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섬서성 서안 (5)
“쓸데없는 피를 보는 것은 금한다! 그저 승부를 내는 것으로 끝내라!”
지휘사의 말이 이미 칼을 뽑아든 여섯 명에게 제대로 들어갈 리 만무했다.
종리세리와 다섯 명의 서림각라씨 종자들은 서로의 병기를 확인한 순간 이미 거리를 좁히며 서로에게 날을 들이대었다. 지휘사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순간, 종리세리의 안모도가 번득이며 앞으로 들어가더니 아규은의 칼을 제치고는 그대로 어깨로 들이받으며 발을 걸었다. 종리세리의 표정은 눈썹 하나 꿈틀대지를 않으니 지금 그가 보여준 초식은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을 하는 듯 보였다.
한 번의 몸짓에 아규은은 그대로 몸이 떠 한 장 가까이 날아가다 돌바닥에 등부터 떨어지는데 젊은 군관은 컥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종리세리의 옆으로 두 자루 안모도가 거의 같은 속도로 날아오며 어깨를 베었다. 종리세리의 몸이 뒤로 물러서며 자리를 바꾸었다.
사내는 광장을 빙빙 돌며 자신을 잡으러 다가오는 네 명의 도수들로부터 간격을 띄었다. 우측에 있는 사내가 안모도를 비껴들고 종리세리의 앞으로 땅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종리세리는 슬쩍 뒤로 물러섰다가 재빨리 들어오는 칼날을 받아 뒤로 넘기고 손잡이로 사내의 명치를 찍어버리고는 쓰러지는 사내의 턱을 무릎으로 걷어찼다.
순식간에 짚단처럼 사내 하나가 땅바닥에 구르며 혼절하는 게 광장을 둘러싼 기인旗人들의 눈에 들어왔다.
종리세리는 이미 기절한 사내를 뛰어넘어 그를 향해 들어오는 세 명의 사내들의 가운데로 들어갔다.
안모도 네 자루가 번득이며 허공에서 맞서더니 번쩍이는 검광과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를 사방에 뿌렸다.
종리세리는 마치 세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할 듯 격렬한 기세를 가지고 가운데로 들어갔지만 이내 세 사람의 칼을 한두 번 받아내더니 바로 몸을 틀어 최우측에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종리세리의 칼이 번득이며 사내를 몰아붙이더니 순식간에 허벅지의 앞쪽에 번개처럼 앞날을 찍어 넣었다.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나오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성루 위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지휘사는 수염을 쓰다듬더니 이마에 새겨진 주름을 천천히 펴고 있었다.
종리세리는 매섭게 도를 휘두르며 일대다의 싸움에서 철칙인 일대일의 상황 하의 검투를 상정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어지간한 칼잡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기본이었지만 기본을 실전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도객은 드문 법이었다. 게다가 종리세리는 지금 살초를 사용하지 않으며 사람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지휘사의 명을 충실하게 받들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생각하며 헛되게 몸을 쓰지 않는 무장이었다. 지휘사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입맛을 다셨다.
“서림각라씨의 안목이 좁구나. 저런 인물을 내치는 게 말이 되는가?”
남은 두 명의 서림각라씨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고, 오히려 몸이 풀린 종리세리의 표정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종리세리는 보국장군에게 배운 기병도의 초식을 사용하며 두 사람을 맞서는데, 익히 두 사람도 알고 있는 서림각라 가문의 도법이었다.
두 사람이 움직이지 않자 종리세리가 먼저 움직였다.
종리세리의 칼이 섬전처럼 앞으로 뻗으며 좌측의 사내를 노리는 순간, 좌측의 사내가 뒤로 빠지며 우측의 사내가 종리세리의 칼에 맞섰다.
