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76화 (176/226)

176.  섬서성 서안 (3)

사형문 본진에서의 싸움은 악전고투 끝에 겨우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당태세의 입장에서는 별반 얻은 것이 없는 힘겨운 싸움이었다.

사형문주 유독중은 종적을 찾을 수도 없었고, 동성문의 후계자 황병아 역시 이미 서안을 떠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표두 육해주와 그 부하들을 구했다는 일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태세의 입장이었고 그 뒤에 연이어 이어진 일은 서안 관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난리중의 난리였다.

육해주를 위시한 수십 수백의 사내들은 조그만 사형표국을 말 그대로 물밀듯이 쓸어버리며 서안 성도로 튀어나왔다. 그들이 간 곳은 서안 녹영군의 본거지였고 녹영군은 사방 각지에서 끌려온 사내들을 보고 화들짝 놀라 만성의 팔기들에게 사실을 고하였다.

순식간에 서안 성내는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형국이 되었다.

“원지의 백성들을 허가없이 데려오는 것도 모자라 사람을 약취하여 감금하다니 무슨 짓인가!”

팔기와 녹영군의 뜻이 손뼉 치듯 일치하는 경우도 이례적이었지만 처리하는 과정도 드물게 빠른 일이었다. 순식간에 녹영과 팔기가 대오를 이루어 사형표국과 뒤의 본채를 일시에 급습하며 남아있는 사형문도들을 순식간에 구금하였다.

하지만 이미 눈치 빠른 이들은 모두 본진을 빠져나간 뒤였고 잡혀서 먼지까지 탈탈 털린 쪽은 오히려 사형문 본문이 아닌 사형표국의 사내들이었다.

사형표국은 집기부터 수레까지 모든 것을 녹영군에게 압수당했고, 사람들은 모두 서안의 형부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뭔가 화들짝 선불처럼 일어나서 대단한 꼴을 볼 줄 알았더니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아룡은 뭔가 내심 아쉽다는 듯 당태세를 보며 혀를 끌끌 차며 만두를 입에 밀어 넣었다. 사형문에서 한바탕 난리를 펴고 멱살까지 잡혔던 아룡이었지만 의외로 여기저기 조금 긁힌 상처외에는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당태세 역시 아룡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러게 말이다. 정작 표국쪽만 쓸려가고 본채 쪽에서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 모양이구나.”

“육표두에게 들었더니 유혈낭자한 참상이 본채에서 이어졌다고 하던데…아무 말이 없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당태세는 슬쩍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아룡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서안을 본거지로 표국을 운영하면서 사형문이 얼마나 많은 돈을 녹영과 팔기에 뿌렸을 것 같으냐.”

아룡이 아 하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슬쩍 눈살을 찌푸리니, 당태세 역시 찻잔을 내려놓고 입가를 문질렀다.

“분명 알음알음 주머니에 찔러주는 푼돈이 아니라 거액이 오고 갔을 거야. 잘은 몰라도 만성의 지휘사나 녹영의 참장, 총병까지 돈이 들어갔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어찌 되겠느냐?”

“젠장맞을!”

아룡은 만두를 원수라도 되는 듯 입으로 베어 물고 북 찢어버리더니만 투덜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실로 한인漢人들의 타락과 교활함이 강건한 만주족까지 물들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만사를 돈으로 해결하며 아는 사람의 안면을 통해 대충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폐단이 이 강건성세의 대청국까지 이어 오고 있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이를 우리 청나라가 엄하게 일벌백계 하지 않는다면 폐부의 병이 되어 종당에는 시름시름 앓게 될 것이 아닙니까!”

당태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야 맞는 말이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명의 붕괴도 결국에는 윗선의 타락과 부패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던가.

“결국엔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음인가.”

“네?”

아룡이 무슨 소리냐는 듯 당태세를 돌아보자 당태세는 하늘을 보며 뭔가 한참을 생각하더니만 할 수 없다는 듯 이마를 만지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결국 성도까지 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성도에 모든 것이 모여 있다 하니…….”

“숙부님. 지금 성도라 하셨습니까? 사천의 성도 말씀이십니까?”

“왜, 겁나느냐?”

당태세의 말에 아룡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손을 내저었다. 서안의 마차에서는 겁먹은 표정이 역력하던 사내는 이제 표국에서 몇 번 드잡이질을 한 뒤에는 표정에 슬쩍 거만함까지 얹혀 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무두리, 천하사방 어디든지 다 갈 수 있습니다. 단지 사천 들어가는 길이 길고 어렵다고 들어서 하는 말이지요.”

