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사천 성도 (11)
다가오지 않을 것 같던 아침은 어김없이 때를 맞춰 다가오고, 끝없이 더울 것만 같던 아침 공기는 어느새 서늘한 기운으로 바뀌어 사방을 감쌌다.
청명하기만 하던 하늘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자 회백색의 구름으로 가득 차 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을씨년스러운 기운에 얇은 옷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길을 향해 뛰어갔다.
노인은 길을 걸어갔다.
긴 목괴를 짚고 뚜벅뚜벅 장부처럼 걸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백발을 따 넘긴 변발이 뒤에서 찰랑거리며 갈기처럼 노인의 뒤에서 움직였다.
주름진 노인의 입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잔잔하지만 묘하게 매서운 눈동자는 나가는 길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둘, 골목에서 사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긴 막대와 짧은 몽둥이, 그리고 천으로 둘러싼 기다란 물건들을 팔뚝 사이에 낀 사내들이 조금씩 늘어나며 노인의 뒤에 달라붙었다. 성도의 성민들은 사내들을 본척만척 신경쓰지 않았고, 담력이 약한 사람들은 그 자리를 뛰어서 벗어났다.
하지만 정작 사내들을 불러낸 노인은 주변의 풍광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노인은 기나긴 대로를 지나 넓은 골목으로 구부러지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커다란 기둥으로 굳게 받쳐진 넓적하고 낮은 지붕의 창고 앞에 서 있었다.
노인이 창고 앞으로 다가서자 창고 문을 지키고 있던 사내 둘이 노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노인의 눈동자가 두 사람을 슬쩍 흘겨보더니 짧게 말을 남겼다.
“들어가자.”
“불가하다.”
“길에서 피를 보고 싶은 게냐. 십대제자에게 전해라. 귀린갈이 왔다고.”
보초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한 사람이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노인은 목괴를 땅에 짚고 뒤를 돌아보며 자신을 따라 온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대충 스물에서 서른, 하나하나 눈매가 범상치 않은 이들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앞으로 돌아보았다. 닫혔던 대문이 다시 열리며 알리러 들어갔던 사내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십시오.”
“제법 격이 있구나. 너는 돌아가라.”
사내가 고개를 들자 당태세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맹호출림(猛虎出林), 숲에서 나온 호랑이의 눈빛이라는 것은 이것을 보고 하는 말이 틀림없었다.
“고민하고 주저하다가는 이미 늦으리라.”
노인은 말을 남기고 저벅저벅 거대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름드리 기둥이 사방과 가운데 박혀있는 거대한 창고는 몇 년 치의 곡식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하였고, 바닥에 뿌려진 낟알들과 볏짚들은 이곳에 얼마나 많은 곡량이 들어있었는지를 가늠케 하였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고 추수가 가까워진 지금 이 창고를 채운 것은 쌀이나 보리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기둥의 사방에 깔린 이들만 해도 그 숫자를 셈하기 어려웠는데 들어있는 이들 모두 손에 예리한 날붙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칼을 쥔 사내들은 모두 헌걸차고 날카로운 기세가 있었으니, 잡졸로 머리를 채운 것이 아닌 정예중의 정예를 추려 놓은 것임에 분명하였다.
노인은 그들을 훑어보더니 조금씩 입술이 옆으로 움직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노인은 목괴로 땅을 찍더니 흡족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너희가 보국구대문파맹의 맹주를 대하는 법도가 있구나.”
“천하에 이름 쟁쟁한 순천문주 당태세가 오셨는데 어찌 오합지졸을 꾸려 넣으리오.”
앞을 가득 메운 사내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중후한 초로의 사내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붉은 비갑에 청색 비단바지를 입고 두 손에 팔뚝길이의 소도를 쥔 남자는 멋들어지게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어울리지 않는 색으로 옷을 받쳐 입었어도 당당하고 무위가 넘치는 것이 오히려 사내의 모습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예열지(銳裂指), 네놈이였구나. 네놈이라면 쓸 만한 상대지.”
