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4/84)

제6장 장강삼협

 구곡양장 깎아지른 절벽사이로 굽이치며 휘몰아치는 탁류와 급류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하류를 향해 무섭게 질주하였다.

 서릉협(西陵峽), 무협(巫峽), 구당협(瞿塘峽), 이른바 장강삼협에 이르면

어느새 인세(人世)는 끊어지고 아차 하면 무너질 듯 기울어진 절벽이 하늘

을 가린다.

 절벽과 절벽사이를 이어주는 고송과 덩굴들만 있을 뿐이다.

 천하의 절경이고 인세에 다시없는 비경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관조할 준비

가 되어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것일 뿐, 발길이 바쁘고 마음이 조급한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길을 막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불과한 것인가.

 지금 광풍대원들에게 보이는 서릉협은 굽이쳐 흐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짜증스러운 협곡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무공을 익힌 고수들이라 하지만 그들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

다. 거의 한 달여 동안 모든 진력을 뽑아내어 달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

은 일이리라.

 또한 지금껏 제대로 된 식사 한번 하지 못하고, 백산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육포에만 의존하고 이곳까지 왔으니 모든 일행의 얼굴이 푸석하게 변해있

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형님! 기분 좀 푸십시오. 이미 일어난 일이지 않습니까."

 "나쁜 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손녀딸하고 손녀사위 아니냔 말야."

 팽무도와 남궁세우였다. 팽무도가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하고 있는 인물, 풍

신개를 두고 한 말이다.

 파멸안(破滅眼)의 비밀을 알게된 후 오직 풍신개만을 기다리고 있던 팽무

도에게 뇌룡현으로 돌아온 풍신개의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

다.

 백산일행이 강호 삼천의 표적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더 놀라운

사실은 소운과 냉추렴을 같은 일행에 둠으로 해서 전쟁의 도화선으로 이용

했다고 하였다.

 확신은 없었고 막연하게 추진했던 일이었는데 천마맹과 천무맹이 걸려들었

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백산 일행이 가고있는 산서성.

 그곳은 양 맹의 최대 격전지가 될 장소이고, 산서성 결전의 결과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 한다.

 최대 혈전이 기다리고 있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백산일행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대노한 팽무도가 막돼먹은 놈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며, 죽일 듯이 달려들

었으나 풍신개는 아무 변명도 없이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아버렸다.

 죽인다 해도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차마 손을 내 칠 수가 없었다. 풍신개의 한을 알고 있기에, 그것도 자신의

 여동생의 복수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이상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복수는 풍신개의 삶이었다. 언제나 툴툴거리며 웃고 다니는 것 같지만 혼

자 있을 때는 온몸을 자해하면서 까지 살아가는 의미를 찾고자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문득 자신에게도 복수의 기회가 왔다면 그리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뇌룡현을 출발했다. 휴식이란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밤낮없이 달렸고, 이제 이곳 호북을 지나 하남성만 통과하면 백산일행과 조

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조급해지는 마음이란….

 파멸안의 비밀, 차라리 몰랐더라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밀려왔다.

 "형님, 산이는 무림 최강입니다. 더구나 전대고인인 천장지옥마 노 선배까

지 있다 하였습니다."

 남궁세우가 곁에서 팽무도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지만 그의 감정도 팽무도

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막내 동생까지 있다고 하였다.

 동생인 남궁지우가 있음으로 해서 전력이 더 강해지기는 하겠지만 대신에

양맹을 더욱 자극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두 사람을 더 급하게 만든 이유였다.

 "아무 일 없어야지. 만일 그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칠이 녀석과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게야."

 "사부님 식사라도 좀 하십시오."

 팽무도에게 공손하게 말하는 인물, 일휘였다. 그런데 일휘의 기도가 변해

있었다. 백산이 뇌룡현을 떠날 때만 해도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외부로 발

산되며 가벼운 감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 일휘에게서는 그러한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차분한 음성과 깊어진 눈동자는 한 단계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

다. 백산의 운명을 알고 난 다음부터 생긴 변화였다.

 그에게 생긴 새로운 목표, 지금껏 아무런 목적 없이 무공을 익혔던 그에게

 인생을 걸어야할 목표가 생겨버렸다.

 파멸안의 재림을 막는 것.

 백산의 몸에서 파멸안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아야만 일행이 행복해지기 때

문에 그 동안 누구보다 피나는 노력을 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처음으

로 가져보는 절실함이었다.

 모든 광풍대원들이 백산 일행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아득한 회상에 젖어있는 인물이 있었다.

 청성파의 파문제자인 장한수였다.

 서릉협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선이 줄곧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제갈공명이

 병서와 보검을 숨겼다는 병서보검협이었다. 이곳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지….

 "어르신,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결국 더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는지 망설이던 장한수가 팽무도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무 오래있지 말아라."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 행동거지가 변한 장한수를 주시하고 있던 팽무도가

 쉬이 승낙을 했다.

 지금 그들의 형편이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허비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있는 장한수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시간을 달라함은 그만의 절박한 무엇인가 있다는 의미였기에 아

무 것도 묻지 않았다.

 일행 중 누구하나 평범한 사람은 없지만 장한수, 강구두, 오구 그리고 자

신들은 지금껏 추억만 먹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전부가 수십 년 전에 버렸던, 혹은 버림을 당했던 중원이기에 풀어야할 일

도 풀고 싶은 사연도 있을 것이다. 가는 길이 아무리 바빠도 그것마저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행을 빠져 나온 장한수가 도착한 곳은 병서보검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

는 조그마한 오두막이었다.

 여기저기 돋아있는 무성한 잡초와 거의 허물어져 가는 쇠락한 지붕은 수십

 년간 인적이 끊긴 곳임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이미 썩어 없어진 대문을 지나 후원으로 들어온 장한수를 반긴 것은 온통

월견화(月見花:달맞이꽃)로 뒤덮인 조그마한 공터였다.

 "화옥! 나요, 한수가 돌아왔소."

 달님의 사랑을 기다리며 밤에만 피어난다는 월견화, 그 숲을 헤치며 공터

가운데로 다가가는 장한수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얼마나 외로웠소. 얼마나 기다렸으면 월견화가 된 게요."

 중앙으로 다가간 장한수가 무릎을 꿇는 곳, 병서보검협을 굽어보며 조그마

한 봉분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 누워있는 곳이고, 이십 년 전 자신의 손으

로 만들었던 봉분이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그

녀를 얻기 위해서 청성파 문주자리마저 내쳤는데 결국 그가 얻은 것은 싸늘

하게 식어버린 그녀의 시신이었다.

 한화옥(韓花玉).

 그의 인생이었던 여인의 이름.

 그 당시 청성파의 문주였던 추운검(秋雲劒) 한광렬(韓廣烈)의 무남 독녀였

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그가 청성파에 입문했던 열 살 때였다.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천상의 선녀가 하강을 했다면 저런 모습

일 것 같았다. 그때부터 꿈을 꾸었다. 그녀를 위해 무공을 연마했고 그녀

때문에 누구보다 피나는 노력을 했었다.

 그리고 청성파에서 최고가 되었다. 문주의 대제자가 되었고 드디어 그녀에

게 당당한 남자가 되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보잘 것 없는 고아 소년이 청성파라는 대 문파의 차기 문주자리를 넘볼 수

 있는 거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거기까지였다. 청성파의 속가제자들이 천무맹으로 하나 둘씩 빠

져나가면서 문파의 재정이 약해지자 문주인 한광렬이 정략결혼을 추진한 것

이다.

 사천의 부호였던 차씨세가의 차남이고 자신의 사제인 절광검(絶光劒) 차보

운(借步雲)이 그 상대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꿈이 사라졌다. 한결같았던 이십 년의 사랑이 물거품으

로 변해버리는 순간이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두 사람은 문파를 떠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였다. 그래

서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세월이었다. 먹을 양식이 없어도, 입을 옷이 없

어도 그녀가 있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다.

 그녀의 뱃속에 자신들의 분신도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

지고 말았다.

 유달리 입덧이 심했던 그녀를 위해 읍내로 먹을 것을 사러나간 사이에 문

주와 청성파의 제자들이 들이닥쳐 한화옥을 데리고 가버린 것이다.

 죽을 결심을 하고 묻어두었던 검을 꺼내들었다.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동문들을 베어내고 청성파로 달려갔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었다. 이미 문주의 무위마저도 능가했던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들은 없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이미 세상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하들에 의해서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 그녀도

자결을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의 시신을 안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해지는 황혼 녘이 가장 아름답다

며 그녀가 제일 좋아했던 자리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떠났다. 더이상 강호에 있다가는 그녀의 아버지마저 해칠 것 같아

서 머물 수가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타락의 세월이었다. 뇌룡현이란 곳에서 건달들의 뒤나 봐주

며 지난 세월을 잊기 위해서 살았었다. 그녀를 따라 죽지도 못하면서 목숨

을 바쳐서 사랑했다고 외치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이곳을 찾았다. 다시는 올 수 없을 곳이라 생각했는데 인연의

 굴레는 영원히 벗을 수 없는 것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곳을

지나게 된 것이다.

