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사천 포일문 (3)
조용했다. 고요하였다.
계단을 타고 올라선 첫 번째 야장의 풀무 앞에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 웃옷을 벗어던지고 얼굴과 팔 가슴에 검댕이 잔뜩 들러붙은 야장들이었다. 사내들은 억세고 강하고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었지만 선하고 겁 많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완력은 있으되 무공의 소양은 없어보였다. 말 그대로 야장(冶匠)들이었다. 당태세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여있던 대장장이들은 날카로운 콧수염 사내의 눈을 피해 긴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희들은 포일문의 사람들이냐?”
“포일연의 직공입니다요.”
당태세는 눈살을 찌푸렸다. 성도 안의 포일연이나 이곳의 포일연이나 부림당하는 사람들은 그저 업(業)을 수행하고 대가를 받을 뿐, 문파와 규율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그들은 돌덩이에서 쇠를 내고 쇠를 반듯하게 펴고 날을 세울 뿐이었다.
그들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거둬갈 수 있을 것인지 당태세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래에서 난 소리가 무엇입니까요? 갑자기 비명소리가 난 것 같던데. 칼잡이들 말입니다.”
“……모두 이곳을 떠나시게.”
“예?”
“이곳은 이제 문을 닫을 것일세.”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곳은 저희의 일터이고 일하는 보수를 받는 곳…….”
순간 냉랭한 목소리가 당태세의 뒤에서 울려 퍼졌다. 종리세리의 눈동자는 야장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살겁이 닥칠 것이다. 여기서 무기를 만드는 것을 팔기가 아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순간, 야장들의 입이 한일자로 닫혔다. 최소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위법이라는 것 정도는 모두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당태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가 내가 정한 굴레인가?
누구를 살려주고 누구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노인은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화로와 혼자 떨고 있는 풀무를 지켜보았다. 노인의 주먹이 쥐여졌다가 다시 펴졌다.
“화로의 불을 끄고 쇳덩이를 굳히게. 다시는 쓸 수 없을 것이네.”
“노사. 저희는…….”
“목숨이 아까우면 어서 이곳을 떠나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종리세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허리춤의 안모도를 사내들에게 보여주었다. 대장장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다들 알고 있었잖은가. 어차피 오래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이야.”
그네들 중 가장 거칠어 보이는 피부와 깊은 주름이 새겨진 야장의 탄식 같은 넋두리에 모든 이들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태세는 역시 이마에 가득 주름을 잡고 있었지만 망치잡은 사내들까지 명을 끊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이 성도 안에서 일했다면 괭이와 낫을 만들었을 것이고 이들은 당태세의 살기를 피했을 터였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가 이들을 이리로 불렀을 뿐이었다.
노인은 슬쩍 자리를 비키며 그들이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길을 틔워주었다.
“누구 맘대로 불을 끄고 나간다는 것이냐!”
그때였다. 질그릇 깨지는 듯한 목소리가 야장의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졌다. 순간 모여있던 야장들은 깜짝 놀라며 옆으로 우르르 비켜섰다.
당태세는 인상을 찌푸리며 듣기 싫은 목소리가 흘러나온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한 명의 사내가 쇳덩이를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양달로 나오는 중이었다. 당태세의 찌푸려진 눈이 사내를 바라보며 이를 드러냈다.
“왜대호(倭大虎), 오랜만이구나.”
“허, 진짜 당태세로군. 유독중 말이 사실이었구나. 안 죽었네?”
모습을 드러낸 사내의 머리 높이는 당태세의 가슴팍 정도였다. 길게 턱 아래로 늘어뜨린 콧수염을 깔끔하게 다듬고 번쩍일 정도로 깔끔하게 변발을 쳐 낸 단신의 사내는 자신의 키보다 큰 쌍수대도를 등 뒤에 짊어지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웃통에는 번쩍이는 흉갑(胸甲)을 두르고 있었다.
실로 괴악하기 그지없는 차림과 외형의 사내였지만 번득이는 눈매와 걸어오는 보법은 여느 칼잡이와 다를 바 없는 무공을 지니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아니, 보통 칼잡이는 아닌 듯 싶었다.
“왜대호 임이달. 포일문주 마길은 어디에 있느냐?”
왜대호는 당태세의 말에 한쪽 눈을 찡그리며 코웃음을 쳤다.
“마길이 어디 있는지 내가 알 것이냐. 아마 유독중과 같이 있겠지. 그 놈하고 배를 맞추는지 술을 먹는지 내 알 바 아니다. 마길을 잡으러 온 것이면 얼른 나가거라! 괜한 야장들 들쑤시지 말고!”
당태세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하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왜대호 임이달의 말은 광오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포일문의 사내가 아니라는 투였다.
출문(出門)인지 파문인지는 알 바 아니지만 한때 섬겼던 문주에 대한 예의 따위는 어디에 내다버렸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참람된 언사였다.
“네 놈은 포일문을 떠났느냐? 말투가 경박하기 그지없구나.”
