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사형문 (6)
한편 내당의 후원으로 달아난 아룡과 철장타 위목손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된 싸움은 내당 안의 당태세 일행이 이끌고 있었지만 마숙영의 시신을 매고 달아나는 아룡의 모습을 본 사형문도들이 그를 그냥 바라보고 있을 턱이 없었다.
아무리 하룻밤도 안 되어 차가운 시신이 되었다지만 엄연히 사형문의 안주인이 되었던 사람을 빼돌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사형문으로서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깃털같이 가벼운 마숙영을 등에 업고 내달리는 아룡을 향해 사형문도들이 봇물 터지듯 사방에서 튀어나오며 그들 뒤쫓는데, 아룡의 뒤를 따르던 철장타 위목손은 문짝을 방패삼아 뒤에 들고는 가까이 따라오는 이들을 향해 한 번씩 문짝을 내질렀다.
문짝의 범위 안에 있던 사람들은 속절없이 무거운 나무판자에 그대로 온 몸을 두들겨 맞았는데, 아무리 칼이 있고 창이 있다 한들 사람이 누울 정도로 튼튼하고 무거운 문짝이 날아오면 병기 따위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미 서너명의 사형문도들이 위목손의 등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가 그대로 문짝에 얻어맞고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처지였다.
사형문도들은 위목손의 괴력을 두려워하며 두 장 정도 거리를 벌리고 그들을 뒤쫓는데, 아룡은 앞에서 마숙경을 업은 채로 흘끗 뒤를 돌아보며 고함을 질렀다.
“어디로 가란 말이오!”
“문 하나를 더 지나가서 우측으로 돌아가게! 그리하면 수레가 있을 것이네!”
위목손은 두 손에 들고 있는 문짝을 뒤로 호기롭게 휘두르고는 재빨리 아룡과 발을 맞추러 앞으로 튀어나갔다. 곱사등이 노인의 두꺼운 팔과 근육은 문짝 정도를 휘두르는 것은 일도 아닌 듯 보였다.
아룡은 연신 혀로 입술을 핥으며 행여 업은 시신이 떨어질까 조심하여 앞으로 내달렸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땅을 파면서 며칠을 보내더니 이제는 도산검림(刀山劍林)에 적수공권으로 들어와서 죽은 여인을 업고 뛰어가는 중이었다.
당태세의 생각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내당 안에서 만난 당태세의 모습은 미쳤다기에는 너무나도 신중해보였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무두리! 지금 너는 대청(大淸)의 강건성세를 위해 일하는 중이니라!”
아룡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혼잣말을 내뱉으며 한층 다리에 힘을 주었다.
사내는 포석이 깔린 돌길을 내달리며 담 아래 문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며 뒤에서 쫓는 사내들의 함성을 귓가로 흘려보내고 이를 악물었다. 등 위에 업은 여인의 몸이 들썩거렸다.
아룡은 문을 지나자마자 몸을 오른쪽으로 틀며 여인을 업고 내달렸다. 눈앞에는 말이 묶인 작은 짐마차 한 대가 서 있었고, 짐마차의 앞으로 죽 뻗은 직선로에는 아무도 없이 비어있는 출구가 바깥의 농로(農路)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아룡의 이가 드러났다.
“됐어!”
그 순간, 마차의 양 옆에서 커다란 월도(月刀)를 든 사내 둘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아룡을 향해 튀어나왔다. 아룡의 입이 다시 한일자로 닫히며 눈이 퉁방울처럼 커졌다.
월도를 든 두 사내는 성난 인왕 같은 표정을 지으며 칼날을 어깨 위로 올린 채 아룡과 여인을 일도양단하겠다는 듯이 뛰어나왔다. 아룡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나왔다.
“사람살려!”
그 순간, 황소 같은 시커먼 그림자가 하나 아룡의 앞으로 튀어나오며 내려치는 월도를 향해 일진광풍을 일으키며 거대한 방패를 쳐들었다. 철장타 위목손의 문짝이 앞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두 자루의 월도는 그대로 떨어지며 철장타가 치켜 든 문짝을 그대로 베었는데 왼쪽의 월도는 그대로 문짝에 꽂혔지만, 오른쪽의 월도는 문짝을 그대로 우지끈 베고 떨어지며 위목손의 오른 가슴을 그대로 베어 들어갔다.
노인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아룡의 입이 벌어졌다.
“노사!”
“걱정마라!”
순간 위목손이 그대로 문짝을 옆으로 내던지자 문짝에 박힌 월도가 그대로 같이 딸려나갔다.
