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1/84)

제3장 전쟁(戰爭)

 천무맹에 구파일방이라는 방수가 있다면 천마맹에는 패천마궁(覇天魔宮),

혈마궁(血魔宮), 철마궁(鐵魔宮), 나찰마궁(羅刹魔宮), 흑사파(黑砂派), 암

천회(暗天會)의 여섯 개의 거대세력이 기둥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중 귀주성(貴州省)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곳이 흑사파다.

 사왕곡(蛇王谷).

 귀주성 남쪽의 뇌송산(雷松山)에 있는 최고의 절지, 이곳을 절지라 칭한

이유는 사왕곡이란 이름이 말해주듯이 계곡 전체가 뱀의 천국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뱀들이 서식하고 또한 남쪽을 제외한 사방이 절벽으

로 둘러싸여 있어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라 할지라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천험의 요새지이기 때문이다.

 그 사왕곡에 사람이 기거하고 있었다.

 좌우에 철벽처럼 서있는 절벽 사이로 십여 장 폭의 통로가 나 있고 그 통

로를 따라서 이백 장 정도를 전진하다 보면 거대한 분지와 만나게 된다.

 그 분지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조그마한 인가들, 사왕곡에 똬리를 틀고

있는 흑사파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천무맹의 도룡대가 우리를 치기 위해서 내일 출발한다는 연락이 맹으로부

터 왔다."

 오 척이 조금 넘어 보이는 작은 키에 중원인에 비해 약간 검은 피부와 호

리호리한 눈동자를 가진 사내, 흑사파의 주인인 혈독수(血毒手) 척고인(斥

高仁)이란 자였다.

 한족과 묘족(苗族)의 피를 반씩 이어받은 혼혈아였다. 비천한 태생의 삶이

 그러하듯이 묘족에도 끼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족도 아닌 척고인은 불우한

시절을 보냈고 무공을 익히는데 그 한을 쏟아 부은 결과 흑사파의 회주가

되었다.

 "총관 관문은 다 점검했는가?"

 "네, 회주님. 전면 관문을 비롯해서 절벽 쪽까지 모든 점검이 끝났습니다.

 지부에도 모두 연통을 돌려서 내일이면 모든 인원이 도착할 것입니다."

 총관인 파뢰도 유장열이란 인물이다. 척고인의 최 측근 중의 한사람으로

척고인을 회주로 만들었던 일등 공신이 바로 그였다.

 "이번에는 천무맹 일당을 완전하게 제거한다. 귀주에 흑사파만 있는 이유

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척고인에게 있어서 구화산의 전쟁은 엄청난 타격이었다. 오백의 병력을 투

입했었는데 이백여 명 정도만 살아서 귀환했다. 천무맹의 백의대 한 곳과의

 전투에서 흑사파의 삼 할을 잃고 말았다.

 더구나 첫 전투, 천무맹과의 개전에서 양패구상(兩敗俱傷)은 흑사파에 있

어서 치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들의 안방인 귀주성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귀주성에는 흑사파 외에 다른 무림단체가 없다. 거의 고원지대로 이루어진

 척박한 땅이고, 거주인들이 묘족과 회하족 등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중원인들이 싫어하는 까닭도 있지만 이곳을 장악하고 있는 흑사파의 세력

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만일에 대비해서 철저히 경계를 서라해라."

 "네!"

*     *     *

 저 멀리 사왕곡의 입구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일단의 무리들이 사왕곡

을 쳐다보며 무엇인가를 숙의하고 있었다.

 "굳이 이런 것까지 준비할 필요가 있소."

 대월산에서 소살우에게 두 귀를 도둑맞고 자신의 부하들로부터 무이검(無

耳劒)이란 소리를 듣고있는 무풍검 하우돈, 남진룡을 대하는 그의 목소리에

 잔뜩 짜증이 묻어 나왔다.

 그로서는 불만이 많았다. 아무리 신룡각주라 하지만 대주가 부재중인 무룡

대를 일방적으로 끌고 와서 흑사파 공격에 선봉으로 세우려하는 저의가 의

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흑사파를 치는데 준비물이란 것이 더 가관이었다.

 벌을 키우는 사람들이 벌꿀을 채취할 때 쓰는 그물 망과 두꺼운 가죽옷,

그리고 온몸에 덕지덕지 바른 명반(明礬)이라니, 아무리 이곳에 뱀이 많다

지만 자신들은 무림인이고 고수들이다.

 이런 하찮은 것으로 몸을 보호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까닭이

다.

 "필요 없다면 쓰지 않으셔도 좋소. 하지만 가지고는 있으시오. 쓸 일이 없

으면 더 좋은 일 아닙니까."

 하우돈의 반 공대에도 불구하고 남진룡의 얼굴은 기분 나빠하는 표정이 아

니었다. 오히려 하우돈의 그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이 더욱더 진지하고 차분

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남쪽 통로는 누가 칠 거요?"

 백의대의 생존자 중의 한 명인 청오검 군무해였다. 그의 기분도 하우돈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자신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척하는 남진룡의 심사가

더욱 기분이 나빴던 터였다.

 "정면은 제가 치지요, 하부대주와 군조장이 얼마나 빨리 절벽을 타고 오르

느냐에 우리의 목숨이 달려 있소."

 "각주가 정면을 맡겠다는 말이요?"

 두 사람이 놀라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천무맹의 작전, 아니 남진룡

의 작전이다. 소수인원이 정면인 남쪽 통로에서 적의 시선을 끌고 있는 사

이에 나머지 인원은 후면 절벽을 타고 넘어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맹에서도 출발 날짜마저 속이며 일찍 출발했다. 맹의 수뇌들조차 내일 출

병으로 알고 있을 터였다. 덕분에 귀주성에 도착해서 지금껏 발각되지 않고

 이곳까지 왔던 것이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소."