 "당신 머리가 너무 길었어. 미안해."

 눈물이 흘러내렸다. 벌써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왜 아직도 어제 일처

럼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그녀의 얼굴이 그녀의 체취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았다.

 "당신 그거 알아? 오늘이 당신의 생일이란 것 말이오. 아무 것도 준비를

못했소. 나는 끝까지 당신에게 아무 것도 주지를 못하는 구려… 찾아와 준

것도 고맙다고? ."

 그녀와 사랑할 때도 그랬고 이곳에서 같이 살 때도 그랬다. 언제나 그녀는

 자신에게 누나이고 어머니였다. 사랑을 베풀기만 했었지 단 한 번도 투정

을 하지 않았다.

 "누구?"

 무덤의 풀을 잘라내고 있는 자신 등으로 밀려오는 싸늘한 예기에 흠칫 놀

란 장한수가 몸을 돌렸다.

 이곳은 그녀와 자신만의 거처다. 다른 사람이 올 곳이 아니었다.

 "설마… 너는…!"

 왼손에 조그마한 보퉁이를 들고 있는 인물이 냉랭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

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사제. 이 월견화도 네가 심었더냐."

 이제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을 제외하고는 근처의 어느 곳에서도

 월견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화옥의 봉분을 장식한 월견화는 누군가

심었다는 말이 되는데 그 당사자가 바로 차보운이었던 것이다.

 "고맙구나. 화옥을 보살펴주어서."

 "닥쳐라! 감히 네놈이 화옥을 거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차보운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도 그녀를 사랑했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향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정략결혼을 빙자해서 라도 그녀를 얻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추진했던 정

략결혼이 그녀를 더욱더 먼 곳으로 떠나보내고 말았다.

 사랑했기에 잘살아주기를 바랬다. 사형과 더욱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었다.

 그녀가 떠난 충격을 달래고자 강호유람을 떠났고, 다시 돌아온 그를 기다

린 것은 그녀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형제들의 죽음도….

 모든 것이 사형인 장한수 책임이었다. 사랑의 도피를 했으면 발견되지 말

았어야 했다. 아니면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키던지.

 결국 그의 무책임한 사랑이 화옥을 죽이고 만 것이다. 어설픈 그의 사랑이

 그녀를 다시는 못올 먼 곳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장한수를 원망하고 욕을 해도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자신이

었다는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정략결혼만 추진하지 않았던들 그녀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라는 죄

책감.

 몇 년이 지난 후 그에게 잘못을 빌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단지 후원에 만들어져 있는 쓸쓸한 봉분만 있었을 뿐이었다.

 배신감이 앞섰다. 그렇게 사랑했다면서 그녀를 지키지 않고 떠나버린 사형

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그녀의 무덤을 옮길 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언젠가

사형이 돌아올 것 같아서 그렇지 못했다.

 그런 세월이 십 년이 흘렀고 무덤가에 월견화를 심기 시작했다. 이미 떠나

버린 그녀를 기다리는 자신의 마음이었고, 떠나버린 사형을 기다리는 그녀

의 마음을 생각하며 월견화를 심었다.

 월견화가 흐드러지게 핀 달밤에 사형이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월견화는 피고 또 피었지만 노란 눈물을 흘리며 밤마다 달빛을 보

고 피어났지만 사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생각이 맞았던 것이다. 그는 화옥을 사랑했던 게 아니었다.

청성파의 문주자리를 탐내고 그녀를 유혹했던 것이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화옥을 이용했고 그것이 실패하자 미련 없이 떠

나버린 것이다.

 "왜! 지나가다 옛 추억이라도 생각났나? 과거에 농락했던 여인이 그리워지

던가? 당신이 잘먹고 잘살 때 그녀는 어떠했는지 아나?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에서 저물어 가는 태양만 바라보며 살았어. 그렇게 외롭게 살았단 말이

다. 뽑아라! 그녀를 기다리게 만들며 얼마나 대단한 존재가 되었는지 보자.

"

 차보운이 자신의 검을 뽑으며 장한수 앞으로 다가들었다. 그녀를 잃고 그

녀를 잊기 위해서, 아니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무공에만 전념했다.

청성파의 문주가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리에 올랐어도 그녀를

 향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커져만 갔다. 그녀를 잊기 위해서 수많은 여자를 안

았고 결혼이라는 것도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어린 시절 수음(手淫)의 대상이었던 그녀의 자리를 메워줄 여인은 어디에

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곳에 와서 봉분을 돌보며 그녀

를 추억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추억마저도, 자신의 그리움마저도 가져가기 위해서

그가 나타난 것이다.

 "네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해도 좋다만 우리의 사랑을 농락하지는 말아라.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이었고

인생이었다."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하는 장한수의 목소리에 저 깊은 심해에서 울려나온

것 같은 깊은 살기가 묻어 나왔다.

 누구도 자신과 그녀와의 사랑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차보운은 절대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죽음이 누구 때

문이었던가. 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 자가 자신에게 그녀와의 사

랑을 한순간의 유희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너는 어쨌느냐. 그녀를 그리도 사랑했다는 자가 돈으로 사려했더냐?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더냐? 그래서 그녀를 죽게 만들었

더냐? 그래서 내 자식을 죽게 했느냔 말이다. 말을 해봐라! 과연 네놈이 얼

마나 대단하기에 화옥과 나를 우리 자식을 죽게 했느냔 말이다!"

 나직이 중얼거리던 장한수의 입에서 폭풍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십

 년만에 처음으로 터져나온 절규였다.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을 쏟아내는

장한수의 몸으로부터 무섭도록 차가운 살기가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여인이 죽었어도 두 사람의 결실인 자식이 죽었어도 복수하지 못

했다. 상대가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였고, 가장 친했던 사제였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나는 그녀가 죽었어도 따라 죽지 못했다. 비겁자가 되어서 이곳을

떠났다. 그런 너는 어찌했느냐. 그녀의 복수를 해 주었더냐. 그녀의 아버지

인 문주에게 검을 겨누었더냐?"

 "닥쳐라! 배신자. 네놈의 능력으로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

했더냐. 처음부터 문주자리는 나에게 오기로 되어있었다. 너 같이 근본도

없는 놈에게 가당키나 한 자리라 생각했더란 말이냐."

 "내가 문주자리를 탐낸다 했더냐. 그깟 문주자리가 욕심나서 화옥을 이용

하려했다고 생각했더냐. 너에게는 청성의 문주자리가 대단할지 몰라도 나에

게는 아니었다. 나는 그녀, 화옥만 있으면 된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화

옥을 뺏어간 자는 바로 너였다. 잘난 네놈이었단 말이다."

 결국 흥분한 장한수도 검을 뽑아들고 말았다. 화옥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을 모욕한 자는 절대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과거에 사랑했던 한 여인의 봉분 앞에서 한때는 동문 사형제였던 두 명의

사내가 서로를 향해 검을 뽑았다.

 '사부님! 저대로 둘 거요?'

 '그냥 지켜보아라. 저건 누가 처리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도

와 줄 수도 없고.'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 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오구와 일휘가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장한수의 과거를 보고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홀로 가

슴속에 묻어두었던 그만의 추억을….

 '그럼 저쪽에 숨어있는 놈들은?'

 '그놈들이 나서지만 않으면 우리도 가만있어야지. 미리 선수치며 달려들

수는 없지 않느냐.'

 그들이 장한수의 뒤를 따라서 이곳에 왔을 때 먼저 와서 은신하고 있던 자

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마 지금 장한수와 같이 있는 차보운과 같이 온 자들 같았다.

 '일단 가까운 데로 가 있지요.'

 '그러자꾸나.'

 오구와 일휘가 은밀하게 숨어있는 자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사형! 어찌할까요."

 "그냥 지켜보세. 문주도 옛날의 절광검이 아니질 않나."

 자신들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전음도 사용하지 않고 평어로 이야기를 하

고 있었다.

 청성사위(靑城四衛).

 문주의 신변을 지키는 호위무사라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청성파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자들이고 두 사람의 사제들이었기에 문주인 차보운과 장한수의

일화를 모두 알고 있는 인물들이 또한 그들이었다.

 차보운은 과거의 절광검 시절의 그가 아니었다. 지금은 실전 되었다고 전

해지는 건곤신공(乾坤神功)과 건곤검법(乾坤劒法)을 익혀서 자신들이 합공

을 해야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되지 않았던가.

 자신들도 어쩔 수 없는 문주를 비록 한 때 청성최고의 기재였다고는 하지

만 단섬쾌영이란 검법만 익힌 장한수가 당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준비는 하고 있게."

 "저만 준비하고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청성사위의 셋째, 암기의 달인으로 알려진 신수(神手) 암적산(暗赤山)이다

. 그의 손에서 발출되는 암기는 청성파 최고의 암기로, 그것에 의해 발생하

는 음향이 청봉의 날갯짓하는 소리와 같다하여 청봉정이라 불리며, 한번 발

출되면 시전자도 걷어드릴 수 없다는 절대암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있는 곳의 뒤쪽에 두 명의 인물이

 그들을 지그시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가공할 움직임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문주 쪽에 모든 신경을 두고 있

었다고는 하지만, 청성파에서 열손가락 안데 드는 강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뒤쪽에 적이 와있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일휘와 오구의 무공이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두 방수들이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있는 그 순간 장한수와 차보운의 대결

은 시작되었다.