콧수염의 사내는 히죽 웃으며 까닥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예열지 변희통, 천하의 순천문주를 맞아 인사드립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수하들을 불렀사오니 문주께서는 이 점을 부디 해량하옵소서.”
당태세가 웃으며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주마. 하고 싶은 것은 다 해 보아라.”
“은혜가 하늘에 닿사오니!”
예열지 변희통의 소도가 당태세를 가리켰다. 그를 신호로 사방 기둥 옆에 모여 있던 사내들이 모두 칼을 빼들고 당태세를 겨누었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살기가 창고를 가득 채우며 노인을 압박하였다 당태세는 천천히 목괴를 앞으로 빼고 오른발을 뒤로 뻗었다.
“쳐라!”
예열지의 명령을 듣고 먼저 손이 움직인 것은 사형문이 아니라 당태세였다.
노인의 눈이 번득이더니 쥐고 있는 목귀를 창처럼 잡고는 한 발 먼저 앞으로 디딘 사형문도의 목을 번개처럼 찔렀다.
켁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사내가 칼을 떨구고 바닥으로 쓰러지는 순간, 이미 당태세의 몸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며 뒤에서 쇄도해오는 두 명의 검객에게 보이지도 않게 타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세 사람이 자리에 드러누웠지만 모여있는 이들은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실로 잡졸은 거르고 엄선했다는 사형문의 정예다웠다. 당태세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생사결에 등을 보이는 놈은 필요없다!”
늙은 협객과 그를 잡으러 온 사내들은 불필요한 기합과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고 다리를 앞으로 내밀면서 자신이 노린 곳을 향해 도와 목괴를 내지를 뿐이었다.
쇠와 나무가 부딪히고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간간히 울리는 신음이 들릴 뿐, 창고 안은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이 넘쳤지만 그에 비해 소음은 적막할 정도였다.
당태세는 사람의 벽에 둘러싸인 채 사방에서 들어오는 날붙이가 그의 목숨을 위협하였지만 그런 것에는 구애받지 않겠다는 듯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웅크렸다 일어서며 전후좌우로 넓은 창고를 움직이며 목괴를 휘둘렀다.
사내의 몸이 한번 움직이고 팔이 뻗을 때마다 짧은 소리와 함께 사내들이 하나둘 씩 쓰러졌다.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예열지 변희통은 혀를 끌끌 차며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아무리 늙었더라도 용을 낚시로 잡을 수는 없는 것인가.”
당태세의 목괴가 앞으로 나가며 사내의 가슴을 강타한 뒤 그를 방패삼아 몸을 바싹 붙였다. 뒤에서 바람을 찢고 칼날이 들어왔다.
당태세는 몸을 돌리며 방패삼았던 사내를 칼날에 내던지고 목괴를 거꾸로 잡은 채 앞으로 당기자 칼을 내밀었던 사내가 목에 괴의 손잡이가 걸린 채 앞으로 비틀대며 쏟아졌다. 중심을 잃은 사내의 가슴으로 당태세의 무릎이 올라왔다.
두 사람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던 옆의 도수가 칼을 휘둘려 당태세의 목을 노리는 순간, 당태세의 목괴가 종아리를 걸어 당기자 도수는 칼을 내팽개친 채 뒤로 나가떨어졌고, 쓰러진 사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목괴가 날아와 사내의 머리를 강타했다.
순간, 당태세의 몸이 땅을 박차더니 모여있는 도수들의 사이로 몸을 밀어넣고 창을 휘두르듯 목괴로 회오리를 만들며 사내들의 진열을 부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칼이 허공으로 날고 새된 비명이 튀어나오는데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 처박혔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당태세는 밀려오는 이들을 쓰러트리는 중이었다.
이미 창고 안에 모인 사내중 사분의 일은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것 같았다. 변희통은 이를 부드득 갈더니 옆에 있는 사내를 불러다가 빠르게 속삭였다.
“동문 청양루로 달려가서 편광성을 불러와라. 사태가 긴박하다.”