“네 말이 맞다. 천하의 어려운 길이 촉나라 들어가는 길이지. 하지만 천하의 관문은 이제 청나라가 쥐고 있으니 어찌 가기 힘들다 하겠느냐?”

“맞는 말씀입니다. 천하가 팔기 아래 놓여 있으니 갈 테면 갈 수야 있겠지요. 그런데 꼭 사천까지 가야 하는 겁니까?”

아룡의 말은 당태세가 자신에게 늘 자문하는 말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미 그 답은 예전에 내놓은 것이었다.

십칠 년전에 이미 결론지어진 이야기였다.

원수가 살아있으면 사천이 아니라 천축이나 대월이라도 가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려고 다시 두발로 땅을 밟고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가야 하니 가야겠지.”

당태세가 말하자 아룡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룡은 당태세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숙부가 간다 하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듯싶었다.

당태세는 아룡의 변화한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안도감 같은 것을 같이 느끼는 중이었다.

“저기 보십시오. 숙부님.”

“음?”

아룡이 만두를 먹으면서 눈을 깜박이더니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당태세 역시 아룡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다 눈이 커졌다.

지금 성내 대로를 따라 터덜터덜 걸어오는 일단의 사내들은 다름 아닌 마면결 육해주와 그 부하들이었다. 사내들은 사형표국이 만성 팔기의 감찰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곳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어차피 사형표국의 인물이 아닌 갇혀있던 죄인으로 조사를 받은 것이니 금세 풀려날 일이었지만 다시 밖으로 나온 사내들의 표정은 영 밝지 않았다.

당태세와 아룡은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육해주는 다가오는 당태세를 보더니 손을 모아 공수를 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육표두. 이제 조사가 다 끝난 모양이구려.”

“덕분에 다 끝났습니다. 저희는 사형표국의 죄와는 관계없다고 여겨져서 그대로 방면되었지요.”

“참으로 잘 되었소이다. 다 끝난 것이구먼.”

“다 끝났지요. 표국의 일도 다 끝난 것이고.”

육해주의 허탈한 웃음은 이를 악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육해주는 뒤를 쳐다보다가 다시 하늘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다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늘 아래 떳떳하게 살겠다 맘먹고 오직 일에만 전력을 다하며 살았는데 결국 남은 것은 빈 몸뚱어리 밖에 없습니다. 사지야 멀쩡하니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만, 평생 하던 일이 길을 타고 말을 몰고 사람과 맞서 싸우던 것인데 이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육해주의 말에 당태세는 입을 다물고 전직 녹림도이자 표사였던 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다시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서안에서 그를 표사로 받아주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표국들이 그와 그 부하들을 다시 쓰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표행의 규례를 누구보다 충실히 이행했던 사내는 그 덕에 다시는 수레 옆에서 길을 밟지 못할 지도 몰랐다.

“이제 어디로 갈거요?”

당태세의 말에 육해주가 슬쩍 당태세를 노려보며 이를 드러내었다.

“어찌할까요? 산으로 다시 들어갈까요?”

당태세가 빤히 육해주를 쳐다보자 육해주는 피식 드러낸 이에 웃음을 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 마시오 노사. 아주 걱정이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구먼. 다시는 그런 일 없을 테니 안심하시오. 내 말했지 않습니까. 처자식이 있소. 돌투성이 땅을 가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그런 일 안 하오.”

“꼭 표행을 하고 싶으시오?”

당태세의 말에 육해주가 고개를 들고 진지하게 말을 받았다.

“하고야 싶지요. 하지만 보십시오. 일 마무리가 이렇게 되었으니 천하의 누가 우리를 써 주겠냐는 말입니다.”

“꼭 표행이 아니라도 되지 않소이까? 장원의 호법이나 위사들이 될 수도 있는 노릇 아니오?”

“그런 것은 연줄이 있어야지요. 우리 같은 놈들을 어느 장원에서 위사로 써 준단 말입니까?”

“호광 장사 동문 안쪽으로 대로를 타고 들어가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하얀 기둥 두 개가 받치고 서 있는 화려한 장식을 한 대문을 가진 장원이 하나 나올 것이오. 현판은 없지만 장사의 곡물 시장에서는 꽤 유명한 집안이지.”

“네?”

뜬금없는 소리가 당태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육해주는 눈을 껌벅였다.

