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82화 (182/226)

182.  촉도난 (4)

당태세와 아룡의 행보는 점점 속도가 붙고 있었다. 그렇다고 촉으로 들어가는 행보가 더 편해지거나 지세가 부드러워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 불린 검각을 지나 험하기는 매일반인 검남도를 지나며 사천에 진입하였는데 그들이 쉽게 험난한 길을 뚫고 갈 수 있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관(關)을 지키던 청의 팔기들이 그들을 쉴 새 없이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계수하여 내려 보내고 쉴 새 없이 잔도를 정비하고 험한 곳마다 번을 세워 사람들의 안전을 도모하였으니, 이는 결코 한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먼 사천까지 원정 온 만주족을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어쨌건 그 덕으로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알음알음 관(官)의 도움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검남도를 지나 부성에 이른 뒤부터는 다시 평탄한 길로 들어서며 수레바퀴의 도움을 빌 수 있었다.

당태세는 흔들리는 수레에 몸을 맡기고 밖으로 보이는 풍광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천은 사방 천하가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지만 그 크기가 관중과 한중을 합친 것보다 큰 드넓기 그지없는 평야였다.

기름진 옥토에 사람이 많으니 실로 영웅이 몸을 웅크리고 대업을 도모하기에 알맞은 땅일 수밖에 없었다. 한고조 유방이 그러했고 소열제 유비 또한 그 뜻을 따라 천하를 세발가진 솥으로 나누고 조맹덕과 자웅을 겨룰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태세는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사천의 풍경을 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천하 사방에 광활한 녹지가 펼쳐져 있는데 그 넓은 들에 사람 하나 볼 수가 없었다.

분명 당태세가 젊었던 시절 이곳은 전답이 광활하게 펼쳐져 여름에는 논에 잠긴 푸른 하늘이 발아래 비쳐 보였고 가을에는 누런 금빛이 눈길 닿는 모든 곳에 펼쳐져 있으며 대풍가를 부르는 농부들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장려한 풍광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헌데 지금은 벼와 조 대신 알 수 없는 풀이 자라나 초원을 이루고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밭과 논의 둑이 허물어져 들짐승의 발이 닿는 폐허가 되어있는데, 그 풍경이 한 시진을 가고 두 시진을 가도 바뀌지 않고 있었다.

당태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알던 세상이 어디론가 사라졌구나.”

당태세는 자신의 옆에서 신기한 듯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아룡을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사천에 발을 디딘 아룡의 눈에는 이것이 사천의 본 모습으로 보일 터였다.

저 아이의 눈에 비친 것은 예전의 영화가 아닌 청록의 폐허일진대, 그 전에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 존재한다 말할지라도 그것을 알아들을 지언정 체감할 수는 없을 터였다.

“옛 풍광을 알 수 없는데 옛 나라의 흥성을 어찌 알겠는가.”

당태세의 독백은 한숨이 되어 흘러나왔다.

어쩌면 자신이 지금 걷고 있는 복수행은 저 엉망이 된 드넓은 초지를 다시 홀로 갈아엎어 전답을 만들어 천하를 금빛으로 만들겠다는 허황한 짓인지도 모를 터였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고 한다 한들 봐 주는 이 없으며, 끝까지 성공할지 확언할 수도 없는 과업이었다.

결국 성공한다 해도 그 일은 누가 어떻게 평할지 알 도리조차 없었다. 노인은 허공을 보며 멍하니 수레의 흔들림에 몸을 내맡기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노인의 눈은 다시 가늘어지며 초점이 맞춰지더니만 이윽고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불쑥 고개를 처들더니 무인지경의 평원을 노려보았다.

노인은 평원을 바라보며 다시 쉰 목소리를 거칠게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그 풍경을 보았고 여기 있던 사람들을 알고 있다.”

노인은 이를 악물고 조용히 으르렁대며 주먹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내가 본 것과 내가 알던 것이 있음인데 내 어찌 그것들을 모르는 척 살 수 있으리.”

