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96화 (196/226)

196.  사천 성도 (14)

빠른 바람에 검은 구름이 산산히 흩어지며 어둑했던 들판 위로 하얀 햇살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모여있던 말들이 머리를 돌리며 급작스레 불어온 바람과 함께 달려온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하나둘 칼을 뽑아든 사내들이 주장(主將)을 향해 극(戟)을 내려친 노인을 향해 말머리를 모으며 고삐를 낚아챘다. 시퍼렇게 날 선 대도가 햇살을 받고 위로 올라서며 눈부신 도림(刀林)이 되어 도로 위에 울창하게 뻗어 올랐다.

순간, 한 필의 말이 바깥에서 뛰어 들어오며 나무의 밑동을 자르듯 매서운 칼질로 후려 베었다. 순간 말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흐르며 말 위에서 사내 하나가 떨어졌다.

매가 날아들 듯 말을 몰아 사냥감을 치고 빠진 마필 위에는 날카로운 눈의 팔기사내가 다른 사냥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저 자를 잡아라!”

순간 기마대가 회전하여 한쪽은 주장을 향해 움직이고 나머지는 습격자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병들이 나뉘고 진(陣)이 흩어졌다.

달아나는 추적자는 말들이 자신을 추적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한 가운데에서 검은 골타와 힘을 겨루는 늙은 노장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었다. 골타를 든 사내의 힘은 상정했던 것 이상이었다.

말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두 손으로 골타를 휘두르려면 팔 힘뿐이 아니라 두 다리와 허리의 힘도 강해야 하는데, 이 사내는 아예 힘이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당태세는 재빠르게 목괴를 흐르듯 빼며 사내의 골타를 옆으로 넘기고 다시 목괴의 끝을 돌려 사내의 태양혈을 노렸다. 하지만 사내역시 골타를 돌리며 목괴의 공격을 가볍게 방어하고는 고비를 돌려 슬쩍 거리를 벌렸다.

사내의 말이 순간 공간을 만들자 그 사이를 뚫고 두 명의 기수가 칼을 빼들고 당태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상(馬上)의 대도(大刀)가 공기를 베며 햇살을 머금은 채 번쩍이며 번개처럼 당태세의 양 옆에서 떨어졌다.

당태세가 두 손으로 목괴의 가운데를 잡고 들어오는 두 자루의 대도를 가볍게 막아내고는 왼편의 사내를 향해 목괴를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튀어나온 목괴 가지의 쇳덩이 끝이 낫처럼 파고들며 사내의 옆머리를 강타하였다. 그와 함께 당태세는 한손으로 말고삐를 돌려 말의 어깨로 상대편의 말을 밀어내었다.

칼이 튕겨나간 사내가 흩어진 중심을 잡으며 다시 당태세를 향해 몸을 비트는데, 그 순간 당태세의 목괴가 위에서 떨어지며 사내의 머리를 내리쳤다.

순식간에 두 사내가 고개를 떨구며 말 아래로 그대로 떨어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두 명의 도수가 앞뒤에서 달려들었다.

당태세는 고삐를 잡고 박차를 당겼다. 당태세의 말이 앞으로 나가며 달려드는 도수의 옆으로 빠져나갔다.

당태세의 옆구리를 향해 예리한 대도가 흘러들었다. 노인의 손이 빙글 돌며 들고 있던 목괴가 그대로 칼을 휘감고는 목괴 가지의 끝이 칼 잡은 이의 팔뚝을 그대로 감아 올렸다.

뚝하는 소리와 함께 마병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오는데, 순간 뒤로 빠지던 당태세의 목괴가 그대로 뒤를 향해 바람을 일으켰다. 당태세의 목괴가 팔이 부러진 기수의 뒤통수를 치고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뒤를 쫓던 기병은 동료가 고개를 떨구고 말 위에 쓰러지는 것을 보자 눈이 뒤집혔다. 사내는 대도를 두 손으로 들고 말을 몰아 당태세를 향해 돌진했다.

당태세가 재빠르게 고삐를 돌리며 말머리를 되돌렸다. 순간, 골타를 든 사내의 입에서 고함이 흘러나왔다.

“너무 들어가지 마라! 상대가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상관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도수는 재빨리 고삐를 잡고 말을 제어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말을 앞장세워 들어오며 내지른 당태세의 목괴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창처럼 뻗어나간 목괴의 끝이 도수의 명치를 그대로 강타하였고, 사내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대도를 떨어트리며 그대로 몸을 뒤집으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주인을 잃은 말들은 하나둘 길을 벗어나 양 옆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말을 잃고 목숨을 버린 주인들의 시신만 길 위에 남았다.

