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7/84)

제11장 광견조

 백산이 음양쌍마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렸던 그 객잔의 앞마당. 수인사를

하는지 반가운 표정으로 서로를 향해 포권을 취하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세 분께서도 비도 때문에 오셨습니까?"

 도사 복장을 한 오십 대의 인물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세 명의 비구니를

 향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사제들 인사하시게. 아미파(峨嵋派) 아미삼노(峨嵋三老) 분들이시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무인(戊寅)이라고 합니다."

 거의 동년배로 보이는 네 명의 도인들이 차례로 아미삼노라는 노파들을 향

해서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아미삼노(峨嵋三老).

 아미파(峨嵋派)의 장문인과 사형제지간이며 불의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손

속이 잔인하여 악인들이 만나기를 가장 꺼려하는 강호의 명숙.

 금정신니(金頂神尼) 매일랑(梅一琅), 은한파파 매이랑(梅二琅), 추면신니(

醜面神尼) 매삼랑(梅三琅). 이들은 자매로 강호에 그 협명이 자자한 여인들

이었다.

 "오! 무지진인. 무당오자(武當五者)께서 모두 하산하셨군요."

 금정신니라 불린 노파가 도인 복장을 한 다섯 명의 인물들을 쳐다보면서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쪽은 화산파(華山派)의 매화검수(梅花劍首) 중 가장 수좌(首座)

에 있는 화산오검수(華山五劍首)입니다."

 "반갑습니다, 신니. 매화검(梅花劍) 손무(孫武)라고 합니다. 많은 지도 부

탁드리겠습니다."

 양쪽 관자놀이의 태양혈이 불쑥 튀어나오고, 형형한 눈빛을 가진 삼십 대

의 청년이 금정신니 일행을 향해서 포권을 취했다.

 매화검수(梅花劍首).

 화산파(華山派)의 최고 후기지수들에게만 부여하는 영광의 호칭. 소매에

있는 매화의 수로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게 되는데, 지금 이 인물들은 전부

일곱 개의 매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매화검수 중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었다. 명가의 후예답게 그들의

몸가짐 하나하나에서 절도와 자부심이 배어나왔다. 금정신니를 비롯한 아미

삼노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고 있었다.

 삼십 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경지가 자신들에 육박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역시 화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 삼 파가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 터. 같이 행동하는

것이 어떻겠나?"

 무리들 중 가장 연장자인 금정신니 매일랑이 무당과 화산의 인물들에게 시

선을 주며 천선비도를 찾는데 합심하자 하고 있었다.

 "무량수불! 저희도 신니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비도도 비도지만 지금 돌아

가는 상황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천무맹의 무룡대가 천마맹의 공

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삼 파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일행은 설봉산(雪峰山)을 향해서 몸을 움직이

기 시작했다.

*     *     *

 정오. 보통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하늘의 태양을 보고 식사시간을 정

한다. 자신의 몸에 생기는 그림자가 가장 적어지는 때가 정오이고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는 말이다. 이곳 설봉산에도 열심히 배를 채우는 자들이 있었

다.

 설봉산의 중턱.

 방금 가죽이 벗겨졌는지 아직도 피를 머금고 있는 시커먼 털가죽이 나뒹굴

고, 그 옆에는 핏물이 잔뜩 배어있는 커다란 곰 한 마리를 둘러싸고 열심히

 칼질을 하고 있는 검은 옷의 한 무리가 있었다.

 광견조(狂犬組)였다.

 사냥을 하고 있어야할 이들이 곰 고기를 굽지도 않고 날것으로 먹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백산의 명령은 충실히 이행했는지 얼굴에서 땀이 방울방울

흘러내리고, 입고 있는 옷은 비를 맞은 것처럼 흠뻑 젖어있었다.

 "야! 너희들 말 좀 해봐라. 도대체 왜 토끼며 다람쥐 새끼들이 도망을 가

는 건지?"

 소살우가 곰의 허벅지로 보이는 부분에서 시뻘건 살덩이 한 움큼을 잘라

입으로 가져가며 일행을 향해 물었다.

 "형님! 이 새끼는 참 맛있네요? 쫄깃쫄깃한 것이 요 근래 먹은 놈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 같아요."