순간 종리세리의 뒷발이 슬쩍 반보 정도 우측으로 빠지더니 앞으로 튀어나가던 칼이 그대로 오른쪽으로 빠져나갔다. 우측에서 덤비던 사내의 눈이 휘둥그래지는데, 종리세리의 안모도가 그대로 사내의 칼을 얽어 밖으로 비틀더니 사내의 어깨를 번개처럼 찍었다.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늘어뜨리는 순간 종리세리가 칼을 거꾸로 잡으며 도배로 사내의 손목을 쳐버렸다. 칼이 손에서 빠져나가며 서림각라의 도수는 손을 붙잡고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하나 남은 서림각라의 사내는 이제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칼을 접고 항복을 하지도 못한 채 눈만 부릅뜨고 종리세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가늘게 눈을 뜬 종리세리가 칼을 사내의 목에 겨눈 채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사내는 이마에서 땀을 물같이 흘리며 이를 악물고 있는데 차마 손에 들린 칼은 위로 뻗어 올라가지 못하는 중이었다.
“칼을 든 무장이 어찌 겁을 먹는가. 그러고도 서림각라씨라 할 수 있느냐.”
종리세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림각라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닥쳐라!”
순간 서림각라씨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칼이 앞으로 뻗어나왔고 그와 함께 종리세리의 안모도가 그대로 앞으로 밀고 들어가며 사내의 손목을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번개처럼 걷어 올렸다.
청량한 종소리 같은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젊은 서림각라씨의 안모도가 하늘로 치솟았다.
칼을 놓친 서림각라씨와 광장을 메운 기인들의 시선이 모두 허공에서 빙빙 돌다가 떨어지는 안모도를 바라보았다. 종리세리의 안모도가 허공에서 낙하하는 안모도를 향해 부드럽게 올라갔다.
종리세리의 칼이 허공에서 천천히 맴을 돌자 주인 잃은 안모도는 마치 종리세리의 칼과 이어진 듯 칼날과 칼등을 타고 놀며 느린 바람개비처럼 맴을 돌다가 돌바닥 위에 사뿐히 얹혔다.
모든 이들은 혀를 빼앗기고 입을 벌린 채 종리세리의 칼놀림을 바라볼 뿐이었다.
“물러서라.”
종리세리의 짧은 말엔 거역하지 못할 힘이 있었다. 칼을 놓친 서림각라의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광장 안을 메웠던 긴장과 소음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지휘사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비틀대며 몸을 일으킨 호군교 아규은의 손에는 여전히 칼이 잡혀 있었다.
“종리 성의 한족 놈아!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아규은이 안모도를 번득이며 종리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휘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종리세리는 이를 악물고 뛰어오는 아규은을 차갑게 노려보더니 몸을 훌쩍 돌려 그를 향해 칼을 들었다.
아규은의 칼이 옆구리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바람을 가르며 종리세리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호군교의 투기와 눈매는 마치 귀신이라도 일 합에 벨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종리세리의 눈이 번득이더니 손에 들린 안모도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던 종리세리의 안모도는 들어오는 아규은의 안모도를 위로 받아치는 것과 동시에 아규은의 손목을 내리치고 그대로 선을 타고 이어져 아규은의 옆구리와 팔목과 양쪽 허벅지와 왼쪽 머리의 태양혈을 붓질하듯 타고 올라갔다.
지휘사는 자기도 모르게 성벽을 움켜쥐고 입을 벌렸지만 이내 장수는 표정을 바로 하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느새 종리세리는 자신의 안모도를 뒤집어 쥐고 있었다.
전신을 도배로 얻어맞은 호군교 아규은의 몸이 물에 젖은 종이처럼 천천히 그 자리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아규은은 눈이 뒤집힌 채 혼절한 뒤였다.
종리세리는 성루의 지휘사에게 군례(軍禮)를 갖추었다. 지휘사는 엄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종리세리는 뒤를 돌아 아직 우두커니 서 있는 네 명의 서림각라의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이제 모두 칼을 놓고 종리세리의 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종리세리의 눈에서는 이미 살기가 거두어진 뒤였다. 사내의 손에서 반짝이는 것 하나가 날아가더니 사내들의 발치 앞에 떨어졌다. 종리세리가 던진 것은 다름 아닌 대장군부의 옥패였다.
“이 종리세리, 서림각라씨를 떠나겠다. 하지만 장군의 명은 내가 거둬가마.”
서림각라의 사내들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종리세리는 기절한 채 쓰러진 아규은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호군교가 일어나면 말하라. 석별의 정으로 말을 가져간다고.”
