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광풍노산(狂風努山)
열두 개의 비도(飛刀)를 모두 장착한 백산은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과 비도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리저리 휘두르며 우뢰봉(雨
雷峰)을 향했다.
"이크! 찔릴 뻔했네. 휘-이-익! 이크!"
계속해서 손을 휘두르고 발로 차고 하자 거의 적응이 다 되었는지 우뢰봉
에 도착할 즈음에는 철구를 움직일 때처럼 비도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무엇 하느냐?"
거의 육 개월 만에 돌아온 집이라고 감회에 젖어있던 백산의 귓가에 들려
오는 사부의 목소리였다.
"으이그! 늙으면 귀만 밝아진다니까."
"사부님, 제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속으로는 욕을 할지언정 겉모습은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밥을 해주는 제자가 없어졌는데 편안할 리가 있느냐?"
백산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제자를 넘긴 돈으로 얼마나 잘 먹었는지 전보다
더 정정해진 표정으로 사부가 백산을 쳐다보고 있다.
"그동안 뇌룡현(雷龍縣)에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 단
계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고, 이제 이 단계 수련(修練)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이 단계를 수련하는데 있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백산을 향해서 빙그레 웃어보이던 팽무도가 그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
어놓았다.
"첫째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편하게 하는 방법이 있고, 둘째는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지만 쪼금, 아주 쪼금 힘이 드는 방법이 있다. 이두가지 방
법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
백산의 표정이 어리둥절하게 변했다.
이 노인네가 절대로 이런 말을 할 위인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팽무도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이상하네, 머리에 열도 없는데? 사부님 이것이 몇 개로 보입니까?"
백산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번에는 손가락 두 개를 팽무도의 눈앞에 들
이대고 흔들어 보였다.
퍼-억!
"…!"
"자식이 매를 벌어요, 매를 벌어. 어느 것으로 할 건지 빨리 선택해 이놈
아."
"알았다고요! 선택하면 될 것 아닙니까. 괜히 손찌검이야."
이놈의 노인네가 확실하게 노망이 났다고 생각하며 백산은 잔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부에 대해서는 벌써 다 꿰고
있다. 절대 두 가지 방법을 준비해놓을 인간이 아니다. 결론은 아무거나 선
택해도 모두 같다는 것이다. 그래도 장단을 맞추는 척이라도 해야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편안한 수련으로 할래요."
"그-으-래! 후회 안할 거지?"
잠시 후 팽무도와 백산이 도착한 곳은 우뢰봉의 서쪽에 있는 풍뢰곡(風雷
谷),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다. 사시사철 바람이 불고
번개가 자주 치는 곳으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서있기조차 힘든 곳이
다.
"사부님, 그런데 무엇 하러 이렇게 위험한 곳까지. 허-억! 왜 갑자기 혈도
(穴道)를 짚는 것입니까?"
백산의 물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백산을 줄로 묶어서 절벽 아래로 내려보
내기 시작했다.
"사부님, 무슨 일인지 말씀이나 해주셔야죠."
"일단 가보면 알아."
얼마나 내려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이 미친 노인네의 얼굴도 보이
지 않고 주변으로 흩어져가는 구름만이 보일 뿐이었다.
거의 백여 장 이상 내려온 것 같았다. 저 아래에 평평한 곳이 보였다. 드
디어 바닥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줄을 풀며 바닥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나 기분이 이상했다. 이곳이 바닥이라면 주변에 구름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그의 주변으로 빠른 바람을 타고서 안개 같은 것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백산은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것 같아 황급히 자신이 바위덩어리라 생각하
고 내려섰던 곳의 가장자리로 가보았다. 없었다. 뻥 뚫린 공간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으-아-악! 이 노망난 노인네가 제자를 팔아먹더니 이제는 절벽에서 굶겨
죽이려고 하네. 이 노인네야. 나를 올려줘, 올려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백산은 이제 고함을 칠 힘도 없는지 바위에 엎드
려서 올려주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백산아, 그곳에 잘 보면 조그만 동굴이 하나 있을 것이다. 그곳에 네가
먹을 식량이 있느니라."
재빨리 고개를 들어 사부를 찾아보았으나 사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천리전음(千里轉音)이었다.