 "내가 죽으면 두 분은 더 좋을 것 아닙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수하들을

사지(死地)로 밀어 넣고 뒤로 몸을 뺀다는 것은 장수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

 "으음!"

 남진룡을 쳐다보는 하우돈과 군무해의 얼굴이 달라졌다. 신룡각주자리를

탐내는 기회주의자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다.

 어떤 야망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은 기회주의자

의 행동이 아니라 진정으로 수하들을 걱정하는 수장의 면모였던 것이다.

 특히 청오검 군무해의 얼굴에는 감탄의 빛마저 나타나고 있었다. 부하들을

 방패삼아 살아난 화인걸과는 너무 비교가 되었음이다.

 "자 출발합시다. 정확하게 한 시진 후 우리가 정면으로 진입을 시도하겠소

."

 "알겠소! 각주."

 하우돈과 군무해가 구백여 명의 인원을 데리고 절벽 쪽을 향해서 몸을 날

렸고 남아있는 숫자는 무룡대와 백의대 인원 백 명 그리고 도룡대 백 명을

합쳐서 전부 이백 명이었다.

 이백의 숫자로 사왕곡의 전면을 치는 도박을 감행하려 하고 있었다.

 "자! 우리도 갑시다."

 거의 한 시진이 지났는지 남진룡을 비롯한 잔여 인원들이 몸을 날려 사왕

곡의 유일한 통로인 남쪽의 입구에 내려섰다.

 "준비한 것은 모두 착용했나?"

 "네, 각주님!"

 "좋다. 최대한 빠르게 뚫고 나간다. 진격하라!"

 이백의 신룡각 인물들이 두 절벽사이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적이다. 컥!"

 곡 입구에서 들려오는 세 마디의 비명소리와 함께 비상종이 요란스럽게 울

려 퍼졌다.

*     *     *

 "무슨 일이냐?"

 "적입니다, 회주님. 아무래도 천무맹의 기습인 것 같습니다."

 "뭐라고? 내일 출발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척고인이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맹에서의 연락대로라면 내

일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벌써 공격을 해 왔다는 것은….

 '아뿔사!'

 적의 계략에 당했다는 말이 아닌가.

 "빨리 병력을 집결시켜라. 아직 함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터, 그곳에서 전

부 몰살시킨다."

 사왕곡 여기저기에서 횃불이 켜지고 수백의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

했다.

 "궁수는 절벽 위로 나머지는 나를 따르라!"

 파뢰도 유장렬의 외침에 따라 활을 들고 있는 일단의 인물들이 통로 쪽에

있는 절벽을 타고 몸을 움직였고, 나머지는 유일한 입구인 남쪽으로 몸을

날렸다.

*     *     *

 "빨리 빨리 움직여라!"

 절벽 아래 쪽, 하우돈이 부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거의 이백 장이나 달

해 보이는 엄청난 높이의 절벽이었다. 또한 일반적인 절벽과는 그 모양부터

가 달랐다.

 안쪽으로 경사진 부분이 백장 가까이 되었던 것이다. 그곳은 두 손만 이용

해서 움직여야 된다는 소리다. 하우돈 정도의 고수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반무사들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높이였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고수들이 먼저 올라가 아래쪽으로 밧줄을 내리는 것이

었다. 먼저 삼십 장 길이의 줄을 내리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줄을 내리는

식으로, 즉 한 사람이 절벽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네 번의 줄을 바꿔 잡

아야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 또한 남진룡의 지시사항이었다. 거의

 수백여 개의 줄이 절벽을 새카맣게 덮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줄을 붙잡고

 천무맹의 인물들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크윽!"

 그때 하우돈의 눈에 삼십 장 정도를 올라가서 새로운 줄을 잡기 위해 손을

 내뻗던 부하들이 무더기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떨어지는 부하들을 쳐다보며 기겁을 한 하우돈이 자신들이 기습을 준비하

고 있다는 것도 잊고 소리를 질렀다.

 "뱀입니다 부대주님. 절벽에 있는 구멍에서 뱀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예상하고 명반을 준비시킨 것인가?'

 "명반이 남은 사람은 바르지 않은 자들에게 나누어 줘라! 그리고 준비한

망을 써라."

 자신이 무사히 내려온 이유가 있었다. 부하 중 한 명이 냄새 좀 맡아보라

며 장난삼아서 그의 몸에 발라준 것 때문에 뱀의 공격을 받지 않았던 것이

다.

 그러나 이미 올라가 있는 부하들 중 명반을 바르지 않은 이들이 너무 많았

다. 그것도 전부 무룡대와 백의대 인물들이었다.

 "빌어먹을!"

 하우돈의 인상이 구겨졌다. 한순간의 자존심 때문에 이지경을 만들고 말았

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이곳은 사왕곡이다. 온 사방이 뱀 천지인 이곳에서

 명반을 바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순간의 반발심에서, 이제 갓 각주가 된 자를 무시하는 마음에,

냄새가 싫다며 명반을 바르지 않은 부하들을 묵인해버린 것이 죽음으로 이

어지고 있었다.

 뱀의 공격에 이어서 이번에는 혈봉이라는 벌에 쏘여서 가죽옷을 입지 않은

 부하들이 아래로 추락했다.

 거의 한 시진 정도 걸려서 절벽 위에 올라섰으나 이곳에서 이백이 희생당

하고 말았다.

 남진룡의 지시대로 했으면 희생 없이 올 수도 있었던 곳을 자신의 고집으

로 이리 된 것이다.

