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75화 (175/226)

175. 섬서성 서안 사형문 (4)

당태세는 파성둔괴 두경을 노려보며 오른손의 칼을 뻗어 두경의 목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사형문주 유독중은 무슨 연유로 사천 성도까지 내려간 것이냐!”

“허? 그건 또 어찌 아셨는가? 우리 문주가 거기 계시는 것까지 알고 쳐들어왔다 이건가?”

두경은 히죽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껄껄대며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문주의 심모원려는 당금천하에 제일이오! 그대같이 굳은 머리로는 생각할 수도 없으리라! 우핫핫핫하!”

두경은 커다란 덩치에 신력(神力)을 지닌 용자이었지만 상대방의 심기를 거슬려 도발하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내였다. 곰과 같은 덩치에 혓바닥은 잔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당태세는 이를 부드득 갈더니만 다시 두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냐, 그렇다면 황병아는 어찌 되었느냐? 절영자와 함께 온 동성문의 후예 말이다.”

두경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별걸 다 안다는 표정으로 히죽 코웃음을 쳤다.

“그 여식 역시 문주와 함께 성도로 갔소이다. 이미 동성문은 우리 사형문과 한 배를 타게 되었소. 그나저나 나에게 말을 계속 시켜봤자 좋을 것은 없소이다. 시간을 벌 요량인가?”

“그럴 생각은 없다. 연유를 알았으니 이제 너를 없애고 성도까지 가야하겠구나.”

“하! 으하하! 나를 없애요? 좋아! 좋다고! 하지만 성도에 간들 뾰족한 수가 있겠소?”

“뭐?”

“포일문주 마길도 우리와 생사를 같이할 것인데? 이미 포일문주의 처소가 곧 우리 사형문의 처소인 것을 모르셨소?”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두경을 바라보았다. 당태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경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까지 더듬거렸다.

“뭐, 뭐가 어째?”

당태세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두경의 눈초리가 한껏 매서워지더니 주변의 창수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되었다! 이제 한담은 접어 치울 시간이다! 얘들아! 저 늙은이가 전갈인지 메뚜긴지 한번 잡아 보아라!”

“존명!”

두경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앞에 포진한 창수들이 일제히 당태세를 향해 뛰어들었다. 당태세가 호수구를 잡아들고 들어오는 창을 걸어 당기면서 두경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 놈이 직접 오는 것은 두려우냐!”

“어찌 소 잡는 칼을 닭 잡는데 쓰겠소! 우하하하!”

“개 같은 놈!”

당태세의 눈이 번득이더니 호수구와 안령도를 연달아 움직이며 빽빽한 창날의 숲을 향해 몸을 던졌다.

노인의 오른손이 번득이더니 창날이 한꺼번에 수수깡처럼 잘라지며 허공으로 뿌려졌다. 좌수에 쥔 호수구가 창대를 걸고 젖히자 창수의 목과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경악한 창수의 목을 향해 안령도가 날아가며 피가 흩뿌려졌다. 순식간에 창림(槍林)이 벌목되며 혈엽(血葉)이 사방으로 날리는데, 창을 쥔 사람들은 아무렇게 나뒹굴며 나무로 된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뒤에 서서 이 광경을 살펴보던 두경의 표정에서 미소가 조금씩 사라지며 즐겁게 번들대던 눈이 가늘어지고 있었다.

한 다경도 지나기 전에 이미 제대로 창을 들고 있는 사내들은 멀끔히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텅 빈 공간에 서 있는 것은 붉게 물든 안령도와 호수구를 든 노인 하나뿐이었는데 노인은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고 고개를 쳐든 채 유성추의 거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와라. 파성둔괴.”

“역시 순천문주. 소싯적이나 지금이나 무위는 여전하시구려. 내가 닭이라고 한 말은 사과드리리다.”

“오냐, 대신 내가 너를 개라고 부른 말은 취소하지 않으마.”

“하하! 아직 허튼소리를 지껄일 힘은 남아있는 모양이오?”

파성둔괴 두경이 두 손을 아래로 펼치자 쿵 소리와 함께 철구 네 개가 동시에 땅에 놓였다.

두경이 슬쩍 손목을 위로 젖히고 팔을 들어 올리자 땅에 떨어져 있는 네 덩이 철구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는가 싶더니만 빙빙 각자 원을 그리며 두경의 팔뚝 언저리에서 가볍게 맴돌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손에 쥔 호수구를 버리고 안령도만을 든 채 빙빙 돌고 있는 철구를 노려보았다.

유성추는 본래 철괴와 사슬이 하나로 이루어져 시전자가 목표를 부수고 묶기 위해 투척하고 다시 거둬들이는 투사병기인지라 그 용례가 복잡하고 경지를 성취하기 지난한 물건이었다.

게다가 투척자의 손에 다시 돌아오고 뻗기를 반복해야 하는지라 유성추의 철괴는 보통 던지는 자의 주먹 크기 이상은 넘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지금 쌍유성을 구사하는 사형문의 십대제자, 파성둔괴 두경이 지닌 철퇴는 그 크기가 작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것들이었으니 그 크기와 무게는 상궤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들이었다.