“허, 포일문! 포일문은 망한 지 오래다! 우리는 그저 칼 만드는 직공들이지! 유독중이 하청을 주는 돈으로 술이나 퍼먹는 밥벌레들이야! 우린 무문(武門)이 아니란 거다!”
왜대호는 입술을 찡그리더니 당태세를 보며 허탈한 듯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그와 종리세리를 가리켰다.
“죽은 줄 알았던 순천문주가 왜 여기까지 왔는가 했더니, 마길에게 복수라도 하러 온 모양이구만? 내 말이 맞지? 하! 아서라, 당태세! 유독중은 이미 네가 건들 사람이 아니다. 사천의 지휘사나 와야 제대로 한판 붙을 것이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었다.
왜대호 임이달은 이미 포일문에 대한 존숭(尊崇)같은 것은 내던진 지 오래였다. 저런 자와 말을 더 나눌 바에는 한 칼에 목을 떨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계단 위에서 한 명의 사내가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머리를 묶지 않고 관을 틀어 놓은 채 긴 도포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사내는 신선인지 광인인지 알 도리가 없었는데, 그는 긴 칼을 오른 허리에 차고 있었다. 종리세리는 내려오는 사내의 오른 소매가 어깨 위쪽부터 바람에 흐느적대며 날리는 것을 알아챘다.
사내는 외팔이었다.
“독비응(獨臂鷹) 요경, 네놈이구나.”
당태세의 말이 끝나자 외팔이 도포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풀쩍 계단에서 몸을 날려 왜대호 임이달의 옆으로 가볍게 착지하였는데, 사내의 무공과 신법은 결코 녹록하게 볼 것이 아니었다.
“순천문주 당태세. 다시 뵙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구려. 진짜 살아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독비응, 너희들은 마길을 떠난 것이냐? 마길은 어찌 되고 이곳에서 터를 잡고 있는 게냐?”
“우리는 마길 문주의 명으로 이곳에 터를 잡았고, 그의 명으로 이곳에서 칼과 창을 만들고 있소이다. 하지만 그의 명을 못 들은 지 삼년이 넘었고 그의 얼굴을 본 지도 삼년이 넘었소.”
독비응의 말에 왜대호가 흥하고 바닥에 코를 풀더니만 당태세를 보며 이를 드러냈다.
“이젠 유독중의 청부만 이곳으로 들어오지! 마길은 우릴 여기 처박아두고 버렸지! 우리도 그래서 마길을 버린 거야!”
“문주를 보지 못한다고 무문을 버렸단 말이냐? 포일사성이라는 직함을 가졌던 너희들이?”
당태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다 독비응은 얼굴을 찌푸리며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답답하다는 듯 하늘을 보고 중얼거렸다.
“애초에 사천으로 올 때부터 잘못되었던 거요. 당문주. 포일문주는 명이 망하면서 사람도 죽어버렸어. 그러니까 사형문의 요구에 아무런 말도 못하게 된 것이오. 그는 유약해졌소. 포일문을 망가뜨린 건 마길 문주란 말이오.”
“마길이 포일문을 망쳤다고?”
왜대호가 분을 참지 못 하겠다는 듯 얼굴을 붉히고 이를 드러내었다.
“칼을 버리고 농구를 만든다 하였지. 그것이 어찌 무문의 길인가?”
독비응도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추었다.
“문도들도 모두 내보냈소. 앞날이 어찌 될지도 모르면서 말이오. 이곳에서 농구를 만들고 밭을 기경하며 우리와 함께 인생을 보내자하더구먼. 허.”
독비응은 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흔들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일 때도 위태위태하더니만 사모가 죽자마자 아예 실성한 사람처럼 되어버렸지. 그때부터 유독중 말만 들었소. 차라리 죽었다면 제사라도 곱게 차려주겠지만 말이야.”
독비응은 당태세의 눈초리를 바라보더니만 슬쩍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지. 우리는 이곳에서 칼을 만들어 사형문에 보내고 있소. 그게 우리의 업이요.”
독비응은 눈을 부릅뜨더니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모든 게 맘에 안드는 것 투성이라면 그나마 나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
“무경학(無耿鶴)은 어디 있느냐?”
“대사형은 꼭대기에서 얼굴을 비추지 않은지 오래요! 하, 이 포일연은 오롯이 우리 두 사람의 터전이나 마찬가지지! 그대, 당태세! 예전의 정을 생각하여 목숨은 보전해 주겠소. 그러니 이곳을 떠나시구려. 괜한 야장들을 들쑤시지 말고!”
두 사내의 말은 두서가 없었고, 정확한 사정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더 이상 포일문과 마길에 대한 마음이 없음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더럽고 하찮기 그지없구나.
당태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에 짜증이 밀려왔다. 해가 가고 날이 바뀐다하여 좋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안 좋아지는 것이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힘이 빠져나갔다.
“너희들과 공연한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구나. 내가 잘못 찾아왔다.”
당태세의 허무한 표정을 보던 왜대호와 독비응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피식 냉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당태세의 다음 말을 들은 두 사람의 표정은 급속도로 냉랭하게 변했다.