 비천사(飛天蛇)라는 뱀이었다. 묘강에서만 서식한다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뱀이다. 그 움직이는 속도가 육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오죽했으

면 날아다닌다 하여 비천사란 이름이 붙었겠는가.

 물어서 중독 시키는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를 이동해서 피부를 뚫고 들어

가 그 속에서 독을 뿜어내어 상대를 중독 시킨다.

 일단 독에 중독 되면 바로 절명할 정도로 무서운 독을 함유하고 있는 뱀이

 비천사였다.

 "자! 움직여라. 일단 전령각을 찾아라."

 죽은 자들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소리

와 병장기 소리는 남진룡이 이미 시작했다는 뜻이다. 자신이 약간 늦은감이

 없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시한 대로 하기로 했다. 어차피 모두 몰살시키면 끝날 터인데

굳이 전서구를 날리는 전령각을 접수하라 했으니 그렇게 해야될 것 같았다.

 "서둘러라. 전방에 있는 대원들이 위험하다."

 하우돈의 예상대로 이백의 천무맹 인원들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여있

었다.

 양쪽에 있는 절벽에서는 비천사가 튀어나와 명반을 바르지 않았던 동료의

몸 속으로 파고들고, 앞에서는 혈봉들이 무더기로 날아오고 있었다. 게다가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비에 벌써 오십여 명의 인물들이 쓰러져 시체로

 뒹굴었다.

 "명반을 바르지 않은 자는 중앙으로 들어가고 계속 전진하라!"

 남진룡이 도를 휘둘러 화살을 쳐내며 연신 고함을 질러댔다.

 "천도탄(天刀彈)!"

 남진룡의 일갈과 함께 도기(刀氣)의 폭풍이 전방으로 밀려가며 새카맣게

밀려오던 혈봉들이 무더기로 떨어졌다.

 "나를 따르라!"

 도를 휘두르며 선두에서 전진하고 있는 남진룡을 천무맹의 백의대와 무룡

대원들이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뛰어난 무공 실력도 그렇지만 가장 선두에 서서 자신이 먼저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들이 알고 있고 보아왔던, 부하들 뒤에서 명

령을 내리는 수장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급무사들이나 보일 수 있는 행동

을 각주가 직접 보이고 있질 않는가.

 천무맹 인물들의 사기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와-아! 각주님을 따르라. 입구에 다 왔다."

 용기 백배한 천무맹 인물들이 고함을 지르며 남진룡의 뒤를 질풍처럼 따르

기 시작했다.

 "천도파(天刀破)!"

 입구에 다다른 남진룡의 입에서 거대한 고함소리가 터지고 그의 도에서 튀

어나온 도강이 암습 준비를 하고 있던 흑사파의 인물들을 도륙하며 새하얀

백광을 뿌렸다. 그의 뒤를 이어서 백오십 명의 인원이 물밀 듯이 뛰쳐나가

며 사방으로 검과 도를 휘둘렀다.

 "쳐라!"

 파뢰도 유장열의 입에서도 공격명령이 떨어지고 이미 대기하고 있던 흑사

파의 인물들이 일제히 독암기를 쏟아내며 공격을 시작했다.

 "으악! 아악!"

 처절한 비명소리를 토해내며 선두에 있던 천무맹 무인들이 쓰러졌다. 공연

히 귀주의 패자가 된 게 아니었다. 유장열의 지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대

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근접하라! 최대한 다가가서 공격하라!"

 남진룡의 입에서도 고함이 터져 나오며 자신 앞에 있는 인물들을 향해서

가차없이 도를 날렸다.

 삽시간에 피의 폭풍이 불었다. 남진룡의 신위는 무서웠다. 거의 일장에 달

하는 도강을 사방으로 뿌려대며 도에 걸리는 모든 것을 절단해버리고 있었

다.

 "칠성오행검진!"

 다시 한번 터지는 남진룡의 외침소리에 천무맹의 인원들이 검진을 형성하

여 흑사파를 향해 밀려갔다.

 검진의 가장 선두에 있는 인물, 팔극도룡 남진룡이 최전방에서 흑사파 인

물들을 주살하며 진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흑사파 인물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베어도 베어도 끝없이 밀려들

었고 천무맹 측에서도 검진이 와해되며 희생자가 생겨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우리는 자랑스런 천무맹 일원이다."

 '하우돈 뭐하나? 빨리 와라. 이러다간 전멸한다.'

 하우돈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기에 남진룡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

했다. 벌써 절반정도가 희생되었음에도 절벽으로 접근했던 이들이 나올 생

각을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삼초를 사용해야 하나?'

 지금껏 자신의 무공 중 이초만으로 이들을 상대해 왔으나 더이상은 견딜

재간이 없기에, 최후의 절초를 사용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밝

지가 못했다. 하우돈이 도착할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싶지 않을

것 같았다.

 "와! 쳐라 한 놈도 남기지 마라!"

 남진룡이 삼초인 천도류(天刀流)를 펼치기 위해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을

때 흑사파의 배후에서 엄청난 고함소리와 함께, 절벽을 타고 올라왔던 하우

돈과 나머지 신룡각 인원들이 물밀 듯이 밀려나왔다.

 "헉!"

 얼굴이 해쓱하게 변한 유장열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천무맹의 양동작전에

당하고 말았다. 설마 절벽을 타고 배후를 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곳에 있던 비천사와 혈봉은 무림 고수라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

다. 바로 코앞에서 공격해오는 뱀과 벌을 무슨 수로 피한단 말인가.

 그런데 저들은 수백의 인원이 절벽을 타고 올라왔다. 비천사와 혈봉에 대

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대비를 했다는 말이다.

