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사천 성도 (2)
살수 둘을 끌고 온 살수들의 두령은 끝이 갈라진 안령도를 제법 매섭게 썼다.
사내는 들어오는 당태세의 목괴를 칼질 한 번에 걷어 올리며 그대로 몸을 날려 당태세의 목을 일도양단하겠다는 기세로 달려들었다. 꽤 호쾌한 칼질에 괜찮은 신법이었다.
하지만 당태세는 뒤로 뺀 오른발에 힘을 주고 슬쩍 몸을 틀어 왼발을 한 발 더 빼더니만 목괴를 그대로 휘감아 도를 밀어내며 팔걸이 부분으로 도수의 목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젊은 도수의 자세가 무너지며 몸이 앞으로 쏟아지는데, 사내를 기다리고 있던 당태세의 오른 주먹이 가볍게 위로 올라가며 턱을 후려쳤다. 정확하게 턱을 얻어맞은 사내는 팔이 풀리며 그 자리에서 무릎이 꺾였다.
이미 안령도는 저 멀리 굴러가버린 뒤였고 멍하니 노인을 올려다보는 도수의 머리 위로 목괴가 바람을 가르며 떨어졌다. 뒤에 엉덩방아를 찧고 앉아있던 젊은 객잔주인은 숨도 못 쉬고 이 광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유독중이냐 마길이냐?”
이미 눈이 풀린 채 바닥에 머리를 누이고 코와 입에서 피를 쏟고 있던 살수의 우두머리는 꿈속에 나온 신선을 바라보듯 멍하니 당태세를 바라보더니만 피를 머금은 입을 천천히 벌렸다.
“네 놈은……우리…사형문이…잡을 것이다. 이미 용모파기는 모두 뿌려졌으니….”
“유독중이구나.”
당태세의 중얼대는 소리를 듣던 살수의 우두머리는 피를 머금은 입술을 찡그리더니 당태세를 보려노며 이를 드러내었다.
“노괴야. 이미 우리 사형문이 너 하나를 추적하러 성도를 다 뒤지고 있다…천하 어디에도 네가 숨을 곳은 없으니……네놈은 우리 사형문에 둘러싸여 사냥당할…것이다.”
“쥐새끼 백 마리가 모여서 범 하나를 잡겠다고?”
쓰러진 도수를 바라보며 당태세가 소름끼치게 웃었다. 노인은 목괴를 가볍게 들더니만 그대로 쓰러진 사내의 머리를 향해 한 번 더 내리쳤다.
더 이상 사내에게서 숨소리도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를 바라보고 있던 젊은 객잔주인은 이제 혼절 직전이었다.
작은 객잔 안은 시신으로 가득차고 스멀스멀 혈향이 객잔 안을 감도는데 당태세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 객잔 주인의 옆에 있던 식탁에 앉아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행마(行馬)가 빠르구나.”
당태세는 슬쩍 기감을 높여 사방을 조망했다.
아직까지 죽은 세 명의 살수 말고는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적확하게 당태세를 노리고 온 것이라기보다는 용모가 비슷한 이들을 모두 추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터였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겠지.”
지금 습격한 살수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면 포위망은 조금씩 좁혀질 것이 분명했다. 수십 명이 몰려온들 그리 겁나는 것이 없는 당태세였지만 그리 된다면 분명 유독중을 치는 일은 점점 지난해질 것이었다.’
“정보가 부족해.”
노인은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는 유독중이 개간한다는 사형문 본거지가 대충 어느 쪽에 있다는 정도와 객잔 바로 앞에 있는 포일연 정도였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섣부르게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노인이 욕을 하자 이제 조금 진정되었던 객잔주인이 다시 화들짝 놀라며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아룡이 없는 자리가 뼈저리게 아프게 느껴졌다.
