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 청산(淸算)
당태세는 정남왕의 녹영군 숙소에 앉아 지휘관과 독대를 하는 중이었다.
형식상 신원이 수상한 자를 심문하는 자리라 하여 마련된 자리였지만 의외로 당태세에 대한 지휘관의 대우는 극진한 면이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많은 정남군이 모여 있는 가운데 남명의 지휘관 중 출중한 무공으로 악명 높았던 철비장군 유함명을 맨손으로 때려죽인 초절고수를 막사로 모셔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 노인은 함부로 할 수 없는 동행이 옆에 있었다.
지휘관은 멍석 위에 가지런히 신색을 갖춰놓은 종리세리의 시신과 의자에 앉아있는 당태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죽은 사내는 팔기의 복색을 갖추고 있었다. 지휘관은 당태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사내는 누구요? 기인(旗人)이요?”
“그는 서림각라의 팔기이자 한인이자 용사요.”
“서림각라씨? 서림각라 가문이라고?”
“서림각라씨 보국장군부의 선무사 천호 종리세리라고 하오.”
보국장군이라는 말을 듣자 지휘관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더니 아까와는 반대로 조심스러운 태도가 되어 노인에게 고개를 쑥 뻗으며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왜 이곳에 와 있는 것이오? 여기가 정남왕의 강역이라는 것은 아실 것 아닙니까?”
당태세는 손가락을 들어 장대 위에 효수되어 있는 철비준 유함명의 목을 가리켰다. 막사 건너편의 해안가에 매달려 있는 유함명의 목은 바닷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장대 위에 놓여 있었는데, 그 눈은 저 멀리 바다 건너 자신이 닿지 못한 대만을 바라보고 있는 듯 보였다.
지금쯤 객가인들과 부상병들은 거친 파도를 넘어 정성공이 새로 개척했다는 남명의 강역으로 들어서고 있을 터였다.
“저 자를 잡으러 왔소.”
“유함명을?”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느새 당태세는 개봉과 무창에서 보였던 말재주를 다시 되찾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하는 말은 아주 거짓된 말도 아니었다.
“가문의 원수요. 유함명 때문에 우리 일족이 모두 파탄이 났소이다. 종리세리는 내 사문이고 제자이니 이 포한을 갚는데 같이 동참한 것이오. 비록 목숨은 잃었지만 적도를 잡았으니 그 죽음이 헛된 것은 아닐게요.”
당태세는 평온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종리세리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한은 다 풀고 갔다고 생각하오.”
“참으로 용사로다. 용사로다!”
지휘관이 감탄하며 당태세를 바라보더니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기왕지사 이럴 것이었으면 우리와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 낫지 않았겠소? 그랬다면 이런 수고도 덜었을 것이고 종리천호 역시 지금 나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을 터인데…….”
이 지휘관은 당태세가 하문성의 성루 위에서 녹영군을 도륙했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저 하문성이 무너질 때 같이 스며들어 유함명의 목을 끊어놓은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당태세가 하문성벽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런 상찬은 고사하고 유함명과 함께 목을 장대에 매달려고 혈안이 되었을 것이었다. 당태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비장한 목소리로 지휘관에게 대답하였다.
“어찌 사적인 원한을 가지고 군문에 누를 끼치겠소. 나와 종리천호는 그저 한을 풀어야만 했을 뿐이오. 유함명의 수급에 대한 공은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 전공은 온전히 성벽을 무너뜨린 장군이 가지셔야 할 것이외다.”
뛰어난 무공을 지닌 노인은 말도 겸손할 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완벽하게 터득한 사람이었다. 지휘관은 그저 경탄하고 또 경탄할 뿐이었다.
“놀랍도다! 놀라와! 아직도 이런 걸물들이 천하를 횡행하고 있을 것이라 나는 생각도 못하였도다! 실로 옛 영웅담에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 어찌 노야 같은 분을 만난 것이 제 인생의 홍복이 아니겠습니까!”
“과찬이시오. 그저 종리천호의 마지막만 잘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소이다.”
“그나저나 시신을 어찌하시겠소? 서림각라라면 북경 아니오? 그곳까지 모시고 갈 수는 없소이다.”
“……바다가 잘 보이는 양지바른 곳이 있겠소?”
장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 정도라면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제대로 묘를 써서 종리천호의 무위와 그 호걸스러움을 사해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드리리다!”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그 옆에 묫자리를 하나 더 쓸 수 있겠습니까?”