월도를 든 사내들이 그대로 휘청이며 중심을 잃는데, 곱사등이 영감은 성큼성큼 앞으로 가더니만 오른쪽 사내의 머리를 두 손을 잡더니 그대로 목을 뒤로 꺾어 버렸다. 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목이 등을 쳐다보았다.
남은 사내 하나는 위목손을 바라보며 문짝이 찍힌 월도를 뽑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멱살이 잡힌 채 허공에 그대로 두 발이 떠버렸다. 사내의 몸이 그대로 거꾸로 들리더니 절구채처럼 땅에 머리가 그대로 들이박혔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신력(神力)이었다.
아룡을 바라보는 위목손의 가슴팍에는 시뻘건 혈흔과 핏물이 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서 부연주님을 마차에 모시게!”
아룡은 노인에게 일언반구 내뱉을 생각조차 없었다. 재빠르게 여인을 업고 마차로 올라가 여인을 마차바닥에 누이고 자신도 마차에 올라타는데, 마차 안에 놓인 시커먼 철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룡은 두 손으로 끙끙대며 철장을 들고는 위목손을 향해 소리쳤다. 위목손은 그를 향해 달려오는 사형문도들을 오연히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노사! 지팡이를 받으시오!”
순간 아룡이 있는 힘을 다해 내던진 지팡이가 위목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아룡이 두 손으로 던진 쇠지팡이를 한 손으로 잡은 위목손은 그제야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두 손으로 바람개비처럼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사형문도를 향해 뛰어들었다.
곱사등이 사내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검은 구렁이같은 쇠몽둥이가 사형문도들을 이리저리 치받으며 벽에 내동댕이치는데 순식간에 대여섯 명의 사내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개중 태반은 이미 벽에 머리를 박기 전에 숨이 끊어진 모양새였다.
“어디서 포일사성에게 덤비느냐!”
위목손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사형문도들은 화톳불에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위목손을 향해 뛰어들었다.
수많은 검광과 도광이 위목손을 향해 떨어지는데 늙은 노인은 쇠지팡이를 바람처럼 휘두르며 들어오는 사형문도를 하나둘 때려눕히며 천천히 뒤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룡은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 고삐를 잡았다.
위목손의 강맹한 일격에 두 사람이 한꺼번에 휩쓸려 나가 떨어지는 게 아룡의 눈에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위목손이 마차에 손을 얹고 훌쩍 뛰어오르자 아룡은 재빨리 고삐를 잡아채었다.
“이랴!”
아룡의 목소리와 함께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들을 뒤로 남기고 마차는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하는데, 그들을 뒤쫓아 달려오던 사형문도들이 뒤에서 칼을 내던지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룡은 뒷자리에서 여인의 자리를 곱게 펴서 만들어주는 피투성이 노인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노사! 마차를 잘 모시면 자리 좀 바꿔주시오! 나는 손방이란 말이오!”
그제야 위목손의 몸이 꿈틀대며 앞으로 나와 아룡이 잡고 있는 고삐를 받았다. 아룡은 그제야 위목손의 몸이 가슴팍의 상처 뿐 아니라 다리와 배와 어깨에도 깊은 도상을 입은 것을 알아차렸다.
이미 노인의 온 몸은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정작 고삐를 잡고 말을 전속력으로 부리는 노인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부연주님 용태를 잘 봐 주게.”
노인의 말에 아룡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 뒤로 건너갔다. 죽은 듯 누워있는 여인의 시신은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나 이미 죽은 시신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룡은 머리가 쭈뼛 서며 오금이 절로 저려왔다.
이미 마차는 사형문의 본채를 벗어나 잘 닦여진 도로를 타고 성도를 향해 달려나가는 길이었다. 순간 아룡은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아룡이 논두렁에 지른 불은 이미 사방에 번지며 하얀 연기를 사방에 피어올리고 있었는데 거대한 하얀 연기가 마치 거대한 벽처럼 이어지며 앞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아룡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가?”
***
종리세리에게 등을 맡기고 본전의 일층으로 들어온 당태세와 섭설평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일렬로 도열한 사형문도들과 그 앞에서 그들을 지휘하는 신도예귀 한제경의 모습이었다.
드넓은 일층의 내부는 흔한 의자나 탁자 하나 없이 휑뎅그렁할 정도로 비어 있었는데 보아하니 날이 안 좋을 때 이곳에서 문도들을 불러 조련을 하는 용도인 모양이었다.
신도예귀는 예의 딱 맞는 모자와 후줄근한 옷을 차려입은 촌로와 같은 모습으로 구부정하니 서서 들어오는 두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뒤의 서슬퍼런 사형문도들의 모양새와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순천문주. 섭설평. 여기까지요. 더 이상의 출입은 불허하외다.”