 이제는 자신들이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으악! 악! 죽어랏!"

 비명과 고함소리가 혼재하며 쌍방이 혼전으로 치달았다. 그 중 가장 돋보

이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신룡각의 신임각주인 팔극도룡 남진룡과 흑사파의

 회주인 혈독수 척고인이었다.

 남진룡의 일도에 오륙 명씩 몸이 잘리고 척고인의 일수에 천무맹 인물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다.

 정녕 무서운 장풍이었다. 척고인의 장풍은 독장(毒掌)이었다. 스치기만 해

도 중독 되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 앞에 있는 상대를 장애물 치우듯 처리하며 두 사람이 마주하고 섰

다.

 "자네는 누구인가?"

 혈독수 척고인이 남진룡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무 강했다. 아무리 천무맹

이고 고수가 많은 곳이라 하지만 이제 삼십대 정도밖에 보이지 않은 자가

도강을 쏟아내고 있었다.

 "남진룡이오. 신룡각을 맡고 있소이다. 하우돈 뭐하나?"

 두 사람의 대결 때문에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일행을 향해 전부 주살하라

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전부 다 죽일 셈인가?"

 이미 흑사파가 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절벽 쪽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

데 그곳으로 왔다면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적은 자신들

을 알고 있었는데 자신들은 적이 출발한 날짜도 모르고 있었다. 시작부터

진 싸움이었다.

 귀주성내에 있는 수하들이 왔다면 우세하게 싸워볼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내일이 되어야 도착한다.

 더구나 구화산에서 흑사파의 최 정예가 삼백이나 당하지 않았던가. 현재의

 전력으로는 천무맹의 신룡각과 대적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소이다. 내일 올 자들을 대접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방문

은 비밀이 되어야 하기에…."

 이미 승자의 표정이 되어있는 남진룡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하우돈도 많은 병력을 잃은 것 같지만 흑사파의 멸망은 기정사실일 뿐이다.

 "그들까지 노리고 있었던가. 그대가 죽어도 가능할까?"

 남진룡을 노려보던 척고인이 독문무공인 혈수마공(血手魔功)을 운기하고

있는지 두 손이 붉게 변했다.

 "혈수파(血手波)!"

 강렬한 외침과 함께 척고인의 양손에서 비릿한 냄새를 동반한 붉은 색의

장풍(掌風)이 쏘아져 나왔다.

 척고인의 공격과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비명소리와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며 다시 혈전이 시작되었다.

 "천도탄!"

 남진룡의 입에서도 일갈이 터지고 수십 개의 도기들이 붉은 색의 장풍을

향해서 밀려가고 두 개의 힘이 거칠게 부딪쳤다.

 "천도파!"

 잠시 한 걸음 물러났던 남진룡이 빛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도강을 뿌려

댔다.

 그러나 상대는 흑사파의 회주이다. 오직 무공의 강함만을 가지고 그 자리

에 올라있는 자였다. 척고인도 만만한 고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혈수멸(血手滅)!"

 그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며 남진룡의 도강을 향해 수십 번의 주먹을 뻗어

냈다.

 "챙! 차앙! 광! 광! 쾅!"

 권강과 도강의 충돌이 일어나며 두 사람의 몸이 빛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

다.

 달려드는 적을 쳐내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하우돈과 군무해의 놀라움

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척고인이 누구이던가. 구파일방에 버금간다는 흑사파의 회주가 아닌가. 구

파일방의 장문인과 대등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남진룡은 흑사파의 회주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승기를 잡고 몰아치는 것처럼 보였다.

 '각주는 각주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해야지.'

 "모조리 주살하라. 먼저 간 형제들의 원혼을 달래야 한다!"

 일방적인 싸움이 되었다. 자신들의 각주가 흑사파 회주인 척고인과의 싸움

에서 전혀 밀리지도 않고 오히려 몰아치고 있는 것을 본 천무맹의 무사들이

 흑사파의 인물들을 거칠게 쓸어가고 있었다.

 허공에서 장과 도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내려섰다.

 "과연 천무맹이구먼. 자네 같은 나이에 이 정도라니… 이젠 마무리를 하세

나."

 주변을 돌아본 척고인의 얼굴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싸움이 거의 종반으로

 치달았다. 자신의 부하들이 손도 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고 말았다. 흑사파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다.

 "애초에 우리 천무맹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었소."

 남진룡도 마지막 일초를 준비하는 것인지 조용히 호흡을 고르며 자신의 가

슴 앞에 도를 세웠다.

 "그럼 먼저 가겠네. 혈수천붕(血手天崩)!"

 척고인의 외침과 함께 수백 개의 붉은 장이 남진룡의 전면을 가득 메우며

밀려왔다. 하나같이 독을 머금고 있는지 붉은 혈무 속에 청광이 번득이며

살기를 내뻗고 있었다.

 "천도류(天刀流)!"

 남진룡이 커다란 외침을 토해내며 척고인을 향해 도를 내던졌다. 이기어도

, 그의 손을 떠난 도(刀)는 붉은 독강을 모두 부수며 척고인의 심장을 그대

로 관통해버린다.

 "커억! 이기어도까지…."

 "윽!"

 심장에 구멍이 뚫린 척고인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고

남진룡은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했다.

 조금 전 절대절명의 상황에서도 삼초의 시전을 망설였던 이유였다. 그의

실력으로는 이기어도인 천도류는 한번밖에 시전할 수 없었던 거였다.

 "각주님! 괜찮습니까?"

 하우돈이 놀라운 얼굴을 하며 남진룡에게로 뛰어왔다.

