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74화 (174/226)

174. 섬서성 서안 사형문 (3)

서방(西房)과 북쪽 구역에서 근무하고 있던 간수들은 지금 꿈에서도 보기 싫은 광경과 마주하는 중이었다.

동방 뇌옥에 감금되어 있던 죄수들이 모두 풀려나서 서방과 북쪽구역으로 물밀듯이 몰려와 몇 안 되는 간수들을 포위하고 있는데, 개중 앞장선 사내들은 이미 간수들의 무기를 들고 서 간수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것도 날붙이 한번 안 잡아본 농투성이 사내들도 아니라 엊그제 끌려왔던 표두와 표사가 무기를 잡고 있었으니 간수들은 아무리 자신들이 무기를 들고 있고 무공을 닦았다 한들 몸을 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기묘한 노인이었는데 하얗게 센 머리를 깨끗하게 변발치고 턱수염도 민것이 대체 어느 곳에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는 위인이었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갇힌 자들을 풀어주어라. 그리고 너희가 옥 안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다면 몸뚱이 하나는 건사하게 해주겠지만 내가 말한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이행하지 않는다면...”

노인이 말을 마치고 간수들을 노려보았다.

“삼도천에서 너희가 시왕의 간수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노인의 말을 듣고 있던 간수 중 가장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가 헛웃음을 짓더니 불쑥 앞으로 튀어나와 노인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이를 드러냈다.

“뭐가 어째 늙은이? 지금 네가 우리 사형문의…….”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노인의 어깨에 사뿐히 올라가는데, 앞에 서 있던 간수는 갑자기 멍한 표정이 되더니만 그대로 풀썩 무릎을 꿇더니 옆으로 고개를 떨구고 쓰러졌다.

쓰러진 사내의 코와 입과 귀에서 가느다랗게 피가 흘러 돌바닥에 고이는데, 그 모습을 목격한 간수들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놈이 삼도천에 먼저 가 사정을 설명하겠다는 구나. 누가 동행할 테냐?”

기선을 제압당하면 진영이 무너지는 법.

냉철히 생각하면 당태세와 표사들 일당에게 무작정 밀리지도 않을 것 같던 간수들은 일제히 쥐고 있던 몽둥이와 칼을 내던지더니 하나둘 자신 근처에 있는 창살부터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일순간에 지하 이층의 뇌옥은 풀려나온 죄수들로 가득 차게 되었는데 비록 몸은 허약하게 주렸을지라도 눈빛만큼은 모두 형형하기 그지없었다.

“북쪽구역에 가면 간수들이 쓰던 무기가 있을 겁니다요.”

어느새 세상만사 포기한 듯한 번수가 당태세에게 좋은 정보까지 가르쳐주었다.

작게는 검부터 크게는 월도까지 각양각색 간수들의 무기로 무장한 죄수들은 삽시간에 그 수가 백여 명을 훌쩍 넘을 정도의 대군이 되어 뇌옥을 가득 메웠다. 그들을 보며 당태세가 엄중하게 말하였다.

“지금 비록 우리 숫자가 불었고 손에 무기를 들고 있다 하여도 이 위에 있는 이들은 무공을 갈고 닦은 이들이오. 사형문은 예전부터 제자들을 엄격하고 강하게 가르치기에 이름이 높았소이다. 여기 모인 이들은 아무쪼록 만나는 이들을 숫자로 위협하되, 결코 전면전은 모두 피하여 달아날 것을 권하는 바요.”

“알겠습니다!”

“그 길은 여기 있는 육해주 표두가 알려줄 것이오. 육표두. 표국으로 통하는 샛길을 뚫고 퇴로를 확보하시오.”

“존명!”

“그 길은 일단 앞을 터 놓으면 기세를 몰아 모두가 탈출할 수 있소. 골목을 나와 표국의 표사들을 상대해야할 것이오. 다칠지도 모르지. 죽을 수도 있고.”

육해주는 당태세의 말을 들으면서 험상궂은 얼굴에 미소를 다시 한번 지어보이며 뒤에 서 있는 자기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부담없는 칼질이다! 대장부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 오늘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등 뒤에 지고 한바탕 날뛰어보자!”

“좋습니다!”

그 두목에 그 부하들이었다. 당태세 역시 오랜만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들어왔다.

노인은 자신의 앞에 승천하는 두 마리 용처럼 위로 솟아있는 넓은 계단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극락으로 가는 계단이 될 것인지, 지옥으로 떨어지는 나락이 될 것인지는 지금부터 알아봐야 할 일이었다.

당태세는 위를 올려보며 눈을 번득였다.

“모두 나를 따르시오!”