객잔을 잡고 은밀하게 거처를 정하는 것은 당태세가 아룡을 따라갈 수가 없었고,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취합하며 갖다 주는 능력 역시 아룡만한 이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쓸데없이 사형문 안에 밀어넣는 세작질을 시킬 바엔 바깥에서 같이 파고들 틈을 찾는 게 더 편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룡이 하고 있는 일은 그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었으니, 만약 아룡이 그 안에서 제대로 사형문을 조사해주기만 하면 금세 사형문의 안팎을 헤집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지금 닥친 일은 온전히 당태세의 힘으로 풀어야 하였다. 새삼스레 당태세는 그동안 아룡에게 의지한 바가 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여정의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은 홀로 모든 것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멍하니 있을 수는 없지.”
“네?”
객잔주인은 당태세가 자신에게 말을 건 줄 알고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당태세를 바라보는데, 객잔주인을 바라보던 당태세는 슬쩍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객잔주인은 이제 입을 벌린 채 숨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젊은 사내의 두 눈에서 눈물이 저절로 주르르 흘러내리는데, 당태세는 그 모습을 보더니 품 안에서 꺼낸 쇄은(碎銀)을 주인 발 앞에 툭 하니 던져주었다. 눈물을 흘리던 눈동자가 천천히 당태세에게서 쇄은을 향해 내려갔다.
“저 이들, 아는 사람들인가?”
객잔주인은 고개를 갸웃대더니만 슬슬 도리질을 쳤다.
“안면은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 말을 걸어본 적은 없습니다. 칼을 찬 건 처음 보고요.”
“누항(陋巷)에서 본 적은 있다 이거구먼. 사형문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가?”
“사형문은 모르지만 사형표국은 압니다. 하지만 저들이 그곳 사람들이라는 건 몰랐습니다.”
유독중은 사형문이라는 이름을 성도 안에서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문도들도 대놓고 노출시키지 않는 듯 보였다.
당태세는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를 드러내지 않는 독사가 더 위험한 법이다. 당태세는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고민하더니 다시 객잔주인을 돌아보았다.
“시체 세 구. 눈에 안 띄게 치울 수 있겠소?”
“네? 네! 네! 물론입니다!”
“청소도 다시 해놓으시오.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봤다는 소리는 하지 마시오. 말했다한들 좋은 일도 없으려니와….”
“알겠습니다!”
쇄은을 받은 주인의 반응은 명쾌하기 그지없었다.
당태세는 빠르게 자신이 행장을 정리했다. 중요한 물건과 필요한 것만 따로 챙겨 전대를 만들어 허리에 동여매었다. 어차피 성도가 종착지였다. 더 많은 짐은 필요 없었다.
당태세는 짐을 매고 목괴를 짚은 채 방에서 나오며 주인을 돌아보았다.
“내 남은 짐은 태워버리시오.”
“알겠습니다!”
죽은 살수의 죽립을 손에 쥔 당태세는 재빠르게 골목 안의 객잔에서 빠져나왔다. 죽립을 눌러쓴 노인은 회색의 골목에 발을 들여놓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살수를 달랑 셋만 보냈을 리가 없었다. 사냥감을 몰아낼 때는 최소한 두 갈래 이상으로 사냥개를 풀어놓는 법이었다.
당태세가 오감을 집중하며 골목을 따라 몸을 움직이는 순간, 맞은편의 뚫려있던 골목 어귀에서 칼을 든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팔기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대낮 성도의 골목길에서 칼을 빼 들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었다.
사형문이 성도 내에서 가진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지경이었다.
세 사람의 살수가 당태세가 든 목괴를 쳐다보더니 바로 칼을 뻗어 당태세를 가리켰다. 당태세는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살수들은 구령도, 소리도 지르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당태세를 향해 달려왔다. 앞장선 두 사람의 칼이 칼집에서 나오며 당태세를 향했다. 당태세 역시 골목길을 따라 재빠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다가오는 살수들을 바라보았다.
순간 뒷걸음칠 치고 있는 등 뒤의 방향에서 서늘한 한기가 당태세를 감싸기 시작했다.
두 갈래, 세 갈래? 아니면 그 보다 많은 사냥개가 있는가?
순간, 앞으로 다가온 두 명의 살수가 동시에 칼을 내리쳤다. 후퇴하던 당태세의 발이 멎으며 목괴를 앞으로 내밀어 두 자루의 칼을 동시에 막았다.
