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섬서성 서안 사형문 (1)
어두운 성로를 따라 두 명의 사내가 발을 맞추듯 같이 움직이며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어두운 대문 앞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이들은 각양각색의 나이와 복장을 취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검은 대문의 앞에는 작은 이륜거와 나귀와 나귀를 부리는 쟁자수가 짐을 옮기고 있었고, 그 옆에는 뚱뚱한 상인과 마른 사내와 늙은 여인과 어린 아이들이 서로의 일을 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표국은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있으니 작은 가게들도 여럿 표국의 앞에 붙어있었다.
노인은 표국의 두꺼운 대문 앞에 우뚝 서서 표국의 문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걸음을 멈추자 사내 역시 노인의 뒤에서 같이 걸음을 멈추고 표국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표국의 대문은 큰 돌기둥으로 양쪽을 감싸고 가운데 대문에는 유려한 나무조각을 둘러놓았는데 자세히 보니 매화(梅花)와 국화(菊花)를 같이 둘러놓은 모습이었다.
“매화(梅花)는 충렬(忠烈)이요 국화(菊花)는 충절(忠節)의 표상이라.”
노인이 피식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젊은이와 눈을 마주쳤다. 슬쩍 얼굴이 벌개진 젊은이는 알겠다는 듯 노인의 얼굴을 보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주저할 것 없이 표국의 안으로 들어섰다.
젊은이는 벌컥 자기 차례도 아닌데 우측의 장방(賬房)으로 힘차게 발을 내딛더니 울타리 안에서 앉아 장부를 계산하고 있는 두 명의 중년 사내를 보더니 대갈일성부터 질러대었다.
“내가 외지인이라고 바가지 씌우는 거냐, 이 더러운 놈들아!”
순간 장방 안에 들어와 있던 모든 손님과 서리들의 눈이 한 번에 아룡에게 보였다. 아룡은 짧게 심호흡을 하더니 서리들을 보면서 자신의 손에 들린 전표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서 무창까지 가는 길에 은 한 냥이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은 한 냥이 어디 아이들 주전부리값이냐! 땅 파면 은 한 냥이 나오냐고! 그저 수레하나 태워서 사람 데려다주면서 은 한 냥이 말이 되는 소리야!”
“저…공자, 지금 무슨 말씀을….”
“다른 사람들이 은 한 냥 내고 무창까지 가느냐? 비싸다고! 내가 서안 사람이 아니라고 지금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 아니냔 말이야! 이보시오, 소저. 당신은 어디까지 가는데?”
삽시간에 장방 안이 솥단지라도 뒤집은 듯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울타리 안에 있는 서리는 둘째 치고 밖에서 정방(正房:본채)을 돌보고 있던 쟁자수 둘이 장방에 들어가 아룡의 양팔을 잡는데, 아룡은 이거 놓으라며 정중히 말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벽에 붙어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서안의 사형표국이 천하제일표국이라더니 순 허명이로구나! 뒤로는 폭리를 취하고! 앞으로만 웃는 낯을 들이밀면 만사가 다 풀린다더냐!”
표국 안에 있는 사람들과 문 바깥에 있는 사람들까지 슬슬 장방쪽으로 얼굴을 들이미는데, 당태세는 슬쩍 정방(正房)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침 표두 몇이 무슨 일인가 싶어 얼굴을 밖으로 들이밀자 당태세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바라보며 손짓으로 장방에 가 보라는 시늉을 하였다.
표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방을 향해 움직이자 당태세는 사람의 눈을 속이듯 슬쩍 그들의 뒤로 돌아가더니만 정방 안으로 소리없이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일순간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은 노인이 움직이는 모습을 제대로 본 이가 없었다.
당태세는 정방을 가로질러 뒷마당으로 거침없이 발을 옮겼다.
표국의 뒷마당에는 당태세의 직감대로 활을 맞추는 표적과 창칼들이 가지런하게 벽의 옆에 늘어서 있는데 그 연무장의 옆으로 작은 틈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골목이 벽과 벽 사이에 벽돌로 포장되어 길게 뻗어 있었다.
“저곳인가.”
당태세가 좁은 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순간, 뒷마당에 앉아있던 두 명의 표사가 슬쩍 노인을 보더니 손을 흔들며 앞으로 다가왔다.
“이보시오. 이곳은 금역이오. 외인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어서 나가시구려.”
두 사람이 성큼 앞으로 나오며 앞을 가로막자 당태세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모르고 왔을까.”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지는 순간, 당태세의 두 손이 먼저 움직였다.