노인의 몸이 외침과 함께 번개처럼 계단을 성큼성큼 밟으면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 육해주가 칼을 들고 올라왔고 표사들과 죄수들이 계단을 밟으며 마치 물이 차오르듯 순식간에 계단들을 빼곡하게 채웠다.

그 순간, 지하 일층에서 사형문도들이 손에 번쩍이는 것을 들고 우르르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당태세의 눈에 들어왔다.

당태세의 발이 계단을 밟고 몸을 튀기자 손이 휘감기는 계단의 위를 잡고 한 바퀴 몸을 돌리며 원숭이처럼 위로 올라갔다.

보철을 두른 오른발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공에서 한번 휘청하였지만 당태세는 이미 건너편의 계단으로 몸을 날린 뒤였다.

당태세가 올라온 계단참에는 마침 아래로 내려가려는 사형문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순간 갑자기 허공에서 튀어 올라와 자신의 옆으로 기어오른 당태세를 보고 사형문도들이 고함을 질렀다.

“적이다!”

순간 당태세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사방(四方)의 바람을 가르며 앞뒤 양옆에 있는 사형문도의 머리를 순식간에 난타하며 어깨로 아래 있는 사형문도를 들이받았다.

순식간에 대여섯이 그대로 중심을 잃고 난간없는 계단에서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추락하는데, 당태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신들린 듯이 앞과 뒤의 사람을 난타하며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상황파악이 빠른 사형문도 하나가 재빠르게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유엽도를 앞으로 곧장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당태세의 눈대중이 훨씬 빨랐다.

노인은 들어오는 유엽도를 몽둥이로 받아치는가 싶더니 슬쩍 날밑으로 몽둥이를 집어넣고 그대로 손목을 돌리며 칼 든 사내의 손목을 반대로 비틀었다.

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사형문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유엽도는 어느새 당태세의 손아귀에 들어간 뒤였다.

당태세의 손에서 둔기가 떨어지고 예병(銳兵)이 손에 잡혔다. 한줄기 섬광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은 이내 혈풍(血風)으로 변하였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며 사형문도들이 물러서기 시작하는데, 어느새 당태세는 지하일층의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당태세가 칼을 뒤집어 바닥에 피를 흩뿌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삼사십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형문도들이 둥그렇게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포위한 채 섣불리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당태세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목숨이 아까운 자는 물러나고, 사형문에 신명을 바칠 자는 앞으로 나서라.”

물러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당태세는 눈썹을 올올이 위로 올리며 저벅저벅 사형문도 앞으로 걸어갔다.

순간, 기합성과 함께 앞에 서 있던 사형문도의 일진이 한꺼번에 터진 방죽사이로 물이 쏟아지듯 당태세를 향해 뛰어들었다.

당태세의 도가 들어오는 사형문도의 발과 어깨와 허리의 틈으로 들어갔고, 쇳덩이를 따라 몸이 따르며 흘러드는 격류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다리와 허리가 세차게 휘돌며 만든 마지막 용틀임이 도를 쥔 손아귀를 타고 올라 신령함이 되어 도신 전체에 깃들었다.

순식간에 광풍이 빛살과 함께 퍼지며 사형문도들의 안에서 폭발했다.

산지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비산하며 사람의 비명이 흩어지는 목숨과 함께 천장과 바닥에 나뒹구는데 순식간에 십여 명의 혼백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동도들이 죽는 모습을 본 사형문도의 눈이 뒤집혔다.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늙은 살수를 향해 몸들이 움직였다. 당태세 역시 가만히 서 있지 않았다.

이미 시뻘겋게 변한 노인의 부릅뜬 눈동자에는 인정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았다. 노인의 안령도가 포신의 대포알처럼 튀어나가며 앞에 위치한 모든 것을 일도양단으로 베어버리며 날아갔다.

순식간에 결의가 비명으로 바뀌며 사형문도들이 쓰러져 넘어가는데, 당태세의 앞을 가로막고 칼을 빼앗으려고 병기를 휘두르던 사내는 순식간에 양팔과 목이 날아가며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어느새 당태세의 손아귀에는 안령도 외에 병기 하나가 더 쥐어져 있었다. 앞머리에 달린 갈고리와 손목의 월아가 번득이는 호수구(護手鉤)였다.

당태세의 도법이 일신했다. 노인은 들어오는 칼을 호수구로 받아 넘기며 비어있는 혈도를 향해 칼을 한 번씩만 휘두르며 길을 트기 시작했다.

절대로 한 상대에게 두 합 이상을 내어주지 않았다. 순식간에 그 많던 사형문도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하 이층에서 일층으로 올라온 육해주와 다른 이들은 앞에 벌어진 엄청난 유혈극과 함께 단신으로 문도들을 궤멸시키고 있는 당태세의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뭘 꾸물대는가! 어서 일층으로!”