 마치 칼로 그어놓은 것처럼 옆으로 짝 찢어진 눈을 가진 청년이 소살우가

묻는 것에는 대꾸도 없이 해죽거리며 딴소리를 해댄다.

 "야! 뱁새, 이 곰탱이 새끼야. 곰 고기 그만 처먹고 방법을 찾아야 될 것

아냐. 언제까지 이렇게 날것만 먹고 살 거냐고."

 그랬다.

 뇌룡현을 떠나온 이후, 산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사냥을 해야했다. 그것

도 토끼나 다람쥐 같은 초식동물만 잡아야 했다. 물론 내공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냥을 성공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백산의 엄명 때

문에 간혹 가다 걸리는 이런 맹수를 잡아 주린 배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정작 그들이 원하는 작은 동물들은 삼장 안으로 접근만 하면 모조리 도망

을 친다. 무공을 사용해서 잡으려 들면 못 잡을 것도 없지만 무공 사용 불

가라는 제약 때문에 지금도 두 시진 이상 산을 헤집고 다녔으나 아무런 소

득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죽어있는 이런 곰 같은 맹수는 다르다. 자신들이 다가서면 더

욱더 광폭해져서 도발을 해온다. 그래서 한두 마리씩 걸리는 놈을 잡아 이

렇게 생으로 뜯어먹고 있는 것이다. 화식을 하게 되면 냄새가 몸에 배어 바

로 들킬 염려가 있기 때문에 날것으로 먹고 있다.

 "야. 모사! 그래도 우리 중에 네놈의 대가리가 꽉 차 있지 않냐? 그러니

네가 원인을 좀 찾아봐라."

 특정한 서체나 물건을 똑같이 모조하는데 천부적인 재주를 지닌, 세모꼴

형태의 얼굴을 가진 청년. 광견조에서 가장 어려 막내 취급을 당하고 있는

모사다.

 머리를 긁적이던 모사라는 청년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큰 형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살기가 문제인 것 같습

니다. 형님이나 저희들 몸에서 은연중에 발산되는 살기 때문에 토끼 새끼들

이 도망가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큰 형님의 요구사항도 이놈의 살기를 죽이

는 것이며, 그것만이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그건 나도 알아 새끼야! 그놈의 살기를 어떻게 없애냐고?"

 차가운 눈빛에 환한 미소를 짓는 소살우, 짜증이 났다는 소리다.

 "먼저 우리가 먹고 있는 이것들도 우리 몸의 살기를 강화시키는데 한 몫

거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코기를 먹게 되면

맹수들의 냄새가 몸에 배게 되고 초식동물들은 냄새만으로도 달아나버리게

됩니다."

 철벅!

 소살우의 손에 있던 살코기가 허공을 날아 모사의 면상에 부딪치는 소리였

다. 왜 이제서야 이야기하느냐는 것이었다. 느닷없이 고깃덩어리를 맞은 모

사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어리기 시작했고 눈동자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 모양새가 누구와 닮았다. 바로 조장인 소살우의 표정과 그대로 닮아있

었던 것이다.

 "어쭈! 이젠 엉겨? 한번 해보자 이거냐, 모사?"

 모사의 표정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소살우가 더욱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모

사를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형님!"

 순간 웃음 짓던 표정을 재빠르게 감춘 모사가 고개를 숙였다.

 부부가 오랫동안 같이 살면 서로 닮는다 했던가. 광견조 조원들이 조장인

소살우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서도 얼굴의 미소와 함께 살기가 강해

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들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는데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살기를 죽이는 것도 좋고, 무공이 강해지는 것도 좋은데 우선은 살아야 한

다. 다 살기 위해서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인데 배가 고프면 무슨 소용이 있

겠는가.

 자신의 주린 배도 채워야 했기에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그래? 이놈의 고기가 문제라 이거지. 야, 뱁새. 이 살기 덩어리들 다 가

져다 버려! 앞으로 나에게 고기 먹자고 하는 놈들은 죽는다. 또?"

 모사의 입에서 뭔가 나온다 싶었는지 소살우가 고기를 치워버리고 모사를

향해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마도 큰 형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는 것은 무념무아(無念無我)의 경지

를 터득하라고 요구하시는 것 갔습니다."

 즉 자연과 하나 되는 경지를 말함이리라. 그러나 그러한 경지가 아무나 얻

을 수 있는 것인가.

