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사천 성도 (15)
땅에서 불과 연기가 용솟음친 다음 날, 성도에는 소슬하게 비가 내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며 한층 싸늘해진 날씨를 타고 비는 소리없이 내려 처마와 땅을 고르게 적셨다. 성도 남쪽을 모두 태워버릴 것만 같던 불은 어느샌가 모두 잡혀 시커먼 숯덩이가 된 벌판이 자욱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넓은 전답이 다 타버렸음에도 왜 불이 났는지 알 수 있는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단지 그 전답의 주인이었으며 많은 백성들을 거느리고 광활한 옥토를 기경하던 사형문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는 것만으로 성도의 백성들은 기기괴괴한 입소문을 여기저기 터뜨리고 다녔고, 멀리 사방에서 자신의 땅을 갖겠다고 찾아왔던 수많은 사형표국의 고객들은 목전에 벌어진 어이없는 상황에 망연자실하며 어찌하면 자신의 돈을 환불받을 수 있는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사내들은 모두 표국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여기저기에서 행패를 부렸고, 결국 녹영군이 나서서 사형표국과 고객들의 싸움을 말리는 수준까지 접어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성도의 골목 안에 자리잡은 포일연은 이런 저간의 사정과는 관계없이 문을 굳게 잠근 채 세사와 담을 쌓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담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 말이 없었고, 담 밖의 사람들도 포일연의 일을 궁금해 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비가 내린 지 이틀째, 마숙영의 손목에서 가늘게 맥이 잡히고 여인의 몸에 체온이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아룡이 당태세를 불러 화급하게 여인의 상태를 전하자 당태세는 별채의 옆 작은 방에 누워 있는 철장타 위목손을 찾았다.
“부연주의 맥이 돌아왔네. 이제 기력을 찾을 것이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시커멓게 변한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철장타 위목손의 시커먼 안색에 희미한 미소가 올라왔다. 노인의 눈은 이미 탁해져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생사경을 오가고 있었지만, 당태세의 말을 전해들은 순간, 어느 때보다도 또렷한 목소리로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문주님.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까.”
“네 목숨을 바쳐 구한 부연주다. 내가 한 것이 무슨 큰 일이냐. 창해일속(滄海一粟)의 수고였다.”
“아닙니다. 당문주가 오지 않으셨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네가 진실로 감사하다면 어서 이불을 걷고 침상에서 나오라.”
당태세의 말에 위목손은 슬쩍 미소를 짓더니 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늙은 포일문의 심복은 어느 때보다 평안해 보이는 얼굴이었고, 어느 때보다 기력이 쇠해보였다.
“이미 각오는 서 있었고, 때를 얻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비록 문주를 지키진 못하였지만 그 핏줄을 지켰으니……저는 제 소임을 다 하였지요.”
“일어나서 끝까지 마숙영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당태세는 뻔히 용태가 보이는 위목손의 얼굴을 보면서 슬쩍 운을 떼었지만, 위목손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슴과 내장에 창상을 입고도 지금까지 버티며 의식을 잃지 않은 것이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노릇이었다.
위목손은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았다. 당태세 역시 슬며시 눈을 감았다.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느냐. 철장타.”
“……제 평생…무공을 익히느라 학문이 짧았지만…그 뜻이 좋아 외우고 있던 시 하나가 있었는데….”
당태세가 슬쩍 눈을 뜨고 위목손을 바라보았다. 위목손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꿈을 꾸듯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아기씨가 일어나서 저를 찾으시면 이 말 하나만 전해주십시오.”
“무엇이냐?”
“한인신지도수(恨人神之道殊) 사람과 신의 길이 다르니 한스럽고
원성년지막당(怨盛年之莫當) 아름다운 날에 함께 하지 못함이 원통하구나.”
당태세는 지그시 이를 악물더니 위목손을 보고 투덜거렸다.
“정신나간 놈. 어디 그런 시를 외우고 있었느냐. 좀 더 어울리는 시구는 없느냐?”
하지만 위목손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침상위의 침묵하는 노인을 바라보던 당태세는 입을 닫고 한참동안 포일문의 마지막 제자를 바라보았다.
무공은 가장 떨어졌고, 세사를 바라보는 눈은 어두웠고, 사람이 어눌하여 쉽게 감정이 드러나며 남에게 속기도 잘 하였지만 가장 포일문에 어울리는 위인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 다시 자신의 스승을 만나도 영원히 그를 시봉할 것이 틀림없었다.
“……나중에 보자꾸나.”
노인은 작은 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힌 칠흑 같은 방안의 시간은 그 이후로 흐르지 않았다.
***
오랜만의 잠에서 깨어나 여인이 맨 처음 한 일은 우는 것이었다.