 검을 뽑아 하늘을 향하고 있던 차보운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성

파의 보법 중에 가장 난해하고 어렵다는 환환미종보(幻環迷踪步)를 펼치고

있는 차보운의 몸놀림은 거의 시야에 잡히지도 않았다.

 청성파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무공이 합쳐진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삼대도교 성지의 한 곳답게 도가 정종 무공이고 두 번

째가 실전무예를 바탕으로 하는 살수비기(殺手秘技)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

교의 유파중의 하나인 주술(呪術)이나 부술(符術)을 주로 하는 무공이 그것

이었다.

 환환미종보는 세 번째인 주부법(呪符法)을 바탕으로 창안된 무공으로 적의

 시야를 혼란하게 하는 환술(幻術)에 가까운 보법이라 할 수 있다.

 "건곤검법을 익혔더냐?"

 차보운이 취한 자세를 쳐다보던 장한수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건곤검법(乾坤劒法).

 자신도 청성파의 제자였기에 잘 알고 있는 검법이다.

 실전(失傳)되었다는 청성파 최강의 검법인 건곤검법을 차보운이 익히고 있

었던 것이다.

 "그렇다 장한수. 다행이 선조(先朝)님들이 보우하사 네놈을 처단하라고 이

 검법을 내리셨다."

 건곤검법을 익히기 위해서 지난 삼 년간 폐관에 들었고 이곳을 찾지 못했

었다. 건곤검법을 거의 완성하고 삼 년만에 찾은 화옥의 거처에서 장한수를

 만난 것이었다.

 사방에서 차보운의 목소리가 울렸다. 환환미종보의 무서운 점이었다. 극도

의 환술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보법이기에 상대를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차보운의 목소리를 대한 장한수가 자세를 약간 구부정하니 구부리며 자신

의 검에 오른손을 올려놓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쾌검을 구사하려는 자세였다. 이른바 발검과 동시에 적을 찔러 가는 극쾌

의 수법. 그가 익히고 있는 단섬쾌영검법(斷閃快影劒法)의 일초인 섬전쾌(

閃電快)의 기수식이었다.

 "건곤절애(乾坤切愛)!"

 "섬전쾌(閃電快)!"

 환환미종보속에서 벼락같이 튀어온 차보운의 검이 장한수의 온몸을 짓이겨

버릴 듯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고 동시에 장한수의 오른손이 비쾌하게 앞으

로 뻗어졌다.

 챙! 챙! 챙!

 한순간에 수십 합의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두 사람의 자리가

바뀌었다.

 허공 중에 날리는 장한수의 머리카락.

 놀랍게도 건곤검법의 일초인 건곤절애도 쾌검이었다. 찌르는 쾌검이 아닌

위에서 내리 베는 방법으로 쾌검을 구사하는 방법이었다.

 "알고 있나? 장한수! 네가 익히고 있는 단섬쾌영검법은 방금 내가 시전한

건곤절애에서 파생된 검법임을?"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청성파의 대표적인 검법이 단지 건곤검법의

일초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 하고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오 초로 되어 있는 건곤검법의 각 초식은 별도의

 검법으로 연구되어 독립적인 검법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차보운이 시전했던 일초의 본래 명칭도 건곤단섬이었던 것을 그가 개명을

해서 바꾸었다. 화옥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잘라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장한수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뽑았던 검은 이미 그의 검집으로 들

어간 지 오래였고 다가오는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건곤절정(乾坤切情)!"

 건곤검법의 이 초가 펼쳐지자 다섯으로 변한 차보운의 신형이 순식간에 장

한수의 면전으로 다가서며 검사로 가득 뒤덮인 검을 장한수를 향해 밀어냈

다.

그러나 신형만 다섯이었지 장한수에게 밀려오는 검의 수는 다섯이 아니었다

. 한 신형에서 모두 다섯의 검이 생성되어 전부 스물다섯 개의 검끝이 그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월광절(月光切)!"

 그 자리에서 부드럽게 일 장 정도를 솟아오른 장한수가 그의 검을 횡으로

쓰러내었다. 월광절, 일명 달빛 가르기란 수법으로 과거에는 쾌검이었으나

팽무도를 만난 후 변형된 검법이다.

 쾌검(快劒)과 중검(重劒)의 묘리를 합쳐 새로운 검을 탄생시킨 것이다.

 콰앙!

 "으음!"

 "음!"

 수십 개의 검과 장한수가 시전한 단 하나의 검이 부딪치며 북이 터지는 듯

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두 사람이 신형이 뒤쪽으로 일 장 가량 밀려났다.

 두 사람의 검력이 만들어낸 충격으로 잘려진 월견화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리고 그들의 발걸음이 이동하는 곳에는 짓밟힌 월견화만 남았다.

 장한수를 만나고자 했던 화옥의 염원이었고, 화옥을 만나고자 했던 차보운

의 염원이었던 월견화가 하나씩 죽어나가고 있었다.

 약간 창백해진 차보운이 다시 보법을 전개하며 거친 외침을 토해냈다.

 "건곤절심(乾坤切心)!"

 화옥을 생각하는 마음을 끊고자 이름지었던 건곤검법 삼 초, 무정한 마음

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바라던 무정심은 가질 수 없었다.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한(恨)만 남았고 장한수에 대한 분노만 남았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차보운의 검에서 솟아난 검강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환

술에 의해 만들어진 열 개의 신형에서 각각의 서로 다른 검이 장한수를 향

해서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일양파!(日陽破)."

 약간은 무거운 듯한 외침과 함께 장한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면을 향

해 일직선으로 찔러간다 싶으면 어느새 한바퀴 돌며 천지(天地)를 베어내고

, 두 조각으로 분리된 천지를 다시 위에서 아래로 잘라내는 그의 동작은 사

방에서 밀려오는 차보운의 검을 모두 차단하고 있었다.

 기이잉! 그그긍!

 "허억!"

 "컥!"

 서로의 검에서 솟구쳐 오른 검강에 의해 기괴한 소음이 울려 퍼진다.

 서로의 위치를 다시 한번 바꾼 두 사람은 반발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선홍색의 핏줄기를 토해내었다. 똑같이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화옥. 당신을 지키는 것은 이번에도 쉽지가 않구려.'

 자신의 등뒤에 있는 봉분을 쳐다보며 장한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여인이 누워있는 공간인 봉분, 그녀의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막

고자 방어에만 주력할 뿐 전력을 다할 수가 없다. 또한 차보운의 무위도 상

상외로 강했다.

 장한수도 과거의 장한수가 아니듯이 차보운도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문주

라는 직위가 그를 성장시켰는지 아니면 그의 무공 초식명처럼 화옥에 대한

애증이 그를 성장시켰는지 알 수는 없지만 차보운의 무위도 장한수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놈!"

 화옥의 무덤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장한수의 모습에 차보운의 얼굴이 붉

게 물들었다. 놈도 자신처럼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놈을 힘들게 하고 싶었기에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씩 무너지는

놈의 모습을 화옥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란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인데 놈은 화옥의 봉분

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그리하였다.

 또다시 놈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미 죽어버린 그녀에게 쏟는 사

랑마저도 자신보다 나았다.

 이십여 년 동안 무덤을 지키며 가꿔온 사랑을 단 한시진도 안되어 허공으

로 날려버리고 놈이 그 자리로 들어가버린다.

 '잊는다. 잊어버린다. 나를 잘라내고 화옥 너마저 잘라버리겠다.'

 "건곤절아(乾坤切我)!"

 분노한 차보운의 입에서 처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전력을 다하

기로 했는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세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 사방을 휩쓸

기 시작했다.

 타는 듯한 그리움으로 심었던 월견화가 가루로 흩어져 휘날린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는 자괴감이었다.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어도 놈이 있

으면 화옥은 자신의 것이 될 수가 없다.

 차보운의 검에서 쏟아져 나온 검탄강기들이 수백 조각으로 분리되어 장한

수를 향해 몰아쳤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화옥의 그림자를 잘라버리는 방법,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 있는 봉분마저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무변극애(無變極愛)!"

 화옥을 향한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장한수의 마음을 나타낸 무변

극애,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것처럼 부드러운 기운이 장한수의 전신에서 퍼

져나가기 시작했다.

 가볍게 들어올려진 손에서 검극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장한수의 몸이

그 뒤를 따른다. 검과 몸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만 시전되는 무극도의

경지가 장한수의 손에서 펼쳐졌다.

 폭풍 같은 차보운의 기세와 봄바람 같은 장한수의 기세가 서로 만나 한치

의 밀림도 없이 팽팽히 대립하는 가운데 두 사람의 신형이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

 거의 내공대결과 유사한 비무가 전개되었다.

 어느 한쪽이라도 쏟아내는 기세가 약화되면 그곳으로 상대방의 모든 기운

이 봇물처럼 밀려들 것이다.