***

그나마 사람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은 사천의 성도(省都)인 성도(成都)에 가까워지면서부터였다. 빌려 탄 수레 위에 있던 이들이 서로 어깨를 두들기고 앞을 가리키며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당태세에게도 익히 눈에 익은 성도의 성벽이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성 위에는 팔기의 깃발이 꽂혀 있고 넓은 도로 위에는 팔기로 보이는 청나라 군사와 녹영의 군인들이 수시로 오가며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성벽 여기저기는 검은색과 하얀색의 벽돌들이 서로 교차하여 강건한 형세를 만방에 떨치는데, 당태세가 자세히 보니 하얀색의 벽돌은 무너진 성벽을 개수하여 다시 쌓아올린 부분이었다.

실로 예전 장헌충의 군사와 다시 토벌하러 들어온 청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때였다. 성벽을 지나치자마자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사내들이 들어오는 수레와 인파를 보면서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사형표국에서 온 이들은 오른쪽 대로를 따라 남로의 상영루로 가시오!”

“상영루 앞으로 가시오!”

“상영루요!”

사내들은 사형표국의 사내들인 듯싶었다.

아룡과 당태세가 눈을 마주보는데, 말을 들은 사내들 여남은 명이 순간 수레에서 내려 자기의 짐을 들고 오른쪽으로 꺾어지니, 한 눈에 보더라도 수십 수백의 장정들이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당태세는 아룡을 보며 빠르게 속삭였다.

“너도 저곳으로 가거라. 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세세하게 알아두도록 하여라.”

“숙부님, 이렇게 헤어지는 겁니까? 헤어지면 어디서 본단 말입니까?”

“공연히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내가 너를 찾아갈 것이다. 네가 나를 찾으면 아니된다.”

“하지만 숙부님, 제가 없으면 누가 숙부님 짐을 나르고 객잔을 잡고 식사를 나른단 말입니까?”

아룡은 금세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당태세를 바라보는데, 아무리 봐도 거짓으로 꾸며대는 얼굴이 아니라 진짜로 설움이 북받치는 표정이었다.

당태세는 전혀 의외의 곳에서 복병을 만난 듯 슬쩍 놀란 표정을 짓더니만 오랜만에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아룡의 어깨를 꽉 잡았다.

“무두리. 걱정 말아라! 인생이란 원래 험난하니 무릇 장부만이 눈물을 참을 수 있느니라. 너는 내 조카가 아니냐? 마음을 굳게 먹어라! 조만간 볼 것이다!”

“강녕하시옵소서!”

“금방 볼 것이라니까 무슨 소리야!”

아룡은 당태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울음을 참는 아이 같은 표정이 되어 남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멀어져가는 아룡의 모습을 보더니 자신도 수레에서 내릴 채비를 하였다.

노인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목괴를 거꾸로 잡아 봇짐을 매단 뒤 수레에서 훌쩍 뛰어내려 저벅저벅 두 발로 걸으며 성도 시내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당태세가 가는 모습을 본다면 중년의 사내가 홀로 여행을 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었다.

당태세는 힐끗 주변의 성시를 살펴보았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나와 물건을 사고 거래하는 모습은 다른 성시의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기묘하기 그지없었다.

올라가 있는 성곽과 풍광의 모습은 분명 당태세가 전부터 알던 사천 성도의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남쪽 호광의 방언이거나 한중, 관중의 방언을 쓰고 있었다.

사천말을 쓰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으니 도시 전체가 이방인의 구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곳이니 이보다 숨기 좋은 곳은 없겠지.”

노인은 쓴 웃음을 지으며 성도의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성읍은 크기에 비해 떠들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무관심했고, 아는 동류들끼리 자기들의 방언으로 말을 나눴다.

수건을 둘러쓴 노인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별다른 관심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당태세는 부지런히 시가를 지나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노인의 입에서 다시 중얼대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아룡도 내 모습을 한 눈에 알아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인데.”

당태세의 발걸음은 다름 아닌 아룡이 뛰어간 남로를 향하고 있었다.

노인은 사람들이 모이는 상영루의 앞으로 가서 그들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요량이었다.

당태세가 상영루의 앞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는 수많은 장정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그들을 실어갈 마차와 수레들이 또한 넓은 광장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으니, 마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디에서 전란이라도 일어난 듯싶었다.

