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사형문 (2)
철장타는 이미 각오를 하고 사형문 안에 들어온 처지였지만 어제 사형문 안에서 벌어진 일은 그에게도 실로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철장타와 함께 신부복색을 하고 들어온 마숙영은 거대한 사형문의 본전 안에서 혼례를 치뤘다.
마숙영은 말없이 딸을 보며 강파른 얼굴에 미소를 지어보이는 마길과 그 앞에서 무표정하게 예복을 입고 서 있는 사형문주 유독중을 보며 그 명랑하던 얼굴에 미소 하나 짓지 않았다.
예식은 절차에 따라 차질없이 진행되었고, 신부측을 대표하여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는 철장타 역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모두가 사내들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칼을 차고 가죽신을 신고 머리에 끈을 두른 채 지금이라도 명을 받으면 앞으로 튀어나와 사람을 목을 벨 기세였는데 저런 흉흉한 기세를 지닌 채로 혼례에 모여 앉아 하객이랍시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대한 사형문의 본청을 가득 메운 사형문도들은 누구 하나 웃지 않았고 엄숙함이 지나쳐 귀기(鬼氣)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여인이라고는 마숙영 하나뿐이었으니 마숙영이 사방에 의지할 곳이라고는 철장타와 아버지 마길 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일문주 마길은 그저 딸이 사형문주와 결혼하게 되어서 흡족하기만 한 것 같았다.
눈은 퀭하니 오성이 사라진 듯 보이는데 코 아래로는 활짝 펴진 미소를 만방에 보이고 있었으니 철장타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이 굳어졌다.
평생 사모와 함께 키워낸 딸 같은 아이였다.
일생을 홀로 살며 후사는 생각도 하지 않던 철장타에게 갑자기 떨어진 마숙영이라는 존재는 실로 연약하면서도 어려운 존재였다.
그나마 사모가 뒤를 든든히 받쳐주었기에 망정이지 철장타에게 온전히 마숙영의 보육을 맡겼다면 철장타는 애진작에 포일문을 때려치고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사람은 세월과 사람에 적응하는 법이라, 어느 순간부터 마숙영은 철장타를 무서워하지 않았고, 어미만큼이나 그를 따르며 그와 함께 사천 성도 사방을 둘러보는 것을 즐겨하였다.
철장타 역시 어느새 포일문의 괴이한 고수에서 귀여운 여자아이와 함께 시장길을 걷는 기묘하게 생긴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철장타의 사천에서의 삶은 마숙영와 함께였고, 그녀와 함께여서 참으로 보람있고 즐거운 삶의 나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주 마길 역시 그런 마숙영을 보면서 기꺼워했으니, 실로 그 때가 철장타 위목손에게는 화양연화였다.
하지만 가냘프면서도 쇳덩이 같던 사모가 죽은 뒤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문주는 사람이 달라졌고, 어린 소녀는 문파 내의 입지가 달라졌다.
소녀는 부연주가 되어 모루에서 쇠를 때리고 직접 포일연의 일을 거들었다. 그녀가 음양으로 의지하던 것은 오직 철장타 하나뿐이었다.
노인은 이 자리가 즐겁지 않았다. 여인의 평생을 돌봐 온 사람의 용납하기 힘든 혼례가 앞에서 치러지는데 정작 피가 섞인 아비는 무엇이 저리 즐거운지 알 수가 없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도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게 여인이 위태롭게 보이는데 무남독녀 금지옥엽을 시집보내면서 어찌 저런 꾸며낸 미소를 드러내는 것인지 철장타는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없는 듯 보였다.
“이제 두 사람의 혼례는 끝났으니 신부를 신방으로 안내하시오! 오늘부로 포일문과 사형문은 하나가 되었음을 만방에 선포하오!”
예복을 차려입은 유독중이 좌중을 바라보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자 모여있던 사형문도는 함성이나 축하의 말을 외치는 대신 손을 모으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존명!”