 "사형, 저러다 문주님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의 대결을 주시하고 있던 청성사위의 둘째인 참벽도(斬壁刀) 최혼(

崔琿)이 우려 섞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 나온 기세는 엄청났다. 문주의 무위(武威)야 그들도 익

히 알고 있는 바였지만 장한수까지 저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단

섬쾌영이란 검법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

히 다른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다.

 그들 모두가 극도의 내공을 발휘하여 두 사람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세에

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청성 최고의 기재였단 말이 맞았어. 하지만, …당신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을 뿐입니다.'

 첫째인 풍권(風拳) 규영산(奎嶺山)이 장한수를 주시하며 내심으로 중얼거

렸다.

 단섬쾌영이란 검법만으로 이십 년 전에도 문주를 능가했던 그의 무위였다.

 청성이 어렵지만 않았다면 그가 문주가 되었을 것이고 청성의 위세는 지금

보다 더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그를 원하지 않았다. 그 당시

 청성은 무공의 기재보다 자금이 더 필요했던 시기였기에 그는 사라질 수밖

에 없는 운명이었다.

 "삼제 준비하게."

 비겁한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과거에는 돈 때문에 차보운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문주였기에 그가 곧 청성파이기에 필요한 것이다.

 많은 힘을 쓸 필요도 없다. 장한수쪽으로 암기를 날려 균형만 무너뜨리면

대결은 바로 끝날 것이다.

 "움직이면 그 자리에서 죽어!"

 "헉!"

 막 장한수를 향해 청봉정을 날리려던 암적산(暗赤山)을 비롯한 청성사위

전원이 경악스런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자신들의 등뒤를 점하고 있는 엄청난 기세라니, 살기였다. 손끝하나만 움

직여도 온몸이 난자되어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살기가 자신들을 덮쳐 누르고

 있었다.

 "숨도 쉬지 마라. 숨쉬는 새끼는 바로 찢어버릴 테니까."

 오구와 일휘였다. 청성사위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그들이 암기

를 날리려고 하는 순간 나선 것이다.

 "어이! 거기 암기를 가지고 있는 쥐새끼. 가만히 아주 가만히 손에 있는

것을 내려놔! 어서!"

 "으음!"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는 일휘의 말에 암적산이 신음을 내뱉으며 손에 있던

 청봉정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청성파라고 했나? 네놈들은 그 비겁함으로 구대문파라는 것이 되었나 보

구나. 문주라는 놈도 그렇고… 하기야 문주가 개차반 같은 놈인데 그놈의

부하들이야 오죽하겠어. 다 그놈이 그놈이지."

 일휘가 사인의 인물들을 향해서 이죽거렸다. 지금 장한수와 차보운의 대결

은 누구도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적어도 남자라면 그래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의 싸움은 명예나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의 과거를 잘라내기

위해서, 인생을 갉아먹고 있는 추억을 잘라내기 위해서 서로에게 검을 겨누

고 있다. 무사로서의 비무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한 싸움인 것

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놈들이 앞에 있는 저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암습을 가하려 하고 있다.

 "무릎을 꿇어!"

 "우욱!"

 청성사위 중 셋째인 암적산이 피를 토해내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일

휘의 모든 살기가 그에게만 집중되자 감당해내지를 못했던 것이다.

 "허억!"

 자신에게 쏟아지던 살기가 사라지자 첫째인 규영산이 뒤에 있는 자를 공격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그의 행동을 묶어버린 또 다른 기운이 있

었다.

 "커억!"

 "무릎 꿇으라고 했잖아, 개새끼야!"

 등뒤에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진 규영산이 비명을 내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다가선 일휘가 발뒤축으로 그의 등을

찍어버렸다.

 "자! 조용히 구경들 하라고. 이번에도 말을 듣지 않으면 목을 날려버릴 테

니까."

 굴욕적인 자세로 무릎을 꿇은 네 사람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목을 날려

버리겠다는 말은 허언이 아닌 것 같았다. 말속에 들어있는 기운은 지금 당

장이라도 죽여버릴 것만 같은데 참고 있다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여섯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한수와 차보운의 대결은 극으로 치달았다.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가던 이 인의 검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

다. 사방으로 퍼져있던 자신들의 모든 기운이 검으로 집중되고 있었던 거였

다.

 검을 기준으로 회오리 치던 기운들이 조금씩 검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여섯 명의 눈에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고, 대기마저 빨아들였는지 사방이 침

묵 속에 잠겨버렸다.

 폭풍전의 정적이 감돌았다.

 콰-앙! 콰아!

 "커억! 컥!"

 서로의 모든 내력을 감싼 검극이 부딪치자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오며 그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움직이지마 새끼들아!"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충격파를 막고자 내공을 끌어올리려는 청성사위를 향

해 나직이 으르렁거린 일휘가 자신의 내력은 더욱 강하게 밀어냈다.

 청성사위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자신은 방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으윽! 커어억!"

자신들에게 밀려오는 충격파를 방어하지 못한 청성사위가 하얗게 탈색된 얼

굴로 피를 벌컥 벌컥 토해냈다.

 전 내공을 사용하여 방어를 한다해도 그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 터인데 뒤

쪽에서 오는 살기에 대항하느라 앞쪽을 신경 쓰지 못한 탓에 심한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자신이 의도대로 되었다 생각했는지 일휘의 입가에 희미한 살소가 맺혔다.

 "앞으로 한번의 격돌이 더 남았을 거야. 기대하라고 쥐새끼들."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은 힘 하나 안 들이고 놈들을 부숴버리려 하고 있었

다.

 "저들이 마지막 대결을 하지 않기를 빌어라!"

 청성사위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장한수와 차보운 두 사람은

연신 입으로 피를 넘기며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장한수. 단섬쾌영이란 하찮은 검법으로 이 정도의 경지를 이

루어내다니…."

 차보운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익힌 건곤검법이 어떠

한 것이던가. 청성검법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무공이다.

 즉 청성의 모든 검법은 건곤검법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장한수는 자신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단지 건곤검법의 일초로

만들어진 단섬쾌영이란 검법을 가지고 오히려 자신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었

다.

 그러나 한가지 약점은 있었다. 봉분. 바로 화옥의 봉분 때문에 자신의 모

든 것을 뽑아 내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격돌에서 장한수가 더 큰 내상을 입은 이유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화옥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번에도 막을 수 있을까

?"

 '화옥. 이번에는 같이 살게 될지도 모르겠소.'

 장한수가 가만히 봉분을 응시했다. 이제 건곤검법의 마지막 초식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전력을 다할 수가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겠소. 화옥, 지켜봐 주시오.'

 "장한수, 각오하라!"

 장한수를 노려보는 차보운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놈은 끝까지 봉분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도 봉분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공초식의 이름, 자신은 그녀를 잊기 위해, 그녀를 끊기 위한 초

식명을 지었는데 놈은 영원히 그녀와의 사랑을 지켜가겠다는 초식명을 지었

다. 마지막까지 놈에게 지고 말았다.

 '그래, 둘 다 한꺼번에 보내주마. 그리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거다. 이

십 년 간의 사랑을 끝내는 거다.'

 차보운이 자신의 모든 내력을 끌어올렸다. 건곤검법의 마지막 초식, 거의

심검(心劒)의 초입단계에 해당하는 초식이었기에 완전하게 익히지는 못했지

만 흉내는 낼 수 있는 경지에 와있었다.

 사방 십여 장이 모두 초토화 될 것이다.

 "어이! 좀 살살해. 내가 힘들어서 말이야."

 마지막 초식을 전개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차보운의 뒤에서 그의 행동을

가로막는 목소리가 들여왔다.

 "네놈들은 누구냐?"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흠칫 놀란 차보운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곳

에는 자신의 호위인 청성사위를 소(牛)몰 듯이 몰고 나오는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일휘와 오구였다. 장한수의 상태를 짐작한 일휘가 결국 앞으로 나서고 말

았다.

 "그건 알 것 없고, 네가 대장 쥐라며? 너무 과도한 힘을 쓰지 말라고 그럼

 부하 쥐가 먼저 죽는단 말이야."

 "비겁하구나, 장한수. 화옥이 보는 데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에이, 비겁한 건 쥐새끼 너희들이잖아. 부하새끼들은 이놈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고, 대장 쥐 네놈은 저기 무덤을 약점으로 잡고 공격하고 있었잖

아."

 일휘가 청봉정을 던지며 차보운을 향해 이죽거렸다.

 "우리 청성파를 적으로 돌리고 싶은가."

 결국 청성파라는 대 문파의 이름으로 그들을 겁주려 했으나 그 말이 일휘

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풋!"

 "문주님!"

 "주둥이 닥쳐! 쥐새끼야!"

 "크윽!"

 차보운을 향해 무엇인가 말하려는 규영산의 머리통을 발로 까버리며 일휘

가 입을 열었다.

 "청성? 까는 소리하고 있네."

 "감히 네놈이…."

 "왜 화났나? 그럼 한번 붙어보지 뭐."