“신도예귀. 네 놈이 무슨 권과 능이 있어 그런 말을 지껄이느냐.”
“제게 그런 권과 능은 없지요.”
십칠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이 당태세보다 노쇠해져버린 한제경이 주름 가득한 얼굴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신도예귀는 자신의 손에 들린 시퍼런 빛이 도는 칼을 흔들어 보이며 당태세의 눈을 마주보았다.
“하지만 발바닥에 박힌 가시 노릇을 할 수는 있습니다.”
당태세가 눈살을 찌푸리며 옆에 서 있는 섭설평을 지켜보았다.
섭설평과 당태세가 원래부터 그리 각별한 교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이 칼을 휘두른 지 한식경이 지난 지금은 짧은 말 하나로도 심정이 통하고 있었다.
“신도예귀와 칼을 섞어 봤느냐?”
“아닙니다. 이름만 들어봤습니다.”
“저 놈은 독공(毒功)을 쓴다. 유념해라.”
“어쩐지 이향(異香)이 풍기더군요.”
“그리고 붙었을 때 죽이지 마라.”
“네?”
“나는 저 놈이 십대제자 중 가장 수상하다.”
당태세는 새로 주워 온 박도를 손에서 빙글 돌리고 그들과 대치한 사형문도와 그 수장을 바라보았다.
신도예귀(神到銳晷)라는 괴악한 별호처럼 한제경의 도법은 십대제자중에서 그리 특출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십대제자중에서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인 인간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사형문의 악명 아닌 악명을 퍼트리는 데 누구보다 큰 일조를 한 위인이기도 하였다.
당태세는 지금까지의 거침없는 행보와는 달리 조심스레 보폭을 옮기며 한제경과 그 휘하의 문도들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독공이 어찌 한 사람의 물건이랴. 사형문도들이 들고 있는 창과 검에도 독이 발라져 있지 않다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가자, 얘들아.”
낯색과 달리 창창하기만 한 신도예귀의 목소리가 울리자 뒤에 서 있던 사형문도들이 일제히 칼과 창을 들고 두 사람을 향해 덤벼들었다.
사형문도들이 저 멀리 바다에서 모랫벌을 향해 침노하는 파도처럼 조금씩 다가오는데 당태세의 눈매는 점점 사나와지며 박도를 쥔 손목을 빙빙 돌리며 가장 먼저 사정거리에 들어올 사형문도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무정하고 비정하다. 어리고 약한 이들에게 잔혹해야 크고 사악한 이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세상의 섭리인가.”
섭설평의 입에서 탄식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긴 장발의 사내가 박도를 들고 옷깃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사내들을 향해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낭창대며 흘러 들어갔다.
그와 함께 번쩍이는 섭설평의 칼날이 사방을 휩싸자 비명과 욕지거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당태세 역시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며 자신의 손에 들린 박도를 땅에서 하늘로 휘둘렀다. 들어오던 창수의 창대와 팔이 같이 하늘로 날아가며 혈무(血霧)가 자욱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늘이여!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당태세의 이가 악물리며 칼날을 앞으로 내밀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뼈가 끊어지고 힘줄이 잘리는 느낌이 칼을 타고 손으로 올라왔다. 인상 쓴 노인의 표정은 실로 굴에서 튀어나온 배고픈 맹수와 진배없었으니, 그 맹폭(猛爆)한 모습과 사정없는 칼날이 다가오는 이의 용기를 뺏고 사지를 굳게 만들었다.
“이 모든 악행의 죄과를 받겠소이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노인은 이를 악물고 박도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당태세는 사람의 살점과 피와 뼈와 근육과 옷가지와 칼을 산지사방으로 날리며 한 덩어리 증오와 집념이 되어 앞에 놓은 모든 것을 헤치고 찢어발기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실로 그 기세를 칼 한 자루 창 하나로 막을 도리가 없었다.
“내 기필코 원수들을 없애고 이 죄를 받겠소이다!”
어느새 노인의 눈 앞에 소모를 쓰고 번들대는 푸른 칼날을 지닌 신도예귀 한제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신도예귀의 주름진 얼굴이 슬쩍 굳어지며 칼을 어깨에 짊어지고 발을 뒤로 뻗는 모습이 들어왔다.
당태세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그대로 박도를 앞으로 내밀고 신도예귀를 향해 칼을 내밀었다.
“죽어라!”
새하얀 칼날과 새파란 칼날이 공중에서 서로 부딪히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