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79화 (179/226)

179.  촉도난 (1)

“아니, 어디서 오셨기에 이렇게 세사 돌아가는 일을 까마득히 모를 수가 있단 말이오?”

관도 중턱에서 만나 어느 정도 안면을 튼 중늙은이에게 당태세가 이 광경에 대해서 슬쩍 운을 떼자 돌아온 것은 가벼운 비웃음이었다. 당태세는 슬쩍 머리를 매만지며 웃더니 자신의 다리를 슬슬 만지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거의 평생을 동리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오. 늙어서야 고질(痼疾)을 무릅쓰고 세상을 보러 다닌다지만…….”

“그래서 이상한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거구먼. 이런, 내가 결례를 하였소이다.”

이미 산골에 지나들면서 당나귀들은 팔고 두 다리로 걷게 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험한 산길에서는 목괴를 받치고 걷는 것이 두 다리로만 걷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중늙은이는 당태세에게 면구스럽다는 표정을 짓더니만 앞장서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남쪽을 향해 손을 가리켰다.

“사람이 모자라서 채우러 가는 중입니다그려.”

“사람이 모자라 채운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사천에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나라에서 그리 가 살라는 것이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당태세가 눈을 깜박거리는데, 중늙은이는 모르는 사람에게 한 수 강론이라도 하겠다는 듯 목을 가다듬더니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천 성도는 사람이 없소이다. 명이 망할 때 사천에 대서국(大西國)을 세운 장헌충은 아실 거 아니오.”

“장헌충, 그 놈을 모를 리가 있겠소.”

당태세의 이가 저절로 부드득 갈렸다. 이자성과 함께 서쪽에서 난을 일으킨 국적 아니던가. 중늙은이는 당태세가 이를 가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뭔가 맘에 맞는 이를 찾았다는 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그 놈이 사천에 도읍을 열면서 명의 관리와 그 수하들을 다 죽였지 않소? 그 때 죽인 사람이 기만에 육박한다고 하더이다. 자기가 왕이 되려니 그랬던 거겠지. 하여간 그 자가 일차적으로 사천의 관민을 싹 쓸었는데…그 다음에 우리 청(淸)에서 그놈을 토벌하러 들어가서 이번에는 대서국 사람들이 된 촉(사천)나라 사람들을 진멸하니….”

중늙은이는 말을 하다가 슬쩍 주변의 사람들 눈치를 보았다. 당태세도 노인의 말을 듣다가 동시에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당태세는 왜 중늙은이가 말을 멈췄는지 십분 알 수 있었다. 당태세가 눈치 빠르게 말을 받았다.

“그래서 사천 사람들 씨가 말랐단 말인가?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어서?”

“믿기지 않지만 그게 사실이라오. 그래서 사람이 없다는 거요.”

“허. 나 이거야 원…….”

“잘은 모르겠는데, 지금 도는 풍문에 의하면, 지금 파촉 성도에는 농구와 그릇까지 모두 갖춰진 멀쩡한 집이 수두룩하다는 거요! 사람만 없다지요? 사람들만 모조리 죽어 넘어가고 물산은 그대로니, 사람이 들어가서 살면 바로 살림살이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허어!”

“그러니 나 같은 농투성이, 가진 게 없는 이들이 모두 불려가는 거지요. 하긴 나라가 억지로 가라니까 다 떠밀려 오는 거긴 하지만서도…나로서는 나쁠 게 없어요. 세금도 까준다던데?”

당태세는 중늙은이의 말을 듣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 사람들이 불려가는지 알게 되었다. 결국 사민(斯民)이었다.

청나라는 무주공산이 되다시피한 파촉, 서천을 살리려고 사람들을 불러들인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된다면 사형문에서 사람들을 긁어모아 사천으로 데려가는 것이 눈에 띌 수가 없었다.

“그럼 모두 이 잔도를 타고 들어가는….”

“에이, 어떻게 이 좁아터진 잔도로 사람들이 다 들어가오. 장강을 거슬러 배로 들어오는 이들이 더 많겠지.”

당태세는 그제야 항주 동성문의 일과 사형문의 일이 어떻게 병행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항주같은 장강 지류를 타고 오는 이들은 강을 타고 사천으로 들어갈 것이고, 당태세가 가는 길을 타고 가는 섬서나 황화의 지류 사람들은 이렇게 진령을 넘어 사천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동성문에 하청을 준 것은 분명 사형문이렷다. 그 놈은 대체 그 많은 이들을 사민 사이에 섞어서 사천으로 넣은 뒤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해답은 결국 사천에 직접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었다. 당태세는 조금씩 사천에 가까워질수록 사방을 경계하는 일이 많아졌다.

파성둔괴 두경의 말에 의하면 이미 포일문과 사형문은 서로 협업을 하고 있다고 하였으니 사천에 들어서면 사방 보이는 것이 모두 적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설상가상 사형문주 유독중은 당태세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실로 사천에 들어가는 것은 호혈(虎穴)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슬슬 밤이 되니 서늘해집니다. 숙부님.”