그런 흉악한 물건을 양 손에 나누어 쥐고 흔들어대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대적자는 전의를 상실하기 마련이었다.

당태세의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육해주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급변하게 창백해졌다.

파성둔괴 두경의 무공을 사형문 안에서 보는 것은 실로 지난한 일이었고, 육해주 역시 두경의 무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저 철구가 몸에 스치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노사!”

순간, 두경의 몸이 앞으로 나서며 두경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어 나왔다.

그와 함께 두 자루 철구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허공에서 떨어지며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움직였다. 당태세의 안령도가 들어오는 철구의 옆을 도배로 튕기며 보법을 전개하여 방위를 바꾸었다.

노인의 몸은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옆으로 벗어나는데, 조금 전까지 노인이 서 있던 자리로 철구가 떨어지며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박살내며 나무파편을 날렸다.

두경의 눈이 번득이며 흰 이가 드러났다.

이번에는 좌수가 앞으로 쭉 뻗자 철구 하나가 긴 사슬에 매달려 화살처럼 당태세의 가슴팍을 향해 쏟아졌다. 들어오는 철구를 그대로 받으면 온 몸의 뼈가 산산조각나며 즉사해버릴 터였다.

당태세는 다시 보법을 바꾸며 들어오는 철구를 가볍게 칼로 밀고 앞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노인의 몸이 질주하며 사슬을 뻗은 두경의 몸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그 순간, 두경의 오른손이 뒤로 젖혀지자 바닥을 뚫었던 두 덩이 철구가 그대로 두경의 손으로 빨려들 듯 돌아오며 당태세의 뒷머리를 노렸다.

당태세는 바닥에 납작하게 붙이듯 몸을 숙이고 날아드는 철구를 피하는데, 어느새 손아귀에 돌아간 두 가닥 철구가 오른손목 어름에서 빙빙 허공을 돌다가 다시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두경은 철구의 가운데 사슬을 붙잡고 교묘하게 두 덩이 쇠뭉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데, 마치 철구에 혼이 붙어 자유자재로 당태세를 농락하는 것 같았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욕을 내뱉었다.

“이런 견자놈이!”

“우하하!”

파성둔괴 두경이 쾌하다는 듯 앙천대소를 지으며 두 손을 번갈아 움직였다. 네 덩이 쇠뭉치가 번갈아 사방에서 날아들며 당태세의 머리와 어깨, 가슴을 짓뭉개 버릴 기세로 다가왔다.

당태세의 눈이 번득이며 번개처럼 손에 들린 안령도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날아들던 철구가 안령도에 맞아 튕겨나가며 다시 두경의 손으로 빨려들었다.

두경이 눈을 끔벅하더니 히죽 이를 드러내었다.

“좋은 공부로다!”

당태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안령도를 바라보았다.

순간의 도격으로 네 덩이 철구를 날려버리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거대한 철구를 향한 한 번의 연격으로 안령도는 이가 빠지고 구불구불 휘어져 버린 것이었다.

당태세는 안령도를 내던지고 바닥에 있는 호수구를 향하였다. 두경의 너털웃음이 계속 이어지며 당태세를 향해 조소를 날렸다.

“무슨 방법을 찾는 거요 순천문주! 그대는 내 사방진천괴(四方震天塊)를 피할 수 없소이다!”

“망할.”

당태세가 이를 악물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가 저려왔다.

이미 수많은 접전을 치루느라 진이 빠진 것은 둘째고, 날아드는 네 가닥 괴물 유성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태세는 호수구를 한 손에 쥐고 우수를 뒤로 뻗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태세의 이가 드러났다.

여기서 멈출소냐. 여기서 죽을소냐. 아직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아직 원수의 목이 둘이나 남았는데 이 자리에서 주저 앉을소냐!

“노대인! 이걸 쓰십시오!”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뭔가 시커먼 그림자가 날아왔다. 거대한 형체의 그림자가 당태세를 향해 떨어지자 당태세는 반사적으로 그 물건의 가운데를 낚아채었다. 묵직한 무게가 당태세의 손에 느껴지며 상체가 슬쩍 앞으로 쏟아졌다.

무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월도(月刀)였다. 뒤에 서 있던 육해주의 부하 하나가 당태세를 보며 목이 터지라 외치는 중이었다.

“대도(大刀)로 받아치십시오!”

당태세의 번득이던 눈에 광망이 돌았다.

그와 함께 두경의 왼손이 젖혀지며 한 가닥 쇳덩이가 화살처럼 다시 앞으로 쏟아졌다. 당태세는 재빨리 호수구를 내던지고 두 손으로 월도를 잡고 들어오는 쇳덩이를 칼로 받아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에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지만 두경의 철구가 다시 두경의 손아귀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당태세의 이가 드러나며 난폭한 미소가 얼굴에 올라왔다.

“제대로 놀아주마.”

“하하! 문주! 그대가 무슨 관성대제라도 되시는가?”

