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섬서성 서안 사형문 (2)
당태세의 입에서 사형문주 유독중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가뜩이나 하얗게 질린 얼굴이 더욱 새하얗게 변했다. 당태세는 나직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빨리 말하는 게 좋으리라. 어물대다가는 생사가 뒤집히리.”
“무…문주께서는 자리에 안 계십니다.”
“뭐?”
“성도 분타로 가신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사천 성도 말이냐?”
사천 성도라면 포일문주 마길이 있는 곳이다. 대체 왜 사형문이 사천 성도로 간다는 말인가? 하지만 목을 잡힌 번수는 당태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그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을 논한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절박해 보였다.
당태세의 표정이 더욱 살기등등해졌다.
“그놈이 사천 성도에 왜 간단 말이냐!”
“저…저도 그것은 잘 모릅니다. 저는 그저 말직인데다….”
“젠장.”
당태세는 이를 뿌드득 갈더니만 빠르게 사방을 보더니 다시 번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냐, 그렇다면 동성문의 황병아는 어디에 있느냐? 절영자가 데려온 여식 말이다.”
“저는 잘…모릅니다. 그게 누군지 모릅니다.”
아무런 소득이 없는 심문이었다. 당태세의 마음이 화급해졌다. 주변의 발소리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본채 앞 광장에서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사람들을 가득 실은 수레가 출발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본채는 사형문도들이 가득 들어차 운신하기도 힘든 요새가 될 것이었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었다. 결국 물어볼 말은 마지막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육해주.”
“네?”
“남경에서 돌아온 표두 육해주는 어디 있느냐! 그의 신변은 어찌 되었느냐!”
지금까지 하얗게 질린 채 죽기만을 기다리던 번수의 얼굴에 슬쩍 안도의 표정이 돌아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질문이 나온 모양이었다.
“육표두는 표국의 명을 어긴 죄로 지하 이층의 뇌옥에….”
“뇌옥? 건물에 뇌옥(牢獄)이 있다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당태세가 되묻자 번수를 고개를 끄덕거렸다. 뇌옥이 있다는 지하 이층이 이 건물의 최심층인 듯싶었다.
원래 뇌옥이라는 것은 죄인을 심문하는 곳이고 구조가 협소하니 들어가서 사람을 구해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나마 문답무용으로 즉결처형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지경이었다.
당태세는 슬쩍 번수의 울대를 놓았다. 번수가 켁켁 거리며 목을 움켜쥐는데, 당태세는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놈은 내가 네 놈의 목구멍을 종잇장처럼 손으로 뚫어버릴 수 있음을 아느냐?”
“네, 네 대협. 알고 있습니다!”
다시 번수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지는데, 당태세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구명의 기회를 주마. 대신 조금이라도 불손한 짓거리를 하면 목을 떼어 지붕 꼭대기에 올려놓고 새가 눈을 파먹게 만들겠다.”
“네! 대협! 대인! 말씀만 하십시오!”
번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당태세는 들고 있던 박도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당태세의 번득이는 눈과 칼을 번갈아 보고 있는 번수에게 당태세가 말을 걸었다.
“나를 뇌옥까지 인도하라.”
***
사형문의 본전은 중앙에 거대한 목조계단 두 개가 쌍룡(雙龍)이 여의주를 두고 싸우는 듯한 형세로 서로 엇갈리며 땅 아래에서부터 하늘로 치솟아 오르듯 올라 있는데, 이 계단이 본전의 모든 층을 통과하며 사통팔달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 계단은 나무와 나무를 엇갈아 짜놓은지라 계단의 양 옆이 트여 있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그 중앙의 계단을 타고 한 명의 노인이 번수에게 뒤를 잡힌 채 천천히 지하 이층의 뇌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노인은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려갔고, 그 뒤를 따르는 번수는 긴장한 듯 사방을 둘러보며 죄인을 호송하며 노인의 뒤를 따랐다.