“존명!”
명을 받은 도수가 창고의 문을 향해 달려나가자 예열지는 자신의 쌍소도를 부여잡고 당태세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내의 눈썹이 가운데로 몰렸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입구 쪽에서 또 다른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더니 입구를 막고 있던 사내들의 진형이 뭉개지는 것이 예열지의 눈에 들어왔다.
눈이 휘둥그레진 예열지가 창고의 입구를 바라보는데, 그 곳에는 검은 그림자 하나가 안모도를 휘두르며 사형문의 도수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사내의 도법은 베고 막고 찌르는 투박한 초식이 전부였지만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형문의 도수중 그 단순한 쾌도를 막아내는 이가 없었다.
“원군이냐?”
시나브로 중군과 후위가 같이 무너지자 창고 안에 있던 사내들은 모두 조금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늙은 귀신이 가운데서 사람들을 잡아먹고 뒤에서는 젊은 괴물이 사람들을 칼로 쑤시며 조금씩 안으로 들어오는데, 입구를 제외한 다른 곳은 벽으로 막혀 나갈 곳이 없었다.
어느 순간, 창고 안은 시끌벅적 두런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하는데, 당태세의 검결이 시작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이런 망할! 저 잡놈은 누구냐!”
예열지 변희통은 이를 악물었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가는 사형문의 고수들을 보며 그는 머릿속이 제멋대로 엉키고 있었다.
아무리 초절한 무공의 당태세라 하더라도 무림소졸이 아닌 사형문의 고수들을 이렇게 패도적으로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지금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짓밟는 당태세의 모습은 그야말로 굴 밖으로 튀어나온 성난 범이었고, 그를 앞에서 제어할 수 있는 위인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뒤쪽에서는 남은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내몰며 시살하는 검호가 있었다. 이건 기세의 문제였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구나!”
변희통은 탄식했다. 사람들로 둘러싸서 맹수 하나를 잡으려는 계획이 어느 새 바뀌어 초절고수 두 명이 창고 안으로 사람들을 밀어넣고 학살하는 광경으로 변해 있었다.
사내는 두 자루의 소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예열지 변희통이 사람들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를 내었다.
“모두 내 뒤로 물러나라!”
사내가 땅을 박차고 당태세를 향해 튀어나갔다.
순식간에 당태세의 얼굴이 커지며 사내의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두 자루의 소도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늙은 당태세의 얼굴을 베어 들어갔다. 순간 당태세의 몸이 옆으로 빠지며 목괴가 위에서 아래로 벼락이 떨어지듯 내려왔다.
변희통의 소도가 엇갈리며 떨어지는 목괴를 막아내었다. 순간 두 팔에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고, 그 충격은 허리를 타고 뒷발꿈치까지 타고 내려오며 전신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나무로 만든 목괴를 막아내었는데 백근 철괴가 위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단 일 합에 변희통은 여전히 당태세의 무공과 자신의 무공은 천양지차라는 것을 깨달았다.
십칠 년 전에 막을 수 없었던 위인을 십칠 년이 지난 다음에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게 패착이었다.
“이대로는 못 간다!”
변희통이 이를 악물고 몸을 돌리며 소도를 번개처럼 회전시켰다.
사내의 펄럭이는 소매가 바람을 일으키고 바람 사이로 칼날이 돌아오며 당태세의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예열(銳裂)의 참격이 사방에서 파고들자 당태세의 눈이 가늘어지며 목괴의 가운데를 잡더니 소도와 단괴를 분리시켰다.
예열지와 귀린갈의 두 손이 맞부딪히며 상대의 기경팔맥을 부수고 찢기 위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서로를 향해 움직였다.
예열지의 소도는 잔상을 만들며 당태세의 목과 어깨와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가는데 당태세는 소도와 단괴를 들어 소도를 막고 몸을 비틀면서 예열지의 또 다른 소도를 피하였다. 당태세는 눈살을 찌푸렸다.