 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얻기를 원하는 경지. 수십 년을 참오하

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얻고자 노력하는 도인들이 얼마나 많았던

가! 그러나 말이 쉬워 무념무아 물아일체이지 자연과 하나 되는 경지가 쉽

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백 년에 한 명 정도 나올까 말까 한 경지였고, 그 경지를 이룩한 인물은

한 시대를 풍미한 초인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백산이 요구하는 것은 그 정

도가 아니었다. 단지 외부로 표출되는 살기 때문에 광견조가 세인들의 주목

을 받는 것이 못마땅했고, 현재의 상태에서 조금도 진전이 없는 그들의 무

공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무념무아(無念無我)의 경지? 그게 뭔데."

 역시나였다. 무념무아의 뜻도 모르는 광견조원들에게는 너무나 높이 있는

것이고 그저 하늘의 뜬구름이었다.

 "형님! 무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아의 경지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일행 중에 가장 잘생긴 청년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도 모

르는 것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하는 자부심이 얼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뭐라고? 섯다. 네 녀석이 오입질 말고도 아는 게 있단 말이야? 야 임마,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소살우를 포함한 광견조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었다.

 매끈하게 생긴 얼굴로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또 너무 밝혀서 섯다가

이름이 되어버린 청년.

 제대로 된 부모가 없었고 비천한 태생이었던 이들 광견조에게는 애초에 제

대로 된 이름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잘하는 것이나 얼굴에 특징이 있으면

 그것이 곧 그들의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항상 웃고 있는 소살우와 모조를

 잘하는 모사, 그 짓을 밝히는 섯다, 눈이 찢어져있는 뱁새 등 그런 것들을

 이름으로 가지고 사는 인생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안다는 것 아니냐, 이 새끼들아. 이 형님의 말씀을 잘 들어

라. 여기서 살우 형님만 빼고 나머지는 전부 여자랑 자 봤지? 너희들 그 짓

을 할 때 막바지에 느끼는 그 절정의 순간, 그 때를 생각해 봐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아득해지는 그 기분을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무아의 경지

라고 표현한다 이거 아닙니까."

 처음에는 광견조원들을 쳐다보며 이야기하던 섯다가 마지막엔 조장인 소살

우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마친다. 마치 아직도 숫총각인 형님이 그런 기분

을 어떻게 알겠소 하며 비꼬는 듯한 표정이었다.

 "맞지, 이 자식들아! 너희들 그 절정의 순간에 다른 생각하는 놈 있으면

나와봐. 없잖아!"

 의기양양해진 표정으로 섯다가 다른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이 섯다도 때로

는 필요할 때가 있다는 표정이었다. 소살우를 제외한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

고, 어떤 일을 상상하는지 갑자기 눈동자가 벌게지며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

었다.

 "야! 섯다. 그럼 그 짓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무아의 경지라면 토기도 잡

을 수 있겠네? 시간 줄 테니 저쪽에서 토기 한 마리 잡아와라. 무아의 경지

 속에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던 광견조원들이 섯다를 향한 소살우의 말에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섯다가 그 짓을 하며 토끼를 쫓는 모습이 떠오른 모양이

었다.

 "형님. 섯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라고? 그럼 모사 너는 그짓 하면서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소리냐? 그

토끼가 암컷이면 가능은 하겠다! 그런데 너 그 변변치 않은 물건을 보고 토

끼가 오려나. 그냥 도망 갈 것 같은데…."

 모사 옆에 있던 뱁새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펴 보이며 모사를 놀려댔다.

다시 뒤로 넘어가는 광견조 일행.

 "야 뱁새, 이제 그만 하자. 더 이상 웃다가는 큰형님 만나러 가는데 지장

있겠다. 계속해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소살우가 모사를 재촉했다. 무아의 경지가 되

었건 절정이 되었건 모처럼 만에 잡은 실마리인데 여기서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네 형님, 왜 저번에 큰 형님하고 형수님이 전쟁치를 때 말입니다."

 "오! 그래 정말 치열했지. 내 살다 살다 그런 치열한 싸움은 처음 보았어.

 나는 둘이 양패구상한지 알았다니까? 근데. 그때는 왜?"