“나는 관운장이 아니지만 네놈도 안량이나 문추는 아니렷다?”

당태세의 눈이 번득이며 몸을 낮추더니 그대로 앞으로 월도를 들고 뛰어들었다.

두경의 두 손이 앞으로 뻗는 것과 동시에 네 가닥 쇳덩이가 허공에서 먹이를 찾은 수리처럼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 당태세의 몸이 월도와 함께 위로 솟구치며 번개처럼 소용돌이를 그렸다.

맨 처음 날아든 쇳덩이가 월도에 맞아 날아가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철구가 월도의 창대에 퉁기며 궤도를 이탈하는데, 마지막 철구는 세 번째 철구와 맞부딪히며 자기 힘을 못 이기고 땅에 처박혔다.

두경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하더니 다시 두 손을 휙 당기며 철구들을 불러댔다.

순간 당태세가 몸을 낮추며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회오리를 만들며 월도로 들어오는 철구들을 날려 보내고 창준으로 다른 철구들을 밀어내었다.

두경은 자신이 철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게 되자 몸을 앞으로 날리며 두 손을 상하로 뻗으며 다시 철구를 손에 휘감고 크게 손을 내저었다.

“이건 어떤가! 팔방만천박(八方滿天雹)!”

두경의 외침과 함께 철구들이 회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철구가 하늘 높이 올라가며 두경을 중심으로 네 가닥 줄기가 되어 사방의 모든 것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나무계단과 기둥이 순식간에 대포에 맞은 듯 구멍이 뻥뻥 뚫리며 조각들이 산지사방으로 날렸다.

쇳덩이의 회오리가 조금씩 앞으로 다가오며 앞을 가로막은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기 시작하자 당태세는 뒤를 보여 육해주에게 말했다.

“어서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

“노사! 노사께서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가!”

육해주가 사람들을 이끌고 사형문의 본채에서 우르르 몰려나가자 당태세는 뒤로 한 발 물러서더니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월도를 두 손으로 잡고 하늘로 치켜 올리더니 천천히 월도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두경은 눈을 번득이며 네 가닥 회오리를 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당태세의 월도 역시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천천히 좌우로 흔들대기 시작했다.

노인의 손이 조금씩 빨라지자 월도의 회전도 조금씩 빨라졌다. 바람소리가 거세지자 칼날이 넓게 퍼지며 은색의 막이 되어 당태세의 머리 위를 감쌌다.

노인의 매서운 눈이 파성둔괴를 향하였다.

“누가 창이고 누가 방패냐!”

당태세의 몸이 강철의 회오리 안으로 들어가며 월도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월도와 쇳덩이가 부딪히며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당태세의 손이 위아래로 움직이자 월도의 궤적이 상하로 움직이며 들어오는 철구들을 하나하나 튕겨내었다. 당태세의 발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두경은 이를 드러내며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네 가닥 철구와 한 자루 월도가 서로의 예리함과 둔중함으로 맞서며 힘을 겨루는데, 당태세의 양손에는 철구가 월도를 두들기면서 울려퍼지는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당태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향하였다.

두경의 이마에서 한 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번쩍이는 월도와 시커먼 철구가 만들어내는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벽과 계단으로 날리는데 두 쇳덩이 사이에서 울리는 괴기한 소리는 천지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순간 우직소리가 나며 당태세가 든 월도의 가운데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눈을 부릅뜨고 다시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두경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당태세의 양손도 더욱 빨라지며 월도를 팽이처럼 회전시켰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깊게 두 발짝만 들어가면 되는 거리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그 순간, 두경이 두 손을 멈추고 쇳덩이 네 덩이를 자신의 팔뚝으로 가져왔다. 사슬이 두경의 양 손에 감기며 철구가 두경의 손으로 돌아갔다. 두경은 양손을 철퇴처럼 만들더니만 이를 악물고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일권을 날렸다.

순간 당태세의 월도가 회전을 멈추고 그대로 들어오는 두경의 팔뚝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쇳덩이로 감싼 거한의 주먹이 당태세의 머리 위로 날아가 버렸다. 경악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두경의 눈동자가 당태세와 마주쳤다.

당태세는 허공을 향했던 대도의 날을 그대로 아래로 내질렀다.

두경의 가슴 앞 세 가닥 수염이 일시에 대도에 맞아 썩둑 잘렸다. 거한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두경의 눈이 어이없다는 듯 당태세를 바라보자 당태세는 그를 보며 나직하게 말하였다.

“먼저 겁을 먹은 쪽이 지는 게다.”

“…허….”

“성도에 가서 네놈의 마지막을 말해주마. 파성둔괴.”

“허허, 허허….”

두경의 입에 희미한 미소가 올라오며 천천히 눈이 감겼다.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천천히 옆으로 몸을 넘기자 노인도 들고 있던 대도를 땅에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미 대도의 날은 모두 빠져버린 뒤였다. 노인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땀과 피가 범벅이 된 자신의 이마를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아직 살아있다. 아직 살아있으니……아직 할 일이 있어.”

노인은 이를 악물고 천장을 보며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두 손은 아직도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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