예열지의 소도는 예전에도 빨랐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이 더 빠른 것 같았다. 몇 초는 당태세조차 눈으로 확인하고 피하기 힘들 지경의 쾌도였다. 순식간에 예열지의 소도가 들어오며 당태세의 옷소매를 소리없이 가르며 뒤로 빠져나갔다.
당태세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단괴와 소도를 가슴 앞으로 모았다. 변희통의 소도가 다시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자 당태세는 가슴을 노리는 예열지의 소도를 두 팔로 막아내었다. 그와 함께 목을 향해 들어오는 변희통의 소도는 머리를 슬쩍슬쩍 돌리며 칼날을 털끝의 차이로 피하기 시작했다.
당태세의 두 다리는 땅에 뿌리박힌 듯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었고 예열지는 눈을 홉뜬 채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칼날을 보이지도 않게 뿌려대는 중이었다.
하지만 보이지도 않게 들어오는 칼날 중 하나도 당태세의 몸에 닿지 않았으니, 실로 노인의 눈은 예열지의 소도를 하나하나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당태세의 가슴에 모여있던 단괴가 번개처럼 앞으로 뻗으며 들어오는 예열지의 소도를 위로 올리더니 그대로 앞으로 뻗었다. 퍽 소리와 함께 주춤대며 뒤로 멀어진 것은 다름 아닌 예열지 변희통이었다.
사내는 오른쪽 가슴을 감싸 쥔 채 당태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느새 예열지의 얼굴은 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나이는 못 속이는 게지. 그 나이에 쾌도를 몇 번이나 출수한 게냐.”
“귀린갈…그대는…나이를…안…먹는가…대단하오….”
“왜 나라고 나이를 안 먹겠느냐. 하루하루가 버겁거늘.”
헐떡이는 숨을 내쉬며 예열지는 비틀비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사내의 눈 밑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예열지는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다시 아래로 밀어넣으며 이를 악물더니 당태세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사내의 두 손이 열십자로 엇갈려 예를 표하더니 그대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오며 당태세의 목과 가슴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하지만 당태세는 우측 발을 축으로 삼아 가볍게 뒤로 몸을 젖히며 들어오는 소도를 단괴로 막아내고 사내의 겨드랑이를 향해 소도를 찔러 넣었다. 두 사람이 엇갈린 순간 오간 공방은 채 눈으로 좇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열지 변희통은 앞으로 몇 걸음 더 달려 나가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탄식을 내쉬고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당태세는 잇새로 숨을 몰아쉬며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이미 종리세리에 의해 창고 끝까지 밀려나간 사형문의 도수들은 이제 전의를 상실한 뒤였다.
“모두 칼을 내려놓아라.”
당태세의 말이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칼을 잡은 시절을 그리워할지언정 다시는 칼을 잡지 않겠다 맹세할 자는 앞으로 나와라.”
당태세의 말이 창고 안에 울려 퍼졌지만 앞으로 몰린 사내들 중 누구 하나 칼을 내려놓는 이는 없었다. 당태세는 그들을 보면서 눈에 주름을 잡고 다시 말을 이었다.
“칼을 내려놓을 자 없느냐.”
당태세는 그들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말없이 죽어 넘어간 예열지의 시신이 앞에 보였다.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단괴와 소도를 들었다. 종리세리가 슬쩍 당태세를 보더니 안모도를 바로 세웠다.
당태세의 입에서 짧은 욕이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한 식경 뒤, 당태세와 종리세리는 조용히 창고 밖을 빠져나왔다. 두 사내는 말없이 창고 건물을 지나 동문을 향하였다. 종리세리가 땅을 바라보며 굳은 얼굴로 목괴를 짚고 걷는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시오?”
“괜찮네.”
“아직 수많은 적들이 남아 있소. 체력을 배분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소.”
당태세는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길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갔고, 종리세리는 조용히 노인을 지켜보며 그 뒤를 따랐다. 동문 앞의 주루, 청양루의 높은 처마가 저 멀리 길 옆으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