지휘관이 눈을 깜박이며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가 더 묻혀야 한단 말입니까?”
당태세는 지휘관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깨물며 작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제 질자(姪子)가 성 안에 아직 묻혀 있습니다. 하문성을 공략하기 위해 같이 들어갔소이다.”
“허어!”
당태세의 말에 지휘관의 탄식이 막사 안을 맴돌았다. 당태세는 겸연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이내 얼굴을 찡그리더니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노인이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자 지휘관은 슬쩍 노인의 어깨를 어루만지더니 막사 바깥으로 나가 병사들에게 매장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막사 안에 홀로 남은 노인은 이제 조그만 소리로 흐느끼는 중이었다.
***
“풍광은 좋은 곳이구나. 바람이 심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묘를 잘 쓴 게지. 명당이야.”
당태세는 푸른 초장이 펼쳐진 절벽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태세의 등 뒤에는 새로 쓴 무덤 두 기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하나는 서림각라씨의 천호였던 한인 종리세리의 것이고 또 하나는 금월방의 단성룡, 일명 무두리를 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묘를 바라보며 바다를 바라보기를 수십 차례 하던 당태세는 두 무덤의 가운에 철썩 주저앉아 가져온 술병을 들고 푸르기 그지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술병을 입에 갖다 대었다. 노인은 오른다리를 죄고 있던 보철의 끈을 풀어버렸다.
다리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오며 흉측하게 틀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당태세는 입맛을 다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 휘어진 내 다리가 다시 돌아올 리도 없고 죽은 운천이나 너희들이 되살아 날 턱도 없지. 내가 젊어지는 것도 아닐테고.”
노인은 술을 한모금 다시 입에 털어 넣고는 바다를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 일은 추호도 후회가 없느니라. 단지…….”
노인의 눈은 하늘을 향하였다.
“너희를 데려가지 못한 것이 새로운 한으로 남았구나.”
노인은 품 안에서 종이를 꺼내었다. 이제 꼬깃꼬깃 접히고 접혀 무슨 글자가 써있는지 제대로 읽을 수도 없을 만큼 헤진 종이는 노인의 피와 땀이 같이 스며들어 있었다.
당태세는 그 종이를 펴서 새삼스럽게 안에 써있는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금월방주 장철오가 조사해 주었던 팔대문파의 근거지와 활동들이었다.
개중 몇은 틀리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은 나름대로 충실했었고 당태세가 의욕을 잃을 때 복수행의 불꽃을 다시 살려주었던 귀중한 종이였다.
당태세는 그 종이를 다시 접고는 손아귀에서 한 번 찢고 다시 찢은 뒤에 손아귀 안에서 찢을 수 있을 때까지 종이를 찢고 또 찢었다.
잘게 찢은 종이는 노인의 손아귀에서 센바람을 타고 날아가 허공으로 치솟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는데 몇몇은 산과 골로 떨어지고 몇몇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증오했고 죽여야 했고 죽이고야 만 이름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당태세의 입에서 가없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제 다 끝났구나.”
노인은 다시 지팡이를 잡았다. 십칠 년 만에 모든 과업을 마친 늙은 무인은 이제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었고 오직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해 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당태세는 그 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 달이 될 지 십 년이 될지, 혹은 이십 년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은 이제 남은 시간을 아무도 없이 홀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중이었다.
사문도, 혈육도, 인척도 없는 삶의 행로를 무소처럼 홀로 뚜벅대며 걸어가 종생(終生)의 문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중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인사뿐이런가.”
노인은 어느새 쓸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
올 해 산동 부둣가의 겨울은 작년보다 빨리 닥쳐왔다.
포구의 짐들은 물이 묻으면 벌써 얼어버리기 일쑤였고 가을처럼 부지런히 오가던 물건들은 급격하게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나마 가을걷이가 그리 실적이 나쁜 것은 아니어서 포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겨울나기를 할 만한 양식을 어느정도 마련할 수 있었다.
포구뿐 아니라 포구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올 겨울은 그리 힘들게 지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것은 포구의 하역을 담당하고 있는 금월방도 마찬가지였다.
금월방주 장철오는 하루의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들어와 삼층의 누각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처소로 몸을 옮겼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몸이 고단하고 일정시간만 되면 잠이 미친듯이 쏟아졌다.