 모사를 제외한 열한 명의 눈동자가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그때 네

가 보았냐 하는 눈빛들이었고, 빨리빨리 이야기를 진행하라는 표정들이었다

.

 광견조원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접한 모사는 내심 아차 하면서 이야기를 잘

못 꺼낸 것을 후회했으나 여기서 멈추면 더 큰일이 난다. 최소한 하루 동안

 움직이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한마디로 맞아 죽는다는 소리다.

 입술을 깨물고 모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기 있는 너희들이나 형님이나 전부가 형수님의 성격을 알 거야. 형수님

의 성격상 우리들을 의식하고 있었다면 온 홍루가 떠나갈 듯한 교성이 나왔

을까? 아마도 여기 있는 누구라도 아니라고 말할 거다. 그것이 바로 무아의

 경지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도 타인이라는 존재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지."

 모사의 이야기가 간단하게 끝이 났으나 스물두 개의 눈동자는 아직도 이야

기를 더 들어야겠다는 듯 여전히 모사를 쳐다보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게 다야?"

 "네, 바로 그거죠. 무아의 경지라는 놈이."

 모사를 쳐다보며 반짝이던 스물두 개의 눈동자에서 처음에는 허탈함이, 다

음에는 분노가, 마침내는 살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야! 그럼 너도 못 봤다는 소리잖아? 보지도 못한 놈이 왜 본

것처럼 생색을 내는 거야."

 퍼억! 퍽! 퍼버벅!

 이십여 개의 손들이 일제히 모사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광견조는 실망한 표정으로 일제

히 모사에게 주먹질을 해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아의 경지가 바로 절정의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모사의 말에 솔깃했는지 또 다른 시도를 하려하고 있

었다.

 "그럼 그 짓의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절정의 그 느낌이 무아의 경지라 이

거지? 형님 우리 한번 시도해보죠. 야! 다들 제자리에 똑바로 앉아서 무아

의 경지를 한번 잡아보자."

 뱁새가 일행을 향해서 외치며 먼저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는다. 나머지 광

견조원들도 일제히 뱁새의 행동을 따라 눈을 감으며 어떤 생각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응? 으응!"

 소살우는 뱁새의 말에 주저하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며 다른 이들처럼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각자의 생각에 몰두하는 부하들을 쳐다보던 소살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보며 마치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

처럼 나직이 중얼거렸다.

 "오순아! 내가 너희들밖에 더 있었냐? 언제 여자랑 자 봤어야 그놈의 경지

를 찾지…시펄놈들…."

 자신의 다섯 손가락을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쳐다보는 소살우의 눈에는 벌

써 어떤 경지를 향해서 멀어지고 있는 부하들이 부럽기만 했다.

 소살우가 자신의 손가락만 쳐다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은 지 얼마

 후, 모두들 잘 안 되는지 감았던 눈을 뜨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

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줄곧 눈을 감고 있는 것이었다.

 반개한 눈은 완전하게 무아의 경지에 돌입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의 몸에서는 평소에 느껴지던 살기마저도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섯다였다.

 "형님! 섯다 저 자식이 드디어 무아의 경지를 터득하고 있나 보네요?"

 섯다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뱁새가 소살우를 향해서 나지막이 속삭였

다.

 "쉿!"

 소살우가 자신의 오순이 중 집게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

는 신호를 보냈다.

 "저 녀석이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면 우리 모두가 배우면 되니까 일단 조용

히 지켜보자."

 소살우가 일행을 향해서 아주 나지막이 속삭였다. 섯다의 행동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은 바로 그때였다. 눈만을 반개하고 있던 섯다의 입이 약간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살기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주루룩!

 침이었다. 헤벌쭉 벌어진 섯다의 입술 사이로 한 주먹 분량의 침이 턱을

타고 흐르고 있는데도 섯다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

양새를 바라보던 뱁새가 아무래도 아닌 듯싶었는지 소살우를 향해서 속삭인

다.

 "형님!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아니야. 좀더 두고 보자. 우리들의 사소한 실수로 처음으로 접한 무아의

경지를 날려버리면 안 되잖아?"

 어디서 듣기는 들은 모양이었다. 깨달음은 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고 방

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소살우가 계속 지켜보자는 신호를 보냈다. 이제

는 날고기도 먹을 수 없다. 천생 풀뿌리들로만 연명해야 하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굶느냐 풀을 먹느냐 하는 이 순간에 무아의 경지를 터득하려는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어찌되었던 소살우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

다.