 일휘가 살기를 펄펄 날리며 차보운에게 다가섰다. 결코 형님으로 모시는

장한수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정말 더러운 새끼들이 아닐 수 없다. 겉으로야 명문정파입네 하고 거들먹

거리고 다니지만 남들의 이목이 없는 데서는 지금처럼 암기를 날릴 준비를

하고, 상대의 약점을 잡아서 공격하는 비겁한 짓을 서슴지 않는 놈들이다.

순간적으로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온몸을 잠식해 들었다.

 '이럴 수가!'

 차보운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단순한 놈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에게 풍기는 기운은 장한수와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 자신은 내상까지 입고 있는 상태이질 않는가.

 지금의 몸 상태로는 결코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만두거라 일휘야."

 그때 장한수가 일휘를 말리고 나섰다. 일휘가 손을 쓰고자 한다면 차보운

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일휘의 실력이 어느 정도 인지는 자신도 알지 못한

다. 시작은 자신보다 늦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그의 경지는 자신과 비슷하던

지 아니면 더 이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도를 쥐고 있을 때도 엄청나

지만 도를 놓았을 때가 더 무섭다. 그런데 지금 도를 오구에게 맡기고 차보

운에게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형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일휘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한마디하는 것은

 잊지 않는다.

 "어이! 대장 쥐, 오늘 너 땡잡은 줄 알라고. 여기 한수 형님이 마음만 먹

었으면 너는 벌써 죽었어, 임마. 주제도 모르고 나서기는… 이 새끼야 움직

이지 말랐잖아!"

 자리로 돌아온 일휘가 마치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암적산의 면상을 향해

오른발을 날려버렸다.

 "커억!"

 고통스러운 비명소리와 함께 암적산의 입주변이 피 범벅으로 변하며 수십

개의 하얀 덩어리들이 쏟아졌다. 정확하게 이빨만 전부 뽑아버린 것이었다.

 "돌아가라.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두고보자, 장한수. 언젠가 반드시 갚아주마. 반드시…."

 온몸에서 살기를 흘리며 차보운이 청성사위와 함께 몸을 돌렸다.

 "자식. 사문의 정리를 봐서 살려주는 것인지는 모르고…."

 떠나는 차보운을 쳐다보며 일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차보운을 살려주는

것이 장한수가 청성에 베푸는 호의였다는 것을 일휘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청성사위라는 자들도 끝까지 살려주었던 것이다.

 "갑시다, 형님!"

 "그래."

 장한수를 두고 일휘와 오구가 먼저 내려갔다. 아마 마지막 작별 인사할 시

간을 주기 위해서인 모양이었다.

 "화옥, 결국은 아무 것도 풀지 못하고 더 큰 원한만 만들고 말았소. 산다

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보오. 오십이 넘었는데도 말이오. 하지만 마

음은 편하오. 무엇보다 당신을 만났으니 이제는 아무 여한도 없소. 기회가

될는지 모르지만 다음에 또 오리다. 그때까지 잘 있으시오."

 봉분을 향해 나지막이 속삭인 장한수가 몸을 돌렸다.

 한 여인을 사랑했던 두 사람이 서로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는 앙금만 남긴

채 모두 떠났다. 남아있는 몇 그루 되지 않은 월견화만 바람에 흔들리며 두

 사람을 배웅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년이면 이곳은 다시 월견화 천지가 될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화옥의 기다림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장한수의 그리움을 서릉협에 남기고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백여 리의 길을 쉬지 않고 달린 일행이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멈춘 곳

은 삼협 중 가장 아름답다는 무협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무협뿐만이 아니었다. 칼을 거꾸로 꼽아놓은 것처럼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무산십이봉의 정경은 주위를 흐르는 운해들에 의해 더욱

신령스러워 보였고 그 속에서 무산신녀(巫山神女)라는 전설의 여인이 날갯

짓하며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이제 이곳을 지나 계속해서 북으로 진로를 잡으며 무당산에 도착할 것이다

. 그곳을 지나면 하남성에 이르게 된다. 어느새 마음은 그쪽으로 가 있는데

, 발길이 자꾸 늦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서두르고자 하면 할수록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기는

것인지 운기를 마친 일행이 무협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려 할 때

 저 멀리서 누구에게 쫓기는 듯 연신 뒤를 흘끔거리는 피투성이 인물이 그

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저거 아까 그놈이잖아?"

 무협에서 보았던 청성사위 중 셋째인 신수 암적산이었다.

 "무슨 일이오."

 일휘보다 한발 앞서 나간 장한수가 암적산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실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 장강삼협에 어떤 무림문파가 있다는 말

은 들어보지 못했다. 기껏 있어봐야 지나가는 행인을 터는 산적이나 또는

수적들이 전부일 텐데 그런 자들에게 청성파 인물들이 당했을 리가 만무하

지 않는가.

 "그게… 장사…."

 "그냥 장형이라 부르셔도 됩니다."

 과거에는 사제고, 사형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십 년의 세월도 청성파

와 자신과의 앙금을 걷어가지 못했다. 더욱더 깊어졌다는 것이 옳은 말이리

라.

 어쩌면 그들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에 죽어간 청성파의 제자들이 기십 명인데 복수를 한다며 달려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는가.

 "저희 문주님을 구해주십시오. 문주님이 납치되었습니다."

 "무슨 소린가! 문주가 납치를 당하다니…."

 장한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암적산을 다그쳤다. 비록 내상을

입었지만 심검의 초입단계에 있는 차보운을 누가 제압했단 말인가.

 "그게 저…."

 암적산이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무협을 떠난 일행은 몸을 추스를 생각도 못하고 곧바로 길을 떠났다. 패배

의식 때문이었다. 무공에서도 패했고, 암습을 하려했던 비겁함도 들켰다.

언제나 최고의 명문이라 생각하고 있던 자부심이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허탈한 심정으로 무협에 도착하여 일단 몸부터 추스르기로 하고 차보운이

먼저 운공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백의 인물들이 공

격을 가해온 것이었다.

 온 힘을 다해 대항했으나 이미 내상을 입은 상태이고 최고의 무공을 지니

고 있던 차보운은 운공 중에 있었기에 방법이 없었다. 무리하게 운공을 끝

낸 차보운은 더욱더 내상이 깊어졌고 결국 제압당하고 말았다.

 다만 자신은 청봉정이라는 암기덕분에 그들의 손에서 도망을 칠 수 있었다

는 것이다.

 "저기 쫓아오는 자들이오?"

 암적산을 뒤쫓던 인물들인지, 거의 이십 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느껴졌다.

 "이봐! 너무하잖아?"

 어이가 없다는 듯 일휘가 암적산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불과 몇 시진 전

만 하더라도 과거를 핑계삼아 장한수를 죽이려 했던 자들이 이제는 그 과거

를 가지고 자신들을 도와 달라는 것이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 목숨을 달라시면 드리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할말이 없는 듯 암적산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의 명예나 체

면보다는 문주의 생명이 더 중요했기에 그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만일 장한

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몰랐더라면 도망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과거야 어

찌되었건 그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장한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스슥!

 "호! 이것 봐라?"

 다시 암적산을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려던 일휘가 감탄사를 발하며 고개를

돌렸다. 암적산을 쫓아오던 자들의 놀라운 행동 때문이었다.

 저 멀리 있을 때는 요란스럽던 놈들이 자신들 주변에 와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주변에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대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앞에 있는 자를 넘기고 떠나라."

 '이건 영환사령음(影幻邪靈音)?'

 사방에서 울리는 귀기(鬼氣) 가득한 음성에 남궁세우의 표정이 흠칫 굳어

졌다.

 영환사령음, 과거 천사맹의 비전무공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무려 오십

 년 전에 사라졌던 문파의 무공이 이곳 삼협 언저리에서 나타난 것이다.

 '아우! 이들이 천사맹일까?'

 팽무도도 알아차렸는지 남궁세우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돌아가는 그들일

가능성이 컸기에 하는 말이었다. 천사맹은 과거 오천맹과 같은 시기에 사라

졌던 문파가 아니던가.

 비록 천마맹에 의해서 멸문 당했다고 알려졌지만 그 내면에는 천무맹의 동

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청성파의 문주를 납치한 것이 이

해가 가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두고보면 알겠지요.'

 말은 그리 하고 있지만 거의 맞는 것 같았다. 천사맹이 아니라면 청성파의

 문주를 감히 납치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어찌할 거요, 형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일휘가 장한수의 의중을 묻는 말이 들려왔다.

 장한수가 고개를 들어 일행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저들을 구하겠다고 하면 상대가 누구이던 간에 전부 나서서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에겐 지금 이것보다 더 바쁜 일이 있지 않던가. 결

코 이런 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허나 이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머리에서는 분명히 도와주지 말라고, 저

들이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사랑하는 화옥을 죽인 자들일 뿐인데 하면서 그

냥 가라하지만 가슴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지난 이십 년간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었던 자들이고 조금 전에도 차보운과

 생명을 걸고 싸웠지 않은가.

 그런데….