명부를 쥔 이들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빠르게 수레에 실었고, 인원이 가득 찬 수레는 재빠르게 광장을 빠져나가 서쪽을 향하였다. 실로 그 처리와 빠르기가 톱니바퀴가 맞닿아 돌아가는 것 같았다.

당태세는 슬쩍 이마를 문지르면서도 유독중의 일 처리하는 방식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보시오. 저들이 누구기에 저렇게 많이 모여있는 거요? 그리고 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당태세는 슬쩍 상영루 옆에 있는 작은 떡집에 들어가 떡을 주문하며 떡집 아낙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 좋아하게 생긴 아낙네는 손님이 말을 걸자 반색을 하며 걸걸한 호북사투리로 말을 시작하는데 나오는 구변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진종일 수다를 떨고 싶어 몸이 근질댄 모양이었다.

“손님 이곳에 초행이시오? 하긴 요즘 천하사방의 사람들이 사천으로 몰리는 게 유행이지. 사실 나도 이곳에 온 지 채 오년이 안 된단 말이지요. 호호. 하지만 저들이 누군지는 대충 알거든요. 사실 제가 오기 전에도 저곳에서 사람들을 모아가곤 했었어요. 물론 지금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숫자였지만 말이죠.”

“오년 전에도 사람이 저리 모여 있었소? 대단하구먼. 대체 저게 뭐란 말이오?”

“어디서 오셨어요? 혹시 검각을 타고 넘어오셨소? 그럼 그 허허벌판을 보셨겠군요?”

“봤지요.”

떡집주인은 손뼉을 짝 치면서 사내들을 가리켰다.

“이 사천 성도 어름에 그렇게 기름지면서도 못 쓰는 땅이 허다하니 그것을 개간하러 가는 것이에. 벌써 꽤 많이 개간했다고 하더라고요. 장정들이 부족하다는 소리는 매번 들어요. 저렇게 사람들이 가도 모자라니…….

“거 규모가 크구려. 그렇다면 이건 사천총독부에서 관할을 하는 일이겠구려?”

떡집주인이 당태세의 말을 듣더니 다시 손뼉을 짝 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요! 이게 다 말이죠! 놀라지 마시요. 다 어떤 장자(長子)가 하는 일이랍니다!”

“뭐라고? 이런 대업을 관(官)이 아니라 개인이 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 서문을 타고 조금만 나가면 뾰족한 철제지붕의 장원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사형표국이라는 곳이지요. 그곳의 문주라는 사람이 이렇게 일을 한답니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까드득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렇게 대놓고 사형문의 이름이 시중에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탓이었다.

“허, 거 대단한 위인이구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부리자면 돈도 돈이거니와 관의 눈치도 보게 될 것인데!”

“그렇지요? 그런데 관에서도 다 아는 것 같아요. 들어봐요. 그 장자가 충심(忠心)이 없으면 이런 대업을 하게 그냥 두겠어요? 기인들이 어떤 위인들인데!”

“그렇지. 하지만 그게 충심으로만 되는 일인가. 뭔가 찔러주는 것이 있겠구먼?”

당태세가 중얼대자 떡집 아낙은 씰룩 입가에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에 흩어져 있는 군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니 녹영에서도 발 벗고 나서서 이들이 사람들을 모집하고 장정들을 불러 개간하는 것을 돕는 것이겠지요. 한 오륙년 전부터 녹영이 같이 붙더니 이렇게 규모가 커진 것이랍니다.”

녹영군이 붙었다. 당태세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녹영군의 수장이나 주요 직책에 있는 이가 사형문에 매수된 것일까? 아니면 사형문이 무슨 목줄이라도 움켜쥐고 있는 것일까.

당태세가 홀로 고민하고 있자 떡집 여인은 다시 재게 입을 놀리며 사람들을 단속하는 녹영군을 가리켰다.

“관(官)에서도 보조해주는 게 있겠지요. 저기 보이는 호미와 보습이 보이세요? 저것도 다 사형문에서 장정들에게 주는 거라지요. 참 대단하지 않아요?”

그때였다. 지금까지 고개를 숙이고 날카로운 눈으로 사람들의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당태세의 눈매가 슬쩍 커지더니 사람들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작은 수레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당태세는 떡집 아낙네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를 웅얼거렸다.

“그렇구먼. 누군가 돕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풍경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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