골타를 잡은 사내는 말없이 주변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어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거한은 노기충천한 얼굴로 늙은 사내를 바라보더니 이를 악물고 잇새로 신음 같은 소리를 내었다.

“네 놈이 당태세로구나.”

“네가 새로 들어왔다는 십대제자냐. 모양새를 보니 패둔성의 후임이구나.”

“쾌둔일수(快鈍一手) 왕문규라고 한다.”

언덕 위에서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사내 하나가 다시 말 위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당태세의 눈에 들어왔다.

종리세리의 마술은 북막을 휘몰아치던 만주 팔기의 기예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으니, 학처럼 가볍게 날개쳐 거리를 띄웠다가 매처럼 달려들며 목표한 자의 숨통을 일격에 끊어놓고 있었다.

나머지 기병들이 종리세리를 향해 칼을 휘둘러대었지만 종리세리는 칼을 맞부딪힐 생각이 아예 없어보였다. 남은 기병은 셋, 하지만 저들이 땅에 등을 대고 눕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당태세는 골타의 무장을 바라보며 목괴를 앞으로 뻗었다.

“쾌둔일수라 하였느냐. 성도 성읍에서 아직 목숨이 붙은 것은 네놈 하나뿐이구나.”

“네놈을 조심하라 문주께서 이르신 연유가 있었구나.”

“좋은 말을 탔구나. 이곳을 떠나 북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모욕을 주려는 것인가?”

당태세가 왕문규의 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네놈의 부하들을 참하였으니 너는 나와 끝까지 싸우겠구나.”

“당연하다. 네놈의 목을 들고 사형문주께 갈 것이다.”

당태세는 입술을 한 번 훔치고는 목괴를 들었다. 왕문규 역시 골타를 들고 고삐를 잡았다.

점점히 흩어진 구름이 빠르게 날며 그림자와 햇살을 번갈아 두 사내의 머리 위에 뿌려대었다. 눈부신 햇살이 골타와 목괴 위에 맺혀 있다가 흘러들어온 구름에 의해 다시 빛을 잃었다.

순간 왕문규의 골타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당태세의 목괴를 후려쳤다. 당태세의 목괴가 골타를 받아치며 고삐를 잡아챘다. 당태세의 말이 왕문규의 옆으로 움직이며 노인의 몸이 골타사내의 우측으로 돌았다. 왕문규 역시 고삐를 틀어쥐고 말머리를 돌렸다.

왕문규의 말이 당태세의 말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왕문구의 골타가 옆으로 날아오자 당태세는 그대로 목괴를 아래에서 위로 올리며 골타를 빗겨 올리고 왕문규의 허리를 목괴로 베어내듯 후려쳤다.

하지만 왕문규의 긴 골타자루가 목괴를 받아지며 다시 올라갔던 골타의 추를 당태세를 향해 내리쳤다. 당태세의 목괴 가지가 골타를 허공에서 잡으며 다시 옆으로 밀어내었다.

그때였다. 왕문규의 두 손이 머리 위에서 보이지도 않게 회전하더니 골타의 철추를 반대편으로 휘감으려 후려쳤다. 당태세는 목괴를 어깨에 대고 들어오는 철추를 막아내었다.

강렬한 타격과 함께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기혈이 뒤집히는 충격이 올라왔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제기랄!”

왕문규가 이를 드러내며 골타를 위아래로 휘두르며 당태세를 압박해 들어갔다. 사내의 힘은 신력(神力)이라 부를만 하였으며 마술(馬術)은 너른 북막의 평원에서도 꿀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말과 사람이 한데 힘을 모아 당태세를 압박해 들어갔다.

당태세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골타의 쇄도를 막아내며 헛점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마상에서 골타를 휘두르는 왕문규의 무공에 헛점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공방일체의 쾌격에 천근의 무게가 실렸으니 그 골타를 받아낸 적(敵)이 무너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당태세의 이가 악물렸다.

“둔(鈍)자 배분에 이런 호걸이 있었구나!”

세차게 들어오는 골타의 공격에 풍압이 일며 당태세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동시에 날렸다. 왕문규의 타격이 하나둘 위에서 떨어질 때마다 당태세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고, 당태세가 타고 있는 말의 입에서도 짧은 울음이 튀어나왔다.

