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사형문 (7)
신도예귀 한제경의 박도가 당태세의 박도를 물고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창졸간의 수초의 검초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신도예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확인하기 시작했다.
같은 박도긴 해도 뭔가 기이한 모양의 기형도(奇形刀) 형상을 띄고 있는 칼날과, 후즐그레하게 보일 정도로 품이 큰 옷과, 사내의 번득이는 눈동자와 달리 형편없이 쭈그러든 외형.
모든 것이 수상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원래 예(銳)자 결을 사용하는 이들은 번개 같은 일격과 보이지 않는 쾌격으로 예자 결을 받는 것이었는데 신도예귀의 도법은 빠르기는 해도 예자결에 어울릴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影)자 결에 어울리는 듯한 무공이었다.
어느새 두 사람의 검투는 보법을 맞추며 일층의 중앙으로 옮겨가 있었는데 누구 하나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남아 분전하던 사형문도들은 이제 소수만 남아 여전히 춤사위 같은 도법을 펼치고 있는 섭설평의 손에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신도예귀는 슬쩍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주변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무리 당태세와 검결 중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제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속이 편할 위인은 없었다.
“슬프구나, 슬프구나!”
신도예귀 한제경은 만가(輓歌)와도 같은 소리를 읊조리며 칼날을 비틀어 당태세의 목을 향해 박도를 뻗는데 그 칼날이 목에 닿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겪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었다.
당태세는 재빨리 도를 들어 한제경의 칼을 튕기고 칼날을 위로 뻗었다. 순간, 신도예귀의 칼날이 양쪽으로 꽃잎처럼 벌어지며 당태세의 목을 향해 덮쳐왔다. 당태세의 왼발이 뒤로 빠지며 들어오는 신도예귀의 칼을 번개처럼 쳐내었다.
쌍검(雙劍)처럼 같이 붙어있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얇은 칼날이 이등분되어 다시 벌어지는 구조라면 이미 칼날의 효용은 없거니와 그저 칼날에 걸리는 것을 독에 중독시키겠다는 용도 외엔 아니었다.
당태세의 눈이 노기를 띄며 한제경을 바라보았다.
“십대제자라는 놈이 얄팍한 수를!”
순간 한제경의 손이 뒤로 들어가더니 다시 기다란 두 자루 소도를 빼들더니만 당태세를 향해 내뻗기 시작했다. 두 자루의 소도 역시 파란 빛으로 빛나는 것이 여전히 극독을 사용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당태세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들어오는 두 자루의 소도를 튕겨내며 박도를 앞으로 내밀고 두 자루의 소도를 막아내는데, 순간 당태세는 눈썹을 꿈틀대더니 재빠르게 도신을 돌려 자신의 눈 앞을 가로막았다.
그와 함께 신도예귀의 손에 들렸던 소도의 칼날이 튀어나오며 당태세를 향해 날아오다가 박도의 도신에 퉁기고 날아갔고, 두 번째의 소도 역시 칼날이 튀어나오며 당태세의 머리 옆을 한치의 간격으로 빗맞추며 뒤로 날아갔다.
당태세의 이가 드러났다.
“검결에 어린애 장난질은 필요없다!”
그 순간, 마지막 사형문도를 해치운 섭설평이 뒤에서 신도예귀를 향해 칼을 뻗었다.
신도예귀 한제경의 몸이 회오리를 만들며 옆으로 빠져나가더니 어느새 손아귀에 한 가닥 채찍이 잡혔다.
당태세는 한제경의 후즐근한 옷 안에 몇 개나 되는 병기가 매달려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분명 독분이 잔뜩 묻어있을 채찍이 바람을 가르며 날카로운 소리를 흘렸다.
섭설평의 박도가 허공에서 똬리를 풀고 습격하듯 그대로 앞으로 뻗으며 채찍을 산산이 토막내고 그대로 신도예귀를 향해 뛰어들었다.
순간 신도예귀의 두 손이 활짝 펴지며 들어오는 섭설평의 몸을 향해 손목에서 철침(鐵針)을 쏟아내었다.
“위험하네!”
섭설평의 손이 몸 앞에서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박도를 휘두르며 들어오는 철침을 퉁겨내자 신도예귀의 두 손이 서로 엇갈리는가 싶더니만 두 줄기 강사(强絲)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그대로 몸을 돌리며 섭설평의 도를 얽어매었다.
흠칫한 섭설평이 도를 잡아 뺐지만 강사에 얽매인 도는 쉽사리 빠지지 않았고, 그때를 놓치지 않은 신도예귀의 왼발이 그대로 섭설평의 명치를 걷어차고 박도를 뺏어들었다.
당태세가 급히 섭설평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이미 신도예귀의 손에 들린 박도는 섭설평의 가슴을 찌르고 튀어나온 뒤였다.
“젠장!”