당태세의 쌍장이 바람을 타고 두 사람의 명치를 가격하고 장이 권이 되어 한 발 앞으로 나가며 다시 가슴팍을 동시에 밀어치니, 두 사람은 동시에 벽에 뒷머리를 들이받고는 사이좋게 풀썩 쓰러지며 고개를 떨구었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일어날 때쯤 되면 저녁 먹을 시간이겠구먼.”
당태세는 두 사람을 슬쩍 뛰어넘어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노인 한 사람이 어깨를 펴고 걸으면 겨우 어깨 하나가 남을 만한 넓이의 길이었다.
좁은 길은 계속 이어져 담과 담 사이의 그늘로 파고드는데, 어둑어둑한 길은 곧장 가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확 꺾였다. 당태세는 이 길로 들어가면 표국의 뒤에 붙어있다는 큰 저택에 닿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당태세는 보폭을 줄이고 기척을 숨겼다. 장원으로 통하는 문을 그냥 열어둘 리가 만무했다. 노인은 몸을 낮추고 슬쩍 품에서 단도를 꺼내 옆 날로 꺾인 골목의 안쪽을 비추었다.
두 명의 사내가 손에 창과 칼을 들고 서 있었는데 앞사람이 칼을 들고 서 있고 뒤에 선 사람이 창을 들고 서 있는 형세였다. 창수의 뒤에는 벽에 줄을 하나 매달아 놓았는데 보아하니 그 줄은 벽 뒤에 연결되어 종이나 박(拍)을 달아 경보를 울리게 만든 것일 터였다.
당태세는 단도를 만지작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앞사람을 방패로 쓰고 종을 치겠다는 건가. 쓸데없이 꼼꼼하고 독하니 유독중이 할 만한 짓이구먼.”
이미 어떻게 움직일 지는 결정한 뒤였다.
당태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단도를 쥐더니 불쑥 사내들의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통로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은 딱히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앞에 선 사내가 칼을 들고 앞으로 나서자 뒤에 서 있던 창수는 슬쩍 뒤를 보며 벽에 달린 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태세의 눈이 빛나며 오른손이 보이지도 않게 움직였다.
손에 들린 단도는 빛줄기가 되어 어두운 통로를 날아가 그대로 창수가 잡아당기는 줄의 윗부분을 소리없이 잘라버렸다. 순간 도수의 칼날이 당태세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당태세는 몸을 틀어 벽에 붙고 첫 일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한 뒤, 왼발을 아래로 뻗어 사내의 발목을 그대로 밟아버린 뒤 빙글 몸을 놀려 오른 팔꿈치로 사내의 턱을 강타하였다.
사내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순간 뒤에 서 있던 창수가 잘린 줄을 내던지고 창을 당태세에게 뻗었다. 이미 쓰러진 사내의 박도는 당태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당태세는 손을 뻗어 들어오는 창날을 머리 위로 올리고 검날로 창대를 타고 그대로 달려가는데, 창수는 노인의 출수가 이렇게 빠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 눈이 커진 채 그대로 창대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당태세의 손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창대를 잡은 사내의 가슴과 목 위에서 박도가 놀았다. 짧은 비명과 함께 창수가 벽에 머리를 기대고 쓰러졌다.
당태세는 잠시 칼을 들고 기척없이 서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바깥쪽에서 소리를 들은 이는 없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가 시작이군.”
단도를 챙겨 허리춤에 꽃은 당태세는 천천히 문을 열고 단도를 밖으로 내밀어 사방을 확인하고는 재빠르게 몸을 날려 어두운 곳으로 신형을 감추었다.
사형문의 본채는 골목으로 들어오는 통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담 뒤에 보이는 커다란 궁궐 같은 집 한 채가 사형문의 장원에 있는 건물 전부인 듯 보였다.
당태세는 낮게 자라난 관목과 수풀 사이로 몸을 숨기고 천천히 본채를 향해 발소리 없이 다가가는 중이었다.
이 드넓은 마당에는 담이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정원을 꾸며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허허벌판같이 넓은 광장 같은 마당과 그를 굽어 살펴보는 거대한 건물이 놓여있는 것이 전부였다.
