은 시간."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철목승이 몸을 날렸다. 천마맹이 있는 홍석산으로 돌

아가기 위해서였다.

 제천맹이 아무리 커진다 하여도 감숙성에는 발을 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섬서성까지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

 감숙성은 언제까지나 자신들의 땅이 될 터였다.

*     *     *

 "괜찮으십니까, 부맹주님."

 문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백무천을 쳐다보았다. 무욕인들의 공격 때문

에 정신없이 도망을 쳤기에 백무천과 사진악의 비무를 끝까지 보지 못했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들보다 한 시진이나 늦게

도착한 백무천이 엄중한 내상을 입고 돌아온 것이었다.

 "두 놈에게 협공을 당했소."

 해쓱하게 변해버린 얼굴과 연신 피를 토해내는 모습은 극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임을 쉬이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담운천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이었다. 철목승과의 대결해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위해(危害)

를 가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소."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일반 무인들과 제천맹 인물들만 조금 살아왔을 뿐

 혈맹무인들은 대부분 전멸했습니다."

 감정이 격앙되었는지 문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강호공적으로 선포

된 자들을 처단하기는커녕 오히려 도망치기에만 급급했던 자신의 행동이 부

끄러웠다.

 "이게 다 개방 때문입니다."

 개방이 아니라면 자신들의 정보가 새어나갈 리 없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개방을 방치하고 있는 수뇌들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문상, 지금 제천맹의 힘으로 개방을 칠 수 있다고 보는가. 강호공적도 아

닌 그들을."

 "그게……."

 백무천의 물음에 문상이 할 말을 잃었다. 많은 수의 무림인들이 제천맹에

가입하고 있지만 아직은 진정한 맹의 세력이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

다. 더구나 개방은 이번 강호공적 선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정확한 물증도

 없이 강호에서의 최대문파를 공적으로 몰게 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터

였다.

 "우린 세력을 더 키워야 하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곳에서의 패배는 독(

毒)이 아니라 약(藥)이 될 걸세."

 결국 마신가의 후예인 철목승을 잡기 위해선 담운천 그가 직접 나서야 한

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고, 제천맹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보여준 일전이었

다. 이젠 담운천도 더 이상 광혈지옥비와 철목승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터였다. 자신과 제갈수연이 원하는 바였다.

 "문상! 자네가 이곳을 맡아 정비해주게."

 "알겠습니다, 부맹주님."

 문상이 감격의 표정을 지으며 백무천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초리하에서

는 구파의 자존심을 들먹이며 백무천을 무시했던 그가 이제 와서 제천맹의

섬서 지부장으로 낙점이 되자 감격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럼 이제 북경인가?'

 백무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제천맹으로 돌아가 담운천을 만난 다음

, 요양을 핑계로 북경으로 가야 한다. 어쩌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더 큰

일이 될 수도 있음이다. 이미 강호는 제갈수연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

이고 있기에 마음을 놓아도 된다. 오직 시간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문제는 북경이었다. 담운천이 패하고 황실이 안정되었을 때, 황제의 분노

를 피하기 위해서는 연줄을 만들어야 한다. 황실에 복종하는 제천맹의 모습

을 보여주어야만 목숨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수고하시오, 지부장."

 백무천이 하남성의 제천맹으로 길을 떠나는 그 시간, 홍석산의 천목애에서

도 두 명의 인물이 길을 나섰다.

 철목승과 사진악이었다.

 이제는 감숙성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제천맹은 몸통을 키우기

에 여념이 없을 터이고, 자신들에게는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 동안 석숭을

 도와 황실을 안정시켜야 한다. 많은 인원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담운천과

 각인대사를 막아줄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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