 "한수야! 그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일을 했을 때 마음이 편해진다면 하는 게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팽무도의 그 한마디에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저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편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한번으로 그 동안의 빚을 갚는다 생각하면 될 것이다.

 팽무도를 향해 감사의 눈빛을 보낸 장한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문주님은 무사하신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군. 떠나지 않으면 그대들이 전부 죽는다는 것을 알

아야지."

 "천사맹이 허풍이 심해졌구나. 기껏 이십여 명의 인물로 상대방을 협박하

는 것을 보니."

 "헉!"

 한쪽 나무 아래에서 격렬한 움직임이 일었다. 환술을 이용해서 고도의 은

신술을 펼치고 있는 인물, 남궁세우와 팽무도의 짐작처럼 천사맹의 영마대(

靈魔隊)의 대주인 영마귀(靈魔鬼) 황자춘(黃子春)이었다.

 그의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들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천사맹을

알고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자신들이 천사맹이라는 어떤 흔적도 없지 않은

가.

 '혹시….'

 황자춘의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자신이 펼쳤던 영환사령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일귀, 즉시 맹에 가서 알려라.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들이 나타났다

고.'

 자신들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 같았다. 무공만으로 천사맹

의 정체를 알아낸 자들이다. 그리고 천사맹인지 알고 있음에도 저리 태연한

 신색이라니.

 "우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너희들도 보낼 수 없게 되었구나."

 "천사맹… 천사맹이라고?"

 천사맹을 외친 일휘의 몸에서 자욱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남궁사부가 분명

 천사맹이라 하였다. 형제들을 공격했던 그 무림삼천이라 하는 것이다.

 형제들을 곤경에 빠트린 놈들이 이번에는 한수 형님을 곤경에 빠트리고 있

지 않는가.

 "이제는 내가 그냥 못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휘의 몸이 황자춘이 서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날았다

.

 펑!

 "크아악!"

 빈 공간을 향해 일휘의 다리가 엄청난 속도로 날았고 그곳으로부터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공포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보

이지 않는 곳을 향해 날아가는 일휘의 다리도 그렇지만 그곳에서 흘러나온

비명소리는 섬뜩한 기분이 들게 했던 것이다.

 즉사였다. 나무 그늘 아래에 쓰러진 푸른색 옷을 입은 인물, 목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한순간 붉은 피가 솟구쳐 오르며 피비린내가 자욱하니 풍겼

다.

 "이까짓 그늘에 숨었다고 너희들을 찾지 못할 것 같은가?"

 일휘의 몸에서 흘러나온 살기에 앞에 있는 나뭇잎들이 변색되어 떨어져 내

렸다. 무림인들이란 놈들에게 화가 났음이다.

 뭐든지 다 자신들 마음대로 생각한다. 형제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형제

들이 천사맹에 시비걸 이유가 없질 않는가.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을 치고자 했을 것이다.

 우습지도 않은 힘이 있다고 남들의 삶은 생각지도 않는다.

 조금 전의 차보운이란 놈도 그랬고 지금 살려달라고 비는 놈도 마찬가지다

. 자신들이 힘이 있을 때는 비웃다가도 막상 도움이 필요하니까 언제 그랬

냐는 듯이 도와달라고 한다.

 그것을 거절 못하는 장한수의 처지가 더욱더 그를 화나게 했다. 장한수가

바보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더러운 운명에 화가 났다.

 모두들 당하고만 있는 것 같았다. 광견조도 아무런 이유 없이 당하고 있는

 것이고 한수 형님도 마찬가지다.

 "빨리 그 문주인가 하는 사람을 데리고 와라!"

 광폭한 살기를 포함한 외침을 터트린 일휘의 몸이 그 자리에서 방향을 바

꾸며 오른쪽에 있는 나무를 향해 왼다리를 이용한 선풍각을 날렸다.

 콰앙!

 어른 허리 두께의 거대한 소나무가 부러지며 위쪽이 일 장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엄청난 괴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일휘의 다리에 의해서 부러

졌다고 생각했던 소나무는 부러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도를 이용해서 잘라

버린 것처럼 깨끗한 단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선풍각이 아니라 극도의 강기를 포함한, 웬만한 도검보다 더 날카

로운 다리였던 것이다.

 잠시 후 허공의 빈 공간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는 것 같더니 가슴 위쪽에

사라진 한 인물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일휘의 선풍각에 상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저럴 수가…!"

 황자춘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단순한 발놀림이 아니었다. 이

미 강기의 경지를 넘어선 자의 움직이었던 것이다. 은둔술로 숨어봐야 아무

런 의미가 없는 초강자.

 황자춘이 놀란 것만큼 경악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자들이 또 있었다.

 "그게 정말이더냐?"

 사자혈륜 적인수와 혈사삼존 중 이인이었다. 동정호 부근에서 백산일행과

조우했던 천사맹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 무협이었던 것이다.

 삼인의 얼굴에 놀람이 가득했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들이 또 있

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도 사십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오늘 하루의 즐거움을 완전히 망쳐버린 보고가 아닐 수 없었다.

 삼인의 인물을 즐겁게 했던 일이 무엇이던가. 바로 청성파의 문주인 건곤

무제 차보운의 포획이었다.

 비록 이십여 명의 부하들을 잃었지만 그가 가져다 줄 이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선은 과거 천사맹형제들에 대한 복수가 그 첫 번째요, 둘째

는 그가 이번에 새롭게 익힌 건곤검법이란 무공이다. 그 무공이 천사맹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도망친 한 놈만 잡아오면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는데 또 다시 문

제가 생겼다는 것이 아닌가.

 "빌어먹을… 맹주는 어디쯤 있나?"

 "한시진 정도면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수영과 석정 두 사람은 외유를 나갔다 돌아오는 구유혈존 수제인을 마중하

러 나갔던 것이다.

 구유혈존(九幽血尊) 수제인(帥帝仁).

 혈사삼존의 대형으로 맹주인 수영의 실질적인 사부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 그 또한 철목승처럼 정도에 가까울 정도로 공명정대한 사람이었다. 실제

로 수영을 구했던 사람도 그였고 자신의 성까지 주어서 제자로 삼았던 인물

이 바로 그인 것이다.

 만구득과 상인효 두 사람이 난처해하는 이유였다. 자신들이 한 짓을 알면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것임에 분명한 일이지 않는가.

 "좋다. 오기 전에 정리를 한다. 영마대를 전원 출병시켜라."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수습을 해야한다. 더구나 적들은

이곳이 천사맹인줄 알고 있지 않은가. 차보운과 관련이 없다하더라도 입막

음을 해야할 입장인 것이다.

 "가자!"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들이 직접 가서 처리를 해야될

것 같았다.

 천사맹의 본거지에 두 사존이 움직이고 있는 그 순간 무협의 출구에서는

피비린내가 흠씬 풍겨나고 있었다.

 진정으로 화가 난 일휘의 신위는 엄청났다. 그의 박투술은 백산과 소살우

와는 또 달랐다. 두 사람의 박투술은 화려한 기술을 위주로 하는 것임에 반

해 일휘의 박투술의 근간은 엄청난 힘이었다.

 우람한 근육에서 뿜어져 나온 힘과 내공이 결합된 그의 팔과 다리는 걸리

는 모든 것을 부숴버렸다.

 이미 은둔술을 버리고 몸을 드러낸 이십여 명의 영마대가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별로 피하지 않는다는 점은 소살우와 비슷했지만 그의 손과

 발 그리고 온몸을 감싸고 있는 붉은 기운은 영마대의 무기가 접근하는 것

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의 금강불괴 수준에 달하는 호신강기가 모든 무기들

을 퉁겨버리는 것이었다.

 "커억! 으악!"

 그 자리에서 살짝 튀어 오른 일휘의 두 다리가 양옆으로 활짝 펴지고 가슴

에 구멍이 뚫린 영마대 두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내려서는 일휘를 향해 뒤쪽에 있던 청의인 한 명이 쾌속하게 검을 찔러갔

다. 허공에서 막 내려섰기에 등 쪽에 허점이 드러나 보였던 것이다. 그때

일휘의 환상적인 보법이 처음으로 선보였다.

 오른발을 뒤쪽으로 옮기며 순식간에 한바퀴 회전함과 동시에 죽 펴진 오른

팔이 상대의 머리로 향했다.

 퍽!

 붉게 변한 오른손에 의해 공격하던 자의 머리가 두부처럼 으깨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부하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있던 황자춘의 얼굴이 거멓게 변했다. 강해

도 너무 강했다. 설마 저 정도로 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떻게 움직

였는지 확인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부분의 부하들이 죽어나갔지만 놈은

지금껏 단 한번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손과 발이, 발과 손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부하들을 격살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사이 이십여 명의 영마대원들이 셋으로 줄었다.

 척!

 열일곱 명의 영마대원들을 격살한 일휘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멈췄다. 거의

 일 다경 정도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움직였음에도 그의 호흡은 흐

트러짐 하나 없이 고요했다.

 "이제 만족하나? 왜 너희들은 오지 않는가! 죽음이 두렵나? 너희들이 죽어

가니까 이제야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나?"