“야장을 닫고 사람들을 내보내게. 무기를 만들어 유독중을 도와주는 것을 보고 싶지 않네.”
“미쳤소 당문주? 이건 이제 우리 업이요.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독비응이 눈을 흘기며 말하자 왜대호 역시 고개를 삐딱하게 들더니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개처럼 뒈지고 싶으면 그냥 사형문에 가서 뒈지라고. 우리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이곳은 이제 우리가 세운 문파야. 우리가 포일문이란 말이야!”
지금까지 잠자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종리세리가 팔짱을 끼더니 싸늘한 눈빛을 빛내며 두 사람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미 사형문의 도객들과 동성문의 황병아는 참하였다.”
“뭐?”
왜대호와 독비응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더니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왜대호는 등 뒤에 매고 있던 쌍수대도를 뽑아들었고, 독비응 역시 자신의 오른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았다.
“빌어먹을 견자 같은 늙은이, 우리 밥줄도 끊어버렸구먼! 네 놈이 뭔데!”
“아무래도 네놈 둘은 오늘 여기서 죽을 것 같구나.”
멍하니 땅을 보고 있던 당태세가 눈을 들어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노인의 눈은 이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어느새 노인은 오른발을 뒤로 빼고 목괴를 앞으로 뻗은 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으며 두 사람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야장들은 들어라. 당장 이곳에서 물러서 멀리 떨어져라. 휘말리면 죽으리라.”
“놀고 있네, 다 늙은 것이!”
순간 왜대호의 쌍수대도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당태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거칠 것 없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갈라버릴 것만 같던 쌍두대도의 칼날은 비스듬히 뻗은 당태세의 손에 의해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당태세는 목괴를 한손으로 든 채였고, 오른손은 아직 땅을 향해 늘어뜨리고 있는 자세였다. 오직 노인의 눈빛만이 무섭게 타오르며 왜대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은 오늘 나에게 기필코 죽는다.”
순간 섬찟한 기운에 잠시 움츠려들었던 왜대호가 이를 드러내며 다시 쌍두대도를 쳐들었다. 옆에 있던 독비응 역시 칼을 빼들고 당태세를 향해 짓쳐 들어가는데, 어느새 그림자처럼 당태세의 옆으로 다가온 종리세리가 안모도를 빼 들고 독비응의 칼에 맞섰다.
독비응이 왼팔을 번개같이 뻗으며 종리세리의 안모도에 맞서는데, 옆에 있던 왜대호는 다시 거대한 쌍수대도를 들어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일격을 날렸다.
그 순간, 당태세의 몸이 한 보 앞으로 나가더니만 다시 왼손을 들어 목괴로 강렬한 왜대호의 일격을 막는 것과 동시에 옆구리부터 올라온 오른손이 장(掌)을 펼친 채 질풍처럼 앞으로 뻗어 들어가 왜대호의 흉갑을 강타했다.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왜대호의 등을 가리고 있던 배갑(背甲)이 불룩 튀어나오며 단단하기 그지없는 쇠갑옷이 거북 등딱지처럼 금이 가며 갈라지는데, 멍하니 당태세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왜대호의 입에서 시뻘건 선혈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그 모습을 보더니 부르르 몸을 떨면서 왜대호를 향해 또박또박 말을 씹어 내던졌다.
“네놈은 몸에 칼을 박을 가치조차 없는 놈이다.”
순간,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뒤에서 울려 퍼졌다. 붉은 혈흔과 함께 쨍그랑 소리를 내며 독비응의 손과 칼이 동시에 야장의 바닥으로 굴렀다.
굴러가는 팔을 보며 짐승 같은 소리를 외쳐대는 독비응을 보던 종리세리는 슬쩍 눈살을 찌푸리더니 그대로 칼을 뻗어 독비응의 목을 단번에 찌르고는 칼날의 피를 계단에 흩뿌렸다.
당태세는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왜대호의 몸을 발로 차버리고 멍하니 뒤에 물러나 싸움을 보고 있던 야장들을 노려보았다.
“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누가 이런 것을 보라고 하였느냐!”
대장장이들은 노인의 대갈일성에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일제히 계단을 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주인없는 풀무는 여전히 제풀에 바람을 화로에 집어넣고 있었고 화로의 불은 줄었다 늘었다 하면서도 쉬이 꺼지지 않았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처지 때문인지 쓸모없이 죽은 이들 때문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노인은 숨을 가다듬더니 다시 종리세리를 보며 말했다.
“꼭대기까지 올라갑시다.”
종리세리는 계단 아래 쓰러져 죽어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무공이 이들과 같은 지경이라면 굳이 들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무경학은 이런 쓰레기들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오. 사람도 다를 것이고.”
말을 끝낸 당태세는 목괴를 짚고 다시 꼭대기까지 나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그를 바라보던 종리세리는 눈을 들어 계단의 끝을 바라보았다.
낮은 언덕배기 정상으로 연결된 계단 위로 조각난 구름들이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