철장타는 우레와 같은 구호를 들으며 소름이 온 몸에 돋았다.
이게 무슨 혼례란 말인가. 그저 동맹(同盟)의 예 아닌가.
철장타는 마길을 돌아보았다. 마길 역시 두 손을 모으고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철장타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딸을 위해 혼사를 한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해 동맹을 한 것인가.
철장타 위목손은 고개를 휘젓는데, 어느새 그의 앞으로 유독중이 저벅저벅 걸어와 차가운 눈동자로 철장타를 지켜보았다.
철장타는 순간 온 몸이 굳어버렸다. 사내는 철장타의 심중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마치 독사 앞의 개구리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위목손, 신부를 신방으로 옮기거라. 네가 신부의 호종이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시위들을 따라가라.”
마숙영은 말없이 시위와 함께 먼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허겁지겁 마숙영을 따르는 철장타는 바닥을 보며 표정없이 금련보(金蓮步)를 옮기는 아리땁고 처연한 아이를 지켜보았다.
순간 마숙영의 눈동자가 뒤를 따르는 곱사등이 노인 철장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부연주. 괜찮으시옵니까?”
“걱정마시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여인의 입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철장타는 그제야 가녀린 마숙영의 속내에도 죽은 사모와 같은 강인함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저 아이는 환(丸)을 거리낌없이 먹겠구나. 오늘 밤 살기 위해 죽을 것이구나.
철장타는 속에서 뭔가 울컥대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이의 속이 옹골찬 것으로 보며 사방을 둘러싼 근심 한켠에 평안함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마숙영은 그렇게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며 삼층의 거대한 방문 앞에서 철장타와 이별을 고하였다.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 사람들을 물리치고 문을 닫는 순간, 철장타는 마숙영의 눈을 다시 한번 보았다. 어쩌면 저 눈망울은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늙은 호법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
“어제 밤 일찍부터 호흡이 없고 기맥이 끊겼습니다. 발견은 사형문주가 하였고, 난리가 났지요. 하지만 방 앞까지는 멀쩡하기만 하였으니 그를 호종하던 사람들에게 죄를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시는 대로….”
철장타 위목손은 상사(喪事)의 예법대로 문짝 위에 올려놓은 가냘픈 여인의 시신을 보이며 침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리 모셨습니다. 발인은 내일 할 예정이라지요.”
철장타는 말을 맺고는 입을 닫았다. 당태세 역시 말없이 주변의 기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사방에 사람들이 있었다. 사형문의 사내들이 내당의 사방을 지키며 서 있었다. 보이는 인원만 십여 명, 기둥과 벽 뒤에 있는 이들의 숫자도 그 정도는 될 터였다. 당태세가 철장타를 보며 은밀하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수레는 어디에 두었는가?”
“내당 뒤에 작은 소로를 따라 나가면 바로 문과 연결되는 작은 마당이 있습니다. 그곳에 세워두었지요.”
종리세리가 말을 듣더니 슬쩍 주변을 보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한바탕 드잡이질을 하지 않고서는 부연주를 빼낼 방도가 보이지 않소이다. 생각보다 감시하는 이들이 많소.”
“어차피 각오한 거 아니오.”
당태세는 아룡의 어깨를 잡더니만 아룡의 눈을 보며 말하였다.
“무두리, 지금부터 내가 네게 가장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
“네?”
“내가 지금껏 나와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지만 이번 일은 제일 위험하면서도 꼭 성취해야 할 일이다. 할 수 있겠느냐?”
아룡은 눈을 껌벅이며 앞에 놓인 시신과 옆에 있는 곱사등이 괴물노인과 자신의 맞은편에 서 있는 당태세를 번갈아 바라보더니만 침을 꿀꺽 삼키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룡은 입술을 깨물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태세가 사내의 모습을 보더니 되었다는 듯 자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신호가 나면 재빨리 저기 누워있는 마소저를 들쳐 업고 저 꼽추노인을 따르거라.”