당태세의 고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육해주가 부하들과 죄수들을 보며 재차 구령을 내렸다.

“모두 올라가라! 일 층으로 간다!”

수많은 사람이 나선으로 구부러진 계단을 타고 일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마치 계단이 살아 피와 살을 얻고 위로 꿈틀대며 올라가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당태세는 마지막으로 안령도를 앞으로 뻗으며 호수구를 위로 쳐들었다. 남아있는 사형문도는 기껏해야 열두서너 명 정도였지만 그들은 이제 노인의 압도적인 무위 아래 무기를 쳐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앞에서 당태세를 바라보고 있던 사형문도 하나가 이를 악물더니만 자신이 쥐고 있는 검을 발 아래로 떨구었다.

그와 함께 나머지 사내들도 자신의 손에 쥐었던 병기를 놓고 붉은 손을 내보이니 생사여탈을 온전히 당태세에게 넘기겠다는 뜻이었다.

당태세는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만 고개를 훽 돌리고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죄수들의 후미를 따라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칼을 떨군 사내들은 이내 고개를 떨구고 서로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였다.

“다 되었소! 모두 올라오시오. 이쪽 문으로 나가면 됩니다!”

표두 육해주의 걸걸한 목소리가 일층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당태세는 힐끗 위를 쳐다보았다. 일층 위의 계단참에는 수많은 사형문도들이 아래에서 벌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쉽사리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으니, 아마도 각 층을 지키는 이들은 각층의 안위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쉽사리 모두가 무너지지 않는 진법이지만 당태세 같은 고수를 만나면 각개격파를 당하기 쉬운 진형이었다.

“유독중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아마 모든 것이 달라졌겠지.”

당태세는 그렇게 혼잣말을 읊조리며 훌쩍 몸을 날려 계단 참에서 일층으로 몸을 옮겼다. 이미 맨 처음 일층에 발을 디딘 죄수들은 육해주의 인솔에 따라 일층에 난 작은 문을 향해 부리나케 달음질치고 있었다.

당태세는 그 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큰일은 해결하지 못하였지만 작은 소득이라도 얻은 것이 어디냐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얼굴빛이 풀어지던 당태세의 얼굴이 다시 뻣뻣하게 굳어졌다. 순간 그들의 뒤쪽에서 장창을 든 창수 수십여 명이 쏟아져 나오면서 계단참으로 올라오는 죄수들의 뒤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흐핫핫핫하! 죽여 달라고 기를 쓰고 있는 게냐! 하긴 해를 보고 죽는 게 땅속에서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쩌렁쩌렁 천장을 울리는 호쾌한 웃음소리에 당태세의 얼굴이 굳어지며 미간에 내 천(川)자 주름이 깊이 패였다.

노인은 칼과 호수구를 뻗으며 창수의 가운데에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죄수들을 밖으로 인도하던 표두 육해주와 표사들의 표정도 일순간 경직되었다.

“하? 이게 누구신가! 오매불망 우리 문주께서 기다리시던 순천문주 아니신가! 진실로 살아계셨구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우핫핫핫핫!”

당태세가 천천히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사형문의 십대제자중에서 가장 버거운 놈을 여기서 만나다니.”

“우핫핫핫핫!”

미친듯이 광소를 짓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는 회색의 수염을 치렁치렁 길러 세 가닥으로 길러 땋은 채 변발을 멀끔히 친 상태였는데, 세 가닥으로 딴 수염은 구리가락지를 껴 놓아 사방으로 뻗치지 않게 해 놓은 상태였다.

기괴한 용모의 거한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인상만큼이나 기괴했다.

사내는 양 손에 각각 유성추 하나씩을 들고 있었는데 그 유성추는 한쪽이 철퇴인 것이 아니라 사슬 양 끝에 철퇴가 달려있는 쌍유성(雙流星)의 형상으로, 거한은 한 손에 두 개씩, 도합 네개의 철퇴를 들고 있었다.

당태세가 신음하듯 그를 보며 이름을 말하였다.

“파성둔괴(破城鈍塊) 두경, 네놈을 만나게 될 줄이야.”

“으허허허허! 순천문주! 이리 만나게 되어서 참으로 반갑소이다! 절름발이가 되었다 들었는데 멀쩡하지 않은가! 역시 세상 풍설은 믿을 게 못 되는구먼! 크하!”

긴 턱수염을 흔들대며 다가온 거한은 눈을 크게 뜨고는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만나자 마자 이별이니 이 아니 서글픈가! 으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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