몸을 숨기기도 쉽지 않았고, 만약 건물 위에서 사방을 조망한다면 당태세의 행적은 금방 들키고도 남을 터였다. 헌데 주변을 지키고 서 있는 사형문도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몽둥이를 들고 순찰하는 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당태세는 기이하다는 생각을 내심 하면서 조금씩 본채 가까이 접근하였다. 본채에 다가갈수록 엄청난 크기의 건물에 당태세는 놀라고 있었고, 그 아래 펼쳐진 황야 같은 광장을 보며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체 사형문은 뭘 하려고….”
순간, 당태세는 혼잣말을 멈추었다. 슬쩍 본채의 옆에 붙은 돌계단을 따라 위로 몸을 조심스레 올리던 노인은 건물의 앞마당을 보면서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수십 대, 아니 얼핏 봐도 백여 기는 되어 보이는 네 바퀴 대형 수레들이 마당 앞에 도열해 있는데, 그 수레는 남경에서 서안으로 당태세가 타고 온 수레보다 훨씬 길어 보이는 수레였다.
그리고 그 수레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데, 한 수레에 최소 스무 명은 태우는 듯 보였다. 변발한 사내들의 머리가 가득 들어찬 수레는 정성스레 포장을 뒤집어씌우고 있었는데, 창과 칼을 든 사내들이 모두 광장에 내려가 각 수레에 붙어 일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당태세는 왜 주변을 지키는 이들이 모두 안 보이는 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내들을 가득 실은 저 수레들은 대체 무슨 용도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종내 알 수가 없었다.
잠시 그들을 보면서 앉아있던 당태세는 눈을 빛내며 슬쩍 자신의 옆에 있는 본채를 바라보았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급선무겠지.”
당태세는 몸을 숙이고 자신의 앞에 나 있는 작은 쪽문을 통해 본채의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건물의 계단과 기둥 사이 그림자에 몸을 숨긴 당태세는 다시금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돌아보았다. 사형문의 본채는 당태세가 알던 어떤 종류의 가옥과도 다른 구조였다.
커다란 통로가 앞에 나 있고 각 통로마다 방이 붙어 있는데 눈에 보이는 난간과 계단으로 짐작할 수 있는 층수는 오층이 넘어 보였다.
계단은 아래로 더 이어져 내려가고 있었으니, 지하로는 얼마나 더 들어갈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당태세는 한참동안 사방을 살펴보다가 이런 식으로 꾸며진 유사한 건물을 하나 방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름 아닌 장사의 영우문이었다.
“이건 병영이구먼.”
당태세가 신음을 흘렸다. 장사의 영우문과 다른 점은 영우문은 장원의 각 날개 끝만을 문도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사형문은 건물 전체를 사람을 수용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 유독중 그 놈의 꿍꿍이는 무엇인가?”
그때였다. 당태세의 곁으로 두 사람의 번수가 몽둥이를 들고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당태세는 그림자 속에 몸을 넣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보법과 체구를 살펴보니 무예를 어느 정도 익힌 이들이었다. 사형문의 표사 아니면 사형문도일진대, 표사가 건물 안에서 일을 볼 리 없으니 사형문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터였다.
그들은 슬쩍 당태세가 숨어있는 근처까지 와서 주위를 살피더니 다시 뒤로 돌아서 자신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순간, 노인의 신형이 늘어나는 그림자처럼 슬쩍 그들의 뒤에 다가섰다. 노인의 번득이는 눈동자가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빛을 발했다.
순간 한 사내의 목 뒤에서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사내 하나가 눈을 뒤집고 그 자리에 쓰러지는데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본 번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의 뒤에 있는 노인을 바라보는 순간, 노인의 손이 그대로 날아와 가볍게 명치를 치고는 엄지과 검지로 사내의 울대를 쥐었다.
사내가 숨을 토해내며 그대로 무릎을 꺾는 순간, 쓰러지는 사내의 눈 앞에 시퍼렇게 타오르는 노인의 마안(魔眼)이 자리 잡았다.
“숨소리도 내지 마라.”
노인의 쉰 목소리가 저승의 무상귀(無常鬼)가 내는 소리처럼 번수의 귀에 울려 퍼졌다.
“소리를 냈다가는 네 친구의 손을 잡고 지옥으로 끌려갈 것이니.”
그제야 번수는 눈이 빠져나올 것처럼 커진 채 고개를 까닥거렸다. 노인의 강철 같은 손가락은 사내의 목 울대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알겠느냐?”
“네. 말씀만 하십시오….”
이미 번수는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다. 이미 손발은 뻣뻣하게 굳은 지 오래였다. 당태세가 좋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형문주 유독중은 어디 있느냐?”