"그리고 네놈이 지금 나에게 욕한 것은 나중에, 나중에 따로 계산하도록
하자. 그리고 동굴 안에 보면 편지가 한 장 있을 게다. 네놈이 아는 글자만
가지고 적느라 꽤나 힘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시는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백산은 재빨리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가 앉아있는 이곳은 거의 가로 세로 이장(二丈) 정도 크기의 정방형으로
된 바위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 편지 한 장
과 보자기에 쌓여있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백산은 재빨리 사부의 편지를 읽어보았다.
백산아!
이곳에 내려온 너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다 제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부의 마음이라 생각하고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기 바란다.
먼저 네 앞에 보이는 이 동굴은 너의 잠자리가 될 침실이다. 좀더 깊이 파
주었으면 좋겠지만 너도 알고 있듯이 이 사부의 나이 때문에 너무 힘이 들
어서 남겨두었다. 자신이 살 집이니 스스로 짓는 것도 보람이 있을 것 같아
서 그런 것이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구미에 맞게 만들도록 하여라. 그 상
태 그대로 써도 이 사부야 상관이 없지만 비바람을 피하기가 힘들 것 같구
나.
그리고 보자기에 쌓여있는 것은 육포와 물이니라. 습기 차면 맛이 없어지
니까 보관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야.
너의 집 안마당에 보면 요상하게 생긴 구멍이 하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가 하면 너의 화장실이니라. 심사숙고해서 만들었다. 그러
니 유용하게 잘 사용하려무나.
아참,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구나. 이곳에서 너는 바람이란 놈
을 잡아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느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다. 네 머리
에 깨닫는다는 것을 무리일 테고 바람이 무엇인지를 느껴보아라.
그럼 건투를 빈다.
-사부가
그날 풍뢰곡(風雷谷)에서는 바람소리 대신에 미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뇌성(雷聲), 번개가 치며 장대비가 내리고 있는 어느 날, 이곳은 풍뢰곡
절벽 중간의 백산의 오두막 집.
태어날 때와 같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열심히 몸을 씻고 있는 짐승이 하나
있었다. 손을 밀 때마다 새카만 빗물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그렇게나 비가 많던 이곳이 백산의 이사 이후 삼 개월 동안 단 한차례도
비가 오지를 않았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비바람과 함께 퍼붓고 있다. 제법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백산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자, 목욕은 끝냈고 이제 빨래만 하면 된다. 으샤! 빨래 방망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그나저나 저놈의 동굴은 언제 파나?'
백산의 오두막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단연코 침실이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잠자리가 편안해야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고 했는데, 동굴에서
자려하니 집이 너무 좁아 쪼그려 앉아서 자야하고, 그렇다고 밖에서 자자니
바람이 너무 거세고, 안락한 침실생활을 위해서 열심히 동굴을 파는 수밖
에 없었다. 말이 쉬워 동굴을 파는 것이지 바위를 뚫는 작업인데 쉽게 될
리가 없었다.
결국 백산의 입에서는 조폭 시절에 써먹던 육두문자 욕설이 튀어나오기 시
작했다.
'씨팔! 바위를 흙처럼 자르는 칼도 많다는데 무슨 이 따위가 있어. 그래도
칼날은 안 나가는 것을 보니 장 노인이 솜씨는 좋은가 보네. 하기야 이 노
망난 노인네하고 장 노인하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
그동안 굴을 파기 위한 백산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칼을 손으로 잡고 파고
찌르고, 별 짓을 다해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간신히 한 가지 찾아낸 방법이 빠른 속도로 타격하는 방법이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를 이용하여 동굴 속을 치기를 수백 회,
바위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동굴을 파다가 지치면 혈풍뇌전심법(血風雷電心法)을 운용하면서 바람을
쳐다보고, 바람의 속삭임을 듣고 잡아보고 해도 아직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
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월도 잊었다. 다만 노망난 사부가 삼 개월 만에 한번씩 내
려주는 물과 육포만이-이젠 이것도 질려서 먹기가 겁나지만-세월을 알려줄
뿐이었다.
이곳만 벗어나면 다시는 육포를 먹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육포만 내려주면
최우선으로 비를 맞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일이었다.