“살인자놈아!”

그때였다. 왕문규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내 부하들을 살려내라!”

거한의 눈은 이글대며 불타오르고 인상을 악귀야차의 형상으로 변해 앞에 있는 당태세를 때려죽이는데 일념을 다 하고 있었지만, 사내의 눈시울 아래로는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태세는 멍하니 왕문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 살 길이 창창한 아이들이었다! 네놈이 무엇이관대! 네놈이 무엇인데!”

고함을 지르던 왕문규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이글대는 거한의 눈물어린 눈에 살기가 충천하였다. 사내는 다시 한 번 산을 쪼개듯 골타를 아래로 내던졌다.

당태세가 두 손으로 목괴의 양끝을 잡고 떨어지는 골타를 받아내었다. 두 팔과 어깨와 늑골까지 강렬한 충격이 몰아쳐 들어왔다.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이고 네 간을 빼어 먹으리!”

왕문규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턱 아래로 한 방울 떨어졌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당태세는 조용하게, 시를 읊듯 자신을 죽이려 하는 거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직은 나도 죽을 수가 없다.”

골타의 선풍에 휘말린 당태세의 긴 변발 끝이 당태세의 입에 물려 있었다. 노인은 머리카락을 입에서 뱉어내며 왕문규를 바라보았다.

순간 번득이는 빛살 하나가 당태세의 입에서 왕문규의 눈으로 향하였고 그와 동시에 왕문규는 눈을 질끈 감으며 한 손을 골타에서 놓아 자신의 눈을 가렸다.

“이 비겁한 놈아!”

순간 당태세의 두 손이 목괴를 휘감고 목괴의 가지를 뻗어 골타를 잡은 왕문규의 손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뚝 소리와 함께 관절이 빠지며 왕문규의 골타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당태세의 목괴가 하늘로 치솟으며 구름 사이를 뚫고 떨어지는 햇살처럼 왕문규의 천령개를 향해 떨어졌다.

백사은침이 눈에 박힌 왕문규는 머리위로 떨어지는 당태세의 목괴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 강렬한 타격음이 사방에 메아리쳤고, 거한의 몸이 천천히 기울더니 안장에서 떨어졌다.

이미 땅에 머리가 닿기 전에 숨이 끊긴 쾌둔일수 왕문규의 시신을 쳐다보던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마지막 비명이 당태세의 등 뒤에서 길게 울려 퍼졌다. 말발굽 소리가 눈을 감은 노인의 옆으로 다가왔다. 노인의 옆에서 종리세리의 여느 때와 다름없는 덤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끝났습니다. 문주께선 괜찮으시오?”

“……나는 괜찮네.”

“조금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이제 야장(冶場)이 한 걸음인데 너무 많은 힘을 썼소이다. 조금이라도 쉬면서 체력을 회복해야 할 것이오.”

“…천천히 가세. 천천히 말을 몰고 가다보면 나아지겠지.”

말고삐를 잡은 당태세는 먼저 말을 몰고 앞으로 나아갔다. 종리세리는 별다른 말없이 당태세의 뒤를 따랐다. 당태세는 고삐를 잡은 두 손을 내려 보았다. 두 손목과 팔뚝, 어깨까지 두들겨 맞은 듯 욱신대는 통증이 밀려왔다.

숨을 쉴 때도 뻐근한 기운이 밀려왔다. 하지만 육신의 고통보다 더 큰 회한이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한 줄기 연기처럼 위로 밀려와 입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데,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가슴이 저리고 눈앞이 흐려지니 안색을 바로 하기가 힘들었다.

노인은 이를 악물고 눈썹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어찌 약해질소냐.”

“네?”

“나라와 집안의 원수가 목전에 있는데 어찌 약해질소냐!”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앞을 노려보는 당태세를 쳐다보던 종리세리는 입을 다물고 당태세와 함께 앞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가늘게 입술을 떨더니 다시 허리를 펴고 눈을 깜박였다.

앞에 펼쳐친 너른 풍광 사이에 튀어나온 한 조각 구릉 새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다름아닌 포일문의 야장(冶場)이었다. 노인의 흐릿했던 눈에 다시 반짝이는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저곳일세. 종리세리. 다음에 들이칠 곳이 말이야.”

노인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말끝에는 새롭게 벼려낸 증오가 뭉쳐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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