어느 덧 무더운 여름의 기운이 시나브로 쇠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높은 산골에서 변변히 먹을 것도 없고 쉴 곳도 없는 길에 사람들만 많으니 제대로 눕거나 앉을 곳도 없었다.

그나마 진령(秦嶺)의 가운데 부분에 있는 봉현이라는 작은 분지에는 작은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곳이 진령을 오가는 사람들의 유일한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당태세와 아룡이 그곳에 도착한 것은 이미 저녁놀이 진 다음이었는데, 이미 많은 이들이 얼기설기 올린 나무판자 아래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며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워놓으니, 실로 당태세가 이 촉한으로 가는 길을 지나며 이런 광경을 보는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사람이 죽어갔으면 명을 멸망시킨 청(淸)이 사람들을 보내서 땅을 일구게 한단 말이냐.”

당태세의 독백은 서늘한 밤공기만큼이나 쓸쓸한 것이었다. 노인은 여기저기 불가로 모여드는 부나비같은 사람들을 보며 목괴를 괴고 앉아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진 게 있으면 고향을 등지겠는가? 먹고 살만 하면 친지들을 저버리겠는가? 지금 사천으로 가는 저 이들도 결국에는 자신의 나은 삶을 위해 가는 이들 아니겠는가?

당태세는 물끄러미 모닥불 앞의 사람들을 보며 감상에 젖어 가는데, 뒤에 앉아있던 아룡의 중얼댐이 없었다면 아마 당태세는 밤이 새도록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같은 자세로 앉아있었을지도 몰랐다.

“밥을 나눠주는 이가 있습니다. 숙부.”

“뭐라고?”

“김 나는 밥을 짓는 이가 있다니까요?”

아룡의 말을 들은 당태세의 눈이 돌아가는데, 순간 당태세의 눈살이 슬쩍 가늘어졌다.

일단의 사내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가지고 사방을 돌아다니는데, 그 주위에는 칼과 몽둥이를 든 사내 대여섯이 호위하며 아무나 밥을 먹으러 달려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시커먼 옷을 입은 도필리(刀筆吏)처럼 생긴 마른 사내가 붓과 종이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사형표국을 통해 온 사람은 손을 드시오.”

마른 사내의 목소리가 쨍쨍하게 당태세의 귀에 들어갔다. 여기저기에서 사내의 말을 듣고 손을 드는 장정들이 보이자, 사내는 장정들에게 다가가 붓으로 뭔가를 기록하고 증표를 떼어주더니 주먹만한 밥덩이를 하나 던져주고 이내 다른 이에게로 옮겨갔다.

당태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봉현의 사내들은 서안에서 넘어온 사형표국의 사내들을 하나하나 계수(計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과 증표를 교환하는 것으로 보아하니, 자신들이 받은 명부에 맞춰서 넘어온 이들을 조사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매사 꼼꼼한 놈이니 당연한 일이겠지.”

당태세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를 드러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당태세의 짐작으로는 이 진령을 넘어가 검각에 가기 전에 한번 더 넘어온 이들을 확인해 볼 것 같았다.

당태세는 지그시 이마를 누르며 사내들의 하는 일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꽤나 많은 이들이 손을 들었는데 준비해온 밥의 양은 얼추 그에 들어맞는 것으로 봐서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싶었다.

따듯한 밥을 받은 이들은 누가 뺏아 갈 새라 허겁지겁 입에 밥을 밀어 넣었고 여기저기에서는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당태세는 사형표국의 식량을 받은 사내들을 조용히 관찰하는 중이었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모닥불 사이로 보이던 이들은 어느새 모닥불 몇 개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밥을 먹으며 자신들만의 유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당태세가 주목하는 것은 밥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당태세는 구석에서 밥을 먹으며 짧은 기침을 하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드는 몇몇 사내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꼴을 먹고 같은 우리에서 자는 짐승들도 몸태가 다르고 성장이 다른 법이었다. 각양각처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어찌 모두 몸이 실하고 헌걸찰 수 있겠는가.

밥을 먹으면서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내도 있었고, 목이 메는지 사형문에서 준 밥을 다 먹지 못하고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는 사내도 보였다.

당태세는 그들을 뚫어지라 보다가 슬쩍 그들이 먹는 밥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아룡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당태세는 뭔가 생각이 든 것이 있는지 짧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

봉현을 아침 일찍 출발한 행렬은 이제 계곡과 계곡 사이로 가파르게 뻗어있는 산길과 잔도를 타고 진령을 넘어 사천의 경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날은 아침 저녁으로 점점 서늘해졌고, 산이슬을 머금은 바람은 살을 에듯이 추워졌다.