“업…네? 네? 지금 뭐라고…?”
아룡이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는데 당태세는 목소리가 크다는 듯 손짓을 하더니 사방을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보았다. 슬쩍 이쪽을 바라보는 사내들의 기척이 조금씩 빈번해지고 있었다.
“이 여인은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적도의 소굴에서 구해야 한다. 저 꼽추노인이 길을 뚫을 것이다.”
아룡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곱사등이 노인을 향하였다. 곱사등이 노인은 이미 수염이 하얗게 세 있었지만 팔과 다리의 근육은 여느 젊은이 못지 않아보였다.
노인이 아룡을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아룡은 멍하니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대며 다시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해야한다. 안 그러면 이 자리에 모두가 죽을 것이니.”
“네.”
모깃소리만큼 가는 대답이 당태세의 귓가로 들어왔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 자리에서 결기어린 대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룡 정도의 눈치와 근력이면 족했고, 수많은 위험에서도 용케 생로(生路)를 찾아냈던 아룡의 약삭빠름이라면 어떻게 승부를 걸어도 괜찮을 듯 보였다.
철장타는 그런 당태세를 바라보더니 걱정말라는 듯 짧게 말하였다.
“걱정 마십시오. 후위는 제가 책임질 것입니다. 그저 앞길을 부탁할 뿐이지요.”
“그건 걱정말게. 이래뵈도 천하를 주유한 배짱이 있는 놈일세.”
중요한 문답이 끝나자 철장타는 이번에는 눈을 돌려 오랜만에 보는 친근하면서도 낯선 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포일사성의 첫째, 대사형 섭설평은 늙은 철장타를 슬쩍 흰 눈으로 보더니 슬쩍 묵례를 하였다.
“어린 막내는 수염이 이미 하얗게 세었는데, 대사형은 그간 나이를 전혀 드시지 않으셨소.”
“철없이 사는 덕이겠지.”
백안(白眼)의 섭설평은 조용히 앞으로 나서더니 향불을 사르며 죽은 마숙영을 향해 깊게 절을 하였다. 사내의 행동거지는 눈이 먼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을만큼 자연스러웠다.
향을 피운 섭설평은 철장타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간의 사정은 오면서 다 들었다. 나는 포일문주를 배알하러 갈 예정이다.”
“그러십니까?”
“그동안 맺힌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그 이야기가 끝나면 네 놈을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섭설평의 입에 슬쩍 맺혔던 미소는 연기같이 흘러가는데, 철장타는 자기보다 젊어 보이는 대사형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더니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대사형을 바라보았다.
“저는 대사형께서 저희를 버리신 줄 알았습니다.”
“내가 버림받았다 생각하여 너를 버렸으니 실로 미안하구나. 부연주께도 말이다.”
“바로잡을 날이 있지 않겠습니까?”
섭설평이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더니 혼잣말처럼 허공으로 말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 말은 분명 자신의 사제에게 하는 말이 틀림없었다.
“너는 눈 내리는 벌판과 얼음이 풀리는 냇가와 다시 꽃이 피는 죽은 땅을 볼 것이냐?”
“그러고 싶습니다.”
“보게 되면 나중에 찾아와 그 광경을 말해다오.”
“불초 사제, 어찌 머뭇거리겠습니까?”
섭설평의 말에 철장타는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긴 말을 나누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로구나.”
그들을 사방에 둘러싼 이들은 알아듣지 못할 화두나 다름없는 말이 오갔지만 두 사제는 이미 서로 소통을 한 듯싶었다. 당태세는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더 조문을 오래 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종리세리가 슬쩍 뒤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섭설평의 표정이 바뀌더니 당태세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기도가 범상치 않은 이 둘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섭설평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내당의 문이 활짝 열리며 두 명의 사내가 사형문도들을 대동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숙인 채 옆으로 눈을 돌린 당태세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뿌드득 갈며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십대제자 놈들이 먼저 몰려들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