보국장군의 총애를 받았던 한족 팔기는 무인의 걸음으로 광장을 벗어나 어두운 만성의 그늘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말고삐를 잡은 사내가 말과 함께 만성의 문으로 빠져나가는 광경은 남아있는 서안의 기인들에게 강렬한 모습으로 뇌리에 각인될 터였다.
혹자는 그것이 분수를 못 지킨 한족의 마지막이라 말할 것이었고, 또 한쪽은 천하에 좋은 장재將材를 놓친 서림각라의 무분별함이라 말해질 것이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 모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알고 있었다.
종리세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사내는 결코 만성으로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
“조금만 더 가면 남쪽 산어귀에 들어가는 입구가 나올 것이다. 이 산이 이곳 관중과 한중의 경계니라. 그 길로 들어가 산길을 며칠 걷다보면 한중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곳부터 사천입니까?”
당태세는 아룡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한중에서 다시 금우도를 타고 험한 길을 건너 검각(劍閣)을 지난 뒤에야 사천의 초입에 들어서는 게지”
당태세의 설명이 계속되자 아룡은 멍하니 앞의 산길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멍한 표정으로 다시 산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입에서 한숨 대신 말이 새어나왔다.
“사천이라니…….”
앞장서서 나귀를 타고 흐느적대며 걸어가던 아룡의 입에서 한탄인지 경탄인지 모를 소리가 나오자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왼쪽에 뻗어있는 거대한 산들을 쳐다보았다.
마치 천상의 기둥들이 떨어져 나와 땅에 박힌 듯 하늘높이 치솟은 초록색의 산맥은 병풍을 두른 듯 남쪽의 풍광을 막아버린 채 웅장한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이 산맥이야말로 한중과 관중을 갈라놓는 장애물이자 역사의 수많은 군왕들이 넘고자 노력했던 산줄기, 진령(秦嶺)이었다. 멀리는 한고조 유방이 그러했고, 그 다음으로는 무후 제갈량이 그러하였다.
천하가 한초의 자웅을 겨루고 솥발처럼 셋으로 나뉘어 천명을 따질 때마다 인간의 지략을 겨루던 길이 저 진령 위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예전 영웅들의 이야기일 뿐, 명대(明代)이후로 진령에는 관도가 뚫려 봉상현에서 봉현으로 통하는 길을 타고 사람들이 길고 두꺼운 산줄기를 통과하고 있었으니, 그 길은 예전 삼국시대에 제갈량이 뚫고자 노력했던 진창도라 불리던 그 길이었다.
“사천까지 가는 길은 험하니 나귀를 몰거나 타고 갈 때는 각별히 조심하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피곤하면 쉬어가자꾸나.”
아무리 관도가 열렸다 하더라도 촉도난蜀道難이라 불리는 천하의 험로였다.
까마득한 산길에 외로운 길로 이어진 곳도 있었고, 시퍼런 물길 옆에 난간으로 이어진 잔도가 여전히 놓여있어 자칫 한눈이라도 팔면 그대로 강물로 떨어지는 길도 숱하였다.
이미 당태세는 젊은 시절 이 길은 수차례 왕래한 바 있었지만 늘 지나갈 때마다 쉽지 않은 길이라 여기던 곳이었다.
‘사형문에서 보내는 그 많은 사람들 역시 이 길을 타고 갔을 것 아닌가. 다른 길은 험해서 그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넘어가지도 못할 터였다. 게다가 그렇게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분명 팔기의 눈에 띄었을 것인데 이상하군.’
당태세는 나귀 위에서 유독중과 사형문도들의 행방을 계속 곱씹는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태산이었다.
수많은 이들을 수레에 태워서 산 아래까지 옮긴다 하더라도 그 많은 인원들을 의심없이 진령 안으로 밀어넣는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잔도를 새로 뚫기라도 하는 것인가?’
당태세는 별별 억측을 다해가면서 관도를 타고 진창도를 향해 접근해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진령의 관도에 슬슬 접근해 갈수록 당태세는 자신이 알고 있던 기본적인 생각이 애초부터 잘못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당태세는 놀라운 눈으로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나귀를 타고 가던 아룡의 말이 당태세의 놀라움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아니 숙부님,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산길로 넘어가고 있단 말입니까?”
당태세의 눈 앞에는 진령의 관도를 타고 넘어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마치 개미떼처럼 늘어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