바야흐로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미 해가 떨어진 처소는 코를 베어가도 모를 정도로 어두웠고 장철오는 촛불을 켜고 두꺼운 가죽외투를 의자 위에 벗어던지고는 그대로 침상 위에 모로 쓰러졌다.
하지만 사내는 이내 몸을 일으켰는데 누군가가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서 찬바람이 그대로 침상으로 불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칠(阿七) 이 머저리 놈은 방주 방을 아예 얼음덩이로 만들 작정이구먼.”
장철오가 창문을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장철오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창문 앞의 탁자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에 가려진 사내의 모습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금월방의 방주 처소에 겁 없이 들어와 앉아있을 수 있는 이는 살수(殺手)외에는 없는 법, 금월방주는 재빨리 품 안의 단도를 잡고는 뒤를 향해 소리를 지르려 하였다. 그때, 탁자 앞의 사내가 조용히 금월방주에게 말을 걸었다.
“장철오.”
순간 금월방주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을 벌린 채로 탁자를 바라보았다. 금월방주는 재빨리 품 안에 단도를 넣고는 무릎을 꿇고 탁자 앞의 사내에게 고개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문주님! 그간 강녕하셨사옵니까!”
“오냐. 너는 무탈하냐?”
“네, 네! 저는 잘 지냅니다. 문주님은 그동안 어찌…….”
“팔대문파 문주들과 철비준 유함명을 모두 처리하고 왔다.”
금월방주 장철오의 입이 턱 막히고 말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이마에서 저절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순간 탁자 앞의 사내가 다시 조용히 말을 이었다.
“금월방주. 내가 하나 물을 것이 있는데 대답할 수 있겠느냐?”
“네, 네! 말씀하십시오!”
“너는 왜 당운륙의 거취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없었느냐?”
“맙소사.”
장철오가 자기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말을 토해내자 탁자 앞의 사내가 차갑게 말을 뱉었다.
“진실로 당운륙이 너와 함께 있었구나. 그리고 아룡에게 죽임당한 아이가 그라는 것을 왜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문주님.”
한참동안 말이 없던 장철오가 지그시 이를 깨물더니 고개를 들고 탁자 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십칠 년 전, 문주께서 생사를 헤매실 때 사모께서 낳은 아이였습니다. 이 모자란 놈이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라는 것이 그저 무식하고 격이 떨어져 제가 섬기던 문주의 혈육을 그저 하오방의 방도로 키우고 말았습니다. 평생 문주님을 보지도 못하고 자란 놈이었지만 그대로 효심은 남아 있었는지 사모께서 돌아가신 뒤에 문주님이 욕창나지 않게 평생을 돌본 놈이 바로 아륙이었지요.”
어느새 장철오는 고개를 떨구고 조금씩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 놈이 작은 싸움으로 인해 죽었습니다. 그것도 문주께서 깨어나기 며칠 전에 죽었는데…그 일을 제가 어찌 문주께 말씀드린단 말입니까? 평생 보지도 못한 아들이 보기도 전에 죽었는데…그걸 어찌 사람 된 입장에서 말씀을 드립니까요?”
“그러하냐?”
장철오는 어느 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저는 절대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끝까지 비밀로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어찌 아셨는지 모르지만…저를 죽여주십시오! 이 비루한 제자는 비록 파문을 당했지만 이대로 문주님 손에 죽는다 해도 원망 한 톨 갖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철오.”
“네?”
“잘 지내도록 하여라. 네 놈은 애오라지 내가 거둔 사람이로다. 고마웠다.”
“문주님?”
장철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창문 앞 탁자를 쳐다보는데, 어느새 탁자 앞에 앉아있던 인영은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장철오는 자신이 지금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탁자를 보았지만 탁자는 여전히 텅 빈 채였다. 하지만 한 가지, 장철오가 보지 못했던 물건 하나가 탁자에 놓여있었다.
그것은 희미한 달빛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창백한 빛을 뿌리는 작은 머리카락 같은 하얀 침(針)이었는데 그 침은 탁자에 수직으로 박힌 채로 꼿꼿이 서 있었다.
은침(銀針)의 창백하고 서늘한 빛은 소름끼치는 한기(寒氣)까지 지니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보통 침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금월방주 장철오는 자기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고 홀로 서 있는 고고한 노인과도 같은 은침을 보며 두 손을 모으고 축원을 읊조렸다.
“아무쪼록 만수무강하소서.”
차가운 바람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달빛이 유일하게 남은 순천문의 제자에게 닿았다.
겨울이 다가오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