 그런데 하우돈의 호칭이 달라져있었다.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각주라 칭

하며 반 공대만 했던 그가 각주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제는 완전하게 신룡각주로 인정한다는 소리다.

 "괜찮소. 일단 이곳을 전부 정리하시오. 우리가 오기 전과 똑같이."

 창백해진 얼굴로 일어선 남진룡이 하우돈에게 지시를 내리며 사방을 둘러

보았다.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절벽 위에서 활로 자신들을 공격하던 무리들까지도 모두 제거되어 흑사파

인물들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천무맹 인물들의 표정도 그리 밝지 못했다. 거의 삼백에 달하는 수

하들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 중 하우돈과 군무해 두 사람의 심경은 더욱 착잡했다. 자신들이 각주의

 말만 제대로 들었던들 희생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각주님. 저희 때문에…."

 "이미 지난 일이오. 앞으로는 잘해봅시다. 아마 오늘이면 흑사파의 잔여인

원들이 도착할 것이오, 그들까지 완전하게 제거해야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

오."

 "그들 때문에 전령각을 먼저 접수하라 하신 겁니까?"

 하우돈의 얼굴에 감탄의 표정이 어렸다. 귀주성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흑

사파의 잔여병력을 처리하기 위해서 전서구를 날리는 곳을 먼저 점령하라

하였던 남진룡의 치밀함에 대한 놀라움이다.

 귀주성에 흑사파의 인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전혀 대처방안

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 능력인가?'

 처음에야 운이 좋아서 각주자리를 꿰찼다지만 신룡각을 이끌어 가는 것은

운만으로 되지 않는다.

 천 명이 넘는 인물들에게서 존경심을 얻어내야 하는데 단 한번의 전투로

남진룡은 그 모든 것을 얻어냈다. 대부분의 부하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신룡

각주가 된 것이다.

 "각주님! 이런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수하 한 명이 가져온 종이 뭉치를 받아든 남진룡의 얼굴이 흠칫 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 종이 뭉치를 하우돈과

군무해에게 넘겼다.

 "이것은…."

 받아든 종이 꾸러미를 본 하우돈과 군무해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사천에서 암약하고 있는 암천회(暗天會)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비밀 문건이었다.

 암천회(暗天會).

 청성파, 점창파, 아미파 등 구대문파 중 세 곳과 당문이라는 엄청난 세력

이 있는 곳에서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천마맹의 한 기둥.

 철저한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 회에 소속된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

이 안 된다고 알려진 문파이다.

 그런데 그들의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는 문건이 자신들의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각주님. 우리가 이곳을 점령한 사실은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그들을 치자는 말입니까? 하지만 맹에 먼저 연락을 해야…."

 "그때는 이미 늦다는 것을 각주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우돈과 군무해가 암천회의 공격을 주장하고 나섰다. 맹에 보고를 하고

다시 지시를 받는 시간이면 흑사파의 멸망이 알려질 것이고 암천회도 거점

을 바꿀 것이라는 말이다.

 "사천에 있는 세 개 문파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구대문파 중 세 개파도 어쩌지 못한 암천회를 신룡각에서 제거하면 그 공

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더구나 지금은 전쟁의 시기가 아니던가. 신

룡각의 위상이 더욱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힘든 길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천까지는 먼길이니까요. 일단 오늘

일을 먼저 해결하고 다시 상의합시다."

 그날 이후 귀주성에서 흑사파는 사라졌다.

 연통을 받고 본파로 귀환하던 흑사파의 잔여병력은 매복해있던 신룡각 인

물들에 의해서 전원이 제거당하고 밖으로 나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하들의 사기는 어떻습니까?"

 "다음 작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사기 충천입니다. 천마맹의 두 세력

을 우리 손으로 없애는 것입니다. 맹의 노인네들도 하지 못한 일을요…."

 "좋습니다. 오늘밤 바로 출발하지요."

남진룡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다는 표정이

었다.

 그리고 하우돈과 군무해가 또 한가지 간과하고 무시해버린 점.

 암천회의 비밀 문건이 왜 흑사파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파악할 수 없다던 암천회의 비밀이 아니던가.

 그러나 자신들이 세울 공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     *     *

 서안 모산파의 멸망과 낙양 설가장의 몰락이후 또 다른 소식이 중원을 휘

젓고 있었다.

 천마맹의 주축이던 귀주 흑사파와 사천 암천회의 멸문이 그것이었다.

 전의 두 사건과는 달리 이번 두 문파의 멸망은 그 배후가 분명하게 드러났

다. 천무맹의 신룡각, 젊은 무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그들이 승리의 주역이

었고 강호상에는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렸다.

 아무런 배경 없이 신룡각의 각주가 된 팔극도룡 남진룡이 그 장본인이었고

 강호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또한 남진룡 같은 영웅을 꿈꾸는 이름 없는 무사들이 하남성 쪽으로 모여

들기 시작했다.

 흑사파와 암천회의 멸망은 확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난세가 도

래하고 있었다.

 신룡각의 승전보에 대한 강호인들의 환호성과는 달리 곤혹스런 표정을 짓

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전쟁수행의 당사자들인 양맹의 수뇌들이었다.

*     *     *

 커다란 중원전도.

 실물모양을 축소한 듯, 산과 강 등 주요 시설물들이 생생하니 살아있는 것

 같은 축적도였다.

 전도에서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마맹이 있는 감숙성에서 하남성

의 천무맹까지 이어진 직선화살표 하나와 감숙성과 섬서성의 경계선상에 있

는 혈마궁, 청해 패천마궁, 서안에 있는 철마궁, 그리고 산서의 나찰마궁에

서 섬서성 한곳으로 집중된 네 개의 화살표였다.