당태세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칼을 뻗어 신도예귀가 들고 있는 박도를 막았다. 섭설평이 천천히 무너지는 가운데 신도예귀 한제경의 왼손이 뒤로 뻗으며 다른 암기를 잡고 있었다.
당태세의 박도가 한제경의 박도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한제경의 박도가 당태세의 박도와 얽히며 박도를 틀어 당태세의 칼을 아래로 꺾었다.
순간, 당태세의 박도가 한 치 더 깊이 들어가더니만 그대로 한제경의 박도를 얽어 돌리며 박도를 쥐고 있는 한제경의 손목에 감기며 그대로 손목을 끊어내었다.
비명과 함께 한제경의 왼손이 휘어있는 단도를 잡고 앞으로 튀어나오자 당태세는 그 손목마저 일합에 쳐버렸다.
순식간에 두 손이 날아가 버린 한제경이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지르는데, 당태세의 오른발이 그대로 신도예귀 한제경의 발목을 눌러 부러뜨러 버렸다.
한제경의 몸이 털썩 무릎을 꿇는데 주름투성이 얼굴은 극도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네놈이 독을 썼지?”
당태세의 목소리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네놈이 마길의 부인에게 용독(用毒)을 했으렷다? 유독중 저 놈이 사천에 온 뒤에 포일문 내주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 들었다.”
얼굴에서 진땀을 물처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신도예귀 한제경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허약해도 풍토병 같은 걸로 주저앉을 여인이 아니다. 네놈이 포일문에 동석할 때마다 그 여인을 중독시켰겠지. 조금씩 몸이 축나게 만들었을 테고! 그래서 종당에 마길이 제정신이 아니게 만든 것도 너 아니냐?”
“마 문주는……내가 한 게 아니야…….”
부들부들 이를 떨며 고통을 참던 한제경의 눈동자가 커지더니만 당태세를 보다가 히죽 입꼬리가 옆으로 올라갔다.
“그 놈은 독이 필요 없었다…그냥 계집이 죽으니 정신을 놓더군…독을 따로 쓸…이유조차 없었지…….”
당태세의 눈꼬리가 위로 치솟으며 들고 있던 박도를 그대로 내리쳤다.
한제경의 입이 닫히고 머리가 몸보다 먼저 땅에 닿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침묵이 사방을 감싸는데 뒤에 누워있던 섭설평이 한숨을 쉬여 나직한 소리로 당태세에게 말하였다.
“사모께서…….”
“신도예귀의 용독은 알아내기 힘들었겠지. 천하의 마길이라도 독공의 명수는 아니니.”
“이 일은 문주께서는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움직일 수 있겠느냐?”
“….시간이 별로 없겠습니다.”
당태세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쭈그려 앉아있는 섭설평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고 흐르는 피를 막고 있었다. 하지만 섭설평은 자신의 가슴이 아닌 떨리는 오른팔을 당태세에게 들어보였다.
맹인 도객의 오른팔목 위에는 신도예귀가 날렸던 철침 하나가 꽂혀 있었다.
“빌어먹을.”
당태세는 인상을 구겼다. 철침에 발라진 독(毒)은 분명 극독일 터, 노인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 앞섰다.
당태세는 섭설평의 어깨를 부축하고 이층이 보이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섭설평의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고 사내의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계단참을 다 올라가는 도중에도 섭설평의 몸은 자꾸 아래로 내려가며 고개가 멋대로 놀기 시작했다.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두 눈이 없어도 천하의 모든 협객을 희롱하고 다니던 쾌걸이 철침 하나에 이렇게 허망하게 스러질 줄 어찌 알았으랴.
“섭설평! 정신 차려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마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순천문주님…이미 틀린 것 같습니다. 제 심장소리가 문주님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니…….”
“제발 정신 차리게!”
당태세가 사내를 잡고 그물을 배 위로 올리듯 힘겹게 계단 위로 사내를 끌어올리는 순간, 갑자기 불쑥 한 명의 손이 튀어나오더니 섭설평의 어깨를 잡고 위로 끌어올렸다.
정순한 기운이 갑자기 무(無)에서 튀어나와 당태세의 앞을 숨 막히게 가로막으며 맹인 도객의 몸을 위로 끌어올렸다. 사특한 기운이나 살기였으면 이미 감지하고도 남을만큼 강대한 내공이었다.
당태세는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완벽하게 자신의 기척을 숨기며 당태세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위인은 여지껏 존재하지 않았다.
“평아. 여기까지 어인 일이냐.”
“사…사부님?”
섭설평을 품 안에 끌어안고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사내는 깡마르고 쇠약해 보이는 사내였다. 섭설평보다 어깨 하나는 좁아 보이는 가냘픈 신색의 노구였다.
그런 사내가 어떻게 팔 하나를 내밀어 섭설평의 몸을 위로 끌어올렸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당태세는 멍하니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다 꿈을 꾸듯 말하였다.
“마길, 자네인가?”