“그곳에 가면 장원을 한 여인이 다스리고 있을 것이오. 나이는 어리고 홀로 장원의 모든 것을 감독하는 처지일 것이외다. 원래 그 위로 태산 같은 오라비 둘이 있었고, 천하호걸이던 어머니가 있었으나, 세상의 파랑波浪에 휩싸여 모두 죽고 혈혈단신 남은 여인이오.”

“지금 무슨 말씀이신지…….”

“그곳에 가서 그 여인을 도우시오. 절름발이 당태세가 보냈다고 말하면 알 것이외다. 나는 호부인을 끝까지 돕지 못하고 천하를 맴돌지만…….”

당태세가 육해주의 얼굴을 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 뜻을 받고 평생 모시겠다고 말하시구려. 그리하면 그곳에서 중하게 마면걸 당신과 당신의 수하들을 귀하게 쓸 것이외다.”

육해주는 멍하니 당태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마치 꿈속에서 신령을 만나면 저런 표정을 지을 것 같았다.

한참동안 눈을 깜박이며 서 있던 육해주는 정신이 드는지 머리를 흔들고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험상궂은 사내의 죽어있던 눈은 어느새 사라졌던 광채가 다시 번득이고 있었다.

“노사, 아니, 당대인! 저희가 장사로 간다 한들 증표가 없으면 뭐라 말하겠습니까?”

“소상강 아래에서 나와 그 여인은 백발노인과 장부 같은 숙녀의 참관 아래 눈물로 서로 헤어졌소. 그 광경을 말하시구려.”

하지만 육해주는 당태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증표는 있어야 합니다. 원래 사람을 쓰고 넘길 때는 추천한 사람의 보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을 사용하는 이들이 안심을 하지 않겠습니까?”

“자네 정말 대단히 깐깐하구먼. 표사가 아니라 전장에서 일했으면 천하의 거상이 되었을 것이네.”

당태세가 어이없다는 듯 육해주를 바라보더니만 할 수 없다는 듯 주섬주섬 자신의 낡은 신발을 벗었다.

아룡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데 당태세는 자신의 신발 두 개를 육해주에게 주며 겸연쩍은 듯 입맛을 다셨다.

“다른 건 몰라도 장사를 떠날 때 지니고 있던 물건 중 남아있는 것은 오직 그 물건뿐이네. 소저가 내 신발을 기억할지는 모르지만 내 헤진 신발을 본 기억은 남아 있겠지. 미안하네만 이것으로 증표를 갈음하세나.”

육해주는 겉옷을 벗더니 당태세가 벗은 신을 곱게 그 안에 넣고 보자기처럼 옷을 묶었다. 사내는 당태세를 바라보더니 풀썩 무릎을 꿇고 깊숙하게 절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보던 뒤의 사내들 역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니, 지나가던 서안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몰라 눈을 크게 뜨고 당태세와 육해주를 바라보았다.

“당대인, 감사합니다! 어찌 이 은혜를 갚으리이까?”

“나 역시 표행중에 그대에게 빚을 졌지 않소. 그대와 그대의 식구들이 평안하기만을 바랄 뿐이오.”

“대인! 천하에 수많은 기연이 있고, 표사를 하면서 많은 일을 보았지만 설마 제게 이런 일이 올 것이라 생각해 본 적 없었습니다! 당대인! 대인은 실로 하늘이 제게 내려 보내신 귀인이십니다!”

“어서 가시구려. 장사는 이곳에서 한참 먼 곳이니.”

육해주와 그 부하들이 화급하게 서안의 성문을 향해 몸을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룡은 당태세를 쳐다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태세는 맨발로 다관에 올라와 다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숙부님, 젊은 처자에게 신발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까?”

“어쩌겠느냐? 내가 지닌 게 그것뿐인 것을.”

“신을 새로 사셔야겠습니다.”

“아니다. 이미 동속에 피혁화 하나 마련해 두었다.”

“네? 언제 사셨는데요?”

“소주에 있을 때 지인이 선물한 것이 하나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그 친구가 준 모양이구나.”

아룡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당태세를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는데, 당태세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푸른 하늘을 보며 우려낸 차를 끝까지 다 마시고 슬쩍 미소까지 지은 채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오히려 몸이 단 것은 아룡이었다. 움직이려면 아직 해가 중천에 있을 때 객잔을 정리하고 서안을 떠나야 할 것이 아닌가.

“숙부님, 이제 슬슬 성을 떠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천 성도는 원지인데…….”

“그래, 네 말이 맞다. 이젠 움직여야지. 하지만…….”

“네? 또 뭔가 있습니까?”

아룡이 말에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말이다.”

당태세의 눈길은 어느새 성벽에 붙어있는 만성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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