자신이 다시 숨을 쉬며 일어날 수 있었던 것에 감격하여 눈물이 나왔고, 그 동안 자신에게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에 안도하여 울음이 터졌고,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주었던 성신(聖臣)과 멀리서 동경하던 부친이 더 이상 같이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자 통곡이 되어 이부자리를 적셨다.
이제 포일연의 연주가 된 마숙영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자유로움을 얻었으니 이것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고, 자신의 삶이 행인지 불행인지 잴 수가 없었다.
소녀는 정성스럽게 자신을 끝까지 보듬어준 철장타 위목손의 장례를 상주가 되어 치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장례의 주인공이었던 자가 상주가 되어 조문을 받으니 실로 하늘이 내린 길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었다. 옆에 서 있던 아룡이 얼굴을 붉히며 띄엄띄엄 마숙영에게 말을 전하였다.
“실로 위대협은 그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연주를 구하였으니 그 모습이 장판의 조자룡이었습니다.”
“어찌 장판의 조자룡이 위대협만 하였으리. 내 평생을 돌봐주었으니 그는 조자룡이 아니라 제게는 제갈무후나 다름없는 분이었지요. 이 아둔한 계집을 위해…….”
여인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가느다란 허리를 굽혀 다시 위목손의 위패 앞에 절을 하며 통곡하였다. 여인의 절절한 울음소리는 뒤에 서 있는 당태세와 종리세리에게도 전해지며 사내들의 표정도 침울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철장타 위목손은 사천에서 종생(終生)하였지만 그나마 마지막이 살아있을 때보다 나았으니 실로 포일연의 포일사성 중 끝까지 성(誠)에 도달한 이는 위목손과 섭설평 둘뿐이었다.
그렇게 장례가 끝나고 포일연의 풀무와 화로가 다시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날, 마숙영은 두 손을 걷어 부치고 직접 망치를 잡고 화로로 내려갔고, 여인은 그곳의 창고를 열고 날붙이를 꺼내 갈퀴와 낫을 만들었다.
여인이 만든 갈퀴는 살기가 없었고 낫은 날카로웠지만 흉해 보이지 않았다. 비가 그치고 다시 하늘에 푸른 기운이 돌았다. 그날부터 포일연의 물건은 다시 성으로 나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이문을 남기고 필요한 곳으로 보내졌다.
대저 불과 쇠의 이치는 그렇게 삶을 움직였다.
“제 아버지는 돌아가신 거겠지요.”
일과로 돌아온 마숙영이 조용하니 당태세에게 물었을 때,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의 눈은 당태세를 바라보며 많은 것을 한꺼번에 묻고 있었으나 당태세는 여인의 말없는 질문에 바로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그대의 선친께선 그대를 유독중에게서 구하려다 장렬히 돌아가셨네.”
마숙영의 눈이 커지더니 당태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이십니까?”
“선친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미안하다 하였다.”
마숙영의 턱이 슬쩍 떨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제가 뭐라 하였습니까. 제 부친께서는 그럴 분이 아니라 하지 않았었나요.”
“……미안하구나.”
“아니예요. 마지막이나마 서로 오해가 풀리셨으니…….”
여인의 손 사이로 눈물이 떨어져 포석에 검은 원이 찍혔다. 당태세는 고개를 돌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래, 어떻단 말이냐.
모든 것이 끝났는데 남은 아이의 가슴에 대못 하나 더 박아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모질게 살아온 늙은이야.
다시 하늘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
“성도 만성에 들러 보고 들은 바를 이야기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을 듯 싶습니다.”
외출했던 종리세리가 돌아와 웬지 힘 빠진 표정이 되어 당태세에게 일을 보고하였다.
“사형문주와 나누신 대화까지 복기하여 말하였고, 평서왕 오삼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고하였습니다. 말씀하신 게 맞다면 사형문주 유독중은 오체분시를 하여도 모자랄 역적입니다. 하지만…….”
종리세리는 멀리 포일문의 지붕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만성 위의 팔기 깃발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성도의 팔기와 녹영 중에 사형문의 뇌물을 안 먹은 인간이 없습니다. 아마 이곳으로 중앙에서 감찰을 나온다 한들 성도 팔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기는 모두 쓸어가 버렸고 논밭도 모두 태워먹은 판인지라 남은 게 없습니다.”
“유독중이 보통내기는 아니었네. 자기 뒷배를 처리하지 않아놓고 일을 벌렸겠는가.”