계단을 타고 조금씩 몸이 내려갈수록 창으로 들어오는 볕은 점점 줄어들고 벽에 붙어있는 등불이 시나브로 늘어나는데, 지하 일층을 지나 이층으로 들어가자 사방 벽은 모두 막혀있고 오직 흔들리는 등불과 횃불의 빛만으로 어두운 사방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돌을 깔아놓은 바닥은 축축하니 물이 올라오고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올라오는데, 어디선가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만이 이곳이 안락하게 몸을 누일 수 없는 곳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당태세와 번수는 지하 이층으로 내려가 한참을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넓은 복도 양 옆으로 뻗어 있는 쇠창살 안에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를 사람들이 누워서 번득이는 등불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정지. 누구냐?”
그 때 당태세와 번수의 앞에 칼을 차고 긴 나무뭉둥이를 든 간수 셋이 나타났다. 세 사람은 당태세가 아니라 번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놈은 일층의 왕가 아니냐. 여기까지 네가 무슨 용무냐?”
“죄, 죄인을 호송하러 왔다.”
“그 일을 네가 왜 하는데?”
“그게….”
번수가 말을 머뭇거리고 있자. 당태세가 슬쩍 고개를 들고 세 명의 간수를 쳐다보았다. 세 간수는 어깨도 넓고 인상부터 체격까지 당태세를 끌고 온 번수와는 비교가 안 되는 강건한 모습이었다.
간수 하나가 슬쩍 당태세를 노려보더니 이를 드러냈다.
“고개 들지 마라. 늙은이. 여기가 어디인 줄 아느냐?”
당태세는 간수들을 슬쩍 노려보더니 뒤로 고개를 돌려 번수를 돌아보았다.
“몽둥이.”
“네?”
“몽둥이.”
번수가 멍하니 서 있다가 자신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당태세에게 넘겨주었다. 세 명의 간수가 번수를 쳐다보았다.
“너 지금 뭐하는…….”
그 순간, 당태세 두 손이 등불 아래에서 궤적도 읽지 못할 만큼 빠르게 움직이며 앞에 있는 간수의 태양혈을 후려치고, 그 뒤에 있는 사내의 명치에 몽둥이의 끝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간수가 눈을 채 당태에게 돌리기도 전에 당태세의 몸이 움직이며 오른 발로 간수의 발을 그대로 잡아채 버리고 뒤로 넘어지는 간수의 머리에 그대로 몽둥이를 날려버렸다.
실로 기침 한 번 나올 시간에 세 명의 간수가 그대로 모두 뒤로 넘어가며 돌바닥에 머리를 찧는데, 셋 모두 쓰러진 뒤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태세의 뒤에 서 있던 번수는 이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열쇠.”
“네?”
“허리춤에 열쇠가 있을 것 아닌가.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움직여야 하느냐?”
“네! 네!”
“아룡이 백 배 낫구먼.”
번수는 재빠르게 쓰러진 간수들의 몸을 뒤져 열쇠를 찾아내었다. 당태세는 몽둥이로 양 옆으로 늘어선 쇠창살들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표두 육해주를 찾아라.”
“네! 알겠습니다.”
번수가 열쇠를 들고 앞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옥 안에서 누군가 손으로 쇠창살을 잡더니 당태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노사! 우리를 구해주십시오!”
“노사! 저도 내 보내주십시오!”
당태세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바라보는데 개중 혈기가 남아있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갈라진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고향에 못 돌아간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제발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산동 뇌음현이 제 고향입니다.”
“산동? 산동에서 서안으로 왔다고?”
당태세가 눈썹을 꿈틀대며 말을 되뇌이자 옥 안의 사내는 다급하게 말을 뱉았다.
“몸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이라 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대인! 저는 석가장에서 왔습니다. 내 보내주십시오!”
“저는 회음 출신입니다! 집에 노모와 아픈 딸이 있습니다.”
“대인!”
“대인!”