당태세의 목괴가 상하로 움직이며 두 자루의 칼날을 위 아래로 각각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당태세의 몸이 앞으로 파고들며 목괴를 반대로 돌리며 두 사내의 머리를 동시에 강타하였다.
두 자루 칼이 동시에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함께 살수의 두령이 칼을 뽑아들고 매섭게 당태세를 향해 칼을 찔렀다. 당태세가 목괴를 비스듬히 가슴 앞으로 가져오며 들어오는 칼날을 막는데, 골목의 뒤에서 또 다른 살수 세 명이 소리를 죽이며 뛰어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당태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당태세의 우수가 목괴를 놓더니 그대로 장이 되어 바싹 붙어 있는 살수 두령의 가슴을 번개처럼 후려치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살수의 장은 피를 토하며 벽에 붙은 채 서서히 몸이 무너지는데, 골목에서 달려온 세 명의 살수는 동료 셋이 앞에서 죽어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어보였다. 당태세의 몸이 들어오는 살수 셋을 향해 움직였다.
순식간에 세 명과 한 명의 신형이 좁은 골목 안에서 겹쳐졌다.
한 자루 칼날이 당태세의 어깨로 떨어지는 순간 당태세의 몸이 빙글 돌며 칼을 뽑아 후려칠 준비를 하던 다른 사내의 몸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살수의 이가 드러나며 당태세의 멱살을 잡았다.
그 순간, 당태세의 오른손이 살수의 오른팔을 잡고 목괴로 사내의 발을 걸며 그대로 허리를 튀겨 사내의 몸을 앞으로 튕겼다. 순식간에 장정의 몸이 노인의 손에 잡힌 채 허공으로 붕 뜨더니 건너편의 벽에 처박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사내가 처박힌 공간의 양쪽에서 두 자루의 칼이 매섭게 당태세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당태세는 목괴로 칼 하나를 받고 우장으로 들어오는 칼의 도신을 올려친 뒤 우장을 그대로 앞으로 뻗어 살수의 가슴을 그대로 쳐올렸다. 우직하는 소리와 함께 장을 맞은 가슴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당태세는 몸을 그대로 앞으로 빼며 목괴를 아래로 휘둘러 살수의 종지뼈를 매섭게 후려쳤다. 순간 짧은 신음과 함께 살수의 몸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섰고, 바람을 가른 목괴는 살수의 칼을 올려치고 그 반동으로 떨어지며 살수의 머리를 강타하였다.
짧은 박도가 쟁그랑 소리를 내며 골목길의 포석 위로 떨어져 굴렀다.
당태세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노인은 벽에 거꾸로 처박힌 채 가냘픈 신음을 흘리고 있는 살수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눈이 풀린 채로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너를 빼고 모두 죽었다.”
살수의 눈이 천천히 당태세를 향하였다.
“사형문이 보냈느냐.”
“그렇다.”
“너희들은 내 용모를 아느냐?”
“……사형문…모두가…알고…있지….”
살수는 사형문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이라도 있는지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태세는 눈살을 찌푸렸다. 경각의 순간에 이렇게 여유롭다는 것은 이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는 것이었다. 사형문은 다른 것은 몰라도 문파에 대한 충심은 대단한 족속들이었다.
바꿔 말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당태세를 치겠다는 놈들이 지금 성도에 가득 깔렸다는 말이었다.
당태세는 차가운 시선으로 쓰러진 살수를 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내 용모를 어디서 파악했는가.”
“파영만월…께서 용모파기를 보내셨다.”
“뭐?”
“…본인이…죽음으로 임무를…….”
“빌어먹을 놈. 어쩐지.”
순간 당태세의 목괴가 살수의 가슴팍을 그대로 찍어버리며 몸을 돌렸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어두운 골목길에 쓰러져 있는 여섯 명의 시신을 노려보았다. 당태세가 이를 부드득 갈더니만 혼잣말을 내뱉었다.
“실수했어.”
노인의 찌푸린 눈이 길게 이어져 어둠이 집어삼킨 골목길의 끝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