 그래서 침을 흘리는 것마저 무아의 경지로 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가 보아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짓 말고도 할 줄 아는 것이 있다며 대견해하는 표정으로 섯다를 쳐다보

는 소살우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섯다의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내가 보아도 저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는데 조금만 더 두고 보

지 뭐."

 그제야 소살우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표정이 변했으나 상황

이 상황인지라 섯다를 깨우려는 모사를 제지시킨다. 나머지 조원들도 일제

히 고개를 끄덕이며 섯다를 주시하고 있었다.

 광견조원들이 시선이 닿아있는 곳, 섯다의 아랫도리였다. 하늘을 향해서

우뚝 솟아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물건이 있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경지군요. 어떻게 배꼽 근처까지 올 수가 있는 거죠?"

 뱁새가 감탄의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나머지 광견조원 모두는 고개를 끄덕

이며 동의의 표정을 지었다. 부럽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비록 그 짓을 하는데 크기는 상관없다고들 하지만 어찌되었든 물건 큰놈들

이 더 당당하지 않은가. 이제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는 섯다의 모

습을 쳐다보던 소살우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는지 하늘을 향해서 우뚝

솟아있던 그것을 냅다 차버리면서 외쳤다.

 "이제 그만해, 새끼야. 무아의 경지 터득하라 했지 누가 그 짓 하래?"

 "으악! 어떤 새끼야. 추홍이와 합방만 남았는데. 추홍아! 추홍아! 어디 있

냐?"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아랫도리에서 오는 고통도 잊은 채 섯다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추홍이를 찾고 있었다.

 "야, 이 새끼 저쪽으로 갖다 버려. 곧 무아의 경지를 느낄 것 같으니까 토

끼 못 잡아오면 죽인다고 그래!"

 광견조원들이 낄낄거리며 섯다를 저만큼 들고 가서는 풀숲에 버렸다.

 "형님! 저 녀석이 엄청 아플 터인데도 전혀 느끼지를 못하는 것을 보니 무

아의 경지가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요?"

 황당한 뱁새의 말, 그러나 광견조 일행은 그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럼 방법은 맞는다는 소리네? 문제는 하늘로 치솟는 거시기를 정리하는

방법인데…."

 자신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섯다를 보고 무아의 경지가 바로 그것이

라고 생각하는 광견조원들이었다. 무아의 경지와 절정의 순간을 같은 것으

로 보고 거기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광견조. 모두들 심각했다.

 "뱁새야, 내가 방법을 가르쳐주랴?"

 뱁새의 말을 듣고 있던 모사가 뱁새에게 살짝 속삭였으나 나머지 조원들이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정말? 모사 너 방법이 있는 거냐? 이 자식, 너 머리 하나는 끝내주게 좋

다니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한자리했을 거야. 암! 그건 내가 장담

한다. 그래! 그 방법이 뭐냐?"

 뱁새가 모사를 잔뜩 치켜세우며 그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모두들 궁금하

다는 듯이 모사를 쳐다보았고, 그들의 표정에는 무아의 경지를 곧 잡을 것

처럼 희열의 빛이 가득했다.

 뱁새에게만 슬쩍 말한다고 한 것이 모두의 주목들 받게 되자 난처한 표정

으로 광견조원들을 쳐다보던 모사가, 말할 결심이 섰는지 굳은 표정을 하고

는 집게와 중지를 곧게 펴면서 크게 외쳤다.

 "잘라버려!"

 퍼억! 팍! 퍽! 퍼! 퍽! 퍽! 퍼버벅!

 일동의 구타와 함께 모사도 역시 섯다가 있는 곳으로 던져졌다.

 모사가 던져진 곳으로부터 또다시 몇 번의 구타소리와 함께 네 것 먼저 잘

라보자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아의 경지란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3권에서 계속…

==*==*==*==*==*==*==*==*==*==*==*==*==*==*==*==*==*==*==*==*=

==*==*==*==*==*==*==*==*==*==*==*==*==*==*==*==*==*==*==*==*=

==*==*==*==*==*==*==*==*==*==*==*==*==*==*==*==*==*==*==*==*=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