발 아래 천길 낭떠러지를 보며 나무를 이어 만든 불안하기 그지없는 목로(木路)를 걸어가던 사람들 중에서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들러붙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심약한 이도 속출하였다.

옛 시인들이 촉(蜀)으로 가는 길이 어렵다고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당태세는 말없이 목괴를 짚고 장정들도 발 디디기 힘들어하는 잔도를 성큼성큼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노인의 눈은 늑대같이 번득이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중이었다.

순간, 당태세의 눈이 슬쩍 커지며 앞에 가는 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비틀대며 잔도 위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이 금새라도 잔도에서 벗어나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날릴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당태세는 발을 빨리 놀려 그 사내의 옆으로 다가가더니만 그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이보시게. 걷을 수 있겠는가?”

“네……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걱정없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는 말과는 달리 이미 식은땀이 흥건하니 머리에서 배어나는 중이었다. 당태세는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살피더니만 오른손을 불쑥 내밀어 사내의 허리춤을 잡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중심을 잡아줄 테니 천천히 앞으로 나가시게. 저 물굽이만 돌면 잔도가 끝날 것이니 올라가면 공간이 있을 거요. 그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세나.”

“감사합니다. 노사. 이런 곳에서….”

“어허, 앞을 똑바로 보고.”

두 사람은 천천히 잔도를 걸어서 다시 산길에 접어들자 길옆으로 벗어났다. 당태세는 길옆에 퍼져 앉아있는 사내의 손목을 잠시 잡아보더니만 눈살을 찌푸렸다. 식은땀을 연신 흘리던 사내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의자(醫子)십니까?”

“빈맥(頻脈)이 기혈이 허하구먼. 이 상태로 계속 산길을 걷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네.”

침중한 당태세의 말을 듣고 있던 마른 사내 역시 표정이 어두워지며 입맛을 다셨다. 이미 사내의 입술은 하얗게 말라 있었다.

“산을 넘기 전부터 고뿔을 잡아서 안 그래도 위태위태하였는데…이거 큰일이군요.”

“이래서는 파촉까지 들어가기 힘들겠소. 아직 채 반절도 넘어오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다시 관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소이다.”

마른 사내는 당태세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안됩니다. 이미 돈까지 내고 들어온 길입니다. 몸이야 어쨌건 나을 것이지만 지금 가지 않으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끊길 것인데 어찌 여기서 돌아간단 말입니까?”

“돈을 내고 이 길을 걷는다고?”

당태세가 놀란 표정을 짓자 마른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표국에 부탁하여 일자리를 부탁하고 들어온 길이지요. 수레를 타고 올 때까지는 멀쩡했는데 두 발로 걷기 시작하니…….”

당태세는 뭔가를 한참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허리춤의 전대에서 뭔가를 뒤지더니 마른 사내의 손에 덥석 무엇을 쥐여 주었다.

마른 사내는 노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라더니 손바닥을 펴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노사, 대체 이게 뭡니까? 이 큰 돈을 왜 제게…….”

“자네는 이대로 가다가는 잔도에서 낙상(落傷)하네. 아무리 돈이 좋기로 사람 명보다 귀할손가?”

“노사. 그, 그렇긴 합니다만 어찌 처음 보는 제게 이런…….”

“내 말을 잘 들으시게. 자네는 이 길로 돌아가게. 중간의 봉현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아는 척하지 말고 그대로 관중으로 돌아가서 병을 구완하고 이 돈으로 요양을 하란 말이네.”

마른 사내는 자신의 손바닥에 있는 쇄은을 바라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은자만은 못해도 이 정도라면 보름은 그냥 놀고먹을 수준의 돈이었다. 주먹을 움켜쥐고 한참동안 말없이 앉아있던 사내는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지 당태세를 보며 중얼거렸다.

“노사, 저는 노사의 성함도 모르는데 제가 어찌 이런 큰 돈을 받습니까요?”

“자네는 봉상현에서 기다리게나. 나도 파촉에서 일을 마치면 다시 갈 것이네.”

“그래도 되겠습니까?”

“자네 이름만 알려주게. 그리고 사천의 표국에는 내가 말을 해 주겠네. 뭔가 증표라도 있는가?”

잠시 뒤, 잔도를 힘겹게 건너 온 아룡은 산길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당태세를 만나자 한숨을 내쉬며 불평아닌 불평을 내뱉었다.

“아니, 숙부님, 그렇게 혼자 먼저 건너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안 그래도 잔도에서 어떻게 되신 게 아닌가 걱정에 걱정을 하면서 이렇게 왔습니다요!”

“미안하다. 나도 할 일이 있어서 말이다.”

당태세는 슬쩍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룡은 당태세의 표정을 보고는 적잖이 안심이 되는지 가까이 다가와서 목소리를 낮추고 말하였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신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네가 할 일이 하나 생긴 것뿐이다.”

“제가요? 또요?”

아룡이 화들짝 놀라자 당태세는 씩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두리. 잠시동안 네 이름을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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