'이것이 벌써 다섯 번째 육폰가, 여섯 번째 육폰가? 에이 모르겠다. 굴이
나 파자! 이런 빌어먹을 것은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백산은 아직도 진전이 없는 굴파기 작업에 지쳐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
았다.
사람이란 참으로 묘해서 먹은 것이 없어도 매일매일 화장실은 가야만 한다
. 매일매일 가던 사람이 이삼 일 정도 가지를 못하면, 일단 뱃속이 거북해
지고 더부룩해지는 것이 모든 일에 괜스레 짜증이 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금 백산의 상태가 바로 그랬다. 새로 내려온 육포를 먹고 난 후에 벌써
삼 일 동안 으응~!을 못했다. 백산의 유일한 즐거움은 이른 새벽에 안개 자
욱한 운해(雲海)를 바라보며 으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즐거움을 벌써 삼 일 동안이나 맛보지 못했으니 지금 백산의 머리에
서는 김이 펄펄 날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바람마저 자고 있는지 사방
이 조용하기만 하다. 순간 백산은 폭주하고 말았다.
"이 빌어먹을 바람 놈아. 그만 퍼 자고 이제는 일어나라, 이 새끼야."
으아-악!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백산은 미친 듯이 자신의 손과 발을 휘두
르기 시작했다. 자신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열두 개의 비도에서는
미약하지만 붉은빛이 나오고 있었고, 조금 후에는 짙은 혈광(血光)이 솟아
나기 시작했다.
바위가 베어져 나가고 있었다. 서걱! 서걱! 서걱! 순식간에 동굴안쪽이 세
치 이상이나 깎여나갔다.
순간 백산의 동작이 딱 멈췄다.
"이게 뭐지? 돌 조각? 그렇다면 동굴이 깎였다는 말? 우-우 헤! 헤! 헤!
헤!"
"드디어 동굴을 팔 수 있겠구나."
떨어져나간 돌 조각을 손에 쥐고 주체할 수 없는 희열에 백산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이제는 편히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동굴 안쪽을 향
해서 그의 손을 휘둘렀다.
카-앙!
"엥? 이게 무슨 소리야? 왜 '서걱!' 하는 소리가 안 나고 '캉!'이라는 개
같은 소리가 들리는 거야. 왜 이번에는 안 되는 거야. 왜! 안 되냐고!"
백산의 고함소리가 커지면서 다시금 미친 듯이 비도를 휘둘렀다.
서걱! 서걱!
"또 잘렸다!"
'가만, 가만 침착! 침착하자, 백산. 정리를 해보자.'
백산은 조용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되짚어 보았다.
'지금 나는 무려 삼 일간 응아~를 못했다. 그래서 엄청나게 짜증이 나있다
. 그런데 저놈의 동굴까지 나의 속을 썩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폭주를
했다. 완전히 미친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휘둘렀다. 미친 듯이… 미친 듯
이… 아무 생각 없이, 아무생각 없다? 그래! 바로 그거다. 바로 집중, 집중
이다.'
'모든 것을 집중한다. 이 비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비
수에 집중해야 한다.'
백산은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
음속에 열두 개의 비도(飛刀)를 새겨넣었다.
"이야합!"
백산의 고함소리가 터지고 열두 개의 비도에서 붉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
다. 열두 개의 비도가 혈광을 발하며 팽팽하게 서있는 모양은 새벽안개 속
을 헤치며 다가서는 여명의 빛과 같았다.
"자, 이제 한번 파 볼까?"
백산의 손과 발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안해진 백산의 몸에서는
뇌룡현(雷龍縣)에 있을 때 배웠던 투로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과 발의 놀림을 따라서 돌 조각들이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동굴
은 급속하게 깊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즈음해서 백산은 손발
을 멈추었다. 드디어 편안한 잠자리가 완성된 것이다. 백산은 너무나 감격
했다. 인간이 잠자리 하나에도 이렇게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
로 알았다.
"이제 침실은 완성되었고, 일단은 좀 자자."