 천마맹의 검마전.

 중원전도를 둘러싸고 광뇌 궁유의 설명을 듣고 있는 구마들의 표정이 침통

하게 굳어있었다.

 천마맹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이다.

 연일 들려오는 소식이 천마맹에 불리한 소식밖에 없었다.

 모산파의 멸망과 남궁세가의 등장은 구파일방 중 팔파의 전쟁참여를 불러

왔고 낙양 설가장의 몰락은 제갈세가의 부상을 가져왔다.

 천무맹에 악재가 되어야할 사건들이 오히려 그들의 힘을 키워주는 꼴이 되

어버렸다. 그만큼 천마맹에는 불리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흑사파와 암천회의 멸망은 천마맹 전력에 커다란 손실을 가져오게

했다.

 흑사파의 멸망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결과였지만 암천회가 당했다하는

것은 이곳 수뇌부를 다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암천회는 모든 조직이 분산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약한 곳임에는 모두들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그들은 지하에

서 암약하는 점조직으로 구성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천마맹에서 조차 그들

의 정확한 근거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맹에서는 그들 모두를 파악하고 있었고 신룡각만을

 동원하여 몰살을 시켜버렸던 것이다.

 천무맹의 정보력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확인된 사실은 천무맹 측에서 전면전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맹 내에 있는 첩자는 모두 제거했느냐?"

 검마 요대철이었다. 암천회의 멸망소식에 천마맹에서 가장 먼저 취한 행동

은 천무맹의 첩자를 색출하는 일이었다.

 예전부터 이곳에 숨어있던 대부분의 첩자들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역정보를

 흘리는데 이용하고자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천밀각의 밀정들은 대부분 제거했고 화진악의 정보통만은 그대로 두

었습니다."

 광뇌 궁유의 말에 그곳에 있던 수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무맹에 대해

서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천무맹의 첩자가 두 부류가 있다는 말이

질 않는가.

 정보수집이 목적인 천밀각의 인물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

고 있던 사실이지만 천무맹주인 화진악의 정보원까지 있다함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좋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검마 요대철만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지 별다른 표정 없이 궁유를

쳐다보았다.

 일단 초반의 기세는 천무맹에게 완패를 했다. 비록 두 파가 차지하는 비중

이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맹도들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

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냉추렴을 제거함과 동시에 확전을 유도하려 했던 천마맹의 작전이 유

명무실하게 되어버렸다.

 "저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번 전쟁을 끌고 가야 합니다. 이 전도를 보아

주십시오."

 궁유가 가리키는 중원전도에는 화살표 말고도 흰색과 붉은색의 깃발이 여

러 개가 꼽혀있었다.

 "여기 하양 깃발은 우리 천마맹의 세력을 말함이고 붉은색의 깃발은 천무

맹세력을 표시한 것입니다."

 천마맹이 있는 감숙성에 가장 큰 하양 기를 기준으로 해서 남쪽과 북쪽에

하양의 깃발이 섬서성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되어있고 그 외의 지역은 거의

 붉은색의 천무맹 깃발이 꼽혀있었다.

 지도상의 깃발로 보았을 때 천마맹에게 불리한 형세임에 틀림없었다.

 "냉추렴을 제거하여 철목승을 전쟁에 끌어들임과 동시에 이곳 섬서성을 장

악하는 것입니다."

 궁유가 가리키는 섬서성, 구대문파중 화산파와 종남파가 있는 곳이다.

 "차라리 사천에 있는 세 개 파를 쓸어버리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겠나?"

 지도를 쳐다보던 철마 지청인이 사천성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왕 출

병을 하는 바에 두 개의 문파가 있는 섬서보다, 세 개의 문파가 모여있는

사천을 공격하자는 말이었다.

 그러나 궁유는 고개를 흔들었다.

 "철마전주님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섬서성 공략은 저희들에게 세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세 가지 이점이라고?"

 "네. 우선 강호무림에서 화산파가 차지하는 위치입니다."

 태산북두라 인정하는 소림 무당을 제외하면 구대문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화산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화산의 멸망은 천무맹 사기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섬서성을 공략함으로 천마맹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효과는 팔파의

분열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광뇌의 설명이었다.

 "다음은 천마맹에서 천무맹으로의 직선 공격로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감숙성과 섬서성 그리고 섬서성과 하남성은 서로 인접해 있는 곳이다. 따

라서 섬서성의 확보는 보급과 기동성에 있어서 유리한 입장에 선다는 것이

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우리 천마맹의 전력 분산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사천의 점령은 섬서성과 호북성에 포위되는 형국을 만들지만 섬서성은 천

마맹의 모든 세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말이다.

 "천무맹에서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할까?"

 궁유의 작전은 타당성이 있는데 천무맹의 정보력이 문제였다. 암천회마저

파악하고 있던 곳인데 자신들의 행보를 파악하지 못하겠냐는 소리다.

 또한 천무맹의 머리가 되고 있는 자들은 제갈세가다. 부맹주였던 설검후가

 떠난 자리를 제갈장령이라는 거물이 차지하고 있질 않던가.

 요대철의 지적에 광뇌 궁유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 미소를 지어 보

였다.

 "제갈세가도 저의 의도를 짐작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심증만 있을

뿐 확신이 없고, 화진악에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면요."

 "그래서 화진악의 정보통만 살려준 것이었더냐?"

 요대철을 비롯한 나머지 구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진악과 제갈세가의

알력을 이용하는 절묘한 방법이었다.

 화진악이나 팔파의 입장에서 보면 제갈세가의 발언권이 커지는 것은 그리

달갑지가 않을 것이다.