 일휘의 몸이 한발 한발 황자춘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들었다. 또 다시 피

어오르는 살기, 일휘의 폭발적인 기세에 겁먹은 얼굴로 물러나던 황자춘과

세 명의 영마대원들이 동시에 일휘를 향해 뛰어들었다.

 더 이상 두려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온몸을 잠식하는 두려움을 이

기는 방법으로 그들이 택한 수단은 동귀어진이었다.

 "그래, 그래야지?"

 빙긋 살소를 머금은 일휘의 몸이 다시 앞으로 뛰어들었다. 전방에서 밀려

오는 살기 가득한 검도 그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달려듦과 동시에 허공으로 솟아오른 일휘의 몸이 가장 왼쪽에 있는 자의

머리를 밟으며 타고 넘고, 내려섬과 동시에 자세를 숙이며 자신을 향해 검

을 휘둘러오는 자의 단전에 정권을 박아 넣었다.

 "끄으윽!"

 처음 머리가 부서진 인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고 단전에 주먹이

 박혀있는 대원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대며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일휘

의 행동은 잔인했다. 자신의 정권이 박혀있는 인물을 옆으로 돌려 황자춘의

 검을 막는데 방패로 사용해버리는 것이었다.

 "헉!"

 황자춘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놈의 허리를 잘라버리기 위해

서 검을 휘둘렀건만 자신의 부하의 몸뚱이만 베어냈을 뿐이고, 그 사이에

붉은 기운을 머금은 놈의 왼발이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동귀어진도 소용없었다. 신형이 잡혀야 해볼 것이 아닌가.

 '빌어먹을….'

 "멈춰라!"

 저 멀리서 엄청난 내공을 포함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천사맹을 떠난 두

명의 사존과 적인수가 부하들을 데리고 도착한 것이었다.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일휘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다리를 사정

없이 내리찍었다.

 과앙! 과앙!

 "으-악!"

 두 번의 발길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황자

춘을 그대로 땅속으로 심어버리고 있었다. 처음의 발길질에 절반쯤 박혔고

두 번째 발길질에는 눈 부분만 남고 몸 전체가 땅속으로 박혀들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혈영사존 상인효가 진득한 살기를 뿜으며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황자춘을

 땅속으로 박아넣는 놈의 동작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전 내공을 실어서 소

리를 질렀건만 놈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하던 짓을 마무리 해버리는 것이

었다.

 "청성파의 장한수요. 문주님을 찾으러 왔소."

 지금껏 일휘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장한수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입

을 열었다. 말을 정중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그의 몸에서도 흘러나오

고 있는 것은 살을 애일 듯한 살기였다.

 "그 단섬쾌영 장한수란 말이냐? 파문되었던… 그런데 왜?"

 만구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한수를 쳐다보았다. 청성파에서 파

문당한 자가 왜 문주를 구하기 위해서 이 짓을 한단 말인가. 그로서는 박수

를 치며 좋아해야 될 일이 아니던가.

 "나는… 청성파의 제자니까…."

 자신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일휘의 싸움을 보

면서 계속해서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다른 이가 묻

자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이

제야 문주를 구해야 되는 당위성을 찾았다.

 "사형…."

 옆에 있던 암적산이 장한수를 불렀다. 그도 장한수의 입에서 제자라는 소

리가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암대협."

 자신을 망연하게 쳐다보고 있는 암적산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인 장한

수가 다시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다시 한번 말하겠소. 당신들이 천사맹이던 뭐든 상관없소. 청성파의 문주

를 모셔오지 않으면 전부 죽을 것이오. 전부…."

 "건방지구나, 이놈! 감히 천사맹이 우습게 보이더냐?"

 "우습게 보이는 게 아니라, 불쌍해 보이오.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남고 싶

으셨오!"

 천사맹의 비겁함을 꾸짖는 말이었다. 천사맹이란 말을 지껄이면서 하는 짓

은 뒷골목의 건달들보다 더 야비한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이도 백여 살

 가까이 먹은 자들이… 그러면서도 천사맹의 자존심이 어쩌고 하는 꼴이 더

 불쌍해 보였다.

 "갈! 네놈이 뭘 믿고 그리 기고만장 하느냐! 그깟 오합지졸을 믿고 그러는

 것이더냐?"

 만구득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놈들은 전혀 자신들을 염두에 두질 않고

있었다. 몇 명 되지도 않으면서, 수백의 천사맹 인원이 와 있는데도 겁먹은

 놈들이 아무도 없질 않는가.

 몇 개월 전에 양자강에서 자신들을 우롱했던 그놈들과 분위기도 비슷했다.

 그래서 더욱 기분이 나쁜 지도 몰랐다.

 "이봐! 늙은이. 말 조심해… 오합지졸이라니? 남의 등뒤나 치는 놈들이 오

합지졸이지, 이렇게 정식 비무를 한 사람들을 보고 그럼 안 되지. 그리고

우리 바빠, 임마!"

 옆에 있던 일휘가 자신이 땅속으로 박아버렸던 황자춘의 머리를 발로 툭툭

 치더니 다시 한번 지긋이 밟아서 완전하게 묻어버리며 만구득을 노려보았

다.

 "이런 죽일 놈이… 쳐라!"

 일휘의 도발에 얼굴이 잔뜩 붉어진 만구득이 부하들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

다.

 스스슥!

 "광견조를 건드렸던 놈들이다. 전부 죽여!"

 은밀하게 다가오는 천사맹의 영마대를 비릿한 살소를 머금고 쳐다보던 일

휘가 온 몸에서 붉은 혈기를 뿜어내며 광풍대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꼭 일휘의 말이 아니더라도 광풍대원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천사맹이란 말이 들리는 순간부터 붉은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그들의 몸에

서 흘러나오며 사방을 잠식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살기(殺氣).

 형제들을 괴롭힌 놈들을 죽여야 한다는 살기였다.

 "한가지는 알아둬라. 너희들이 죽는 진짜 이유는 청성파의 문주 때문이 아

니고, 우리 형제들을 공격했다는 것이야. 새끼들아."

 말을 마침과 동시에 물결처럼 몰려오는 천사맹의 인물들을 향해 일휘의 몸

이 뛰어들었고 그 뒤를 도와 검을 뽑아든 광풍대원이 따랐다.

 무협이 피에 젖었다. 서너 명씩 짝을 이룬 광풍대원들의 검과 도는 잔인하

게 상대를 도륙해 나갔다.

 굳이 검진까지 쓸 필요가 없었다. 검진은 방어용일 뿐이다. 적을 주살하기

 위해 나설 때는 각자 움직이는 게 더 편하다. 분노한 광풍대원들의 검과

도에서는 시뻘건 검강과 도강이 솟아나와 사방을 휘감았고 그 뒤를 잘려진

목과 피가 따랐다.

 그들 중 가장 무섭게 몰아치고 있는 사람은 장한수와 일휘였다. 마음속의

갈등을 털어버린 장한수의 검은 무자비하게 상대를 향해 날았다. 앞으로 전

진해나가며 들어오는 적을 사선으로 베어내고 그 여력을 이용하여 한바퀴

회전하며 또 다른 한 명의 허리를 잘라간다. 단섬쾌영검법의 삼초인 일양파

였다.

 수많은 조각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상대를 잘라버리는 일양파, 한 동작 한

 동작에 모든 힘을 쏟아 끊임없이 움직이며 검을 휘둘러댔다.

 상대의 피로 목욕을 하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목표는 천사맹의

두 사존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와 삼 장여 떨어진 곳에서는 한 덩어리 붉은색 운무가 장한수와

같은 방법으로 사존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장한수와 다른 점이라면 혈운이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검이 없다는 것이었다.

 부-웅!

 "컥!"

 휘감아 찬 오른다리가 상대의 관자놀이에 박히고 이어지는 왼발의 회선각

이 허리를 잘라버린다. 허공으로 솟아오르며 날리는 선풍각에 내려서면서

찍어대는 발걸음에, 일보 일보의 걸음에 핏물이 흘렀다.

 굶주린 늑대들이었다. 사나운 맹수들이었다.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땅으로

떨어지고 오른 쪽으로 뻗어나가고 왼쪽으로 달려나가는 그 모든 붉은 혈운

의 끝에는 영마대의 주검이 생겨났다.

 "저럴 수가…."

 상인효와 만구득 그리고 적인수의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이건 강해도

너무 강하지 않은가.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어디서 저렇게 엄청난 자들이 나타

났단 말인가.

붉은 혈운에 휩싸인 아수라들이었다. 지옥에서 막 뛰쳐나온 야차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가볍게 움직이며 슬쩍 슬쩍 손을 쓰고 있는 두 사람,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무형의 기운에 사방에서 터져 흐르는 핏물도 접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세우와 팽무도였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

다. 오십 년만에 다시 일으키는 살기였기에 약간은 어색했는지 달려드는 인

물들만 처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는 곳도 천무맹의 세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누구냐?"

 마령혈존 만구득이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결코 장한수와 같은 패거리가

 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모두가 강기를 구사하는 고수들이었고 이런 단체

가 있다는 것은 듣지도 못했다.