정말 오랜만에 꽤나 오랜만에 백산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늘은 모처럼만에 날씨가 화창했다. 오늘도 백산은 어김없이 아침의 일상
사인 응아~를 해결하면서 운무 속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편안한 잠자리 덕분인지 매일 아침 행사도 거르지 않았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고 앉아서 백산은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모든 바람이 잘 시간이다.'
이곳에서 오래 살다보니 바람이 어느 때 일어나는지, 또 어느 때 조용해지
는지, 일어날 때와 잘 때의 형태는 어떠한지를 환하게 알게 되었다.
휘- 익!
저 아래 어디에서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백산은 눈이 커지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바람의 가장자리에는 어디에서
왔는지 조그마한 나뭇잎 하나가 천천히 휘돌고 있었다.
나뭇잎은 왼쪽에서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 오른쪽으로 가면서 느릿한 속
도로 움직이며 점점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던 백산이 불현듯 아랫배에 힘을 주며 무릎을 탁 쳤
다. 원래 무릎을 치는 백산의 손동작은 볼일을 보고 닦을 것을 구할 수 없
는 관계로 개발해낸 방법이었는데, 지금 이 깨달음의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치는 바람에 아랫배에 힘을 준 연후의 뒤처리까지 깨끗하게 되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한쪽은 빠르게 다른 한쪽은 느리게, 나의 몸 속에 있
는 진기의 변화를 그렇게 유도하는 거다. 바람 속 나뭇잎의 움직임을 내 몸
에 적용하는 거야. 진기는 바람이고 나뭇잎은 나, 이것이 바로 그 노인네가
말한 바람의 비밀인 거야'
"우! 하하하!"
그날부터 백산은 혈풍뇌전심법(血風雷電心法)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벌써 한 달여 동안 백산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내공
심법에 따라서 진기를 운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온몸으로 내
공을 움직일 때 제각각 운용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밤낮으로 내공운용에 매달리고 있으나 크게 진척된 것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진기의 분리이다. 일단 단전에서 진기를 내보낼 때 조그마한
조각으로 분리를 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분리된 진기를 자체적으로
회전을 걸어보았다.
조그맣게 분리된 진기는 백산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이어서 회전하고
있는 진기 덩어리에다 조금씩 분리된 진기를 더하기 시작했고, 원심력에 의
하여 백산이 보낸 진기는 그 자리에서 합쳐지며 더더욱 커지지 시작했다.
이번에는 같은 작업을 반대편에서 같은 방법으로 시도했다. 백산은 자신의
몸 내부 양쪽에서 회전하고 있는 진기에다 조각조각 분리된 진기 덩어리들
을 계속해서 공급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는
순간, 그 회전하는 덩어리들을 온몸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무리하지 않을 생각에 그 두 개의 회전하는 진기덩어리들을 온몸
으로 천천히 돌리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해 나갔다.
또다시 한 달이 흘렀다. 지금까지는 몸 내부에서 회전하는 진기에 자신의
몸을 적응시키기 위한 기간이었다. 드디어 오늘 그 진기들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회전력을 걸어보기로 했다.
점점 회전력을 배가시키기 시작했고 그의 주위에서 미약한 미풍이 일어나
기 시작했다. 엄청난 회전력이 걸려있는 진기는 온몸을 헤집고 다니면서 그
동안 잠력(潛力)으로만 내재되어 있던 영약들의 기운을 끌어다 내공으로 만
들어버리고 있었다.
움직이는 진기는 더욱더 커지고 종내는 백산이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
도가 되어버렸다. 이에 당혹한 백산은 들끓는 진기를 진정시키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었으나, 이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버린 흐름은 어쩔 수가 없었
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의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놈을 가만히 관찰만 하
고 있었다. 그놈들은 엄청난 회전력을 동반한 채로 백산의 모든 세맥(細脈)
마저 뚫어버렸다.
'아! 그렇다. 이놈들은 바람이다. 바람을 통제하려고 했던 내가 어리석었
다. 이놈들은 자연 그대로인 것이다. 그래 바람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바로 내 자신이 바람인 것이다.'
백산의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그의 몸속의 진기로 이어졌고 지금까지는 비
교할 수도 없는 세찬 바람이 백산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온몸에서 핏빛 바람을 쏟아내며 백산의 몸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
것은 혈풍(血風)이었고, 광풍(狂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