갑자기 사방에서 벌집을 쑤셔놓은 듯이 여기저기에 누워있던 이들이 철창을 부여잡고 당태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사방의 창살 안을 바라보았다. 모두 한참 일할 만한 청장년의 사내들이었다. 하지만 개 중에 몸이 성해보이는 사람은 없었으니 이미 꽤나 얻어맞고 제대로 못 먹은 지 한참 된 것 같았다.
“대체 너희들은 어찌 된 것이냐?”
당태세의 말에 한 사내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간절한 눈빛으로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하여 이렇게 서안까지 넘어왔는데 이곳에서 사천으로 다시 가라고 하여 싫다 했더니 이렇게 가둬놓은 것입니다.”
“사천? 사천 성도?”
당태세는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사천 성도에 대체 뭐가 있기에 사형문은 사천으로 이렇게 사람들을 보낸단 말인가?
“못 가겠다 하였더니 그때부터 매질을 시작하고 곡기를 끊었습니다. 개중 대부분은 사천으로 넘어갔습니다만 저희는 사람들을 선동했다 하여….”
“본보기로 잡아 두었다 이거구먼. 그런데 사천으로 왜 가느냐?”
“……군사(軍士)가 된다 하더이다.”
“청의 성을 쌓는데 노역으로 끌려간다 하더이다.”
“하신(河神)의 제물로 쓴다 하였습니다.”
당태세는 사내들의 입에서 제각기 튀어나오는 말을 들으며 표정을 굳혔다.
사람들마다 십인십색 말하는 바가 모두 달랐지만 사천에 가서 할 일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기꺼이 하는 일은 아닌 게 분명하였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문질렀다. 대체 이 많은 이들을 이곳에 가둬두면서까지 사람들을 모아서 사천으로 보내는 이유라는 것이 무엇이며, 유독중은 왜 사천으로 옮겨갔단 말인가?
그때였다. 저 멀리서 번수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것이 보였고, 그의 뒤에 일단의 사내들이 그를 따라 당태세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육표두를 찾았습니다!”
번수의 말이 끝나자 유독 험상궂은 표정의 사내가 찢어진 옷을 대충 여미며 앞으로 나오다가 당태세의 모습을 발견하고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사내의 험상궂은 표정에 놀라움이 서리고 있었다.
“노사. 노사께서 절 풀어주신 겁니까?
뒤에 서 있던 표사들 역시 당태세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당태세가 육해주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를 풀어주러 왔네. 서둘러 나가세.”
“어찌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절 구하러 이곳까지 들어오신 겁니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왔네.”
“네?”
“자네 같은 사람을 막다른 골목에 내던지고 남겨두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네.”
육해주는 멍하니 당태세를 바라보며 말없이 입을 벙긋거리는데, 뒤에 서 있던 표사들 역시 말없이 당태세와 육해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던 번수가 열쇠를 두 손에 든 채 당태세를 향해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노대인, 제발 빨리 올라가십시오. 간수가 여기 셋만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쪽에 있는 이들이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몰려올 것입니다.”
“간수가 총 몇이나 되느냐?”
“어림잡아 열 명은 될 것입니다만….”
“오냐. 그럼 문을 열어라.”
“네?”
당태세가 번수를 쳐다보며 다시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철창을 열어라. 오늘부로 사형문의 뇌옥은 전원 파옥(破獄)이다.”
번수의 입이 떡 벌어지며 열쇠를 들고 있는 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당태세의 목소리와 함께 쇠창살을 잡고 있던 사내들의 손이 하나둘 늘어나며 모두가 창살을 잡고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철렁대는 소리가 마치 파도처럼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누군가 급하게 당태세의 뒤쪽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태세는 손에 쥔 몽둥이를 잡고 몸을 돌렸다.
“뇌옥에 있는 이들은 오늘 다시 햇살을 볼 것이네. 모두 내 지시를 따라주게.”
“명만 내려주시오. 노사.”
옆에 서 있던 육해주의 얼굴이 무시무시한 웃음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