“귀린갈. 오랜만이로세.”
슬쩍 고개를 들어 당태세를 바라보는 마른 사내의 표정에는 온화한 느낌만이 가득했다. 어디에도 사이한 기운은 보이지 않았다. 내공 또한 정순기공 그 자체의 순후함이 느껴졌다.
당태세는 갑작스러운 마길의 등장에 말을 잊고 서 있는데 그의 품에 안겨있던 섭설평이 겨우 고개를 들며 자신의 스승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스승님, 사부님. 어찌하여…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평아. 나는 너를 버린 적이 없느니라.”
“하지만 스승님, 저희에게 칼을…….”
“내가 부족하여 너희를 지켜봐주지 못한 잘못이 클 뿐이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았고 너 역시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저 내 잘못이 클 뿐이야.”
섭설평의 목이 쿨럭하며 떨리더니 한줄기 검은 핏물을 토하고는 손을 뻗어 마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맹인 사내는 절박하게 마길을 쳐다보며 띄엄띄엄 끊어지는 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희는…포일문을…지키려 하였는데…저희는, 사부님께 무슨…존재였습니까?”
“너희는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라. 내 불민함이 오늘의 죄를 가져왔구나. 그저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 내 부족함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미안하구나.”
순간, 섭설평의 손이 번개처럼 올라오며 마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고통에 일그러지던 섭설평의 시뻘겋게 물든 잇새로 피가 흘러나오며 가래끓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정신차리시오, 사부! 그게 무슨 말인가! 협기는 어디가고 문사 같은 겸양이오? 사모는 독살당했어! 사모를 죽이고 혼약으로 당신과 당신 딸을 올가미처럼 더 얽매려는 게요! 당신은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을 알고 있소? 나가십시오! 여기에서 나가라고! 지금 당신은….”
순간 섭설평의 목이 막히는지 더 이상 사내의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길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섭설평의 손을 힘주어 풀어내더니만 잔잔한 눈빛으로 죽어가는 제자를 보며 차분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섭설평. 내 부인은 병으로 죽었어. 그리고 몇 번을 말하느냐. 이것은 내 탓이야. 제자를 거둘 능력도 없는 내가 부린 과욕이지.”
섭설평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섭설평은 보이지 않는 백안을 크게 뜬 채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포일문주 마길은 제자가 죽은 것을 보자 눈을 잠시 감더니만 한숨을 쉬며 제자리에서 일어섰다. 마길의 느릿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목도하고 있던 당태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신도예귀 한제경에게 자백 받았다. 자네의 부인은 중독되어 있었어.”
“그럴 리가 있는가.”
마길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점잖고 부드러웠다. 당태세의 날카로운 눈은 마길을 계속 노려보았다.
“신도예귀는 유독중을 따라서 포일연을 방문했었지? 수차례 동석했을 것이네. 내 말이 틀린가?”
“자네 말이 맞아.”
“그 자가 독을 써서 자네 부인을 죽인 것이네. 그렇지 않고서는 유독중은 자네와 가까워질 수가 없었을 것이네. 자네 부인은 유독중이 어떤 위인인지 알고 있었겠지. 가까이 못 가게 막았을 테니까. 안 그런가?”
“억측이야. 귀린갈.”
당태세는 입을 다물었다. 마길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배 위에 모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무문(武門)의 문주라기보다는 작은 학당의 선생에 가까웠다.
당태세는 눈을 깜박이며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다 혀로 입술을 축였다.
“마숙영이 죽었다.”
“알고 있어. 어제 죽었지. 슬프기 그지 없는 일이야.”
“슬픈 것은 맞는가?”
“슬프네. 다 내가 부덕하고 세사를 몰랐기에 내 가족이 이리 횡액을 당하는 것이겠지.”
“누가 그러던가. 유독중이 그러던가?”
“아니야. 내 생각이지.”
마길을 지켜보던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방안의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닫힌 창문으로 누런 햇살의 기운이 들어와 두 늙은 사내의 얼굴을 비추었다.
모든 것이 멈추고 시간이 가지 않는 듯 보였다.
당태세는 머릿속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가 육신을 잃고 미몽(迷夢)속에서 십수 년을 들었던 웅성거림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이 고요하고 안온해 보이는 전각의 넓은 이층에서 지옥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옛 벗이자 옛 원수를 보며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나는 유독중을 참하고 여기서 나갈 것이네. 마길, 자네의 선택은 무엇인가.”
“나는 여기 자네와 함께 있겠네. 귀린갈 자네도 나갈 필요가 없어.”
“뭐?”
당태세가 눈을 크게 뜨자 마길이 슬쩍 위를 쳐다보았다. 온화한 마길의 목소리는 몽롱하니 사람을 어지럽게 하였다.
“사형문주가 자네를 데려오라 하였어. 이제 같이 올라갈 시간이야.”
“유독중이?”
마길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가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귀린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