 "우리와 같은 애들을 보지 못했소? 당신들이 공격했었는데."

 "뭣이? 그럼 그 천장지옥마 일행?"

 "그렇소만 선배. 당신들은 그들을 건들지 말았어야 했소. 청성파의 문주도

…."

 지금껏 아무런 기세도 풍기지 않던 팽무도의 몸에서 조금씩 살기가 흘러나

오기 시작했다. 야욕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들. 천사맹도 그 야욕의 희생자

였지 않은가. 그런 아픔을 알고 있는 자들이 힘이 좀 생겼다 해서 자신들을

 파멸시켰던 그자들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

 "자네는 누군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군."

 "미안하오."

 팽무도와 남궁세우의 몸에서 동시에 붉은 혈기가 피어오르며 두 사람의 몸

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엄청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두 사람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에 주

변에서 싸우고 있던 모든 인물들이 손을 멈추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남궁세우와 팽무도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운이

그만큼 강했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멈추시게!"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궁세우와 팽무도의 신형이 한 순간 부르르 떨

렸다.

 '놀랍군. 천사맹에도 이렇게 강한 자가 있었던가?'

 두 사람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어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였지만 그 음

성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있었던 것이다. 앞에 있는 두 사람보다 적

어도 한두 단계 위에 있는 자였다.

 "대형!"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멓게 죽어가건 상인효와 만구득의 얼굴에 화색이 돌

았다. 천사맹에서 최고의 실력자인 구유혈존 수제인이 돌아온 것이다.

 "으음!"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 내린 수제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 너무 처참했던 것이다. 천사맹의 영마대가 절반 이상이 당하지 않았는가.

 예정보다 조금 빨리 왔기에 이 정도였지 조금만 늦게 왔으면 전부 몰살당

할 뻔했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을 향해 손을 쓰려던 두 사람, 자신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고수였다. 그나마 그 두 사람이 부하들에게는 별로 손을 쓰

지 않았기에 희생이 줄었다 할 수 있었다.

 "모시고 와라!"

 수제인이 뒤쪽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천사맹 인물들이 청성파의 문주인 차

보운과 청성사위 세 명을 데리고 나왔다.

 "데리고 떠나게!"

 "대형!"

 수제인의 행동에 만구득과 상인효가 깜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자신과 힘

을 합쳐 저들을 처리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기껏 힘들

게 잡아두었던 청성파 문주와 그의 부하들을 데리고 와서 풀어주는 게 아닌

가.

 "이것으로 전부 잊어줄 수 있겠는가. 어차피 전에 공격했을 때도 우리 애

들이 전부 당했네."

 "알겠습니다, 수 선배. 그렇게 하지요."

 "가문에는 돌아가지 않을 텐가."

 수제인의 말에 남궁세우와 팽무도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설마 자

신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허허! 세월이 흐른다고 잊혀지겠는가. 한때 천하제일인이었던 사람들을…

."

 "저기 있는 저 애들과 먼저 간 애들이 저희들의 가문입니다."

 "비밀로 해주게. 더 이상 세상에 나서질 않을 것이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자!"

 수제인과 뜻 모를 몇 마디 말을 나누던 팽무도가 인사를 하며 출발지시를

했다.

 "대형!"

 만구득이 수제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수백의 부하들을

해친 자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을 공격하기는커녕 미안한 표정으로 잊어

달라고 했다.

 "벌써 세 번이나 불렀네. 왜, 저들을 놓아준 게 못마땅한가? 천사맹이 살

기 위해서였다면 이해하겠나."

 "무슨 소립니까, 대형.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뇨?"

 엄청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도 부하들이 이백 명이나 남아있는데 천

사맹이 살기 위해서 저들을 보내주었다 하고 있는 것이다.

 "천하제일도와 신수신룡이었네. 저들 두 사람은. 나도 상대가 안 될 정도

로 강한 사람들이고…."

 어쩌면 수제인이 더 놀랐는지도 모른다. 강호 무림인들이야 철목승을 천하

제일인으로 꼽았지만 자신은 철목승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적어도 지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금 두 사람은 스스로 천하제일이라 생각하고 있던 자신보다 더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라니… 오십 년 전 백살대의 대주와

 부대주가 아닌가.

 그때에도 천하제일이라 불리었던 사림들이고 한(恨)으로 오십 년을 살아왔

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한으로 무공을 익혔다면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수영에게도 이야기했네. 앞으로 강호 활동은 전면 금지네. 무림이

 돌아가는 게 수상해…."

 수제인이 강호에 외부를 나갔던 이유였다. 강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무

림의 정세를 살피러 나갔지만 그도 알 수 없는 암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

다. 결코 두 맹의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존 두 사람은 수제인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

이고 있었다. 팽무도와 남궁세우란 말에 넋이 빠진 것이다.

 백살마대의 대주와 부대주가 살아있다는 말이었다. 강호가 뒤집어질 대 사

건인 것이다.

 "그들의 생존이 우리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모르지만 서로의 비밀은

지키는 것으로 했네."

 팽무도와의 대화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팽무도가 가문으로 돌아간다 했

으면 자신들의 생존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뜻이 될 것이나 그들은 돌아간다

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들의 생존도 비밀에 붙여 달라고 했던 것이다.

 "태상 맹주님! 청성파의 인물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사뇌 석정이 걱정스런 얼굴로 수제인을 쳐다보았다.

 팽무도 일행이야 본인이 밝히기 싫어했으니 천사맹의 비밀을 지켜주겠지만

 자신들이 납치했던 청성파 인물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더군

다나 납치까지 당했던 자들인데 그냥 넘어간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

닌가.

 "팽무도 그 친구가 알아서 하겠지만 지금 정파인들은 우리에게 신경 쓸 틈

이 없네.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그럼 남진관으로 전부 옮겨야 되겠군요."

 "그렇게 하도록 하게."

 서릉협에 있는 남진관, 과거 삼국시대에 장강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

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그 남진관에 천사맹의 두 번째 근거지가 있었던 것

이다.

 "날 구해주었다고 고맙다 할 줄 알았나?"

 멀리 무협의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차보운과 장한수가 서로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하고 싶었을 뿐이다. 너에게 그런 소리 듣고자 했던 것도 아니고. 한가지

만 부탁하자. 천사맹에 대한 것은 비밀로 해달라는 것이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하는가?"

 차보운이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자신을 암습한 자들이다. 공론화

시켜서 강호상에서 없애도 시원찮을 판에 그들의 출현을 비밀로 해 달라니.

 "그래서 부탁하는 거다. 너도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지 않느냐."

 장한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천사맹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당했던 것을 이야기해야하지 않겠는가. 단순하게 이곳에

천사맹이 있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이것저것 근거를 만들다 보면 자신이 사로잡혔다는 것이 밝혀질 것인데 그

것 또한 청성파의 입장에서 보면 치욕이 될 뿐이다.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다는 뜻이었다

.

 "좋다. 그것은 약속하지."

 "고맙구나. 그럼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

 차보운의 확답을 들은 장한수가 몸을 돌렸다. 과거의 앙금은 풀지 못했지

만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졌다.

 "잠깐!"

 떠나는 장한수를 불러 세운 차보운이 무언가를 던졌다.

 "가져가시오."

 "이것은…."

 장한수의 표정이 아련하게 변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옥팔찌, 자신이 선

물했던 유일한 물건이 바로 그것이었고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

었다. 그 사랑의 정표가 이십 년만에 자신의 수중으로 돌아왔다.

 "사제…."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장한수의 눈에 저 멀리 사라지는 차보운의 모

습이 보였다. 화옥을 잊기 위해 무공초식마저 그녀를 잘라버린다는 이름으

로 지었던 그였지만 끝내 잊지 못하였는가.

 그녀가 남긴 단 하나의 유품을 지난 이십 년간이나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

다.

 "고맙다…."

 옥팔찌를 돌려주었다 함은 이제는 장한수에게 그녀를 지키라는 말이다. 떠

나는 차보운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과거의 사형제들을 떠나보낸 장한수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상당히 달라진 표정이었다.

 "잘 갔느냐."

 "네. 어르신."

 "잘했다."

 팽무도가 흐뭇한 표정으로 장한수의 등을 두드렸다.

 장한수의 밝아진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자신

을 괴롭히는 힘든 과거는 사라지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을 것이다.

 "인생이란 말이다. 슬픔만이 또는 기쁨만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두 가

지가 언제나 공존하고 있는 게야."

 철학도 아니고 인생경험도 아니다. 세상사는 진리인 것이다. 슬픔이 있어

야 기쁨이 더욱 커지는 것이고, 실패가 있어야 성공이 더욱 값지게 보이는

것이고, 죽음이 있어야 삶이 더욱 소중해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장한수의 과거가 해결되었다해서 일행의 바쁜 발걸음이 멈춰진 것

은 아니었다. 천사맹 때문에 늦어진 만큼 더욱더 바쁘게 움직여만 한다.

 운공을 마친 일행들이 북쪽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이번의 목적지는 무당

산이었다. 무당이란 대 문파가 있는 곳이기에 망설임도 없지 않았지만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다 보니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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