“그저 제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더군요. 더군다나 서림각라에서 뛰쳐나온 한인 팔기의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종리세리가 피식 쓴웃음을 짓자 당태세는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여기에서 있던 일은 모두 기록해서 믿을 만한 이에게 인편으로 전했습니다. 그라면 제 글을 중하게 볼 것입니다. 최소한 등을 맞대고 칼을 휘두른 전우였으니까요.”
“그래도 팔기에게 해 줄 일은 다 해 주는구먼.”
“그렇지 않고서는 제가 불편합니다.”
당태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내는 그런 사람이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을 터였다.
종리세리 덕분에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종리세리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다는 것을 당태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나도 해 줄 일은 다 해 줘야지.”
노인은 천천히 품 안에서 종이 한 묶음을 꺼내 종리세리에게 들이밀었다. 포일문주 마길의 것을 합한 사면부 여덟 장이었다. 종리세리가 당태세의 얼굴을 쳐다보자 당태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제 때가 되지 않았는가?”
“때가 되었지요.”
팔기 사내는 떨리는 손으로 노인의 손에서 뭉쳐진 종이들을 받아들었다.
마치 귀물(貴物)이라도 되는 듯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종리세리는 검붉은 종이뭉치를 놓칠세라 조심스레 싸 들고는 대장간의 앞에 나와 있는 작은 화로에 정성껏 밀어 넣었다.
마르고 구겨진, 십칠년이 된 증서는 순식간에 불꽃에 닿아 우그러지며 또 다른 불이 되었다. 불탄 재가 하늘로 오르더니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날아갔다.
종리세리는 멍하니 하늘을 보며 날아가는 잿더미를 바라보았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던 당태세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이제 속이 후련한가.”
그때, 당태세는 종리세리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쇳덩이를 깎아 놓은 듯, 칠정육욕을 거세한 사람처럼 보이는 굳센 한족 팔기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는 보국장군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종리세리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당태세는 입맛을 다시더니 잘 되었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다 끝났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니 이제 자네도 제 갈 길로 떠나가시게. 종리세리.”
“할 일이 없어졌으니 이제 갈 곳도 없습니다.”
당태세가 히죽 웃음을 짓더니만 다시 종리세리를 보더니 고갯짓으로 포일연의 처마를 가리켰다.
“갈 곳이 없다면 이곳에 머무는 것이 어떤가. 자네도 이 참에 칼을 버리고 보습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네?”
“그것이 자네 인생을 더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않겠는가?”
종리세리는 자신의 검대에 찬 안모도를 슬쩍 눌러보았다. 당태세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종리세리는 당태세와 포일연의 지붕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겸연쩍은 듯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있습니다.”
“음?”
종리세리는 검대를 풀러 칼과 함께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종리세리가 한발 앞으로 나오더니 털썩 무릎을 꿇고는 두 손으로 받쳐든 안모도와 검대를 당태세의 발 아래 내려놓았다.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래 지는데 종리세리는 무릎을 꿇은 채로 당태세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이며 절을 올렸다.
“금주성의 종리세리, 순천문에 입문을 희망하옵니다. 순천문주께서는 소인을 제자로 받아주옵소서.”
“뭐?”
눈이 사발만큼 커진 당태세의 표정과는 아랑곳없이 종리세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서안의 벌판에서 지금까지 고생하며 모은 사면부를 아무 이유없이 건네주실 때,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저는 평생 순천문주 당태세를 제 스승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자네 공부는 완성되어 있네. 내 제자가 될 이유가 없어.”
“꼭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배워야만 사제지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당태세는 앞에 무릎 꿇은 종리세리를 보다가 쉴새없이 눈을 깜박였다. 노인은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입 안에 꽉꽉 눌러 담으며 두꺼비처럼 볼과 입을 앙다문 채 하늘을 잠시 바라보고 다시 고개 숙인 종리세리를 바라보았다.
제자라니.
멸문한 순천문에 제자라니.
“내 말을 잘 듣게.”
한참 뒤, 목이 메인 당태세의 목소리가 사내의 귓가에 들려왔다.
“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모든 얽힌 것을 정리하기 위해 저 멀리 남(南)의 복건으로 갈 것이네. 이제는 그대가 져야 할 의무가 없고 나와 길을 같이 할 이유가 없네. 내가 그곳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갔을 때, 그 때까지도 그대의 결심이 굳건하다면 그때는 내 자네의 사제지례를 받아줌세.”
“아닙니다.”
종리세리가 불쑥 몸을 일으키고 당태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맹세는 변치 않을 것이니, 이 종리세리는 문도의 격(格)을 얻고 못 얻고를 떠나 문주와 함께 할 것입니다.”
당태세의 눈이 깜박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데, 종리세리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이 사부라고 칭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다짐하듯 한 번 더 말을 꺼냈다.
“같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