 군사인 제갈수연이 섬서성을 방어하자고 해도 자신에게 확실한 정보가 있

는 이상 따르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 작정이 성공한다면 천마맹에 불리한 국면을 단번에 역전시키고 천무맹

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지금 천마맹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본대가 떠나기 전에 사천도 공격을 할 것입니다. 결사대만으로 말

입니다."

 치밀한 작전이었다. 사천을 공격하는 것처럼 꾸미고 그 시간을 이용해서

섬서성으로 모든 병력을 집중시켜 순식간에 친다는 것이다.

 천마맹의 외부 문파들은 섬서성과 거의 경계를 이루고 있기에 기동성에 있

어서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궁유가 걱정하는 것은 섬서성의 공략보다 그 이후를 방비책을 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섬서성의 공략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산서성의 공략에 들어가야 합

니다. 산서성을 공략하는 쪽이 이번 전쟁의 승리자가 됩니다."

 산서성.

 섬서성의 북쪽에 인접해 있는 곳이고 하남성과는 북서쪽으로 인접해 있는

곳이다.

 즉 천마맹에서 산서성을 공략하게 되면 천무맹을 양쪽에서 공격하는 형세

가 만들어지고 천무맹에서 장악하게 되면 천마맹은 포위를 당하는 형국이

된다. 두 맹에 있어서 총력전을 펼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거점이 바로 산서

성이 된다는 소리였다. 또한 백산 일행이 가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광뇌 궁유와 천마맹의 수뇌들이 섬서성의 점령을 위해 작전을 짜고 있는

바로 그 시간 천무맹에서도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이루어지

고 있었다.

*     *     *

 "이제 저들이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

 "섬서성이 더 확실해 보입니다만 사천성도 방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걱정이구나…."

 제갈세가의 조손.

 무천각주가 된 제갈장령과 군사인 제갈수연 두 사람이 천마맹의 공세에 대

한 대응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정보의 부재 때문이었다. 천마맹에 나가있던 거의 모든 밀정들로부터 연락

이 두절되어버렸다. 또한 아직 남아있던 몇몇 밀정들은 대대적인 색출작업

으로 인하여 더 이상의 활동은 물론이고 연락조차 취할 수 없다는 마지막

전문만 도착했다.

 천마맹의 대대적인 공세가 목전에 다가왔는데 맹주를 비롯하여 각 문파 수

뇌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적의 공격진로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팔파 중 두 개 또는 세 개 문파의 멸

망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전쟁처럼 봉문수준이 아니다. 신룡각이 흑사파와

암천회를 멸망시킬 때 너무 잔인하게 처리했다.

 완전한 몰살을 시켜버렸던 것이다.

 일부 강호인들이야 마인들이 사라졌다며 환호하고 있지만 각 문파를 구성

하고 있는 수뇌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환영할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문파도 공격을 당하면 바로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구대문파가 천무맹에 협조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자신들이 창설 모체이

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과거의 일이다.

 정의 수호라는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 이곳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궁극적

으로는 자파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산이 위험에 처한다면 천무

맹에 있어야할 이유가 사라진다.

 제갈수연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다.

 혹여 공격진로를 잘못 잡아 팔파 중 어느 한곳이 멸망하는 사태라도 생기

게되면 최악의 경우 십천각의 와해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그 책

임은 제갈세가에서 져야 할 것이다. 더구나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천마맹의

 대응이다.

 "제가 걱정하는 또 한가지는 천마맹이 주력을 출병시킬 수도 있다는 점입

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들이 맹을 비우면서 까지 출병할 수도 있다는 말이

냐?"

 아직은 총력전을 펼칠 시기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기에 손녀의 말이 너무

억측처럼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철혈전신 철목승 때문입니다."

 천마맹이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철목승의 존재로

해서 천마맹은 빈집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권력에 관심이 없는 사람임으로 맹이 빈 기회를 타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

을 사람이란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터전인 천마맹이 천무맹이나 기타 다른 세력들로부터 공

격받으면 지키기 위해서 나설 사람이란 것이 제갈수연의 판단이었다.

 "으음!"

 제갈장령의 침음성이다. 천마맹의 축이 되는 세력 두 곳을 멸망시켰고 팔

파의 가세 등으로 해서 겉보기에는 유리한 국면 같지만 깊이 따지고 보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더구나 전쟁에

진 곳은 완전한 멸망이라는 사실이다.

 "일단은 가자. 우리가 책임질 필요는 없지 않느냐."

 이곳에서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큰 사안이고, 자신들만으로 결정할 사

안도, 결론을 내릴 수도 없다. 전체회의에서 결정되어야 할 사항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 각주님."

 "수고하시는군요."

 두 사람을 향해서 정중한 포권을 취하는 내성 경비무사의 행동에 제갈수연

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지난 오십 년 간 제갈세가를 치욕스럽게 했던 검문이 없어졌다.

 이제는 천무맹에서 제갈세가를 홀대하는 자는 없다. 아니 천무맹뿐 아니라

 강호 전체에서 세가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게 뛰어넘고 싶었던 남궁세가와 하북팽가도 넘어선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 멀었음이야.'

 이제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이다. 아직 먼길이 남아있다. 외부의 경쟁자들이

 아니라 천무맹 내부의 적들을 넘어서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는 최고가 되

기 전까지는 쉴 수도 쉬어서도 안 된다.

 그녀의 표정에 굳은 의지가 실려있었다.

 "어서들 오십시오. 두 분 보기가 좋습니다."

 두 사람이 도착한 천명실에는 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바로 팔파의 수뇌들과 무천각을 구성하고 있는 세가의 대표들이 자리를 함

께 한 것이다.

 이제 완전한 확전에 돌입했고 천무맹에서도 멸망하는 문파 및 세가가 생길

 수 있다. 그럴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화진악이 총회를 제의했던 것이다.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

었지만 과거 구파일방이 끌어가던 시기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제갈 군사는 그 두 곳 중 섬서가 더 유력해 보인다, 이 말이오?"

 맹주 화진악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제갈수연이 섬서성이 더 유력하다는

근거로 제시한 내용은 천마맹의 광뇌 궁유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일맥상통

했다.

 그러나 화진악의 반응은 동의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군사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구려. 이 중요한 시기에 밀정들

에게 연락이 없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요? 평소에 어떻게 관리를 했기에 이

모양이란 말이요."

 지금이 전쟁의 시기이고 모두 하나가 되어 천마맹에 대응해야 함에도 오히

려 제갈수연을 견제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연륜이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외다."

 청성파의 풍뢰검객(風雷劍客) 문상(汶常)이었다. 강해진 제갈세가를 견제

하기 위해서 화진악과 팔파가 합심해서 제갈수연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럼 맹주님은 사천을 예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

까?"

 "잘 들으시오, 군사."

 화진악이 제시하는 사천 공략의 근거는 제갈수연이 제시하는 것과는 또 달

랐다.

 불리한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공격이다. 두 개 문파보다는 세

개 문파를 치는 것이 천마맹의 입장에서 보면 훨씬 유리한데 왜 굳이 섬서

성을 공격하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철목승에 대한 것도 의견을 달리했다.

 철목승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제거하질 못하고 구금만 하고 말았

는데 그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맹을 비울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맹주님…."

 "아니오. 군사! 이것은 내 독단으로 이러는 게 아니오. 확실한 근거가 있

습니다."

 화진악이 보여주는 문건은 천마맹에서 날아온 비밀 정보였다.

 "이곳에 보면 적의 경로가 정확하게 적혀 있소. 사천으로 말이오."

 "그것을 믿으십니까?"

 제갈수연이 보기에는 천마맹의 이간계(離間計)였다. 천밀각의 비선은 모두

 제거하고 맹주의 정보통만 살려둔다. 자신이라도 그런 방법을 쓸것만 같았

다.

 점점 섬서쪽으로 마음이 굳어지고 있었다.

 "맹주님! 중요한 결정입니다. 화산파와 종남파 천백 명의 목숨이 달려있습

니다. 천마맹의 이간계입니다."

 "무슨 소리요. 내가 일부러 섬서성을 포기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요?"

 제갈수연이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하자 화진악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 것도 아니고 천마맹에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온 전갈을 가

지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번 결정에 무천각과 천밀각은 반대합니다."

 제갈수연이 최후의 수를 던졌다. 만일 섬서성이 공격당하게 되면 모든 책

임은 화진악이 져야된다는 것이다.

 "좋소. 내가 모든 책임을 지리다. 대신… 내 생각이 옳다면 두 분 각주도

맹주의 권위에 도전한 항명죄로 다스릴 것임을 알아두시오."

 엄청난 발언이었다. 천무맹의 총회자리에서 맹주 화진악과 제갈세가의 격

돌이 일어나고 말았다. 번복될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무천각의 대표세가

들이 보고 있었고 팔파의 수뇌들이 듣고 있었다.

 "전서를 보내시오. 사천으로 모든 전력을 집중하라고. 아울러 신룡각주에

게도 더 이상 개인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전하시오."

 결국 맹주령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번복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공석중인 부맹주직은 당분간 십천각주가 겸임하기로 했소.

폐회하오."

 더 이상은 아무소리도 듣지 않겠다는 듯이 화진악이 천명실을 나가버렸다.

 "권대협, 추대협!"

 천명실을 나가려는 대라운검 권효웅과 종남파의 오뢰검객 추상효를 제갈수

연이 불러 세웠다.

 "말씀 좀 나눌 수 있습니까?"

 "군사는 정말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확실합니다. 두 분, 화산에 연락해서 방비를 하셔야 합니다."

 "제갈 군사, 신경 써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도 맹주의 의견에 동의하오이

다. 아니 동의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다른 문파의 눈치 때문에 화산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따르기만

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는 맹주를 지지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화산파의 입장이었다.

 "알았습니다. 구대협. 하지만 제 이름으로 전서를 보내는 건 말리지 마십

시오."

 "그리해 주시면 감사할 뿐입니다."

 구효운과 추상효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떴다. 그들로서도 방법

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사천으로 모아졌고 자신들의 문파를 지켜

달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맹주의 생각이 옳기를 바랄 뿐이었다.

 "왜 그리 맹주를 몰아치느냐? 섬서로 확신하는 게냐."

 두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온 제갈수연을 향해 제갈장령이 물었다. 손녀딸의

 행동이 너무하다 싶은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확신이 없었는데 맹주의 정보원이 보냈다는 전서를 보는 순간 명

백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천마맹의 이간계입니다. 분명 섬서성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천각이나 천밀각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무천각과 천밀각의 모든 것을 걸고 맹주와 한판 승부를 벌인 이유였다. 또

한 무천각이나 천밀각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

 세가의 집합체인 무천각의 각주는 그들이 선택했다. 결코 다른 사람을 인

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천밀각, 무려 오십 년 동안을 제갈세가에서 운

영해온 곳이다. 세가인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운영할 수 없다는 자신감

이다.

 '맹주를 끌어내릴 것입니다. 아니 스스로 물러나야겠지요.'

 제갈수연의 목표였다. 제갈세가에서 천무맹을 차지하려는 야망.

 "네가 나보다 낫구나…."

 제갈장령도 손녀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은 결

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추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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